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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8화 (8/350)

8화

그리고,

“…거참, 몰래 나가려다 괜히 남의 가정사까지 듣게 됐네.”

다시 한번 천잠무흔을 발동, 야밤에 담을 타던 당유혼은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밀담에 찔끔해져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그보다 두 번의 불충이라고?’

대충 연배를 보자면, 확실히 광운대주는 상단주 광세운보다 한 세대 전의 인물로 보였다.

아버지뻘 이상으로 보이는 수준이니, 그때부터 모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말하는 본새로 보자면 고작 그것으로 끝난 듯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사연이 있다는 말이지?’

좀 더 복잡하고 기구한 사연.

그럼 역시,

‘직접 가봐야겠지?’

삼십 년 전까지는 온 무림에서 가장 지독한 놈들의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사천당가’.

그리고 그 가문의 정당한 후손은 무려 세 번째 시도만에 목적한 바를 이뤘다.

달칵―

기와 하나가 옆으로 젖혀지고, 사람 하나가 거꾸로 머리를 불쑥 내밀며 나타났다.

“나. 강림.”

아무도 없지?

슥슥 돌아보지만 역시 있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단 하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뿐.

그리고,

‘저쪽이 전혁수구만?’

문밖의 창호지에 기대어 선잠을 자고 있는 청년이 하나.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선 밖에서 자신의 아비를 지키다 잠든 듯했다.

“삼강오륜도의 표본이구만.”

가급적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내려선 당유혼은 얌전히 중년인에게 다가가 맥문을 짚었다.

‘확인해 볼까.’

스스스…….

중년인의 맥문을 타고 내공이 흘러 들어갔다.

만약 다른 이들이 봤다면 기함을 토했을 행동이었다.

타인의 체내에 내공을 흘려 넣어 상세를 살핀다?

어지간한 내기를 다룸에 고명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둘 다 목숨이 위험해지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당유혼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미친 짓을 시행했으니,

‘거참, 얼마 없는 내공으로 하려니까 좀 불편하네.’

지금은 한낱 어린 소년의 몸이지만, 그 속은 내기 수법에 있어 무림 제일의 위치에 있는 노강호였기에 할수 있는 행위였다.

‘흐으음…….’

맥문을 통해 흘러든 내기는 혈도를 따라 굽이굽이 체내를 훑었다.

중년인은 그래도 한때는 무공을 익혔는지 제법 혈도가 잘 닦여 있었으나, 그것도 한때 인지 여기저기 노폐물들이 끼어 있었다.

‘그런데 뭐, 이 정도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데 말이지.’

이 정도면 오히려 일반인보다 상태가 좋았다.

혈도가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대개 일간의 체내에 문제가 생기면 그 부위와 관련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이 정도면… 응?’

건강해야 이상이다, 라고 말하려던 찰나,

‘…그럼 그렇지.’

당유혼의 기감에 기이한 것들의 존재가 포착되었다.

그것을 아주 가늘고 얇게 혈관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고, 오장육부에도 딱히 어느 하나 특정 부위 할 것 없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그게 얼마나 얇은 피막처럼 달라붙어 있는지, 자신 정도 되는 내가 고수가 아니라면 그 존재를 찾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이러니 못 찾지.’

그것을 얇게 긁어낸 당유혼은 그대로 내기를 조절해 위쪽으로 역류시켰다.

“콜록!”

중년인의 입이 열리고, 작은 헛기침과 함께 불그스름 게 튀어나왔다.

그걸 준비해 둔 한지에 받아내니 진득진득한 점성이 있는 것이 딱 봐도 흉악해 보였다.

“독?”

이딴 게… 괴질?

‘이런 건 괴질이라 불릴 게 아니야. 중독 증상이지.’

“콜록콜록!”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중년인이 몇 번의 헛기침을 더 했다.

한지를 허공에 휘적이니, 불그스름한 것이 섞인 타액이 묻어났다.

‘쯧,’

그걸 본 당유혼이 헛기침과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단순히 더러워서가 아니었다.

“비말(飛沫)에 의한 호흡기 감염도 쉽게 일어나기 쉽겠어.”

다른 건 몰라도, 이게 왜 괴질이니 역병이니 하며 불리우는 지는 알만했다.

‘전염되기가 너무 쉽다. 무지한 이들이라면 간병한답시고 왔다가 걸리겠어.’

이쯤 되니 이 골 때리는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시작은 못 먹고 못 사는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에게서 시작되었을 괴질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발원지를 찾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 어디쯤일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콜록… 콜록!”

중년인의 헛기침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 이런…….’

