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그러니까, 이제는 내 차례다 】
흑견단주 고울진은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릴 적부터 뒷거리를 전전하던 그는 어느 날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고 용독문의 흑견단주가 되었다.
흑견단주는 용독문에서도 바닥 취급이지만, 그 간판이 간판인 만큼 사천의 양민들에게는 왕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이… 어린 놈의 새끼들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그 둘 다 외견은 아직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애송이들이었다.
게다가,
“사천당가?! 감히 그 망해 빠진 거지 문파의 잡것이 내게 당당히 고개를 쳐든다는 말이냐!!”
사천당가라는 이름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한때는 사천에서 독을 사용하는 문파, 하면 용독문이 아닌 사천당가였으니까.
즉, 그들은 이미 쇠락하디 쇠락한 퇴물이니, 자신 앞에 이렇게 당당히 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 뒈지고 싶으냐!!”
터져 나오는 분노가 쩌렁쩌렁 포효가 되어 저잣거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
정작 그 모욕 섞인 외침을 들은 당지명은 한 점의 표정 변화 없이 덤덤히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당불퇴를 응시했다.
“괜찮으냐?”
“…그으… 크, 크크크… 형님… 오셨수…….”
고통 어린 신음 소리.
그 속에서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려는 당불퇴였지만, 그게 얼마나 억지로 자아낸 것인지, 온몸을 파들파들 떨다 고개를 떨구었다.
“…크, 저놈의 젓가락 보고… 대형이라도 온 줄 알았네…….”
“나라서 실망했냐?”
“그…건… 아니긴 한데…….”
끅끅 거리며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흘리던 당불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 치쇼… 형님…….”
“…….”
쌔액쌔액―
숨소리가 거칠었다.
괜찮냐, 든가, 버틸 만하냐, 든가 하는 안부는 물을 수도 없는 수준.
당지명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무시해?!”
쑤욱―
손에 박힌 젓가락을 뽑아내며 으르렁거리는 고울진이 두 눈에 보였고, 다른 흑견단원들도 서서히 포위망을 구축하고 모여드는 게 보였다.
그들을 두 눈에 담는 당지명은, 이번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또다시 당불퇴가 도망치라는 등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저놈도 똑같이 만들어 줘라!!”
“죽여 버려!!”
흑견단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지만 당지명은 그보다 더 빠르게 손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파파팟!!
당지명의 소매 속에서 갈색 빗줄기가 퍼부어졌다. 그것들은 십수 명의 흑견단원에게 고르게 날아가 박혔으니, 무턱대고 달려들던 흑견단 대부분이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우악?!”
“끄아아악!!”
“아, 암기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무언가 점처럼 날아와 팔뚝이고 이마고 할 것 없이 쑤셔박힌 셈이었다.
비록 당유혼이 진심으로 던진 것만큼 위력이 강하지는 않아 한 치 정도 박히는 게 고작이지만, 무엇이든 그 깊이로 박히면 죽지는 않아도 무지하게 고통스럽다.
“어디서 잔재주를!!”
그나마 고울진은 정면에서 날아드는 젓가락 세례에 반응해 피하거나 쳐냈지만, 당지명이 노린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틈!
흐트러진 포위망의 사이로 파고들며 고울진을 마주 쫓았다.
“…큭?!”
갑자기 시야 앞에서 쑤욱― 하고 나타난 당지명의 모습에 고울진은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차양십이수, 사복수.
당지명의 손은 뱀처럼 기어와 단번에 고울진의 팔과 뒤엉켜 버렸다.
“이놈이?!”
아까 한 번 당했던 수법에 고울진은 깜짝 놀라면서도 대처하려 했다. 휘감긴 팔은 어쩔 수 없다 치고, 다른 쪽 주먹으로 당지명의 면상을 갈기려 한 것!
그러나 고울진이 미처 모르는 게 있었으니, 사복수를 익힌 경지는 당지명 쪽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고울진이 대응하기도 전에, 주먹이 아니라 아예 팔 전체를 휘감다시피 한 당지명이 몸 안쪽 깊숙이 파고들어 그대로 상대를 둘러업어서는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콰아앙!!
“크어어억!!”
낙법을 펼칠 새도 없이 등판을 강타하는 충격!
“다, 단주님!!”
“단주님을 구하라!!”
허겁지겁 다른 흑견단이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려 했지만,
파파팟!
당지명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소매를 휘둘러 다시 대여섯 개의 젓가락을 집어 던졌다.
달려오려던 흑견단원들이 젓가락 세례에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당지명은 다시금 한쪽 발로 짓밟은 상태의 고울진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짧게 끝내마.”
차양십이수, …….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고통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함에도 고울진은 사납게 울부짖으려 했지만,
퍼퍼퍼퍼퍼퍼퍼퍽!!
얼굴, 가슴, 복부! 폭우처럼 퍼부어지는 주먹세례가 그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끄, 으어어어……!”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과 함께 고울진의 몸이 크게 경련하다 이내 축 늘어졌다.
“…다, 단주님?!”
“저놈이 단주님을!!”
순식간에 끝나 버린 전황에, 뒤이어 달려들려던 흑견단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미 상대와 자신들의 강함의 차이는 뼈저리게 느끼는 수준이니, 남은 것은 쪽수로 밀어붙이는 것뿐!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없자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흐, 흑무 독을 꺼내라!!”
