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19화 (19/350)

19화

【 당가 혁신 】

차양당.

당가의 방계들이 기거하는 숙소 앞에는 거대한 연무장이 있었다.

과거 찬란했던 당가의 성세를 자랑하듯, 수십 명이 동시에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곳에는 현재…….

“끄으으으…….”

“사, 살려줘…….”

“죽을 것 같… 으으…….”

서른 명도 넘는 차양당의 방계들이 머리를 처박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슈욱!

“히기익?!”

“어허, 자세 무너지지!”

쓰러지기 직전의 방계 옆에 날아와 박히는 비침!

소위 대가리 박아 자세를 이행하며 엎드려뻗쳐 있던 방계들이지만, 그러다 한계에 지쳐 쓰러지려 할 때면 귀신같이 젓가락이 날아와 박혔다.

‘무, 무슨 젓가락이……!’

분명 밥 먹을 때 사용하던 그것이건만, 한 치 깊이로 박혀 드는 그걸 보자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연무장의 상석에 팔짱을 끼고 딱 선 자세로, 방계들의 기강을 다진답시고 있는 당유혼의 모습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

아닌 밤중에 내려꽂힌 날벼락과 같이 강림한 당유혼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야,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감히 형님한테 기어올라? 나 때는 말이야! 형님이 지나가면 그림자도 못 밟았어! 자식들아! 이 새끼들아, 대형은 하늘이야, 하늘! 네놈들은 그냥 우러러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무림에 그 서열을 찾아보기 힘든 노강호(老強豪) 당유혼. 그는 예로부터 유서 깊은 꼰대였다.

‘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무슨……!’

‘씨바, 솔직히 우리 중에서도 어려 보이는 축에 속하는 것 같은데 무슨……!!’

불만은 차고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자고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습격한 방계들은 물론이고, 곤히 자고 있던 방계들까지 전부 끌어내서 원활한 대화(물리)가 끝난 끝에 이루어진 현 상황에 불만을 표할 방계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기강 다지기가 이어지다가,

“기상.”

후다닥!

뱉어진 한 마디에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어낼 생각도 못 한 채 부동자세를 유지하는 그들 앞을 향해 가볍게 뛰어내린 당유혼이 가장 앞에 있는 당지명의 앞에 섰다.

“지명아.”

“옙! 당지명!”

“잘했냐, 잘못했냐?”

“잘못했습… 아악!”

쩌렁쩌렁 소리치다 그대로 정강이가 까인 당지명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쭈? 앉냐? 왜, 아주 편하게 눕게 해줘?”

“아, 아닙니다!”

허겁지겁!

“잘못한 놈이 왜 이렇게 당당해?”

“그, 그게…….”

“지명아.”

“넵! 당지명!”

“잘했냐, 잘못했냐?”

“자, 잘못… 했… 끄아아악!”

이번엔 우물쭈물 답하다 맞은 데 또 까이며 아예 허물어졌다.

“야, 이 자식아! 대 당가의 방계가 대답하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야? 크게 크게 답해야지!”

‘어쩌라고… 어흑…….’

그대로 엎어져 있으면 어찌 될지 몰라 허겁지겁 일어서는 당지명의 눈가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순간이었다.

“에잉, 한심한 것들.”

어째 한 놈도 맘에 드는 놈이 없다.

‘나 한창일 때는 여섯 시진씩 대가리 처박고 있어도 무너지는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약하고, 약하며, 약해 빠졌다.

이게 정녕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쏟아지던 당가의 방계들이 맞는지.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순서를 정하기 힘들었지. 하지만, 이 꼴을 보니 먼저 해야 할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겠다.’

“네놈들은 근성부터 썩어빠졌다. 이 대형이 너희들을 전부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마.”

기강부터 다진다.

그게 근본이니까!

* * *

꼭두새벽.

이른 아침이란 말로도 부족한 이 시간대에 차양당의 연무장은 뜨거운 땀 냄새와 단내로 가득 차 있었다.

왜? 그 너른 연무장을 끝도 없이 달리는 방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 죽을 것 같…….”

“아, 안 돼!! 멈추면 안 돼!!”

“구아아아악……!!”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하는 당가의 방계들!

벌써 반 시진 가까이 이어지는 구보는 가뜩이나 어젯밤 내내 구른 그들을 탈진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허나, 그들은 결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멈춘다면,

푸욱!

“끄아아악!”

죽지는 않으면서도, 끔찍하게 아픈 장침이 머리에 박혀 강제로 각성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어? 멈추네? 내가 영원히 쉬게 해줘?”

“으어어어……!!”

내공은 예전에 비할 바가 못 돼도, 무림 제일의 경지에 이르렀던 점혈과 침술 지식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정교한 젓가락 투척술이 연무장을 날아다녔고, 결국 그들의 구보는 한 시진을 다 채워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그건 준비 운동에 불과했으니,

“끄아아아……!!”

“버텨, 버텨……!!”

구보(驅步)가 끝난 다음에는 마보(馬步)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냐, 버티지 마. 응? 그냥 편하게 앉아.”

‘이… 이 잔인한……!!’

‘사람이 어찌 저리 극악무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웬일로 푸근한 웃음과 함께 부드럽게 말하는 듯싶지만, 그들의 가랑이 아래쪽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날아들던 젓가락이 박혀 있었다.

구보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게 된다면?

‘그, 그건 대참사다……!’

‘개자식!! 이 나쁜 자식……!!’

어떻게 하면 사람의 한계를 쥐어 짜낼 수 있는지를 잘 안다는 듯 몰아쳐 오는 당유혼의 갈굼 솜씨는 진정 극의(極意)에 이르러 있었다.

