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0화 (20/350)

20화

“…그,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비무가 펼쳐졌다.

연무장을 차지하던 방계들을 싹 다 한곳으로 치워 버린 뒤, 당지명과 당유혼만이 남은 상황에서 둘은 서로 마주 섰다.

그리고, 선공권을 가진 당지명이 기합과 함께 앞으로 내달렸다.

“흐아아아압!!”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듯, 괴성처럼 토해진 함성과 함께 주먹에 내공이 실렸다.

하지만,

턱!

그 일수는 허망할 정도로 쉽게 막혔다.

“뭐하냐?”

‘이, 이게 아닌데……?’

격차가 큰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암만 그렇다 해도 무공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제압당하다니?

‘손의 움직임이…….’

아주 간단하게 팔꿈치 안쪽 관절에 끼워지듯 나타난 손이 궤적이 그려지기 전에 차단시켜 버렸다.

“뭘 하냐? 살초를 써도 되고, 무조건 삼 초는 양보해 준다고 했잖아. 십성 내공을 전부 활용해서 덤벼도 좋아.”

개인의 내공을 전부 활용하는 것을 십성 내공을 활용한다 표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무에서 가진바 내공을 전부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그렇지만 그런 비무는…….”

“야, 지명아.”

하지만, 차갑게 들려오는 목소리.

“네가 나랑 비무를 하는 것 같냐? 아니, 네가 그런 수준이 될 것 같아?”

“그건…….”

“착각하지 마. 이건 증명이야. 네가 지금 당가 방계의 대표로서, 네놈들이 결코 약해빠지지 않았다는 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보여줘야 할 증명이라고.”

“……!!”

철렁!

간담이 내려앉는 듯한 선언.

오만하고, 또 오연한 선언에 당지명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 가닥 남아있던 자존심마저 전부 버려 버리며, 단전에 똬리 틀고 있던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눈앞의 이자는… 당가를 모욕했다.’

분노도 일었고 두려움도 일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기도 했다.

눈앞의 어리고도 시건방지며 오만한 놈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강해, 내가 모든 수법을 동원해도 힘들 정도로.’

이 나이에 어찌 저리 강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당지명은 오로지 그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익힌 심법에 따라 내공이 혈도를 타고 순환하며, 더욱 빨라지고 강맹해진 움직임이 펼쳐졌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세 번 끊어쳐 상대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흉악한 살수!

무공을 연마한 이래, 스스로 생각해도 가장 완벽한 삼절격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터엉―

세 번 이어져야 할 흐름은 첫 번째 타격에서 그 기세가 반으로 꺾이고,

터턱!

두 번째 흐름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정지되었다.

‘…또?’

무공이 채 발현되기도 전에 끊겨 버렸다.

믿기지 않아 서로 엮여 버린 두 팔을 보는데, 당유혼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네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이냐?”

“크윽……!!”

당지명이 허겁지겁 두 팔을 풀며 나왔다.

‘굴욕……!’

이럴 수는 없다.

패배한다고 해도, 이렇게 패배할 수는 없다.

가진 것을 전부 보여서 부딪치고 부러질지언정, 아무것도 못 한 채 패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도 중간에 막을 수 있는지 보자!’

내공이 빠르게 혈도를 내달렸다.

과격하게 운용되는 내공 흐름에 순간적으로 내상을 입어 핏물이 목구멍을 역류해 치솟았지만,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요소가 아니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뇌명타(雷鳴打). 속공(速攻)!

반격당해 두들겨 맞을지라도, 한 대라도 제대로 갈기겠다는 진득한 의지가 느껴지는 쾌속한 일수가 펼쳐졌다!

‘저거라면……!’

‘빠르다!!’

지켜보는 당가의 방계들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쥘 정도로 쾌속무비하게 펼쳐진 뇌명타!

하나,

턱.

“아……?”

“이게, 끝이야?”

“아… 아…아…….”

소름 끼칠 정도로 덤덤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또다시 그 무공이 펼쳐지기 전에 모든 것을 정지하게 만들었다.

“묻잖아. 이게 끝이냐고.”

“큭, 으아아아……!!”

상처 입은 맹수가 울부짖듯, 당지명이 포효를 터트리며 움직였다.

이미 삼 초는 끝나 버렸고, 상대의 반격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이제 그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졌다. 당장 한계에 치달는 내공과 혈도, 몸뚱이가 비명을 토하는 것까지 무시해 버릴 정도로!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그의 손이 뻗어진다.

