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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18화 (18/350)

18화

* * *

당가의 입구에서 소란을 피우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안으로 들어선 셋은 우선 가주의 집무실인 가주전으로 향했다.

싱긋싱긋 웃고 있는 청소년. 죽어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노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소년까지.

실로 다채로운 조합.

“우선, 정식적으로 소개를 드려야 하겠군요.”

개중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현 당가의 가주, 당위혼입니다.”

“당…위혼?”

“그렇습니다.”

허…….

그 이름 석 자에 당유혼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구나. 난… 당유혼이야.”

“뭣?!”

흠칫!

그리고, 이번엔 당궁상이 크게 반응했다.

“왜 그러십니까, 총관?”

“아, 아니… 아닙니다…….”

‘아니겠지. 그 이름은…….’

이제는 몰락해 버린 당가에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기억하기만 한다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석 자.

하는 짓까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빼다 박았지만…….

‘그놈은 분명… 삼십 년 전에 죽었으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당궁상은 애써 비현실적인 망상을 지우려 노력했다.

“나이는 열여덟. 넌 몇 살이냐?”

“올해로 열여섯입니다.”

‘열…여섯…….’

어리다. 어려도 너무 어렸다.

이제 고작 학문에 뜻을 구할 나이에 한 가문의 가주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에 당유혼의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쾌활하게 웃었다.

“잘됐네. 그럼 형님이라 불러.”

“이 방자한 놈이 자꾸?! 누가 누굴……!”

“괜찮습니다, 총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려는 노인을 진정시킨 당유혼이 깊은 눈으로 눈앞의 청년을 응시했다.

“이렇게 멀리서 온 형님을 얻게 되는군요. 다만.”

“다만?”

“당가의 상황이 현재 여의치 않습니다. 형님께서는 먼 직계의 웃어른들께 어찌 들으셨을지 모르지만, 이제 당가에 직계라고는 저… 그리고 이제 오신 형님밖에 없습니다.”

“그…래?”

“예. 그래서 숙소 문제도 여의치 않습니다. 빈 전각은 많으나 사용하는 전각은 몇 없습니다. 총관, 지금 여유가 있는 곳이 있습니까?”

“…끙, 없습니다. 당장 내줄 수 있는 곳도, 차양당 밖에 없습니다.”

차양당?

그 이름은 당유혼 역시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차양당, 좋지.”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방계들이 숙식하는 곳이잖아.”

그리고 내가 자란 곳이기도 하고.

조금의 아련함을 활짝 지은 미소에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로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럼, 총관.”

“예. 안내하겠습니다.”

결국 그 뜻에 부복하는 당궁상이었지만…….

‘이놈… 그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꾸나.’

그렇게 고개 숙여진 노인의 두 눈빛은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 * *

“여기다.”

“오호.”

그리운 곳이다.

오랜 기억 속에 남겨져 있는 곳이고, 얼마나 오랜 기억 속에 남겨져 있는지 그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내비쳐진 것만 같았다.

“안 쓰러진 게 용하네요.”

“…크흠.”

어째 자급자족으로 고쳤는지 여기저기 부서지고 뜯긴 자국이 역력한 전각 앞에서 당궁상은 애써 헛기침을 했다.

“들어가지요.”

“예~ 예~”

그래도 이젠 상호 경어 정도는 해주는 당유혼과 당궁상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 분주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내 한 무리의 소년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초, 총관님을 뵙습니다!”

헐레벌떡 나온 티가 나는 모습.

예전이었다면 제아무리 방계가 사는 차양당이라 해도 기강과 기틀이 칼같이 잡혀 있었는데, 지금은 숫제…….

‘무슨 애새끼들 육아소야, 뭐야?’

한때 천하제일가의 이름을 달았던 명문이라고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당유혼은 물론이고 당궁상의 인상도 팍 찌푸려졌다.

“…그래. 이제 너희와 함께 할 노… 분을 소개하마.”

“함께 할 분?”

“이쪽이시다.”

“여어~”

알아서 한 걸음 나온 당유혼이 손을 들었다.