그렇게 온몸에서 빛이 날 정도로 매매 닦이고 또 닦이는 방계들.

‘사, 살려줘……!’

‘누, 누가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구원의 동아줄을 바라는 그들 앞에, 마침내 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총관. 어디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예? 아닙니다. 흐흐흐흐…….”

아니라고 말하지만 만면에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총관. 당궁상의 모습을 보며 당위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분께 무언가를 했군.’

아닌 척해도, 평생 같이 살아온 당궁상이다.

아마 어제 당유혼을 안내해 줄 때 무언가 수작질을 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 가족이라도 부딪쳐 살다 보면 불협화음이 날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가 보기에 당유혼은 분명 모난 돌이었다.

굴러들어온 돌인데 모나기까지 했으니, 당가의 가족들끼리 충돌이 있을 것은 당연지사.

그 자체를 가주의 권위로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족끼리 너무 다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차차, 가주님. 오늘 아침 순찰은 차양당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우.”

“으음? 어이하여 한숨을 쉬십니까?”

당위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총관.”

“네?”

“저 역시 망연히 그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

그저 곧 벌어질 일이 즐겁다는 듯 웃고 있던 당궁상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의심스럽다 할지라도 스스로 당가의 가족이라 찾아온 이를 내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주님…….”

“그분이 한 말에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야 천천히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동안 최소한의 예는 다 하였으면 합니다.”

딱 봐도 무언가를 했다는 티를 내는 모습에 결국 당위혼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렇게 차양당으로 향한 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했으니…….

“끄으으으…….”

“사, 살려줘……!!”

바로,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당가의 방계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

대경한 당궁상이 경악성을 터트릴 때, 그의 귓가로 느물느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이게 누구신가. 우리 귀여운 가주님과 안 귀여운 총관 나리가 오셨군요.”

“야, 이 자식아!!”

목소리의 방향을 따라 단번에 내달린 당궁상이 들이닥쳤다.

“어? 이제 종놈 새끼가 직계의 멱살을 잡아 올리네?”

“야, 이놈아!! 이게 무슨 패악질이냐!”

암만 못난 꼴을 종종 보인다 해도 당가의 방계들은 당궁상에게 있어 손자와도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괴로움에 떠는 꼴은 그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당장에라도 한바탕 개싸움을 벌릴 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자리에는 중재자가 있었다.

“후우, 진정하시지요. 총관.”

“큭!! 가주님, 이게 어찌 진정할 일입니까!”

“무엇이든 사정은 들어봐야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형님.”

“아아.”

그제야 겨우겨우 멱살이 풀린 당유혼은 여유롭게 옷깃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것을 수련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 수련……?!”

이게? 고문이 아니라?

차가운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당유혼은 오히려 더욱 확신에 찬 고갯짓으로 답했다.

“그래. 이건 수련이야. 정확히는 하체 단련이지.”

“…이해할 수 없군요.”

기가 차 숨넘어가려는 당궁상을 대신해 당위혼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형님.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뭐가 말이지?”

“전부 다 말입니다. 고문에 가까운 이것이 어찌 수련인지 모르겠고, 그리고 어째서 이리 갑작스럽게 형님께서 수련을 주도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게 궁금했구나?”

끄덕끄덕.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는 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주 간결하게.

“약하니까. 약해도, 너무 약하니까.”

“……?!”

“놈!”

순간적으로 당궁상이 튀어나오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해도 해도 진정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다른 이도 아닌 당가의 가주인 당위혼이다. 그의 앞에서 방계들을 모욕하는 건, 지금까지 한 결례와는 그 결이 달랐다.

지금까지가 개인에 대한 모독이라 참아넘길 수 있다 한다면, 이건 가문 그 자체에 대한 모독이었기 때문!

진심 어린 노기를 피워올리는 당궁상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를 때,

“못 하는 말?”

반대로, 그걸 마주하는 당유혼의 눈은 차갑게 식어갔다.

움찔!

‘뭐?’

순간적으로 위축된 당궁상이 뒷걸음질 칠 때, 당유혼은 멱살을 잡은 손을 풀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게 왜 못 할 말이지?”

그리고 물어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림이고, 우리의 가문 당가는 무가다. 무림에서 약한 것은 곧 죄악이다.”

“……!!”

서늘한 비수가 내려꽂힌다.

“그래. 이리 말하면 이해 못 하겠지. 그러니… 당지명!”

“예, 예?!”

버럭 내질러진 호명에 당지명이 조건반사적으로 일어서며 답했다.

“이리 와라.”

차갑게 식은 분위기에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그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왜, 왜 그러신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당지명을 향해 당유혼은 선언했다.

“지금부터 삼 초를 양보해 주마. 살수(殺手)를 펼쳐도 좋으니, 전력으로 덤벼와라.”

흠칫!

보통 비무를 할 때는 아득한 고수가 하수에게 일방적으로 반격을 하지 않고 공격을 허용할 때 삼 초를 양보한다고 한다.

하지만, 살수는 그런 비무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 살상력을 가진, 오로지 죽이기 위한 수법을 말했다.

“…지, 진심이십니까?”

“내가 너랑 농담이나 할 군번으로 보이냐?”

“그건 아닙니다만…….”

“왜, 싫냐? 그렇게 처맞고, 당가가 면전에서 모욕당했는데 넌 분하지도 않아?”

“큭……!”

맞는 말이다.

그렇게 처맞은 것까지야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면전에서 모욕당한 것은 당가의 가인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

거기다 그걸 대놓고 지적당한 이상, 당지명의 마음속에 불이 지펴질 수밖에 없고,

“들어와, 새꺄. 네가 당가의 방계라면 말이야.”

그 불에, 당유혼이 기름을 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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