무시무시한 맹공과 함께, 역류한 핏물이 입가를 줄기줄기 흘러내리지만 당지명의 공세는 멈출 생각이 없다.

“형님!!”

“지명 형님!!”

모두가 그 투혼에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짖지만,

‘안 돼… 안 돼……!!’

정작, 그 공세를 가하는 당지명은 계속해서 끝이 없는 늪에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터억―

막힌다.

타탁―

막혔다.

탁…….

이것도 막혀 버렸다.

빠르게 해도, 강하게 해도, 부드럽게 해도, 요란하고 화려하게 눈을 속이려 해도, 모든 공세가 막히고 막히고 또 막혔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이미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까 전의 일이 되어버린 상황.

이지(理智)는 흐려지고, 그저 본능만이 남아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지고 싶냐?”

설마, 그럴 리가.

“허물어지고 싶냐?”

웃기지 마.

“아니지? 한 대라도 먹이고 싶지? 처절하게 쓰러지고, 쪽팔리게 무너져도, 한 대라도 갈기고 싶지?”

당연하지!

“그럼 집중해. 아무렇게나 움직이지 마. 네가 오늘 한 수련을 떠올려. 하체에 힘을 싣고, 중심을 단단히 실어. 지금까지 네 녀석이 겪은 실패에서 답을 찾아!”

내가 한 수련? 내가 겪은 실패? 하체? 중심? 실패? 답?

이미 경계가 허물어진 사고 속에서 무인의 감에 따라 육체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당지명의 몸은 흐느적거릴지언정 옳은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해답에 도달한 순간,

콰앙!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몸속에서 들려오며, 그의 손을 지금껏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탁……!

‘발을 내디디고……!!’

끼긱…….

‘중심을 잡고!!’

우웅……!!

‘내뻗는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호양차력(護陽借力).

화려하지도, 빠르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일수가 뻗어진다.

지금까지보다 오히려 느린 것 같고, 막기 어려워 보이지도 않지만, 그 일수는 무척이나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흥, 진작 이래 줘야지.”

입으로는 삐죽대면서도, 정작 그 입꼬리는 활처럼 휘며 올라간 당유혼은 진중하게 두 손으로 곡선을 그렸다.

“잘 기억해 둬라.”

이게, 네가 가야 할 길이니까.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오의(奧義). 차양밀밀(遮陽密密).

두 손에서 시작된 기이한 곡선이 당지명의 일수와 맞부딪친다.

한 명은 분명 부서져야 정상일 막대한 힘의 충돌이지만,

쿠우웅!

그 순간 폭발이 일어선 것은 놀랍게도 당유혼이 밟고 선 대지!

‘힘을… 바닥으로……?’

마지막 순간 그 사실을 깨달은 당지명은 경탄을 넘어선 경악을 느꼈으나,

콰악!!

그 말을 내뱉을 입을 꾹 닫으며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간신히 버텼다.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은 피곤함을 안간힘을 다해 버티며 눈앞의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처억!

그리고 취하는 정중한 포권.

“한 수… 잘 배웠습니다, 대형.”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

당지명은 그 말을 끝으로 낙법 자세도 잡지 못하고 허물어졌고,

턱-

그 몸뚱이가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지기 전, 어느새 다가온 당유혼이 그를 받아 들었다.

“에잉, 쯧.”

정말이지.

“동생이란 것들은, 손 많이 가는 놈들이라니까.”

그 누구도 추하지 않게,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안아 든 모습에,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있던 연무장은,

“오… 오오오오……!!”

“우와아아아아……!!”

열화와 같은 함성이 폭발했다.

“형님!!”

“지명 형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달려오는 방계들에게 당유혼은 피식 웃으며 손에 들린 것을 던져 주었다.

“옜다, 받아라.”

“으아아아아아아!!”

“형님!! 지명 형니이이이임!!”

얼굴 꼴이 엉망진창이 된 채 달려오는 녀석들이 태반.

마지막까지 분투한 자신들의 맏형을 받아 든 방계들이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렸다.

당유혼은 그 모습을 보다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갔다.

“어때?”

그곳에 있는 것은 놀람을 숨기지 못한 상태로 서 있는 당위혼과 당궁상.

그 깐깐한 노인네마저 입을 꾹 다물게 한 당유혼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의 문제는 하체야. 무공을 익힐 때, 수공이랍시고 그쪽만 단련하다 보니…….”

