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7화 (17/350)

17화

“정확히 말하면, 후보 중 하나였습지요.”

“후보 중 하나……. 재밌네요.”

“하오문은 원래 이러지 않습니까요.”

너스레를 떠는 하윤호의 모습에 당유혼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오문이 복검을 고용하는 방식이야 유명하지.’

재물이든, 여자든, 정보든, 그들이 가진 것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복검을 영입하려는 것은 30년 전에도, 그보다 더 전에도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그럼… 우선 묻고 싶은 건데, 그렇게 용독문을 멸문시키려는 이유가 뭐예요? 하오문이, 원래 그리 쉽게 적의를 가지는 문파는 아니잖아요?”

“…그렇습지요. 저희는 싸우기보다는 굴복하고, 뻣뻣이 서기보다는 납작 엎드리는 것을 택하는 문파입지요.”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그들 역시 최후의 보루로 복검을 두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

결코 쉽게 휘두르는 검이 아니다.

다만,

“공자님께서는 용독문의 정체를 아십니까요? 아니,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십니까요?”

“말해 봐요.”

“그들은 사천삼주가 피워낸 독버섯과 같은 이들입니다. 이 만가쟁패(萬家爭覇)의 시대에,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키워낸 놈들이란 뜻입니다요.”

만가쟁패?

‘요즘 시대를 사람들은 그리 부르나?’

역대 무림은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명칭을 달리해 왔다.

절대적인 재앙이 온 무림을 드리웠던 시산혈해(屍山血海). 모든 협의가 종말을 고했던 나타협의(懶打俠義). 동방에서 온 한 명의 고수가 독행하던 일궁관천(一弓䝺天) 등등으로 칭해졌고,

‘천마… 그놈이 발발했던 천마강림이… 바로 삼십 년 전이었지.’

과거를 곱씹는 노강호가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솔직히, 이 시대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에요. 다만 만가쟁패라는 건, 지금 무림에 온갖 것들이 다 일어나서 머리 크다고 자랑하는 시대라는 것인가요?”

“허허, 머리 크다고 자랑한다라… 현시대를 그리 표현하는 건 공자님밖에 없을 것입니다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삼십 년 전 천마의 등장으로 무림맹이 정기를 잃고 유명무실해지고, 저명하던 문파들이 대거 멸문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요. 그리고 그 틈에 기존 무림의 세력 구도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지요.”

“용독문도 그런 문파라는 거죠?”

“그렇습니다요. 그들은, 현 사천을 장악하고 있는 사천삼주가 사천의 밤을 지배하기 위해 벼려낸 칼입니다요. 말하자면, 본문의 복검과 같은 놈들입죠.”

복검과 같다라.

‘사천삼주라면 분명 그놈들을 말하는 것일 텐데.’

아미, 청성, 점창.

흑점에서 미리 전해 듣고 온 정보에 따르면, 기존 사천에 존재하던 구파일방의 세 문파가 연합해 만들어 낸 세력이었다.

‘흥, 우리 당문이 전성기일 때는 쪽도 못 쓰던 것들이.’

나 때는 아주 한주먹거리였는데 말이야.

입술을 삐죽거리는 당유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윤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 태어난 용독문이 부리는 패악질을 나날이 끝이 없이 방만해졌습니다요. 그들이 지저분할수록 더욱 폭넓게 부리기 쉬워지는 입장의 사천삼주 역시 그 행태를 방치하였습죠.”

“그래서, 그만큼 하오문의 피해가 크다는 거죠?”

“예. 단순히 피해가 크다는 정도가 아닙니다요. 원래부터 천대받던 하오문도지만, 이제는 숫제 가축을 다루는 듯한 지경입니다요.”

분에 겨운지 수염을 파르르 떨며까지 말해 오는 하윤호. 하지만 팔짱을 낀 당유혼은 덤덤하게 되물었다.

“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무엇이 말입니까요?”

“암만 그래도 고작 삼십 년 아니에요? 암만 하오문이 천대받아도 근본이 어딜 가지 않는 법인데, 고작 그 정도 만에 자란 문파가 하오문을 위협할 정도가 돼요?”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해도, 당유혼은 하오문을 그리 무시하지 않았다. 특히, 그 진면목을 아는 당유혼으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에,

“공자님은… 정말 삼십 년 이내의 지식이 전무하십니다요.”

하윤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예?”

“후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요. 그들은 독버섯과 같은 놈들이라고. 대게, 버섯은 시체 위에 피어나는 것들. 용독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요.”

삼십 년 사이, 누군가의 시체 위에 자라난 용독문.

그 크기가 하오문마저 위협할 정도라면, 그 시체 역시 생전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던 것일 수밖에 없다.

“용독문이 기생하며 자양분을 빨아먹고 자란 것. 그것은 바로, 삼십 년 전 최후의 의협지문, 사천당문입니다요.”