“만리타향에서 돌아온 ‘직계’ 당유혼 님이시다. 직계라고 어렵게 생각할 건 없고, 그냥 편하게 형님이라고들 불러라.”

“…예?”

‘뭐지?’

‘진심인가?’

의구심 가득한 눈들이 일제히 쏟아졌지만,

“크흠… 일단, ‘자칭’ 그러시다고 하시는군.”

마찬가지로 애써 고개를 돌리는 노인은 불편한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지명아.”

“옙, 총관님!”

개중 가장 선두에 있는 청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다시금 이채를 발했다.

“보다시피, 이런 분이시다. 그러니, 네가 잘해 드려야 한다. 아주 자알.”

“자알… 말입니까?”

“그렇지.”

순식간에 오고 가는 둘만의 신호. 그래도 몇 년간 지내왔던 관계답게 청년은 재빨리 노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형님을 잘 보필하겠습니다!”

“흐흐… 그래, 그래야지.”

어째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는 미소를 짓는 당궁상과 청년의 모습.

그에…….

‘지랄하고 있네.’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되도 않는 수작질을 바라보는 당유혼까지.

동상이몽을 꿈꾸는 또 하나의 만남이 지금 이리 이루어졌다.

* * *

당유혼이 당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고, 이런저런 소란을 거쳤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평범하게 수면을 취할 시간이 되었을 때 당가는 어둠을 맞이했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침상에 몸을 누였다.

그리고, 개중 당유혼의 방 앞에 일단의 그림자가 하나둘 모였다.

그래도 직계라고 혼자 쓰기에는 꽤 넓은 독실이 배정됐는데, 그 안에 다 들어가기에는 퍽 많은 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형님. 이거 진짜 맞아요?”

“에잉, 난들 알겠냐. 총관님이 시킨 건데.”

그들은 바로 차양당의 방계들.

총관, 당궁상의 특명을 받은 당지명을 필두로 다른 방계들이 우르르 모여든 것이다.

“듣자 하니 직계라시던데…….”

“몰라, 인마. 나한테 직계 어르신은 가주님뿐이야!”

본인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애써 그 혼란을 무시하듯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직계 어르신. 안에 계십니까.”

다들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그의 방 안에는 등잔불이 켜져 있었다.

다만,

“응?”

정작 등잔불이 켜진 불 앞에 앉아있는 이는 없고, 침상 위 이불만이 불룩 부풀어 있을 뿐이었다.

‘불을 켜고 자는 건가?’

의아함이 일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지라 안으로 들어선 그들이 우르르 침상 앞에 모였다.

“저희도 딱히 원한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직계 어르신께서 너무 선을 넘으신 듯합니다.”

“흐흐흐, 그렇지요. 어찌 총관님의 눈 밖에 나셨습니까.”

방계들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한번 시작하니 우르르, 잘도 따라 하며 위협하듯 침상을 포위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적당히 굽힐 줄도 아셔야지요.”

“총관님이 비록 방계는 아니라지만, 일평생 이곳 당가를 지켜오신 분. 그 예의를 다하셔야 합니다.”

“그게 모르면 저희가 알려드려야 하구요.”

하나둘씩 예를 논하는 그들이었지만,

‘…응?’

‘뭔가 이상한데.’

어째 말하다 보니 묘하게 이상했다.

이쯤이면 깨어날 만도 하거니와, 설령 겁에 질려 애써 이불을 덮고 있다고 해도 이불 안쪽이 너무나 잠잠했기 때문이다.

‘이게 뭔…….’

설마 싶은 당지명이 침상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직계 어르… 어어?”

화악―

그리고 벗겨낸 이불 속.

그 안에는,

“모, 목침?”

“뭐, 뭐야, 이게?”

자고 있어야 할 당유혼 대신, 목침만이 사람 형상으로 쌓여 있었다. 그에 다들 당황하는 순간,

“쯧쯧쯧.”

어디선가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

“예의? 어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이 형님 앞에서 예의를 논해?”

