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어질어질하네.’
뇌가 뒤흔들리는 기분.
무너진 짐 더미 속에 처박힌 당불퇴는 생각했다.
그럭저럭, 익숙한 것 같다고.
“이 빌어먹을 대형. 어떻게 이런 꼴이 되고도 그런 생각이나 하게 만드는 거야?”
당불퇴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적의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우두둑 목을 풀며 바로 섰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검은 두건의 사내를 향해 씨익 웃었다.
“개새끼를 두들겨 팼더니, 개 주인이 찾아왔구만?”
“뭐라?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새파랗게 어린놈이라…….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이렇게 들으니까 또 색다르네.”
웃으면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고, 어미와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며 다가오는 것은 등판에 용(用)자를 새긴 옷을 입은 용독문의 문도들.
‘흐음.’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생각했다.
‘대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야, 개떼처럼 몰려온다.”
“어이구, 옷은 뭐 짜 맞춰 오셨어요?”
“이 싯팔 새끼들, 누구부터 패줄까? 일렬로 딱 서봐. 패기 좋게.”
큭, 이건 뭐… 생각할 것도 없잖아?
“이 새끼가, 웃어?”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실소를 흘리는 당불퇴의 모습에 점점 포위망을 형성하던 용독문도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래, 틀린 말은 또 아닌 것 같네.”
미친놈 밑에 있다 보니까, 자기도 미쳐 버린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당불퇴는 다시금 두 손을 벌려, 천천히 원을 그리며 소리쳤다.
“들어와, 새끼들아!”
“저 미친놈이……!!”
“뭐 해! 조져!”
그 외침을 기점으로 십수 명의 용독문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부웅!
가장 선두의 놈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잘 먹고 자랐는지, 날아드는 주먹에 실린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짜증이 났다.
이렇게 잘 먹은 모자랄 것 없는 놈들이 왜 다른 놈들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지!
“풀뿌리의 맛을 봐라!”
콰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다.
무식하리만치 정직한 일격은 정확히 상대방이 내뻗은 주먹과 맞부딪혔고,
“끄아아아악!!”
둘 중 하나가 부러지는 것이 필연이니, 으스러진 쪽은 당연 상대방이었다.
“이 새끼, 흙수저 주먹맛이 어떻냐!”
“이놈이!!”
“주먹 좀 쓰는 놈이냐!!”
고통스러운 듯 손목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서는 용독문도의 곁에서 다른 문도 두 명이 덮쳐들었다.
한 명은 다리를, 한 명은 상체를 노리듯 양쪽에서 몸을 날려오는 움직임에,
“중요한 것은 하체다.”
당불퇴는 문득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쳐 가는 걸 느꼈다.
“어떤 상황이 오든 당황하지 마. 결국 네 녀석들에게 닿을 수 있는 공격의 방위는 삼십육방위(三十六方位). 네놈들이 하체로 중심축을 단단히 잡고, 제대로 원을 그릴 수만 있다면 못 막을 공격이 없을 거다.”
질리도록 들은 그 말에 당불퇴는 반걸음 뒤로 물러서며 몸을 회전시켜 몸을 날리며 덮쳐드는 공격을 피해 냈고,
“아, 진짜.”
그 상태에서 주먹을 갈겨 날아들던 용독문도의 면상에 꽂아버렸다.
콰아앙!!
“커어억!!”
완벽한 요격!
하단을 노리다가 실패해 바닥에 엎어진 녀석의 뒷통수를 사뿐히 지르밟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들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지잖아.”
이렇게 해서야… 그 악귀 같은 대형의 말이 전부 옳았다는 게 증명이 된 게 아닌가.
그 사실에 당불퇴가 인상을 찌푸릴 때, 검은 두건을 쓴 남자의 인상은 아예 일그러져갔다.
“이놈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 앞에서 협객 놀이라도 하려는 거냐?”
“협객? 역겹게 무슨 소리야.”
당불퇴는 역겨워 토가 나올 것 같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다시금 원래의 자세를 취했다.
“그냥, 사람 같지도 않은 니들을 복날 개 잡듯 두들겨 패는 것뿐이야.”
“이 새끼가?!!”
뚜둑―
그 순간, 흑의 두건 사내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버럭 소리쳤다.
“흑견단! 정(丁)급 독의 사용을 허가한다!”
그와 동시에 흑의 두건 사내가 무언가 검은 가루 같은 것을 허공에 흩뿌렸고, 다른 이들도 일제히 검은 가루들을 투척했다.
