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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6화 (26/350)

26화

【 차양당 당주 당지명 】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사나웠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하윤호는 능청스럽게 두 손을 모아 소매 폭에 감추었다.

“허허, 이것 참… 갑작스럽습니다요.”

이 자식이?

당유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팔아준다는데 왜 헛소리야?”

“에이,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요.”

상황?

“그땐 제가 사려고 했지만, 지금은 공자님께서 팔려고 하십니다요. 허면, 당연히 같은 조건이면 수지타산이 안 맞지 않겠습니까요?”

“하.”

그때는 네가 급했고, 지금은 내가 급하다, 이거지?

“좋아. 그 수지타산, 내가 맞춰주지.”

부웅―

앉은 자리에서 당유혼의 손이 휘둘러졌고, 그 궤적에 있던 술병들의 목이 날아갔다.

“무력 시위입니까요? 그렇게 보지는 않았는데…….”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야? 그리고, 몇백 년간 유서 깊게 처맞아온 니들이 이런 거에 쫄겠냐?”

“…아니 뭐…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이걸 이렇게 면전에서 말해도 되나.

다 망해 가는 가문의 직계에도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싶은 생각에 하윤호의 눈이 촉촉해졌지만, 당유혼은 개의치 않고 행동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건 그냥 흥정이야.”

턱―

목을 잘라낸 술병을 들어 올렸다.

“킁, 좋은 술이네?”

“…그거 비싼 겁니다요. 각 병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겁니다요.”

“술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코웃음 치는 당유혼이지만, 이것들이 어떤 명주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았다. 그건 단순히 그가 과거 엄청난 애주가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니…….

“청운, 적하. 확실히 이 두 술은 유명하지. 평범한 사람이 먹어도 무병장수할 기운을 보강하여 준다 해서 천하의 약주로 이름 꼽히니까. 하지만.”

오른손에 들린 한 병.

“이 녀석을 아는 이는 얼마 없다지?”

‘설마.’

이번엔 하윤호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이놈의 이름은 금로. 잘 알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효능이 앞의 두 놈과 마찬가지로 약효가 뛰어난 명주는 아니지만… 실은 그보다 더한 능력을 지닌 놈이지.”

그리고 그 능력은 앞의 두 술과 합쳐졌을 때 발휘된다.

“둘까지는 천하의 영약. 하지만, 셋이 합쳐지면…….”

“잠깐!!”

설마 싶은 생각에 하윤호가 허겁지겁 손을 뻗는다.

하나, 그보다 당유혼의 움직임이 빨랐으니.

“초절정 고수마저 거꾸러트리는 극독.”

덤덤하게 숨겨진 독의 정체를 발설하며,

벌컥벌컥벌컥!

그대로 셋을 자신의 목구멍에 부어 넣었다.

“이런 미친……!!”

청운.

적하.

금로.

유명한 두 개의 술과 의도적으로 유명하지 않아진 하나의 술을 합치면 곧 새로운 독주가 되니.

“그 이름은 박야(薄夜). 천하 십 대 극독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놈이지.”

쨍그랑―

내용물을 싸그리 비운 술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 나갔다.

늦었다는 생각에 딱딱히 굳어있던 하윤호는 그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말문을 떼었다.

“소협… 괜찮으십니까요?”

“…크, 진퉁이네.”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한 모금씩 넘어갈 때는 목구멍을 살살 간지럽히는 봄바람과 같던 것이, 셋이 합쳐지니 엄동설한의 눈보라와 같이 몰아친다.

단숨에 온몸을 얼어 붙일 것 같은 냉기가 들이닥쳤지만, 그 순간 냉기를 뚫고 솟구친 것은 그의 단전에 꽈리를 틀고 있던 한 마리의 괴물!

- 구우우우……!

기다렸다는 듯 들고 일어선 탐이 그 포악한 아가리를 쫘악 벌려 불어닥치는 눈보라를 전부 받아먹었다.

- 오오오오…….

기쁨에 가득 찬 환희가 터져 나왔고, 탐은 그 부피를 부풀렸다. 녀석은 단번에 몇 겹의 허물을 벗어냈고, 그것은 자연스레 몸뚱이에 흡수되었다.

기혈이 확장되고 뼈는 단단해졌다. 근육은 강건해지고 거죽은 질겨지니, 그사이 당유혼은 자신이 한 단계 더 나아갔음을 직감했다.

“하오문 주제에 짭이 아니잖아?”

그리고 덤덤히 내리는 평.

그걸 들으니 하윤호조차 안색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이… 미친…….”

그건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하윤호가 찾아 헤매던 명검이었으니.

“설마… 소협은……!”

그렇게, 사시나무처럼 덜덜 떠는 하윤호를 보며,

“너희들은 이걸 이리 부른다지.”

당유혼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고.”

* * *

만독불침(萬毒不針).

전설상에 나오는 경지다.

글자 그대로라면 만 가지의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대게 무림에서 통용되는 뜻은 어떤 독에도 내성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현 무림의 최정상이라 칭해지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에게도 통하는 극독, 천하 십 대 극독마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만독불침의 경지고, 당유혼은 그를 이리 평했다.

‘별 멍청한 소리를 다 하네.’

독이란 것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공부를 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코웃음 칠 만한 일들이라고.

그렇기에 당유혼은 같잖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지만, 여기 이 자리에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고, 대협!!”

“얼씨구? 언제 대협으로 격상됐어요?”

“에이, 대협!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입니까요!”

거렁뱅이 거지를 넘어 이젠 거머리 수준으로 착 달라붙어 오는 현직 하오문 지부장.

경쟁 업계인 거지 문파 하오문보다 더한 모습에 혐오감 가득 담긴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꾸엑!!”

“뭔 개 헛소리예요? 토 나오게 진짜.”

