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 *
당유혼의 불길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 하루가 지났다.
“…잘 잤냐?”
“…잘 잤겠냐?”
차양당의 방계들이 하나둘 퀭한 눈으로 침상에서 일어났다.
골병이라도 든 듯 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아침.
마음 같으면 침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연무장 흙바닥에 몸을 뉠 게 뻔하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일어났냐.”
‘저놈, 저건 잠도 없어?’
‘괴물 같은 자식…….’
벌써 일어나 쌩쌩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반기는 당유혼.
다들 마음속에서 욕 한 바가지씩은 퍼부었지만, 이구동성,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정반대였다.
“일어났습니까, 대형!”
“그래, 그래. 낄낄낄!”
대형이란 말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건지, 연무장에 집합한 방계들을 쭉, 둘러본 당유혼이 곧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제 고민했다.”
‘고민? 니가?’
‘아, 제발…….’
‘그냥 가만히 계셔주시지…….’
맹렬하게 흔들리는 눈망울들!
그걸 전부 시선에 담으며 그들의 대형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그리고, 비장의 수를 떠올렸지.”
“비장의 수… 말입니까?”
“그래, 우선은 발 앞에 놓인 바구니들을 들쳐 메라.”
과연, 언제 준비했는지 그들 개개인의 발 앞에 낡은 바구니가 하나씩 준비되어 있었다.
심마니나 약초꾼들이나 멜 만한 그것을 방계들이 하나둘 멘 것을 확인한 당유혼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 메었으면 뛴다.”
“…구보를 하란 말씀인지?”
“그것도 그렇지만, 이번엔 목적지가 있다.”
저길 봐.
손가락을 들어 올린 당유혼이 한곳을 가리켰다. 지평선 위로 버섯처럼 자라난 산봉우리들.
‘설마…….’
‘아니겠지…….’
강력한 현실 부정!
“저, 대, 대형, 제 눈엔 구름이랑 산밖에…….”
“어, 잘 봤네.”
“예? 설마…….”
“그래. 우리는 산으로 간다. 그리고.”
설마…….
“나보다 늦게 도착하면 뒤진다!!”
파파팟!!
순식간에 뛰쳐나가는 당유혼.
그 모습에,
“야, 이! 싯팔!!”
“야, 달려!!”
“으아아아아아아!!”
이제는 반 포기해 버린, 차양당의 방계들도 죽어라 뛰어나갔다.
* * *
동강산.
산세도 험준하고 타 지역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도 아니었기에 원래라면 심마니만 몇 명 들어갈 만한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웬일로 수십 명의 인파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끄으으……. 나, 나 죽을 것 같아……!!”
“야, 야!! 똑바로 안 밟아?! 밑에 흙 떨어지잖아!!”
“야야, 거기 내 손!! 내 손!!”
죽어라 산까지 뛰고, 거기서 산악 구보로 이어지며, 마지막은 암벽 등반으로 끝맺는 완벽한 동선.
어제 지옥을 봤다 생각했는데, 오늘 더한 지옥이 있을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방계들을 향해 당유혼이 소리쳤다.
“빨리빨리 올라! 이 자식들아! 어떻게 무가의 자식이란 놈들이 심마니보다 산을 못 올라!”
‘그건 니가 이상한 거고!!’
‘저거 사람 맞아?!’
‘하는 짓거리 보면 거의 원숭이 수준인데?’
이 가파른 절벽을 원숭이처럼 기어올라 삽시간에 정상까지 도달해 버린 당유혼!
그의 구박에 대답할 만한 힘도 없어 헉헉거리며 오른 그들은 절벽 끝에 도달해서야 제자리에 퍼져 버렸다.
“나, 나 죽어…….”
“무… 물…….”
“끄으으…….”
경련까지 일으키며 바들거리는 방계들.
그 모습을 보며 당유혼은 사납게 혀를 찼다.
“에잉, 약해 빠진 것들. 나 때는 온몸에 철근을 매달고 수련 삼아 절벽을 올랐는데.”
‘미친놈…….’
‘환생이라도 했니?’
외형상으로 가장 어린 그를 보며 방계들이 치를 떨 때, 주변을 슥 둘러본 당유혼은 나름대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긴 아직 손이 안 닿았어.’
험준한 산세를 넘어 깎아지르는 절벽까지 넘어야 하는 비경(秘境)이다.
심마니의 손조차 쉽게 닿기 힘든 이곳에는, 아직 자연의 산물이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자, 다들 주변을 둘러봐라. 뭐가 보이냐?”
“음… 산?”
“…풀?”
“절벽이요?”
“…….”
이 새끼들이.