삽시간에 주변 대기가 뿌옇게 변하는 모습에 당불퇴의 안색도 변했다.
“야, 이 미친놈들이?!”
용독문이 독을 쓰는 거야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저잣거리에서 독을 풀어?!”
“크크크, 왜. 독이라니까 겁이 나나?”
“이 개새끼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은…….”
“닥쳐라!”
검은 두건의 사내는 품에서 강철 장식이 덧대어진 장갑을 끼며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감히 대흑견단주인 이 몸과 흑견단을 건드렸다. 당장 네놈이 어떻게 고통스럽게 죽을지만 생각해라!”
“…진짜, 네놈들은 가만 놔두는 게 세상의 해악이겠다.”
파팟!!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독무를 헤치고 단번에 흑견단주의 면전에까지 접근한 당불퇴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지금껏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용독문도 하나씩을 날려 버렸던 주먹질이었다!
하나,
“흥!”
흑견단주의 몸이 아래로 쑥― 꺼지더니 주먹의 궤도를 벗어났고, 오히려 열린 복부를 향해 반격이 날아들었다.
‘그래도 대가리라 이거지?’
기민한 움직이지만, 당불퇴의 두 눈은 주먹의 끝을 놓치지 않았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사복수(巳伏手).
쉬이익!!
다음 순간, 당불퇴의 손이 기이하게 움직였다.
뻗어지는 흑견단주의 주먹에 맞부딪히는가 싶더니, 마치 뱀이 나뭇가지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처럼 엮인 것이다.
“뭣……?!”
순식간에 팔뚝이 잡히자 흑견단주의 눈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이런 무공은……!’
“왜, 인마. 이런 무공은 듣도, 보도 못 했냐?”
반대로 당불퇴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더니,
“나도 마찬가지다, 이 자식아!”
반대편 주먹이 흑견단주의 복부에 때려 박혔다.
콰앙!!
“커억……!”
조금 전 당불퇴가 그랬던 것처럼, 짐 더미에 처박힌 흑견단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흑견단의 모두가 딱딱히 얼어붙었다.
고작해야 약관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압도적으로 자신들을 밀어붙이다 못해 그들의 우두머리까지 날려 버리다니?
“개새끼들 아니랄까 봐, 꼬리 만 꼬라지가 예술…….”
그런 흑견단의 앞에 오연히 나서는 당불퇴였으나,
“…컥?”
휘청―
순간 몰려오는 독기에 시야가 기울어지나 싶더니 다리에 힘이 쭉 풀렸다.
‘…큭! 독이…….’
겨우 자세를 잡았지만, 그 순간 몸 안의 기혈이 들끓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주, 중독!! 맞아, 저 자식 중독됐어!!”
그 모습을 보자 흑견단 중 누군가가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쳤다.
“그래!! 저놈, 맨몸으로 흑무 독을 뚫고 왔었지?”
“괜찮은 척해도 다 허세였던 거야!!”
쾌재를 부르는 모습에 당불퇴는 걸쭉한 피를 토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젠장… 두 번, 세 번 말 안 해도 알아, 이 자식아.’
십수 명이 뿌린 독무를 뚫고 달려들다 보니 아무래도 독을 듬뿍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체내에 내공이 흐르는 통로인 기혈이 요동치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급격히 움직였더니 독은 더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나마, 이게 그놈의 잡룡탕을 먹어서 나은 반응이란 건데…….’
흑무 독인지 나발인지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건 적당히 사람을 제압하려고 만든 독이 아니다.
확실한 살의(殺意)를 가지고 만들어진 독이기에 듬뿍 들이켠 후유증은 잡룡탕을 먹어오며 기른 저항력을 뚫고 해를 끼칠 정도였다.
“크하하, 중독됐다고?!”
콰앙!
때마침 무너진 짐 더미를 집어던지며 몸을 일으킨 흑견단주가 광소를 터트렸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빛이 머리카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핏줄기에 뒤섞여 광망을 토했다.
“뭐하냐, 이 자식들아!! 연장 꺼내라!!”
흑견단주의 외침에 용독문도들은 재빨리 주변에 널브러진 나무 막대를 하나씩 주워 들었다.
그 모습에 당불퇴는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러운 와중에도 실소가 흘러나왔다.
“네놈들이 무인이냐, 뒷골목 왈패냐?”
“아직도 입은 살았구나!”
기회를 잡았다 싶자 용독문도들은 일제히 들이닥쳤다.
