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3화 (23/350)

23화

“으으… 더는 못해…….”

“나, 나도…….”

털썩―

하나둘 바닥에 지쳐 쓰러져 가는 방계들이 늘었고, 마지막 한 명까지 거꾸러질 때가 돼서 건물 밖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흥, 멍청한 놈들.”

그 정체는 당유혼.

방계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걸 지켜보다가, 모두가 혼절하고 나서야 걸음을 내디뎠다.

“누굴 닮아서 쓰러질 때까지 이러고 있는지. 하긴, 재능이 없으면 당연한 건가?”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라도 노력해야지.

조금은 냉혹한 평가를 내리며 움직인 당유혼은 가장 선두에 쓰러져 있던 방계를 하나씩 둘러업었다.

털썩―

“제대로 못 쉬면 수련 효율도 안 나오는데 말이야.”

그리고는 하나둘 쌀자루를 옮기듯 나르기 시작했다.

서른도 넘는 방계들이지만, 한 명씩 옮겨져서는 모두 그들의 침상 위로 널브러뜨렸다.

‘…그래도, 그게 또 네 녀석 후손답지만.’

이제는 없는, 그러나 잊히지 않는 이들을 떠올리며 당유혼은 차양당의 문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닫아버렸다.

끼이익―

마지막 한 명까지 전부 옮기고서야 그 문을 닫아건 당유혼은 조용히 밤길을 걸었다.

홀로 달빛 아래를 걸었고, 고즈넉한 밤공기를 맞으며 당가 내부를 유유히 걸어 다녔다.

‘많이도 비었구나.’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걷던 길을 따라 걸었다.

많은 것이 사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 터는 아직 남아있는 당가 내부를 보며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음?”

저편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저건.”

그에 곧장 진원지를 쫓아 움직인 당유혼은 이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당위혼…….’

그곳에 있는 것은 현 당가의 가주 당위혼.

그가 이 늦은 밤에 홀로 자신의 연무장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저 녀석…….’

당유혼이 이곳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당위혼의 일과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새벽. 기상하여 세가 순찰.

오전. 일과 및 가주 업무 시작.

오후. 점심 식사 후 약초를 캐기 위해 산행.

저녁. 복귀 후 잔업 완료 후 늦은 밤까지 수행.

가주라는 직업이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당위혼은 그런 과정을 벌써 몇 년째 쉼 없이 반복해 오고 있다고 했다.

‘…쯧.’

저도 모르게 기척을 낮춘 채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우…….”

제법 시간이 흘러, 연무에 가까운 동작이 끝을 맞이하였을 때 당위혼은 깊은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제 나오시지요.”

“……?!”

자, 잠깐만.

‘내가 들켰다고?!’

암만 멍때리고 있었다지만, 내 기척을 느끼다니.

흠칫 놀란 당유혼이 움찔거릴 때,

“…허허, 어찌 아셨습니까. 가주님.”

반대편에서 겸연쩍은 목소리와 함께 당궁상이 나타났다.

‘응? 저놈이?’

“딱히 기척을 알아챈 것은 아닙니다. 다만, 총관이 근처에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지요.”

“헛… 이런, 제 발에 찔렸군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당궁상. 그는 이내 땀에 흠뻑 젖은 당위혼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이 못난 놈이 그놈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알려드릴 수만 있었어도 가주님의 고생도 덜어드릴 수 있을 텐데…….”

“총관. 아무리 그래도 저희의 선조이십니다.”

당유혼.

그 이름이 당궁상에게 새겨진 기억이 어떻든, 분명 한때 조사비에 새겨져 있던 선조의 이름이기는 했다.

문제는 그 이름이나 새로 나타난 놈의 이름이나 하필 우연치 않게도 동일할 뿐 아니라…….

‘하는 짓도 똑같아서 그렇지.’

괜히 앓는 소리만 내며 당궁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끄응… 그렇지요. 하여튼, 이 천잠무흔을 알려드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제 능력이 떨어져 그러지 못하는 게 한입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저희 당가 역사상 유례없는 절대 고수였던 분, 그런 분께서 총관에게 구결을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다 그런 이유가 있겠지요.”

‘천잠무흔(踐潛無痕)? 아, 그렇구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당유혼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건 내가 저 꼴통 놈에게 알려준 것이었지.’

전전대 가주, 당사유에 대한 충성심은 투철했지만, 무공에 대한 재능이 미천한 당궁상을 위해 당유혼이 직접 몸에 새겨주듯 알려준 무공이 바로 천잠무흔이었다.

그리고 무공의 구결이란 그것을 익히는 이론이며 방법과 같은 것이지만,

‘어디서 객사하지 말라고 알려준, 은신과 잠행에 특화된 무공이었지. 다만, 저놈은 어떻게 된 게 구결을 암만 쳐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해서 직접 몸에 새겨준 건데…….’

