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괴질을 치료했다고?’
자신이 초빙한 이가 괴질을 치료했다.
그것도 간밤 사이에 몰래.
무려 은밀히 침투해서.
어느 쪽이든 어질어질한 상황에 지난밤은 일단 모인 이들을 해산시켜야 했었다.
뭐 하나 정상적인 게 없으니 광세운도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서였다.
하지만 이리 날이 밝아 모아도 무언가 쉽게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군요. 왜 몰래 침투하셨습니까?”
“그냥 들여보내 달라 해서는 안 보내줄 것 같아서요.”
“…….”
그건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몰래 침투를 한다고?’
굳이 몰래 침투까지 해야 할 필요성이 이해가 안 됐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순전히 호기심으로 했다고 말해도 안 믿어주겠지?’
결과만 좋다면 만사가 좋다고 하기에는 당유혼 스스로 생각해도 허허, 그렇군요~ 하는 긍정적인 대답보다는, 웃기지 마라, 미친놈아!라는 욕설이 나올 게 뻔한 이유였다.
“…의술은 곧 인술. 고통받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장 변명을 내뱉어 보지만,
“미친놈! 그렇다면 혁수의 턱주가리는 왜 돌렸느냐!”
아, 치사하네.
거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싸우자고?
“…큼, 거, 급박해서… 미안하게 됐수다.”
“미안하다면 다느냐? 이 아이의 꼴이 안 보이냐?”
불똥은 가만있던 권혁수에게로 돌아갔다.
얻어맞은 부위가 부풀어 있는 상태로 참관인 신분이 된 그가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저…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 그렇지?!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잖아!!”
“아니, 근데 이놈이?!”
뭐 어쩌겠는가.
어제야 자신의 아비를 해한 흉수라고 생각하고 달려든 전혁수지만, 오늘 정신을 차려보니 저 남자가 자신의 아비를 구해 준 은인이란다.
믿기지 않지만, 들어보니 고쳐준 것도 사실이고 저자가 아니었으면 어젯밤이 고비였을 수도 있다고도 하니 그의 입장에서는 사정이야 어쨌든 은인인 셈.
“아,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잖아요!”
울화통이 터지는 광형삼의였으나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 결국 광세운이 나서서 중재를 시도했다.
“잠깐 멈춰주십시오. 소협, 진정 소협게서 홍연을 치료하신 게 맞으십니까?”
“그렇다니까요?”
“단주! 저놈 말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후… 장 노(老).”
거센 반발에 광세운은 광형삼의 중 하나를 돌아보며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제 이런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혹은, 제가 사특하고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간다 걱정하실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 괴질의 치료법을 꼭 알아내야 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뱉는 말에 광형삼의의 표정은 딱딱히 굳었다.
그렇게 장내에 침묵이 찾아오자 당유혼은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쩝, 이렇게 부담 갖는 건 별로 안 좋기는 한데. 그리고 못 믿을 것도 아는데, 제가 고친 거 맞아요.”
“믿습니다. 결과물이 있지 않습니까.”
일단 눈앞에 보인 것이 있지 않은가.
다만, 그렇다면.
“그 치료법을 공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불안도, 불신도, 의심도 그 치료법을 공유해 준다면 덮어놓을 수 있다고.
그리 묻는 광세운의 질문에,
“음… 그건 무리겠네요.”
당유혼은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예?”
어째서?
“역시 이 사기꾼놈!”
“그럴 줄 알았다!!”
운이 좋았다고 소리치는 광형삼의들이었으나, 이번에는 그것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왜냐면, 이건 알려줘도 못하거든요.”
“어째서… 아.”
말을 잇던 중 광세운은 곧 답을 알아냈다.
왜냐면, 치료법은 그가 한번 말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물리 치료와 내부에서의 내가기공을 통한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내기를 상대의 내부에서 움직일 만한 고수여야 하며, 동시에 의술적 지식에 해박해야 한다.’
전자는 광운대주가 할 수 있고, 후자는 광형삼의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두 조건을 한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
“…알고 있어도, 공유해 줄 수 없는 치료법이군요.”
“뭐, 그런 거죠.”
당유혼도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에 광세운의 표정이 어두워지려 할 때,
“근데, 지금 못 알려주는 것뿐이에요.”
“…예?”
“해결법, 알 것도 같거든요.”