“진정 니들이 당가 놈들이 맞긴 하냐?”
“네, 넵?”
“야, 이놈들아. 자고로 당문인이라 하면, 이런 곳에 오면 어디 독초는 안 자라고 있는지, 어디 독사 새끼는 안 기어 다니는지! 그런 것들을 찾아봐야 할 것 아니냐! 아니지,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지. 이렇게 캘 것들이 온 사방에 널려있는데!”
아니, 설마.
“이 망태기가… 저희보고 약초를 캐라고 하신……?”
“그럼, 니들은 맨날 공짜로 먹고 자고 싸고 한가롭게 수련이나 하려 했냐?”
수련도 다 돈이야, 돈.
“낫 한 자루 생산해 낼 능력 없는 무능한 놈들아. 산까지 뛰어오르면 수련도 되고, 이렇게 독초랑 약초를 캐내면 돈도 되고.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다 캐 버려, 아주 그냥 민둥산을 만들어 버리는 거야!”
무공 수련을 가장한 중노동이 시작되었다.
* * *
서른 명이 넘는 인력은 과연 굉장해서, 망태기를 가득 채우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단련된 무인이기만 해도 심마니 인력으로서는 과분한 수준인데, 그들은 기본적인 약학지식이 존재하는 당가의 무인들.
점심때가 될 때쯤에는 망태기를 가득 채운 채 당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자, 보자.’
수북이 쌓인 독초들을 보는 당유혼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같은 종류의 독초라도, 자라나는 시기에 따라 독효가 강할 때가 있고 약효가 강할 때가 있다. 같은 식물이라도 열매는 독인데 그 뿌리는 해독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당가에 실전된 것은 무공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약학지식까지 방계들에게 요구하기는 무리가 있는 것, 결국 최종 분류는 그의 몫이었다.
“휴식!”
“으아… 드, 드디어……!”
“쉬, 쉴 수는 있는 거구나!!”
죽어라 산을 뛰어다닌 데다 중노동까지 한 방계들은 휴식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힐긋 본 당유혼은 생각했다.
‘역시 이놈들은 약해빠졌어.’
문파는 무력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도 잘 먹어야 하고, 영약도 정기적으로 섭취하여 내공을 증진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건 이 꼴을 보면 도저히 무리나 다름없으니…….’
영약은 몰라도, 영약 모조품이라도 만드는 수밖에.
‘원리는 내가 처음에 했던 것과 같다.’
오만가지 독초를 전부 씹어 삼켰던 자신의 수준을 기대하기는 버겁지만, 독초와 약초를 적당히 섞어 복용한다면 기초 체력 증진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터.
‘그러려면, 이것들을 이렇게…….’
그리하여, 머릿속에 구상하는 대로 독초들을 연관되게 분류하고 있는 와중,
“저… 대형.”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율기?”
조금 전까지 뻗어있던 방계 중 하나였다.
“뭐냐, 다 쉬었어?”
수련이 부족했니? 라고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 단지 궁금한 게 있어서…….”
“말해 봐.”
“그… 분류하시는 것들 말입니다. 보니까 화기가 강한 독초를… 개중에서도 특히 응고성이 강한 독초를 분류하는 것 같은데…….”
호오?
‘이놈 봐라?’
당유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음, 그중 그 자구초는 성질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이거?”
“예, 그렇습니다.”
자구초는 자색 빛을 띠는 독초였다.
복용 시 온몸에 열이 펄펄 끓어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독성분이 체내의 한구석에 단단히 응고되기에 그걸 잘 뽑아낼 수만 있다면 해독은 생각보다 쉽다고 알려진 독초였다.
“제법 아는군. 다만… 옜다, 잘 봐라.”
“예, 옙?”
갑자기 던져진 자구초를 받아 든 당율기가 얼떨떨해하며 눈을 껌벅거렸다.
“줄기를 잘 봐라. 마디가 몇 개지?”
“여섯… 개입니다.”
“그래, 자구초는 연마다 마디를 늘린다. 그걸 통해 자구초가 몇 년을 먹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놈은 신기하게도 육 년 주기로 저 스스로 성질을 변화한다.”
“성질이… 변한다구요?”
“그래. 체내에 오래 묶은 성분을 걷어내고, 새롭게 자라나기 위해 응고성 강한 성질이 유화적인 성질로 바뀌는 거지.”
“아……!!”
처음 듣는 지식이었다.
일부 식물들은 고유한 특성을 이용해 나이를 알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자구초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일정 시기마다 그런 변화를 가지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재밌는 놈이네.’
당유혼 역시 흥미로운 눈으로 당율기를 응시했다.
