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 *
차양당 연무장.
수백 명도 수용할 만한 넓이를 자랑하는 연무장이었지만, 지금은 단 수십 명만이 사용하고 있었다.
인원에 비하면 과한 넓이가 아닐까 싶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기합성과 열기는 오히려 연무장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압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퍽― 퍼억!!
퍼억… 퍼억!
뒷산에서 구해 와서 땅바닥에 박아넣은 나무 기둥을 향해 연신 주먹을 휘둘러대는 남자가 있었다.
“와, 지명이 형님 지금 몇 시진 째야?”
“휴식은 하면서 훈련 중이신가?”
“몰라. 운기조식할 때 말고는 따로 앉은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의 이름은 바로 당지명. 한때 차양당의 당주 역할을 하는 방계의 어린 수장이었다.
“대형 욕은 제일 많이 하던 사람이, 수련은 제일 많이 한다니까.”
“그러니까. 주먹질을 하다 도저히 못 움직일 것 같으면 운기조식을 하고, 그렇게 내공이 회복되면 주먹질을 하고… 진짜 사람 할 짓 아닌 것 같은데.”
당유혼의 등장 이후, 방계들은 스스로 다시 태어났다고 자부할 정도로 엄청난 수련양을 매일매일 갱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지명은 그런 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혹사에 가까운 수련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방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당지명은,
휘청―
“큭……!”
갑작스레 거꾸러지듯 주저앉았다.
“형님?!”
“지명 형님!!”
화들짝 놀란 방계들이 허겁지겁 다가갔고, 그제야 다른 이들이 전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당지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뭐야, 녀석들,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나만 보고 있었냐?”
파리한 안색.
아무리 요즘 몸에 좋은 것을 이것저것 다 먹어댄다지만, 그보다 아득한 수련양으로 육체를 혹사해 대고 있다는 증거였다.
“형님! 이건 더 이상 수련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이건 그냥 자해예요, 자해!”
회복할 시간도 없는 고행에 가까운 수련은 그저 학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리 말하는 방계들을 보며, 당지명은 끌끌 웃어버렸다.
“뭐, 너희들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지만…….
“웃차.”
“대형! 왜 또 일어나십니까?”
“앉아계시라니까요?”
‘아쉽게도, 머리는 그걸 받아들여도 이 가슴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당지명의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낡은 수투(手套).
힘든 수련의 여파로 낡고 헤진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된 수투였다.
“이제부터는, 네가 차양당의 당주다.”
그걸 볼 때면, 이미 십 년도 전에 자신에게 이것을 넘겼던 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마음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구나.”
“아…….”
굳이 그 이유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방계들은 당지명의 시선 끝에 놓인 것을 보고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 수투의 주인은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의 유산이었다.
전대 차양 당주.
당지명을 포함해 여기 있는 방계들을 당가에 입문시킨 그 이름은, 방가들에게 있어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과 같았다.
그에 무거운 침묵이 연무장에 가라앉을 때,
“…뭐, 그렇다고 너무 무거워질 필요는 없고.”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음을 깨달은 당지명은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어쨌거나, 우린 그 사람 덕분에 더 강해질 수 있다. 비록 그 녀석이 괴팍하고, 흉악하고,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인성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애써 분위기를 살려보겠답시고 계속 떠들어보는데… 어째 분위기는 살아나는 게 아니라 가라앉고 있었다.
가히, 수직 하강하여 땅에 박히다시피 하는 분위기.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야, 설마 지금, 내 뒤에…….”
“아~ 그렇구나~”
아.
“내가, 괴팍하고 흉악하고,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겠구나~”
‘하하, 노, 농담이지……?’
아니, 왜, 하필 지금인데?!
당지명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인성 머리가 덜 되긴 했어. 암, 그렇고말고.”
턱―
머리를 쥐어오는 누군가의 손길.
차마 뒤로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 당지명에게,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귓가에 쑤셔박히듯 들려왔다.
“우리, 그럼 즐거운 인성 함양 시간 좀 가져볼까?”
‘아… 당주님.’
오늘따라 더더욱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당지명.
그의 두 눈에 촉촉한 습기가 차올랐다.
* * *
“하여튼, 요즘 것들은 안 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말이야.”
“대형은 하늘이야, 하늘! 네놈들은 그냥 우러러보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야!”
사람의 입이 어찌 저렇게 댓 발 튀어나올 수 있을까? 연무장 바닥에 무릎 꿇고 앉은 방계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 양반은 숨도 안 쉬나?’