어우.

경멸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벌떡 일어난 하윤호의 눈에는 꿀 떨어지는 눈빛만이 감돌 뿐이었다.

대게, 그 밑에 깔린 게 탐욕이란 게 문제였지만.

“대협! 소협! 공자! 우리 거래합시다요!”

“…아주 별의별 호칭이 다 나오는구만.”

조금의 감정도 숨기지 않는 게, 이게 진짜 하오문 지부장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그게 또 이해가 안 될 바는 아니었다.

‘이놈들 상대가 용독문이니까.’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독이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하의 이들에게 극명한 효과를 보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이들에게는 약발이 떨어진다.

그래서 소수 정예에게는 힘들어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이들에게는 극약 효과를 보이는 게 독이다.

그리고 하필 하오문은 그중 후자에 해당하는 문파.

인구수를 자랑하는 하오문에 상성인 게 독을 사용하는 용독문이고, 그 독을 먹는 게 당유혼이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요? 돈? 아니지, 세가를 운영하려면 지속적인 자금원이 필요하실 것입니다요. 사업체를 드리면 되겠습니까요? 필요하시다면 추가로 사천 내에서 특별한 정보가 날아올 때마다 우선적으로 당가에 공급하겠습니다요!”

금전적 지원이든, 정보적 지원이든 무엇이든 하겠다며 납작 엎드렸다.

듣기만 하면 참 좋아 보이기는 한데…….

‘…역시, 하오문 지부장이라는 거지.’

당유혼의 시선은 복잡한 감정을 달고 있었다.

“뭐, 내 개인으로서는 쓸 만한데.”

“…넵?”

“내가 이제 가문의 수장이 될 사람이라 승낙을 못 하겠네.”

이래서 홀몸이 편한데 말이지.

당유혼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로 이내 자리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차피 나 역시 그놈들이랑 한배는 못 타니까. 네 녀석들이랑 진로를 같이 하는 수밖에.”

“흠… 그럼 저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까요?”

“뭘 모르는 척이야. 어차피, 복검이 되겠다는 의도는 이미 밝혔잖아?”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던 것.

“단, 조건 몇 가지를 들어줘야겠어.”

그래도 챙길 것은 챙겨야겠다.

당유혼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 * *

세상은 뒤처리가 꽤 많이 필요하다.

고고하게 수면을 떠다니는 오리가 실제로 수면 아래에서는 죽어라 발을 놀리듯, 멋있는 장면 이면에는 누군가의 추한 장면이 뒤따른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멋들어지게 수도로 술병을 날리면 남은 바닥의 잔재를 누군가는 일일이 치워야 한다는 게 그랬다.

“에잉, 처마실 거면 얌전히 처마시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요.”

당유혼이 괜히 수도로 깨부숴 버린 술병의 조각들을 일일이 주워 담는 하윤호가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그 표정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안 그렇게 생각하나? 홍단.”

“…….”

그리고 그의 뒤편에 불편한 기색으로 시립해 있던 적의 여인은 그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하잘것없는 일을 어찌 지부장님께서 하십니까.”

당유혼이 떠나고, 뒷정리를 하겠다고 들어온 홍단이었다.

하나, 하윤호가 직접 손을 저어 말리고는 스스로 일일이 조각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하잘것없는 일? 우리 같은 바닥들에 위아래가 있었나?”

“하지만…….”

“홍단아.”

연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해 무어라 하려는 그녀에게, 마침내 조각들을 다 주워낸 하윤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근본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그걸 수치스러워하지 말거라. 밑바닥에게는 밑바닥의 생존법이 있는 게야. 그걸 잊는 순간 죽는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웃차―

모든 조각들을 주워내자 하윤호는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탁자로 돌아갔다.

부서진 것들을 전부 맞추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린 후에야 하윤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볼 만하구나.”

깨어진 자기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는 동안, 하윤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당유혼과의 대담이 오갔다.

하는 행동은 무뢰배 같고, 언사는 못 배워먹은 무지렁이처럼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는 소름 끼치도록 두려운 인물이었다.

‘수도(手刀)로 술병의 목을 날려 버리는 권장법도, 전설에나 나올 법한 만독불침을 재현한 것도 그의 무위에 놀라기는 충분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의 심계.’

납작 엎드린 채 그저 굽신거리는 것만 같았지만, 그 사이에서는 무수한 탐색전이 오갔다.

‘당장의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훗날을 위한 사업체를 제시해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가가 적나 싶어 정보력을 추가로 덧붙였으나, 그마저도 거부했지.’

하윤호는 깔끔하게 짜 맞추어진 술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움켜쥐며 결론을 내렸다.

‘그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그가 사천당가를 다시금 부활시켜 독립적인 집단으로 완성시키려 한다는 것이겠지.’

하윤호는 자신이 읽어낸 것을 되짚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그렸던 판에 생긴 변수에 흥미가 인 것이다.

다만, 그걸 지켜보던 홍단의 입장은 달랐다.

“…하지만, 지부장님.”

하윤호는 입술을 꼭 깨물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는 홍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를 이렇게까지 영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신도 불분명한 남자에게 용독문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그만.”

터져 나오려는 불만을 일축시키며 하윤호는 홍단의 말을 잘랐다.

홍단이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아 보였으나,

“선을 넘지 말거라, 홍단아.”

“죄, 죄송합니다……!!”

차갑게 식은 하윤호의 목소리는 단번에 그것들을 종식시켰다.

‘아직은 배울 게 많아.’

그런 그녀를 한 번 흘깃 돌아본 하윤호는 덤덤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재밌겠군.’

홍단은 용독문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으나, 하윤호는 이미 그 더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가쟁패의 시대,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겠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은 이제 막 약진하려는 사천당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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