‘자구초가 그리 흔한 식물은 아닌데 말이지.’
자구초는 사람 손이 잘 안 닿는 곳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어지간한 약초꾼도 잘 모른다. 그래서 멋모르고 먹고 죽기도 하는 독초인데, 그걸 유일하게 알아보는 놈이 있다? 그렇다면…….
“좋아. 넌 따라와라.”
“…옙?”
“그것들 들고 따라오라고.”
어느새 정리를 끝낸 독초가 가득 담긴 커다란 항아리 하나.
“아, 아니 어째서 저만……!!”
“왜? 그럼 너도 추가 훈련하려고?”
“…시켜주신다면 자금성 앞마당까지라도 배달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당유혼은 다른 방계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휴식 끝! 다 일어서!”
“버, 벌써 말입니까?”
“왜? 일어나기 싫어? 계속 누워있게 해줘?”
“하하핫!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둘 일어서는 방계들.
그들의 눈빛이 부러움을 안고 당유혼을 따라 멀어지는 당율기에게 쏟아졌다.
* * *
매캐한 약초 내음.
약초가 펄펄 쪄지는 독초 항아리를 앞에 둔 당유혼을 보며 당율기는 적지 않은 감탄을 토하고 있었다.
‘무공만 괴물인 줄 알았는데… 제독술은 더하잖아……?’
당가에는 과거 독초와 약초를 다루던 공간이 존재했다.
다만 값비싼 기기와 시설들은 이미 다 팔려 가고 없어, 넓디넓은 항아리 정도가 존재하는 대용량 약탕기의 전부였고 그것들을 다루면 여과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연기를 정통으로 들이쉬게 된다.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 다 독이다.
‘아무리 당가의 무공을 익히면 독에 내성을 가진다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독을 전부 마시면서 인상 하나 안 찌푸릴 수가 있나?’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낄낄낄 웃음을 터트리는 당유혼의 모습을 보자니 당율기는 새삼스럽게 각오가 들었다.
‘역시 저놈은 미친놈이야, 가까이 얽히지 않는 게 좋겠어.’
그런 다짐을 하는 당율기였지만,
“율기야.”
하늘도 무심하게, 그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 넵?”
“내가 뭘 하는지 알겠냐?”
“…어.”
뭘 하냐고?
당장 대답하지 못한 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이라기에는 너무나 당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
“그야… 독을 만들고 계신 게 아닙니까?”
“독이라… 그래, 네 눈에는 아직 그리 보이겠지.”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옆에 있던 나무 국자를 들어 끓어오르던 독액을 한 숟갈 퍼 올렸다.
그러고는,
“후루룩!”
‘저… 저, 저 미친놈이?!’
저걸 삼켜?!
“크으… 진국이구만.”
소름이 쫙 돋는 일평!
“서, 설마… 대형, 그… 아니시죠?”
“뭐가?”
“그… 그거, 드신 거… 서, 설마… 저희도 먹이실 건 아니시죠?”
“잘 아네.”
“이런 미친!!”
당장 도망쳐야 한다.
이 새끼는 사실 우릴 다 죽이려는 미친놈이야!!
“형님들!! 당장 도망치… 꾸웨에엑!”
허겁지겁 도망치려던 그의 뒤통수에 주걱이 날아와 쑤셔 박혔다.
“쯧쯧, 기껏 좋은 거 알려줬더니 왜 또 난리야?”
“좋은 거라니……!”
두 번 좋으면 마을 하나를 몰살시키겠네!
“앉아봐. 기껏 데려온 거니까.”
“…….”
여전히 의심의 눈길이 짙다.
‘통탄할 일이구만.’
자고로 대형에게는 항상 존경의 염만이 가득해야 하거늘. 예전 같았으면 눈알에 장침을 꽂아 넣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당율기가 알아서 눈을 깔았다.
“그, 그 젓가락은 놓고 말씀하시지요…….”
아, 실수.
“흠흠. 그래, 율기야.”
“예, 대형.”
“내가 넣은 것들의 독초를 다 기억하느냐?”
“대력초, 동박하, 삼엽귀, 혈류화… 더 말합니까?”
“아니, 됐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다 독초다.
“그럼 그걸 다 섞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야 뭐… 독이 되는 거죠.”
“그래, 보통은 그리 생각하겠지. 하지만 당문인이라면 다르게 생각해야지.”
무당에게 검(劍)은 도(道)이고 소림에게 권(拳)은 곧 구세의 수단이듯.
“당문의 독은 단순히 독이 아니다.”
이것은 곧,
“만독을 고치는 약이며, 당가의 이름을 떨치게 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