‘어떻게 앉은 자리에서 일각 동안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꼰대질을 할 수 있지?’
무호흡 꼰대질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그 덕분에 무릎 꿇고 있던 방계들은 정신이 다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그런 당유혼을 태우고 엎드린 채 머리를 처박고 있는 그들의 우두머리보다는 나았지만.
“어? 지명아, 어째 눈높이가 좀 내려가는 것 같다? 날 향한 네 우러르는 마음이 이 정도냐?”
“끄어…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응? 왜 힘들어 보이지? 즐겁지 않냐? 이 대형을 모시고 있는데?”
“그하하하하, 즐겁습니다아앗!! 우하하하, 즈, 즐겁다아아아!!”
연무장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당유혼을 등에 태우고 있는 차양당의 당주, 당지명의 눈물이 연무장 바닥을 촉촉이 적셔갔다.
그렇게, 한동안 기강 다지기를 시전한 당유혼은 당지명의 등에서 일어서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기상.”
그리고 낮게 울려 퍼진 목소리.
이 정도면 들으란 건지, 아닌지 모를 수준의 크기였지만,
파파파팟!!
당가의 방계들은 빛의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잉, 모자란 것들.”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기색을 지우지는 못하는 당유혼이었다.
‘쯧, 그래도 어쩔 수 없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 여겼건만, 하오문에서 전해 듣고 온 정보를 듣고 있자니 마냥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양을 더 다지고 싶지만, 아쉬운 대로 지금이라도 종자를 뿌려야지.’
결국, 결정을 내린 당유혼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이제 무공을 알려줄 거다.”
“…예?”
“무공…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들려온 얘기에 바짝 얼어있던 방계들의 눈이 뒤흔들렸다.
“너희들이 익힌 심법은 대지의 토양을 다지는 것이다. 하지만, 화려하게 피어나려면 토양만 다지고 있을 수는 없지. 그 위에 종자를 뿌리는 게 바로 무공을 익힌다는 거다.”
“오오… 무, 무공……!!”
“새로운 무공이란 말입니까?!”
그들의 눈에 열망이 차올랐다.
자고로 무인에게 좋은 무공이라 함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런 그들의 반응에 당유혼은 화답하듯 말했다.
“그래, 너희들에게 전수할 무공은…….”
“무공은……!!”
“차양십이수다.”
“…예?”
“아.”
“헐…….”
빠르게 식는 분위기.
누구 할 것 없이 눈에 실망이 깃들자 이젠 당유혼의 눈이 역으로 휘었다.
“아니, 근데 이놈들, 반응이?”
기껏 이 몸이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는데?
“예전에는 내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집안 뿌리라도 뽑아서 찾아오는 이들이 줄을 섰는데!”
대체 그놈의 옛날은 언제일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당유혼의 손에 젓가락 십수 개가 들리자 다들 황급히 두 팔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와!! 즐겁다!!”
“우와아아!! 대단한걸?!”
“…이 새끼들이.”
진짜 팰까? 오늘 날 한 번 잡아봐?
솟구치는 살의 속에 당지명이 애써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하, 하지만 대형… 차양십이수는 저희들이 다 익히고 있단 말입니다.”
“뭐? 네놈들이 차양십이수를 익혀?”
“그,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대형 앞에서도 펼쳐 보였잖습니까.”
“하.”
어이가 없네.
“그래, 좋다. 니들이 내게 한 번이라도 손을 댈 수 있다면, 그놈은 한 달간 아침 수련 면제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고말고. 그리고 나 역시 차양십이수만 사용하마.”
“그, 그렇다면……!”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씨구?’
한두 놈도 아니고, 모두가 동시에 침을 삼키는 모습은 무슨 짜놓기라도 한 것 같은 집단 기예.
게다가…….
‘아주 눈에 날 쥐어패고 싶다는 열망이 득실득실하구만?’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며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감히 대형의 그림자도 못 밟았었는데…….
‘...아닌가?’
아련한 옛 추억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 대만 쳐맞아달라며 달려들던 그 징글징글한 모습들.
그리고…….
“…그래, 니들은 좀 처맞아야 대형을 우러를 줄 아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
어째 더 격해진 감정으로 안광이 폭사했다.
“어, 어?”
“뭐, 뭔가 이상한데……?”
움찔―
당유혼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막 달려들던 방계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오늘 한번 뒤져보자. 니놈들은 예전부터 그랬어!!”
“아니, 그게 대체 언제입니까!”
“그놈의 예전은!!”
양 떼에 뛰어드는 승냥이처럼, 당유혼의 신형이 날아올랐다.