생각해 보니 기관지에 붙어서 함께 나올 정도의 증상이면 그건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언제 간질 발작으로 갈지 모르는 거잖아.’

서둘러 맥문을 짚었다.

가져온 대침이라도 있으면 뭔가 해보겠는데, 지금 있는 거라고는 손에 든 한지뿐.

‘아니, 뭔 의료 도구 하나를 안 놔뒀어?’

주변을 둘러봐도 쓸 만한 게 없으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할 수 없군.’

다시금 내공을 집어넣으니, 들끓는 기혈 속 조금 전 발작으로 붉은 피막 같은 것들이 혈도를 막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얌전하게 있다 여겼더니…….’

조금 전 긁어낸 행위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오늘이 고비였을 수도 있겠구나.’

한때 잘 단련되었던 무인이라 할지라도, 숨구멍이 막히면 답이 없다.

내공을 발휘해 그것들을 긁어내는데,

‘뭐 이렇게 질겨?’

생각해 보면 혈도를 잘 닦을 정도로 수련을 했던 무인도 자신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얇게 잘 달라붙어 있던 놈들이다.

혼원신공을 만들며 내공 양을 부쩍 늘렸다고 해도, 그런 놈들을 한 번에 다 씻어내기는 역부족.

즉, 체내에서 내기만으로 치료하는 내가기공으로는 역부족이란 뜻이었다.

“…빌어먹을.”

곤란함을 느끼고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당유혼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지독하기로 따지면 제일가는 사천당가의 종자였고, 개중에서도 최고라고 불리는 독종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으니―

“내가기공만으로 안 되면, 물리 치료도 동반해야지.”

타탓―

혈도를 두들겨 물리력을 동반하는 치료!

‘예로부터, 고장 난 것은 두들기면 고쳐진다 했지.’

뿌리 깊은 전통의 치료법이 중년인의 전신에 작렬했다. 대충 보면 발작을 일으키느라 정신도 못 차리는 환자를 두들겨 패는 흉악무도의 극치였으나, 사실 그것은 고절한 의료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묘기에 가까운 점혈법이었다.

‘이쯤 하면 됐다.’

외부의 충격으로 혈도에 흐르는 내공 역시 당유혼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되었다.

이것은 일찍이 혼원신공을 창안할 때 했던 방식과 같은 맥락이니, 당유혼은 어렵지 않게 중년인의 혈도에 일어나는 흐름에 자신의 내공을 섞어냈다.

그것은 고작해야 조타수가 방향타를 잡은 것과 같았으나, 제법 잘 단련된 무인에게 잠들어 있던 내공은 거대한 범선과 같았다.

그 거대한 범선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니,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쯤은 가볍게 때려 부수며 움직였다.

‘됐다!’

노도와 같이 흐르는 내공이 혈도에 걸리적거리던 불그스름한 독소를 쓸어냈으니,

“커어억!!”

잠들어 있던 중년인은 검붉은 핏물을 토해 냈다.

누가 보면 사람 하나 잡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중년인에게 걸린 괴질을 치료해 낸 것이다!

그때,

“웬 놈이냐!!”

문이 벌컥 열리며 선잠을 자고 있던 전혁수가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중년인이 피를 토하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으니 잠이 번쩍 깬 것이다!

그리고,

“아, 아버님?! 이… 이놈!!”

“어? 야, 잠깐만. 오해야, 오해.”

“아버지의 원수!!”

야생의 전혁수가 달려들었다.

밤중에 광형상단에는 난리가 났다.

다른 곳도 아닌 입의당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현재 황산현을 괴롭히고 있는 괴질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문사들이 모여들어 밤을 새우는 곳이 입의당이었고, 거기서 울려 퍼진 비명은 온 사람들을 긁어모았다.

가장 먼저 몰려온 것은 입의당에서 선잠을 지새우고 있던 문사들이었고, 그들은 곧 목도한 풍경에 연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전 공자!!”

“이놈! 전 공자에게 무슨 짓이냐!!”

그들이 본 풍경.

그건 바닥에 엎어져 있는 전혁수와,

‘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

한쪽 주먹을 든 채, 뇌 정지가 와 멍하니 서 있는 당유혼이었다.

‘X됐다…….’

갑자기 달려든 전혁수. 자신의 아비가 위험에 처했다 싶자 그는 무조건 반사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삼강오륜을 충실히 이행하는 유자로서 아주 훌륭한 행위였다.

다만 문제라면,

‘무, 무조건 반사로 쳐버렸어!’

기습이 날아들면 반격을 갈긴다.

