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하오문.
무림삼대정보집단(武林三大情報集團) 중 가장 광범위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들로, 무림 전역을 활동 영역으로 삼은 만큼 그들을 통솔하기 위해 무림 전역에 각 지부를 설치해 운영했다.
그리고 그 지부를 관리하는 이들을 지부장이라 부르니, 그리 칭해진 중년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당유혼을 응시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자신이 속였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 자신이 속은 거라고?
흠칫 놀라 묻는 말에,
“뭐야? 진짜였어요?”
와, 진짜였어? 그냥 떡밥만 던진 것뿐인데, 대어를 낚았구만? 허허허허허허.
“…하, 하… 공자님, 농이 좀, 지나치십니다요……. 으득!”
“아이, 뭘요. 지.부.장.님.”
꽈악.
으스러져라 주먹을 쥔 하오문 사천지부장, 하윤호의 눈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야, 찍은 것뿐인데 이게 걸리네?”
더 듣다가는 무언가 소중한 것이 끊어질 것 같은 기분에 하윤호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시지요.”
* * *
당유혼은 자리를 옮기자는 하윤호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내 둘은 객잔이 아닌 어느 기루의 은밀한 공간에 마주 앉았다.
정보라는 비밀스러운 것을 다루는 집단인 하오문인 만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여러 안가 중 하나였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좀 합시다.”
의자를 끌어다 앉은 하윤호가 맞은 편에 자리를 권하며 말문을 뗐다.
“짐작했다시피, 하오문 사천지부장인 하윤호라고 합니다요.”
“짐작이요? 그게 뭔 소리인데요?”
“능청스러우십니다요. 저도 처음에는 진짜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오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지 않겠습니까요?”
하오문의 지부장이라는 자리는 적이 많은 자리다.
정파 놈들은 지들끼리 뭉치기라도 하지, 사파 놈들은 지들끼리도 박 터지게 싸운다.
사방팔방에 목을 노리는 적들이 그득한 게 현실이고, 때문에 처음에는 목덜미가 오싹하기도 했다.
허나,
“암만 생각해도, 이야기가 안 맞아떨어져서 말입니다요.”
“이야기가 안 맞아떨어진다?”
덤덤하게 말하는 하윤호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저자세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는 않는 여유가 깔려 있었다.
“어떤 부분이 말이에요?”
“흠, 그건 당장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하나씩 교환하는 게 어떻습니까?”
“서로 한 가지씩 물어보고 대답하자는 말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요.”
정보 상인 아니랄까 봐, 살래살래 손을 비비는 하윤호의 눈이 호를 그렸다.
“한 가지씩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겁니다요.”
“에잉, 이거 사기 아니에요? 난 그래도 협객인데, 아저씨는 사파 나부랭이잖아요.”
“크흠, 그래도 지부장 정도면 나부랭이는 좀…….”
그래도 건더기 정도는 되는 걸로… 어쨌거나.
“그래서, 하시겠습니까요?”
“그러죠. 먼저 해봐요.”
상대가 순전히 거짓만을 말할 수 있지만, 이런 대담에서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는 것은 하수나 하는 행위다.
진정한 고수는 진실을 엮어 거짓을 만드는 법.
자고로, 하오문의 지부장쯤 되면 그 정도는 기본 소양일 게 뻔하기에 당유혼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양보해 주시니 감사히 먼저 여쭈어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지부장인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중요해요?”
“중요합죠. 분명 처음부터 알고 접근한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요.”
“흐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질문이십니까요?”
“…쯧. 처음 의심한 건,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아 올 때였죠.”
사실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순전히 용독문을 팰 생각뿐이었으니까.’
용독문 놈들을 쫓아가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하윤호는 자신의 손목을 잡았고, 두 번째는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왔다.
덩치는 크지만, 일반인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매달려온다? 처음은 그럴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우연이 아니다.
“특히, 두 번째로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오는데… 꽤 떼어내기 힘들더라고요.”
그 순간 느껴지는 무거움. 원래라면 발에 매단 채 움직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은, 단순히 사내의 몸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으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요.”
진짜로 그 순간만큼은 당유혼을 구하려 했던 만큼, 본의 아니게 힘 조절을 실수했구나, 싶어 인상을 찌푸리는 하윤호.
물론, 당유혼이 짐작한 것은 비단 그 뿐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손을 잡아 오던 그 금나수법(擒拿手法)이 하오문의 지부장들만이 익히는 무공이었는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리는 당유혼의 외견은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지만, 그 내용물은 무림에서 닳고 닳은 노강호였다.
단순히 손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투로(鬪路)를 역으로 짚어 올라 무공을 알아채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해서, 제가 어찌 공자님께서 제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답해 드리면 되겠습니까요?”
“아니, 그건 됐네요.”
자신이 했던 것처럼 허세일 수도 있고, 혹은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근데 이미 다 들통난 이상 그걸 굳이 따져서 뭐에 쓰려고?
“그것보다는, 처음 했던 말이나 알려줘요. 그래서, 왜 저를 구하려 했어요?”
“말했지 않습니까요. 공자님께서 협객이…….”
“아니,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구요? 차라리 개새끼가 용이 되었다는 말을 믿지.”
“…….”
우리가 개만도 못하다는 것일까.
서슴없이 쏟아지는 인격모독에 하윤호의 눈이 촉촉해졌다.
“…끄응, 공자님께 저희 하오문이 사파 나부랭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요. 하지만, 저희라고 그렇게 막돼먹은 집단은 아닙니다. 왜냐면, 저희는 하오문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쩝, 그 아이의 어미 말입니다. 퇴기(退妓)입니다요.”