* * *
그렇게 약 일각이 흘렀을 때, 연무장에 서 있는 이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으으으…….”
“그으… 말도 안 돼…….”
바들바들.
당가의 방계들은 바닥을 기며 현실을 부정했고, 그런 그들을 보며 당유혼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
“안 되는 건 니들 실력이고.”
에라이, 형편없는 것들.
쓰디쓴 독설에 누군가 억울함에 가득 차 항변했다.
“아니, 이건 차양십이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유혼에게 처맞는 것? 그건 이제 뭐, 억울할 것도 되지 않는다. 얻어맞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차양십이수로 상대한다고 말해 놓고 다른 무공으로 쥐어패 놓고서 저러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결국 손 한번 못 대 본 방계들의 항변이 빗발쳤다.
하지만,
“웃기는군.”
쭈삣―
그 순간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것은 짧은 말이었지만, 조금 전까지 향하던 한심하다는 시선도, 사정없이 날아들던 발길질과 주먹질과도 비교되지 않는, 무언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네놈들이 차양십이수에 대해 뭘 안다고 멋대로 지껄이는 거냐?”
* * *
과거, 어느 더운 여름.
무더운 햇빛을 막아주는 차양의 아래에서 한 명의 장년인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벌컥벌컥―
뭐가 잔뜩 심통이 났는지, 옆에는 온갖 명주와 주전부리를 가져다 놓고 와구와구 먹어대면서도 양 볼에 가득 차오르는 심술은 그를 아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장년인이 바라보고 있는 녹의(綠衣)를 입은 사내는 그저 끊임없이 두 손을 움직여 원(圓)을 그릴 뿐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장년인이 움직였다.
“에라이!”
놓여있던 술병 중 하나가 포물선을 그렸다.
정확히 녹의 사내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가는 술병!
그것을,
턱―
녹의 사내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손을 뒤로 뻗어 술병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누가 봐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형. 마침 제가 목이 마른 것을 어찌 아시고.”
그렇게 말하고는 천연덕스럽게 술병의 봉인을 풀고 내용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결국 두 배로 부풀어 오른 심술주머니에, 온갖 구시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야, 이놈아, 대체 그런 허접한 무공은 왜 익히느냐?”
“예? 설마 차양십이수 말입니까?”
“그래, 이놈아!”
당문의 방계들이 모인 차양당에 입문하면 누구나 익히는 무공이 바로 차양십이수다.
기본공 중 기본공이기에, 경지에 이른 이라면 당연스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는 무공이었고 그 사실이 장년인을 심술 가득하게 만들었다.
“그딴 거 집어치우라니까? 내가 더 좋은 무공 알려준다고!”
차오르는 답답함에 장년인은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들기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녹의 사내는 옅게 웃었다.
하는 행동은 좀 경박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호의가 깃들어 있다.
게다가, 그는 명실상부 현 무림에서 한 손안에 드는 무위를 지닌 강자. 그에게 배움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마당에 그 조언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하나,
“대형.”
녹의 사내는 언제나와 같은 미소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젠장.”
그 미소가 의미하는 바는 완곡한 거절.
그걸 모를 리 없는 장년인이었기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애꿎은 술병만 벌컥벌컥 비웠다.
그때,
“대형.”
웬일인지, 오늘은 녹의 사내가 그를 두 번이나 불렀다.
“…왜.”
여전히 불만스러운지, 짤막하게 툭 튀어나온 말이 장년인의 심경을 대변했다.
그 모습이 마치 터지기 전의 폭탄과 같아서, 그를 아는 이들이라면 대경해 도망쳤을 테지만, 녹의 사내는 개의치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차양당(遮陽堂)의 이름이 어째서 차양당인지 아십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
터억―
녹의 사내는 가벼운 걸음으로 장년인의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대청마루 너머로 길게 자리한 차양을 바라보았다.
“차양이란 뜨거운 햇볕도, 몰아치는 비바람도 막아주는 든든한 외벽과 같은 것이지요. 이는, 곧 당가의 직계들이 그들의 그림자로 방계들을 드리워 지켜준다는 뜻입니다.”
“…네놈이 직계고 나는 방계라는 걸 돌려 말하는 거냐?”
“하하,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의 곁에 있는 장년인은 특별한 이였다. 방계 출신임에도, 어떤 직계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무척이나 특별했다.
“대형. 대형은 저희 당가의 무공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뭐? 그런 게 있어?”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다른 이가 말했다면, 감히 그 주둥아리를 뭉개 버렸을 말이지만… 발언자가 녹의 사내였기에 장년인은 눈만 동그랗게 떴다.