이 세상에 눈을 뜨기 전까지 시시각각 생사가 오가던 전선을 전전하던 노강호는 무조건 반사로 난입하는 상대의 턱주가리를 돌려버렸다.

‘손에 익은 습관이……!’

탄식할 노릇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할까?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뛰쳐 들어온 유자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들고 온 벼루를 치켜들며 덜덜 떨었다.

‘어떻게 하지?’

이렇게 이목을 끈 상태에서는 천잠무흔이고 나발이고 소용이 있을 리가 있나.

방 안에는 입에서 핏물을 뿜은 채 잔 경련을 일으키는 중년인과 그 아래에서 기절한 중년인의 아들이 차례로 쓰러져 있으니, 평생 먹물만 먹던 이들은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침을 꿀꺽 삼켰다.

‘괴, 괴한이라고?’

‘어째서 이곳에…….’

‘우리도 저렇게 만들려고?’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비명 소리가 들려와 모이기는 했지만, 눈앞에 드러난 처참한 상황에 모두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이런 멍청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친우와 친우의 아버지가 악적에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의(義)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곳까지 모인 이들.

한 고집 하는 유자들이 점점 내면의 공포를 물리치고 의지를 밝히려 하고 있다.

‘아, 안 돼! 하지 마! 굳이 공포를 물리치지 마!’

그리고 그 변화를 읽은 당유혼이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오해야! 나는 이쪽을 구해 주려 했을 뿐이라고!!”

일단 변명.

하지만 그건 변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처참했으니,

“구, 구해 줘?”

“이 악적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건 입의당의 문사들을 자극함과 동시에, 상대도 겁을 먹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친우의 원수!”

“부자를 해한 원수!!”

“가만두지 않겠다!”

벼루를 가지고 비사치기라도 하려는 모습들에 당유혼은 기가 찼다.

‘아니, 너희 친구 안 죽었어!!’

생사람을 고인으로 만들려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려 할 때,

“쿨럭… 크으음…….”

그들의 뒤쪽에서, 잔 경련을 보이던 중년인이 거하게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스윽 상체를 일으켰다.

“어엇?”

“전 표두님?”

전광일.

전혁수의 아비이자, 한 때 광형상단의 표두였던 이는 끄응…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게, 무슨 소란인가?”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터지기 직전의 분위기를 일단락시켰다.

마침 광형삼의를 비롯한 상단주, 광운대주 등등이 몰려온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 * *

“…그러니까, 소협께서 전 표두를 치료하셨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청문회가 열렸다.

입회인 및 참가자들은 광형상단에서 제법 위치를 지닌 이들.

그리고 빙 둘러선 그들 사이에 앉은 당유혼은 고개를 뻣뻣이 들며 빽― 소리쳤다.

“봐요, 저 아저씨 이제 건강하잖아요!”

그의 손가락 끝에 걸린 중년인, 전광일이 큼큼 헛기침을 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는 이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괴질에 걸렸다가 저 낯선 청년이 내 호실에 침투해 나를 낫게 해줬다고?’

자신이 괴질에 걸렸다는 것이야 안다. 그 역시 괴질을 치료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던 이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치료법을 알지 못해 불치병이라 불리우던 것은 상단의 명의들이신 광형삼의도 아니고 낯선 이가, 아닌 밤중에 자신이 누워 있던 호실에 침투해 치료해 줬다니…….

“전 표두. 진실이오?”

스스로도 이해 하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는데, 광형삼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자 전광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글쎄요. 몸이 가볍기는 합니다.”

앓아누울 때의 경험은 확실하다.

의식은 흐릿하고 온몸은 불이라도 난 듯 뜨거웠고, 숨쉬기가 특히나 버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 누워 있어 찌뿌둥한 것 외에는 그 어떤 증상도 없다.

“…믿기지 않는군.”

“말했잖아요. 내가 고쳤다고.”

“큭… 웃기지 마라!”

“아무런 의료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고쳤다고?”

“그것도 내가기공만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느냐!”

아니, 그건 너희가 못하는 거구요.

내면의 외침을 외부로 토하고 싶은 욕구를 필사적으로 참는 당유혼이었다.

그건 저들 광형삼의가 이곳에서 최고 어른으로 추앙받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설혹 그게 사실이더라도, 저는 소협께서 어이하여 잠든 환자가 있는 곳에 몰래 침투하셨는지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지른 죄가 덜미를 잡기도 했기 때문이다.

“후우…….”

다시 한번 한숨을 푹 쉰 광세운이 혀를 찼다.

간밤의 소란이 지나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이렇게 회의를 연 그는 사실 지난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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