그런데 그걸 생각하자니 의문이 들었다.

당문 고금 제일 고수인 그가 만든 무공인 만큼 어지간한 것들에 끗발이 밀리는 무공이 아니다.

다만,

‘가주가 그런 무공조차 아쉬워할 형편이라고?’

조금 전에 펼쳤던 연무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전부 당가의 기초 무공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얼마나 연습했는지 몸에 밴 기질이 다분히 보였지만, 개중 상승무공이라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무공조차 대부분 소실되어 버렸구나.’

새삼스레 당가의 문제가 깊게 다가왔다.

* * *

이른 새벽의 연무장.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새벽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당가의 방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만, 오늘은 또 어제와는 달랐으니…….

“…대형은 또 왜 저러시냐?”

“…모르죠, 저 인간 이해 못 할 짓 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 이틀은 무슨, 이해할 만한 적이 있었는지 찾는 게 빠르겠네.”

옹기종기 모여 수군거리는 방계들, 그런 그들의 걱정과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당유혼은 지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가는 지금 망해 버렸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쫄딱 망했다.

고수라고 불릴 존재는 이제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직계 혈족도 가주 당위혼밖에 없다.

돈을 불릴 사업체도 없고, 제자들이 수련할 무공도 소실되었다. 독과 암기도 전부 잃어버렸고…….

‘남은 건 저런 꼬마들뿐이지.’

하, 인생…….

‘해야 할 게 더럽게 많네.’

무공도 익혀서 강해지고, 사업체도 되찾아야 한다.

물론 해야 할 건 더 많지만,

‘그중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역시 강해지는 건가?’

역시, 처음은 힘이다.

무림은 강자존(强者存).

힘이 있으면 모든 게 따라오는 법이다.

그렇다면 역시.

타탓―

처마 위에서 뛰어내린 당유혼은 이내 방계들에게 다가갔다.

움찔!

“왜 단체로 움찔거리고 있어? 설마, 내 욕하고 있었냐?”

“하, 하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그, 그보다는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계셨습니까?”

삐질삐질.

수련 시작도 안 했는데 줄기차게 식은땀을 흘려대는 방계들.

‘어째 지 선조들을 똑 닮았냐.’

쯧쯧.

선조들과 하는 짓이 똑같은 그들을 보며 당유혼이 입을 열었다.

“니들, 강해지고 싶냐?”

“네……?”

“그야…….”

강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연합니다.”

“꼭 강해지고 싶습니다.”

“흐음, 어째서?”

“그야…….”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본가에…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하나둘 말해 왔다.

강해지고 싶다. 그리고 당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

‘기본은 돼 있네.’

그 마음에 당유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독해져야지.”

스윽―

그러고는 어젯밤 미리 작성해 가져온 책자를 꺼냈다.

“받아라.”

“…이건?”

[귀원일기공 개(改)]

서책 표지에 적힌 글귀.

앞엣것은 다 아는 것이지만, 맨 뒤에 한 글자가 눈에 띈다.

“새로운 걸 가르쳐봐야 너희들이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겠지. 원래의 귀원일기공을 내가 개조한 거다. 전부 지금 구결을 익혀봐라.”

“대, 대형께서 직접 심법을 개조한 것입니까?”

“그럼?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것을 하겠냐?”

“…허.”

당연하다는 듯한 답에 다들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무공을 잘 펼치는 거야 경지가 높아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무공을 창안하는 것을 결을 달리하는 능력이다.

종사(宗師). 무언가의 시초가 되는 자.

비록 개조라 할지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들은 하나둘 옹기종기 모여 구결을 익혔다.

‘정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가장 먼저 구결을 외운 당지명은 암기가 끝나자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심법을 여럿 익힌 것은 아니지만, 고작해야 순서가 몇 개 바뀐 게 고작인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간단했기에 곧 다른 방계들도 암기를 끝내고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

“다 외운 것 같은데, 슬슬 운기조식을 시작해 봐라.”

“알겠습니다.”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방계들이었지만, 곧장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은 기공에서 호흡을 통해 기를 생성하고 흐름을 조절하는 것.

체내에 만든 인공기관인 단전에 기(氣)라는 연료를 채워 넣는 것이기에, 원래도 아침에 새벽 구보를 달리기 전 매번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 일정에 따라 방계들은 운기조식을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벌어진 결과에 놀라 소리쳤다.

“아, 아니, 이럴 수가!”

“무슨 심법이……!!”

자기 혼자 느낀 착각이 아닌 걸 확인한 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축기 속도가 원래 귀원일기공보다 느립니까?!”

느리다. 그것도, 더럽게 느리다!

“기가 쌓이지를 않는 것 같은데요, 대형?”

새롭게 개조하였다는 뜻인 개(改)까지 붙여져 있어 기대했는데, 와장창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에,

“느린 게 아니지.”