그에, 녹의 사내는 더더욱 미소를 짙게 띠며 말했다.
“그건 바로 무공이 너무나 고강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무공이 강하면 그냥 좋은 거지.
차갑게 식은 시선이 향했다.
그러나 그 시선이 따갑지도 않은지, 녹의 사내는 그저 대청마루 너머의 차양을 바라보았다.
“대형과 같은 천재는 모를 것입니다. 어떤 무공이든 한 번 보면 척척 익혀내고, 또 그 무공을 원래 수준보다 발전시켜 더 나은 상승 무공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천재라면 말입니다.”
차양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것을 가만 맡고 있으면 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대형과 같은 천재보다는 범재들이 많습니다. 저희 당가의 직계들은 대부분이 운 좋게 좋은 혈통에 태어나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재능을 날 때부터 가지고 있지만, 방계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지요.”
해서, 녹의 사내는 차양십이수를 놓을 수 없었다.
“어떤 당가의 아이들이든 쉽게 익힐 수 있는 무공. 그러나 결코 흠이 없는 무공.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참, 얄궂은 꿈이구나.”
“후후.”
장년인의 샐쭉한 반응에도 녹의 사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품 안에서 얇은 서책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었다.
“받아주십시오, 대형.”
“…이건 웬 거냐?”
“제가 개발한 차양십이수입니다.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보완할 것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개량했습니다.”
촤르륵―
그 말에 장년인은 별다른 대답 없이 책자를 훑었다.
누가 보면 읽어보지도 않고 겉만 대충 훑는다 하겠지만, 녹의 사내는 눈앞의 장년인이라면 그사이 진중하게 무공을 탐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장년인은 여러 가지를 읽어 들이고 있었다.
‘멍청한 놈.’
여기저기 고쳐 쓴 붓글씨가 많다.
얼마나 끼고 다녔으면 여기저기 손때가 묻어있고 눌러 문드러진 자국이 잔뜩이다.
‘무려 이 몸조차 인정할 재능을 가지고… 평생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부어?’
그게 장년인의 심술주머니를 네 배쯤 부풀게 만들었다.
“야, 이놈아!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라면 네가 직접 애들한테 전수해! 내가 짬이 얼마인데! 감히 나한테 짬 처리를 시켜?”
“하하하하.”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책이 날아들었지만, 녹의 사내는 그저 웃었다.
마치, 장년인이 어찌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부탁드립니다, 대형. 부디 후대에게도 대형의 그림자를 드리워 주십시오.”
그 말에 장년인은 그저 좋다는 듯 저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 * *
“부탁드립니다, 대형. 부디 후대에게도 대형의 그림자를 드리워 주십시오.”
멍하니 하늘을 보며 고개를 들고 있던 당유혼이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한때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이는 이제 여기에 없다.
‘…네 녀석.’
과연 그 녀석은 무언가를 예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이제는 답을 알 수 없는 과거를 흘려넘기며 당유혼은 바짝 얼어붙어 있는 방계들을 바라보았다.
“에라이, 멍청한 것들, 네놈들이 평생 익혀도 모자를 게 차양십이수다!”
다시금 버럭 외쳤지만, 어째 이번 분위기가 전보다 낫다.
덕분에 살짝이나마 뻐끔거릴 수 있게 된 당지명이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지. 이것만 대성해도 절정 고수쯤은 우습게 찜쪄먹을 수 있을 게다.”
“절정 고수?!”
“저, 정말입니까?!”
당유혼에게 있어 절정 고수는 고작해야 지나가다 밟히는, 그저 그런 경지에 부족했지만, 방계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경지나 다름없었다.
“물론이지. 내가 무공 가지고 거짓말하는 것 본 적 있어?”
“그건…….”
“하긴…….”
하는 짓이 괴팍해서 그렇지. 무공은커녕, 웬만한 일엔 허언이 없는 대형이었다.
‘아니, 있나?’
“나 때는 말이야!”
“아이고, 내가 니들만 할 때는!”
어쩐지 몇 마디 외침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지워내고 물었다.
“가, 가르쳐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런 차양십이수를 익힐 수 있는 것입니까?”
“흥,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는구만.”
진짜 차양십이수는 정말 어지간한 대문파의 상승무공과 견주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이제야 방계들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당유혼은 팔짱을 풀며 답했다.
“차양십이수의 수련법은 간단하다.”
후우웅―
그리고 그 손을 크게 회전시키며 말했다.
“원(圓)을 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