“지, 진심입니까?”
“물론이죠.”
어젯밤에는 애매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점점 인과가 연결되는 듯했다.
‘괴질에 걸린 이들의 명단. 그리고 그들의 직업까지 확인하니… 대충 짐작은 가는구만.’
“그래서, 그걸 이제 확인하러 가보려구요.”
“어, 어딜 가신다는 것입니까? 제가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아뇨, 그건 좀.”
“어째서입니까?!”
“걸리적거려서요.”
“…아.”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 당유혼은 무림 고수였고, 나머지는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뿐이었다.
그나마 있다면 광운대주 정도겠으나,
“…저 정도가 따라간다 해봐야, 기껏해야 감시역일 뿐이겠군요.”
의학적 지식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광운대주가 따라가 봐야 사람 감시하는 역할일 뿐.
그래서야 괜히 알려주는 사람 기분만 잡칠 뿐이다.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그래도 오늘 해가 저물기 전까지는 돌아올게요.”
이쯤 되자 그를 말릴 이는 딱히 없었다.
일단은 한번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파다했고,
‘사실, 이 사람이 억지로 이 자리를 빠져나가도 말릴 사람은 없으니까.’
하룻밤 자고 난 뒤의 침착해진 광세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폭풍을 몰고 온 당유혼이 떠난 뒤, 광세운의 집무실은 한결 조용해 졌…지는 않았다.
“단주님!!”
“이게 진정 옳은 결정이십니까?”
“진정 이 늙은이들이 쓸모없다 여기십니까?”
“아하하하…….”
늙으면 늘어나는 것은 고집뿐이라.
그래도 한 번은 져줬던 광형삼의는 당유혼이 떠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섭섭함이 물밀듯 밀려와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그게 또 진정 친밀함과 걱정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보니 광세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던 광세운은 대신 광운대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대주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흐음…….”
그간 가만히 지켜보던 광운대주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제법 장고 끝에 다시금 눈을 뜬 광운대주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하나 질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단주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아직 상단주 자리를 맡기에는 어린 광세운이지만, 광운대주는 자신의 작은 주군을 믿었다.
그는 스스로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주변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알 정도로 겸손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려 깊었으며, 어린 나이지만 상단의 앞날을 결정 지을 일에 몸을 사리지 않을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
그런 광운대주였기에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고, 광세운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답했다.
“실망스러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 실망이라니요.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괘념치 말라며 광운대주가 손을 젓자 광세운은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감입니다.”
“감이요?”
“예… 뭐랄까. 그와 척을 지기에 경계를 했다든가, 어쨌거나 그 남자가 병을 고쳐냈다거나 하는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결론적인 이유는 하나.
“왠지 이리 하는 것이 옳다 싶었습니다.”
우두머리로서 내릴 결정으로는 지리멸렬한 이유다.
당연 광형삼의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으나,
‘…감이라.’
광운대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집단을 이끄는 자에게는 그 역시 중요한 덕목이지.’
수많은 생사를 넘나들은 무인의 경험으로서, 직감은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도와준다.
단순 무인뿐 아니라 상인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
게다가,
“…생전, 전대 상단주님께서도 감이 좋으신 편이었지요.”
한때 그가 평생 보필한 이를 떠올린 광운대주가 그리 말하자 장내에 있던 이들은 순간적으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끙…….”
깐깐한 광형삼의들 조차 앓는 소리를 흘릴 정도였으니, 광세운은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단주님!! 큰일 났습니다!!”
집무실 밖에서 허겁지겁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잉! 이놈이고 저놈이고 감히 단주님의 집무실에!”
“어느 안전이라고!”
가뜩이나 당유혼 때문에 짜증 잔뜩 섞인 광형삼의의 노호성이 터져 나오려 할 때, 바깥쪽에서 들려온 말은 집무실 내의 분위기를 급변시켰다.
“사람들이!! 홍연에 걸린 이들이 단체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 *
“휴, 무사히 탈출했구만.”
좋은 일 한번 해보려다 이게 무슨 꼴인지.
역시 사람이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오랜만에 선행을 해보려던 당유혼은 한숨을 골랐다.
“에잉, 어린놈은 무슨. 원래라면 나랑 비슷한 연배일 놈들이…….”
광형삼의에게 쪼인 게 분한지 부들부들 떠는 당유혼이었다.