당유혼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오히려 쌓인 기운마저 흩어질 거야.”

“미친! 착각이 아니었어?!”

단전에 남아있던 내공이 오히려 산산이 흩어져 버린 것 같더라니.

“무슨 운기조식이 이럽니까?”

“이거 사기 아닙… 아악!”

뻐억!

“사기?”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괜히 분위기 탔다가 한 대 얻어맞은 당지명이 머리통을 감싸 쥐었다.

“기껏 좋은 거 알려줬더니 반응하고는.”

쯧쯔―

당유혼이 혀를 차며 손가락을 들어 그들의 단전 어림을 가리켰다.

“너희들이 새롭게 익힌 귀원일기공은 기존 단전을 버리고 신체 그 자체를 단전화시키는 기공이다. 때문에, 당장은 내공이 줄어들었을 거라 느낄 거다.”

“신체의… 단전화요?”

그게 무슨 뜻이지?

“무공을 펼치는 힘의 원천인 내공은 단전에서 나온다. 하지만 단전의 크기는 너무나 작지. 그렇기에 육체 자체를 단전으로 만드는 거야.”

“…어, 그런데 왜 느껴지는 내공이 더 적어진 것입니까?”

눈만 껌뻑거리는 방계들.

그 모습에 당유혼은 결국 피식 웃어버렸다.

‘역시, 이해 못 하는구먼.’

귀원일기공에서 바꾼 구결을 얼마 되지 않으나, 그 결과는 정형화된 현 무공 체계에서 무척이나 사도에 가까운 것이다.

‘아직 네 녀석들이 이해하기는 백 년은 이르지.’

“그 기공은 너희들의 모든 내공을 흩트리고 순환시키니까.”

“예……? 그럼, 당장 저희가 쌓아온 내공이 더 적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당장은 그렇지. 게다가, 그 속도도 느려서 일반적인 운기조식으로는 경지를 밟는 데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게다.”

“아니, 그럼 역시 사… 끄악!!”

이 새끼, 묘하게 개기는 재능이 있네.

“일반적이면 그렇겠지만 네 녀석들은 당문인이기에 이야기가 다르다.”

“혹시, 저희가 먹은 그 독탕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래, 바로 그거다.”

당가에게는 당가의 강해지는 방식이 있다.

“아주, 옛날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었다.”

그의 눈빛이 지나간 시간을 훑었다.

“태어나길 비천하게 태어나서, 어떻게든 강해지고 싶어 발버둥 쳤던 녀석들. 지키고 싶은 게 있었기에, 강해지려면 풀이든 돌이든 우적우적 씹어먹든 그런 녀석들.”

그 끝에, 결국 자신의 곁에 함께 섰던 이들.

“네놈들도, 용이 되고 싶지 않냐?”

용(龍)!

전설상의 신수이며, 무림에서 그 상대를 찾기 힘든 명성을 떨치는 이들에게 붙여지는 칭호다.

그 한 글자를 듣는 순간 이곳에 모인 모든 방계들의 심장이 크게 꿈틀거렸다.

어째서인지, 원래라면 허황되기 짝이 없을 그 말이 그들의 심장에 저릿하게 다가올 때,

“…되면.”

그 침묵 속에서 누군가 물었다.

“용이 된다면… 저희 손으로, 당가의 영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까?”

한 명의 질문이었지만, 그것은 모두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에,

“흥, 고작 그 정도로 되겠냐?”

노 고수는 비죽 웃음을 흘렸다.

“그 이상을 바라야지.”

“……!!”

“……!!”

암, 내가 있는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

“물론, 지금의 너희들에게는 아직 이르고, 설령 된다 해도 너희들이 다른 이들처럼 청룡이니 적룡이니 하는 겉이 번지르르한 이름은 아니겠지.”

굳이 따지자면,

“잡룡대(雜龍袋), 그쯤 되지 않겠냐?”

낄낄거리는 노 고수의 비웃음은 한껏 달아오르던 어린 새싹들의 불길에 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그, 그래도 좋습니다!”

“맞습니다, 대형! 그래도 용이 어디입니까? 우린 아직 지렁이인데!”

“야, 야, 지렁이가 뭐냐?”

“지렁이가 아님 뭔데?”

“…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에라이!”

언제 긴장했냐는 듯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방계들.

과연 그들은 알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면에 그림자만이 짙게 깔려 있던 그들이 어느새 이렇게 웃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잡룡대라…….’

오랜 향수가 느껴지게 하는 그 이름.

그 이름은 과거 당유혼이 무림을 종횡할 때, 최후까지 함께 했던 그의 직속부대였으며,

‘혈룡대(血龍袋)라 불리던… 공포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무림 삼대 집단이라 불렸던 최악최흉의 부대.

그 과거의 명성이 지금, 새롭게 꿈틀거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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