몽둥이 대여섯이 날아들었지만, 당불퇴의 눈에는 그것들이 잔상을 그려 열댓 개는 넘게 보였다. 중독에 의해 사물의 윤곽이 흐려 보이는 것이다.
‘빌어먹을!’
욕지기를 뱉으면서도 당불퇴는 움직였다.
날아드는 나무 몽둥이를 피하면서 주먹을…….
‘…어?’
휘청―
반걸음만 움직여 피하려 했는데, 두 걸음이나 내디뎌졌다. 넘어지지 않으려 겨우 멈춰서니,
퍼억!!
둔탁한 충격이 몸통에 작렬했다.
“큭!!”
겨우 버텨내나 했지만,
퍼억!!
다시금 날아든 나무 몽둥이가 복부에 때려 박혔다.
“……!!”
비명조차 잊게 만드는 고통이 들이닥쳤다.
“크하하!! 이 새끼, 눈 빠지겠네, 아주!”
눈을 부릅뜬 당불퇴를 조롱하는 놀림과 함께 나무 몽둥이찜질이 퍼부어졌다.
퍼퍼퍼퍽!!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몽둥이세례를 막으려 두 팔을 들면, 두 팔을 향해 몽둥이가 내려 찍혔다.
“아, 안 돼…….”
“저런 끔찍한…….”
건물 사이사이 숨은 이들이 그 참혹함에 비명을 질렀지만, 그 누구도 도울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이것이 용독문이 사천 거리를 지배한 방식.
저항하는 이를 처참할 정도로 박살 내버리니, 그 누구도 도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끄… 끄그…….”
피범벅이 된 채, 저잣거리에 무릎이 꿇려진 당불퇴.
고깃덩어리 신세가 된 그를 빙 둘러싼 용독문도와 흑견단주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봐라! 이게 사천에서 우리 용독문의 뜻을 거스르면 생기는 일이다!”
몽둥이 끝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흑견단주의 시선이 당불퇴를 향했다.
“크크, 꼴이 좋구나.”
꽤 위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살고 싶나?”
완전히 승기를 거머쥐고 패자를 모욕하는 비열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면 빌어라.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구걸해 보란 말이다!!”
광소 어린 외침이 저잣거리를 뒤흔들었다.
그에,
“…그… 으… 으 …세요… ”
당불퇴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뭐라고?”
흑견단주의 고개가 훽 돌아갔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은 분명 무언가를 구걸하는 말투!
승기를 잡고, 상대의 목줄을 쥔 채 짓누르는 가학적인 욕망이 들끓었다.
조금 더 상대를 모욕하고 싶은 더러운 욕망에 흑견단주는 직접 허리를 숙여 귀를 가져다 댔다.
“다시 말해 봐라! 살려주세요, 라고, 그리 말하면 살려는 줄 테니까!!”
마지막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향한 몸짓에, 당불퇴의 입술은 다시 한번 달싹거렸으니,
“…까, 잡수…세요… 등신아… 킥……!!”
마지막 입꼬리가 비틀린 것은 분명한 비웃음.
“……!!”
흑견단주의 눈이 부릅 뜨이며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올랐다.
“이… 개자식이……!!!”
죽여 버리겠다. 당장에 죽여 버리겠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머금은 나무 몽둥이가 머리 위로 쳐들어 올려졌다!
단번에 머리를 깨부수기 위한, 단두대의 사형수와 같은 모습!
“뒈져라아아아아!!”
비명과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
푸욱!
“이노……. 크, 으으으으악?!!”
한 줄기 날카로운 파공음이 그 시끄러운 고함을 가로지르고 날아들어 흑견단주의 손에 쑤셔박혔다!
“뭐, 뭐야?!”
“암기?!”
“아니야… 저건……!!”
무언가 틀어박힌 손을 쥐고 고통스러워하는 흑견단주의 모습과 그를 그리 만든 것의 정체를 알아낸 용독문도의 놀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저, 젓가락?!”
그 정체를 깨닫는 순간, 눈앞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져 당불퇴의 앞을 가로막았으니,
“…이, 이 새끼가아아아아아!!!”
고통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흑견단주는 눈앞의 난입자를 향해 사납게 포효했다.
“넌 또 뭐 하는 새끼냐!!”
하지만,
“나 말이냐?”
정작 그 외침을 듣는 이는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사천당가, 차양당의 당주.”
아니, 어쩌면 그건.
“당지명.”
열화와 같이 뜨거운 분노가, 저 깊은 곳의 용암처럼 무겁게 끓어올라 토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