* * *

홀로 남게 된 암실.

그곳에서 하윤호는 묵묵히 어질러진 다기(茶器)들을 치우고 있었다.

“지부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들어와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답하자, 곧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복장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삿갓과 그 아래로 드러난 풍성한 머리카락. 오색 찬연한 비단으로 이루어진 의복을 입은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비 복검 후보가 떠났습니다.”

“흠, 그러더냐?”

아까의 경박한 모습과 달리, 심드렁하게 답한 하윤호는 그저 다기를 치우는 손만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에, 결국 다시금 입을 연 것은 여인의 쪽.

“…아깝지 않으십니까?”

달그락―

다기들이 원래 있던 자리를 되찾았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하윤호가 되물었다.

“무엇이?”

“그가 제안을 거절한 것 말입니다.”

“아하.”

당유혼. 그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흐음.”

이 다경 전 대화의 흐름을 되새기듯,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두들기던 그는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뭐, 어쩌겠느냐. 같이 안 한다는데.”

“하지만 그는…….”

“홍단(紅丹)아.”

무어라 말하려던 기녀, 홍단의 말문을 자르며 하윤호가 물었다.

“너는 그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제 생각…말입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 보아라.”

“저는…….”

되돌아온 질문에 기녀 홍단은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숨기는 게 많은 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래, 맞다.”

“예?”

“숨기는 게 많아 보인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 말한 하윤호는 껄껄 웃으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내가 바짓가랑이를 매달리는 힘을 보고 내 정체를 추측했다? 아니지, 그랬으면 바로 내 정체에 대한 의심을 하고 곧장 조치를 취하거나 했겠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자신의 정체를 눈치챘다.

“마치 무언가 까먹고 있던 것을 뒤늦게 떠올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건, 그가 내 무공의 연원을 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

“그가 지부장님의 무공을 안다고 말입니까?”

“그래, 나도 본능적으로 본문의 금나수법으로 그의 팔을 잡아채려 했거든.”

스륵―

장난스럽게 허공에 손짓을 하는 하윤호를 보며 홍단은 표정을 굳혔다.

“그럼… 위험한 것 아닙니까?”

“위험하지.”

이해할 수 없고, 연원을 알 수 없는 것. 그것은 위험한 것이다.

그의 상관이 습관적으로 말해 오던 말에 빗대어 묻자 하윤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위험한 게 필요한 순간이야.”

하윤호의 시선이 한쪽 벽면으로 향했다.

벽에 걸린 사천의 지도.

일견하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지금 사천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쟁투의 상황도가 덧씌워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고 연원을 알 수 없는 것. 그것은 위험한 것이지만, 달리 변수(變數)라고도 부르지.”

상황도의 상황은 안타깝게도 하오문이 열세.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런 변수가 필요했다.

“기다려 보자고. 마지막 모습을 보니, 우리의 변수도 상황이 그리 편안해 보이지는 않던데.”

다시 한번 히쭉 웃는 하윤호.

그 역시 귀계와 암투로 점철된 사파의 항쟁에서 수십 년을 살아남은 남자였다.

* * *

“…후우.”

하오문의 안가를 빠져나왔다.

충격적인 진실을 전해 듣고도 겨우 내색하지 않은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이어진 영입 제안에는 거부를 표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알던 사천당문은 없다라…….’

사실 이미 반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무림 전역이 좁다고 떨쳐대던 당가의 이름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사천에서 독을 다룬다고 하면 가장 앞에 나와야 할 그 이름 대신에, 다른 문파의 이름이 들려올 때부터 어림짐작은 했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만약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돌아왔다고? 먼 방계의 후손이라고? 아니면 그저 받아달라고?’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하더라도 허겁지겁 돌아가고 싶던 집이었지만, 뒤이어 떠오르는 것은 아닌 척해도 부정할 수 없는 죄책감.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죽고, 홀로 살아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었다.

때문에 애써 한구석에 밀어 두었던 기억이건만, 이제는 그 현실과 직면해야 할 순간이 와버렸다.

‘여기인가.’

터벅.

사색에 잠긴 사이, 어느새 거대한 장원의 앞에 도달해 걸음을 멈췄다.

그 부지는 어디 가지 않아 광대한 넓이를 자랑하지만, 외곽을 덮은 담은 다 낡아빠져 보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었다.

한때 문 앞을 지키던 이가 십수 명을 넘어서던 정문에는 이제 서 있는 이 하나 없으니, 그중에서도 뼈아픈 것은…….

‘…당문.’

반파되어 버려, 원래 있어야 할 두 글자가 사라져 버리고 조촐한 두 글자만이 남겨진 채 걸려 있는 나무 현판이었다.

결국 우두커니 멈춰선 걸음만이 흘러간 시간이 남긴 잔재 앞에 맴돌았다.