“마음 같으면 확 떠나고 싶은데…….”
괜스레 짜증을 낸 그였지만,
“…쩝, 그래도. 왠지 그 눈빛을 보자면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진단 말이지.”
광세운.
그의 눈빛이 참 마음에 걸렸다.
“보면 볼수록 닮았어.”
옛날 옛날 어느 멍청이가 살았다.
협의가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만이 협의를 지키며 살아갔다.
그에 감화된 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궂은 일인 줄 알면서도 함께 그 길을 걸어갔으니, 그 남자의 바로 곁에서 함께 걸어갔던 노강호는 차마 그 남자와 닮은 눈빛을 한 어느 청년을 결코 좌시할 수가 없었다.
“귀찮다, 귀찮아.”
어느덧 산마루에 올라선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호구 같은 일은 질색인 그였지만, 이미 와버린 발걸음을 되돌리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고 결국 입에 욕지거리나 붙이며 계속해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에효, 내가 이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인지…….”
구시렁구시렁―
이왕 할 거면 그냥 하면 되지 굳이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이어 가는 당유혼의 발걸음은 막힘없이 쭉쭉 나아갔다.
분명 처음 와보는 산세인데도 당유혼은 무언가를 아는 듯했고, 실제로도 당유혼은 분명 명확한 목적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정확히 예상했던 곳에서 멈췄다.
“여기구만.”
그가 멈춰 선 곳에는 수원(水源)이 있었다.
이 주변의 모든 물길이 시작되는 곳.
산꼭대기에 있다기에는 제법 깊은 물 속으로―
풍덩!
당유혼은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보자.’
물속이지만 당유혼은 거침없이 눈을 떴다.
내공으로 보호한 안구는 물속에서도 땅 위인 것처럼 훤하게 주변을 파악했다.
그리고,
‘저기 있구나.’
그 속에서, 당유혼은 저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혈화사(血花蛇).’
그것은 뱀이었다.
피처럼 붉은 가죽을 가진 뱀이 죽은 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헷갈렸다.’
혈화사는 독사였다. 놈의 독에 중독되면 온몸에 열꽃이 피어나고, 호흡이 점점 가빠지며 죽음을 맞이한다.
다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대게 하루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의아하기도 했지.’
열꽃과 기관지의 문제에 의한 사망은 분명 혈화사의 독이 맞는데, 듣자 하니 환자들은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를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독이 충분히 열화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원래라면 하루 만에 죽을 독도, 이렇게 최상류에서 시체 사이로 줄줄 흘러나와 아래의 물길까지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각해 보면, 참 많이 의아했지.’
처음에는 괴질로 생각했고, 그래서 감염된 이들의 전체를 훑었다.
그 결과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이차 감염자를 제외하고, 최초 감염자만을 보기로.’
광세운이 자신을 안심시키려 말했던, 가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주로 걸린다는 말에서 착안했다.
‘최초 감염자. 그들은 정말로 못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 말고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더라고.’
그건 바로, 그 대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냥꾼 혹은 약초꾼들이라는 것.
‘산을 타는 이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공통점은… 뭐든 해 먹으려고 산에서 식량을 구하러 다닌다는 거야.’
식량을 구하러 산을 오르게 되면 자연스레 식수까진 아니더라도 산에 흐르는 물을 먹게 된다.
‘아직 충분히 혈화사의 독이 희석되지 않은 물을 먹게 되는 거지.’
그게 문제였다.
잘사는 이들은 굳이 산을 타지 않고, 그들이 식수로 길어오는 물은 우물이거나 산이 아닌 하천의 것들이었다.
당연, 혈화사의 독이 섞인 물을 먹지 않게 된다.
푸우―
“아후, 귀찮은 녀석.”
모든 문제의 범인을 찾아낸 당유혼은 물 밖으로 나오며 너덜너덜해진 녀석의 사체를 바라봤다.
“왜 하필 여기 와서 죽은 거야?”
혈화사가 어디 이런 곳에 와서 빠져 죽어 있을 거라 상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역병이 돌면 환자를 보기 마련이지 산꼭대기로 올라와 이런 깊은 물의 바닥을 헤집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
에잉, 쯧.
이제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렸으니, 해결하는 것은 금방이다.
‘노인네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치졸한 복수는 덤이랄까?
자신의 보폭이 당당한 것은, 절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