“…아하.”
퇴기. 지금은 기생이 아니지만, 전에는 그런 노릇을 하던 이들을 뜻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겠고, 실제로도 다른 문파였다면 그게 어쩌라고? 라고 할 만한 답이지만, 하오문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하오문은 가장 바닥 인생이 모여 만든 문파니까.’
기녀, 배수, 점소이 등등… 신분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문파인 만큼, 그들을 가장 잘 챙겨주는 것도 하오문이었다.
“내가 당신네들을 구했으니, 당신네들도 나를 구했다는 건가요?”
“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하윤호.
이 정도면 대충 설명이 되었겠지, 하는데,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십니까요……?”
“아뇨, 그냥요.”
굉장히 오묘한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고 의아해 반문해 왔다.
‘흔치 않은데.’
인간은 원래 없을수록 자기들보다 더욱 없는 이들을 뺏는 경향이 강하기에, 하오문에도 마찬가지로 소속된 이들을 더욱 쥐어 짜내는 놈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하지만, 꼭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았으니…….
‘그 녀석이 그랬던가?’
“야, 이 개새끼들아! 니들은 벼룩의 간을 뽑아먹어라!”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어떻게 가족을 팔아먹어?”
“킁, 형님. 거 몸에 좋은 거 남는 것 좀 없습니까? 우리 애 중 하나가 영 골골대서 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싸웠던 녀석들 중, 가장 가진 것 없고 비루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진 녀석이었다.
“이 새끼, 또 처맞고 왔어? 에잉, 한심한 새끼.”
“아, 놔봐! 저 새끼가 내 동생 어떤 꼴로 만든 지 몰라?”
“야, 덤벼! 덤비라고!”
어릴 때부터 혈연 하나 없었던 주제에, 누구보다 자신의 가족을 챙기는 데 마다하지 않았던 녀석.
별종이고, 또 변종인 녀석의 모습이 살짝 겹쳐지는 듯했다.
“해결이 되었다면 이제 제 차례입니까요?”
“예. 그러세요.”
“흐음……. 그럼 다음 질문인데, 공자님께선 용독문과 원한이 있으십니까요?”
“원한이요?”
일단 오늘 원한이 하나 쌓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 그들과는 원한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의심스러운 것은 많지만, 당장 그들은 자신이 없던 공백의 삼십 년에 생겨난 문파니까.
“없어요.”
“…정말이십니까요?”
“에이, 하수처럼 왜 이러실까.”
“흐으음…….”
무언가 오묘한 시선이 향하는 게 느껴졌지만, 당유혼의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럼 제 차례인데. 왜 그런 거예요?”
“예? 그야…….”
벌써 세 번째 같은 질문.
“공자가 협객이라서…….”
“에이, 그거 말구요.”
하지만, 이번 질문은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제가 협객인 것도 알겠고, 아저씨가 제 무공을 어느 정도 짐작한 것도 알겠는데요.”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그럼 내가 그들과 냅다 싸우게 놔둬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요! 저희가 아무리 밑바닥 인생인 하류배들의 모임이라지만, 그래도 은혜는…….”
“것 참.”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황윤호의 말을 자르며 당유혼은 눈을 빛냈다.
그는 닳고 닳은 노강호.
고수가 진실과 진실을 엮어 거짓을 만든다면,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초고수는 역으로 그 진실과 진실, 그로부터 나온 거짓까지 전부 엮어 드러나지 않은 진실까지 찾아내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런 하오문이잖아요.”
“…예?”
“제가 거기서 부딪치지 않게 막은 것은, 저라는 걸 좀 더 요긴하게 써먹고 싶었던 것 아니에요?”
가장 밑바닥을 뒹구는 하오문. 그들이 정보를 무기로 삼는 것은 사실, 그들이 그것을 정보를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보를 통한 이호경식지계. 그것이 하오문이 싸우는 방법이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강적을 빌린 손과 힘으로 거꾸러트리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
“이번에 저를 살린 것은, 단지 저를 구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저를 살려 다른 기회에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나요?”
“…….”
유들유들하던 웃음이 점점 어색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딱딱히 굳기 시작하더니,
“…후우.”
결국 한숨으로 화해 버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요?”
“그것도 질문으로 치는 거죠?”
“끄응, 못 당하겠습니다요. 알겠습니다요. 보아하니 공자님도 이 답을 원하시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요.”
여기까지 오니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이 소년인지 청년인지 모를 기괴망측한 남자는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 밑천까지 완전히 까발려져 버린 하윤호는 솔직하게 말해 왔다.
“용독문, 그들의 멸망을 원합니다요.”
용독문의 멸망을 원한다라.
‘굉장히 단도직입적이군.’
당유혼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독문을 찬양하던 것 치고는, 굉장히 대범하게 제안을 해오시네요.”
‘제가 용독문과 관계라도 있는 인물이었으면 어쩌려고.’
굳이 뒷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그걸 꼭 듣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듯 하윤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저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요. 고작해야, 눈여겨볼 대상으로 삼으려 했죠.”
“날 복검(腹劍)으로 삼으려 했다는 건가요?”
“역시… 저희에 대해 잘 아십니다요.”
가장 천대받는 이들이 모인 하오문이기에 그들은 항상 납작 엎드려가며 살아야 했다.
하나 그런 그들도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경우까지 내몰릴 때가 있고, 그런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 문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구하는 한 자루의 흉기는 존재한다.
항시 천대받는 그들을 대신해 무력을 행사해 줄 그런 이들!
그들을 배 밑에 숨겨둔 검, 복검(腹劍)이라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