“아니, 괜찮습니다.”

몸으로 직접 보였으니, 그 원리를 설명하던 당유혼이었지만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던 당위혼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잘랐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다른 건 몰라도, 형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그 어떤 증명도 필요하지 않은, 진심이니까요.”

“흐음, 그래?”

“그렇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총관?”

“…끄응.”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당궁상조차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무래도, 차양당의 수련은 전적으로 형님께 부탁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조금 전까지의 모욕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부탁해 오는 당위혼.

“크흐흐, 그렇지?”

그에 당유혼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우와아아아!!”

“당지명! 당지명!”

“이, 이놈들아… 놔, 놔라……. 나, 나 토할 것 같아……!”

바로 좀 전까지 구르고 또 구르던 놈들이 뭐가 좋은지 함성을 질러대고 있다.

참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는 그 모습들에,

‘뭐, 즐겨둬라.’

당유혼은 굳이 뒷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쳇.”

다시 한번 부탁하며 떠나가는 당위혼과 영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차마 뭐라 하지는 못하는 당궁상.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유혼이 조금씩 당가에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 * *

저녁이 되었다.

기쁜 것은 잠시였으니, 방계들은 이후로도 한참을 구르고 또 구르다가 밥때가 돼서야 겨우 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고로 밥은 잘 먹고 다녀야 수련이 가능하다는 당유혼의 지론 앞에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게 된 그들이었는데,

“아니!! 씻팔! 이게 뭐야?!!”

그 순간 떨어진 불호령이 평화로워야 할 저녁 시간을 뒤흔들어 버렸다.

‘아니, 또 왜?’

‘아, 제발 밥때만은 얌전히…….’

‘어떻게 좀 해봐요, 형님…….’

움츠러든 방계들의 시선이 한 명을 향했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방계들의 맏이인 당지명이 그 시선에 못 이겨 애써 목소리를 냈다.

“…저, 왜 그러십니까. 대형?”

“왜? 왜 그러냐고? 그걸 몰라서 묻냐? 어? 몰라서 묻냐고!!”

…왜, 또…….

괜히 물었다가 숟가락으로 얻어맞은 당지명의 볼 위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밥이 이게 뭐야, 이게!! 이걸 먹고 어떻게 힘을 내!!”

그들 앞에 쌓인 것은 수북이 쌓인 밥.

하지만 문제라면, 딱 그뿐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몇 개 더 있긴 한데…….

“나물에, 풀때기에, 풀때기… 그리고 또 풀때기!!”

초식 주의 혐오에 걸린 사람처럼 발작을 일으키는 당유혼은 마침내 탁자를 걷어차며 버럭 소리쳤다.

“고기 어디 있어? 고기!!”

사람은 육류를 먹어야지!

“혀, 형님…….”

“그, 그게…….”

아니, 맞는 말이긴 한데.

“도, 돈이 없습니다…….”

“…뭐?”

“돈이요……. 고기도, 돈이 있어야 사 먹죠…….”

고기가 어디 땅에서 솟구치나, 하늘에서 떨어지나.

쌀밥이라도 근근이 먹고, 주변 산에서 겨우 떼온 풀을 떼먹는 그들 신세에 있을 리 없는 고기를 타령하는 당유혼에게 방계들은 촉촉이 젖은 눈망울로 항의했다.

“저희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타악―

시기적절하게 떨어진 낡은 편액 하나가 순간적으로 침묵에 빠진 식당에 울려 퍼졌다.

“하… 돈이, 없어?”

“예… 조금도요……. 이것도, 그나마 가주님이 벌어다 주시는 걸로 사 먹는 거라…….”

아…….

순간 당유혼의 머릿속에 지게를 끌고 약초를 캐러 다니던 당위혼의 모습이 떠올랐다.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돈이 없다?

“그래, 돈이 없다 이거지?”

아그작―

밥 속에 섞여 있던 돌이 씹히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들리는 어투는 침착해 보였지만, 어쩐지 그게 폭발하기 전의 화산과 같이 두렵기 짝이 없다.

그렇게 모든 시선들이 몰릴 때,

“흐흐… 돈이 없다라…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아그작― 아그작―

또다시 씹힌 돌조각을 산산이 부숴서 꿀꺽 삼킨 당유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네.”

지어지는 불길한 미소.

‘제발…….’

‘대형……!’

모두가 간절히 바라보았지만, 결국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당가의 방계 차양당, 그들의 수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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