무언가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살아있듯이, 다른 이들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나 반기를 들며 소리를 질러대던 놈들이지만, 결국 돌아오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야단법석을 떨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걸까?

“하… 하하…….”

차갑게 식어버린 헛웃음만이 흘러나올 때,

끼익―

“…뉘시오?”

안에서 문이 열리며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렇게 나온 것은 한 명의 노인.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쳐다보는데,

‘어……?’

그를 마주한 당유혼의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져갔다.

왜냐면, 그도 그럴 것이, 그 얼굴은……!!

“…다, 당……!”

“에잉, 웬 거지새끼 아냐?”

“……?!”

그 말에 환희로 차오르던 기분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썩 꺼지거라. 쪽박이라도 깨지기 싫으면.”

구시렁거리며 다시금 닫히려는 문!

그 순간,

파팟!!

“잠깐!! 얘기라도 좀 들어보시죠?!”

“뭐, 뭐냐, 이놈?”

닫히는 문 사이로 발을 들이미는 솜씨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잖아?

“네놈에게 줄 동냥은 없다 하지 않았느냐!”

“아, 거지라니. 말이 심하시네! 당가가 언제부터 구억팔천 리 만리타향에서 온 혈족에게 이리 박하게 대하셨나!”

“구억팔천 리?”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어디서 구라를 쳐, 이 피도 안 마른 놈이!”

구라? 피도 안 마른 놈?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애써 거짓 미소를 짓고 있던 당유혼이지만, 그 순간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 종놈 새끼가 하다 하다, 못 하는 말이 없네?!”

“뭣, 뭐라고……?”

당가의 문 앞을 막아선 노인, 당궁상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이놈이, 내가 감히 누군지 알고!!”

‘네가 누구냐고? 알지, 잘 알지!’

어찌 모를까.

비록 삼십 년의 세월이 있었다지만, 그 시간이 하룻밤 같은 당유혼의 기억 속에서도 눈앞의 상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당 꼴통, 이 새끼,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구나!’

“야, 이 방계놈아, 어디 감히 가주님께 무례를 저지르느냐!”

“으아악!! 이 방계놈이 사람 잡는구나!!”

“그래, 때려라! 닭의 모가지를 꺾어도 새벽은 온다!”

삼십 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유서 깊게 자신에게 개겨오던 유일무이한 당가 노비 출신의 방계.

그 오랜 악연을 바라보며 당유혼은 버럭 소리쳤다.

“어디 감히 종놈 새끼가 대당가의 직계 앞을 가로막는 거냐!”

삼십 년 만에 폭발한 인성은 그 이전까지 간직해 있던 우울증마저 날려 버렸다.

“뭐, 뭣……!”

말문이 막혀 버린 당궁상의 뒷골이 심히 지끈거려 오는 그 순간,

“무슨 소란입니까?”

반쯤 닫힌 문 안쪽에서, 이 난리와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나타난 인물은 당유혼보다도 더욱 어려 보이는 인물.

그리고 그를 발견한 두 반응은 극명히 달랐다.

“가, 가주님?”

“응? 넌 그 삿갓… 뭐? 가주? 네가?”

“이놈!! 가주님이 네 친구냐!!”

놀라는 당유혼과 더 대경해서 소리치는 당궁상.

그 사이에서 나타난 인물은 담담한 표정으로 당유혼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구면이군요.”

사천을 목전에 두고 쓰러졌던 당유혼을 구해 준 그 삿갓인이 눈앞에 있었다.

“총관. 이게 어찌 된 것인가요?”

‘저놈이 총관이라고? 허 참…….’

종놈이 출세했네.

“그, 그것이… 이자가 자기를 머나먼 타향에서 온 당가의 직계라고 합니다.”

“당가의 직계 말입니까?”

조금 놀란 듯 되물어 오는 소년의 말에 당유혼은 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허겁지겁 답했다.

“그, 그렇지! 저기 청해 쪽에 산골짜기에 살고 있다가 이제 돌아오게 된 거야.”

“청해?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견문이 짧아 그쪽에 있던 직계 혈족의 유파는 잘 모르겠군요.”

“아, 거 모를 수도 있지, 하하핫!”

‘이 새끼 이거…….’

안 그래도 깊게 패어 있던 당궁상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지만,

“어쩔 수 없군요.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가, 가주님?”

“멀리서 온 혈족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당가는 가족을 내치지 않습니다.”

“끄으응…….”

가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크하하, 역시 종놈이랑 다르게 직계는 뭘 좀 아는구만?”

“이놈! 가주님께 예의를 지켜라!”

“아, 예. 거 종놈은 직계에 대한 예의나 지키시지?”

“이놈이!!”

연신 으르렁거리는 당궁상과 당유혼.

둘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먼저 들어가는 어린 가주의 등 뒤로 당가의 문은 서서히 닫혀갔다.

삼십 년 만에 부활한 당유혼, 그가 마침내 당가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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