온갖 짜증과 불편이 응축된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온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

그에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 방계들이 허겁지겁 물러날 때,

“그래, 일단 기강부터 다지고 시작하자고.”

드르륵―

열린 문이 닫히고,

후욱!

어디선가 날아온 무언가가 등불의 불을 꺼트렸다.

“뭐, 뭐야?!”

“어, 어디냐!!”

갑작스레 찾아온 어둠에 당황한 그들이 웅성거릴 때,

“어디냐? 이 새끼, 내가 니 친구냐!”

빠악!!

번쩍이는 무언가와 함께 말을 놓았던 방계 하나의 턱주가리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쿠당탕!!

“어억?!”

갑작스러운 기습!

“선을 넘어?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이 새끼야!”

빠악! 뻐억!

“꺼, 꺼억!”

연이어 울려 퍼지는 둔탁한 타격음!

이번엔 연타가 들어갔는지 두 번에 나뉘어 들어가는 타격음과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 불을 켜! 어서!!”

“예, 옙!”

“어쭈, 누가 그렇게 놔둔다냐?”

빠아악!!

“끄아악!!”

허겁지겁 꺼진 등불에 다시금 불을 붙이려 하는 이들은, 그대로 동선이 읽혀 연이어 쓰러져갔다.

그래도 방 안에 들어선 이들이 스무 명이 넘었기에 되었기에 하나둘 쓰러져 가도 마침내 불을 켜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드러난 것은…….

“끄으으…….”

“으으…….”

이미 반절이 쓰러져서 앓고 있는 끔찍한 참상.

“이익…….”

무언가 잘못돼도 심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그들이지만, 당지명은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듯 소리쳤다.

“큭, 지, 직계 어르신! 아,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제 불이 켜졌으니……!”

“불이 켜졌으니, 뭐?”

“에… 예?”

퉤.

시정잡배처럼 침을 뱉은 당유혼이 아무렇게 자라난 머리를 뒤로 넘겨 묶었다.

“니가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까지 네놈을 놔둔 이유가 뭐라 생각하냐?”

“어… 그, 그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쉬운 이유야.”

아주 간단한 이유다.

“원래 기강을 다지려면 본보기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대가리를 잡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저, 저 말입니까……?”

“응, 그리고 이왕이면, 본보기는 좀 잘 보여야 하지 않겠냐?”

파팟!

말과 동시에 당유혼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왔다.

“허, 허억!!”

그에 반사적으로 당가의 무공을 전개하는 당지명이었으나,

“어쭈?”

우우웅…….

기이한 곡선을 그리는 당유혼의 두 손이 마주 수공을 전개해 오던 당지명의 두 손을 풀어냈다.

그렇게 단박에 방어가 풀리고 몸이 열린 당지명을 향해,

“막아?”

빠악!!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 새끼가, 형님이 때리는데, 막아?!”

빠아아악!!

그리고 그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네가 가장 맞는 말을 많이 했지. 그러니 제일 많이 처맞는 거야, 새끼야!”

퍼버버벅!!

“어어어…….”

“끄, 끔찍해…….”

쏟아지는 주먹세례는 몰려든 방계들에게 전의를 추락시켰다.

“아악! 악!! 자, 잘못했습……!”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어? 어? 팔 안 내려? 이 새끼가 뒤지려고!”

뚜쉬뚜쒸뚜쉬!

쉼 없이 날아드는 연타는 방어고 반격이고 전부 의미 없게 만들었다.

한 대, 한 대 꽂힐 때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에 결국 당지명의 눈은 점점 풀려 갔고,

“이 새끼, 세 대만 더 처맞…. 응? 뭐야, 기절했네?”

어느새 멱살이 잡힌 채 쉼 없이 맞던 당지명은 눈뜬 채 혼절해 버렸다.

덜렁덜렁―

자기보다 작은 체구의 손에 매달린 채 실신한 그 모습을 보며 다들 바짝 굳을 때,

“흠.”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둔 당유혼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해?”

움찔!

“대가리 박아,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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