“마, 맞아! 흑무 독을 던져!!”
누군가의 외침에 하나둘 독이 든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당불퇴에게도 유효한 타격을 입혔으니, 이번에도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하나,
“머저리 같은 것들.”
차갑게 조소하는 당지명은 가볍게 젓가락을 던졌다.
푸푸푹!!
날아간 젓가락들은 그들이 들고 있던 주머니를 꿰뚫으며 독연을 터트렸다.
“아, 안 돼!!”
“크아아악!!”
“해독제를……!!”
제 발에 제가 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당지명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본문의 독을 훔쳐 간 주제에, 예(藝)도 의(意)도 없는 한심한 것들.’
알아서 자신들의 독에 거꾸러지는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괜찮으냐?!”
조금 전 차갑고도 여유롭게 적들을 압도하던 때와 달리, 다급히 뒤를 돌아서는 순간, 눈빛이 변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쪽 벽에 기대어서, 애써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기절해 버린 당불퇴.
“큭…….”
한 번 입술을 곱씹은 당지명은 서둘러 그를 들쳐메며 속으로 읊조렸다.
‘조금만 버텨라……!!’
* * *
모두가 열띤 수련을 반복하는 차양당의 연무장.
그곳에서 홀로 여유롭게 처마 위에 올라 낮잠을 자는 이가 있었으니, 이 일광욕의 풍미를 아는 남자 당유혼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원성을 받으면서도, 그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것이 그의 평화였으나 오늘은 달랐다.
“대형!! 대혀어어엉!!”
왈칵―
들려오는 외침에 당유혼의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어떤 놈이 내 단잠을… 응? 뭐야? 뭔 일이야?”
들려 있던 목침을 무지성으로 투척하려던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피 칠갑을 한 당지명과 그에게 업혀 있는 반송장 상태의 당불퇴.
“대형!! 부, 불퇴를……!!”
“일단 놔! 머저리처럼 엉켜서 뭐 하는 거야?”
당유혼은 당지명이 업어온 당불퇴를 받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뻗어 맥문을 잡았다.
흔히 맥문이라 불리는 손목을 집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은 한 문파의 장로급은 되는 무공 수위와 의원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행위였다.
그러나 당유혼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이, 단번에 학을 떼는 탐(貪)을 움직여 당불퇴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허 참…….’
그 상태를 알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어지간히 악운(惡運)에 강한 놈인가?’
차양당의 방계들은 지금까지 귀원일기공을 수련하고 잡룡탕을 먹으며 차양십이수를 연마해 왔다.
다른 방계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수련해 온 것뿐이지만, 사실 이 조합은 당유혼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만든 수련법이었다.
귀원일기공으로 터를 넓히고, 잡룡탕으로 내부를 채운 뒤 차양십이수로 다듬는 일련의 체계는 그들이 다른 무림인들처럼 단전에만 내공을 쌓는 게 아니라, 전신에 내력을 쌓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내공은 기를 운용하는 능력이 당유혼처럼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당장은 사용하지 못하는 잉여 내공이라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경을 경험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사경을 헤매는 순간, 귀원일기공은 스스로 움직여 체내에 잠들어 있던 잠력을 끌어내 생명력으로 환원시켰고, 그 과정에서 몸이 재구성되며 이전보다 훨씬 강건해졌다.
이건 방계들이 무의식적으로 귀원일기공을 운용하도록 죽어라 수련한 노력도 있고, 당유혼이 그만큼 뛰어난 체계를 만든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악운(惡運)이 미친 듯이 좋았다.
‘하나 더하자면, 이놈의 정신력도 제법이란 것이겠지.’
고통이란, 생각보다 위중하지 않은 부상으로도 사람을 죽게 만들기에 대게 이 정도의 부상을 입으면 십중팔구는 죽는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그걸 버텨낸 당불퇴는 이 일을 기반으로 더더욱 성장할 게 분명했다.
“대형!!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불퇴는 괜찮은 것입니까?!”
보통은 기연이라 불리는 일을 눈앞에서 목격한 당유혼이 어처구니가 없어 가만히 있자, 당지명이 속이 타 재촉해 왔다.
그래서,
“뭘 잘했다고 재촉이야, 인마!”
적절한 응징이 날아왔다.
“악!”
한 대 맞고 뒤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
십수 명의 흑견단을 일방적으로 압도한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한심함이지만, 당지명은 그저 눈망울만 촉촉해질 뿐이었다.
“얘는 됐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말해 봐.”
뭐 하다 애가 처맞고 왔는지 말이야.
“아……!! 그, 그게…….”
올 것이 왔다.
당지명은 저도 모르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그래?”
이야기를 다 들은 당유혼에게서 삐쭉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지명으로서도 당불퇴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아 찾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조합해 말했는데, 이후의 대처는 순전히 그의 판단에 따른 것이기에 주눅이 들었다.
개인의 다툼이라면 몰라도, 그가 스스로 당문의 이름을 밝힌 것은 문파와 문파 간의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일.
다가올 여파가 두려웠다.
하나,
“알겠다. 가서 수련해.”
돌아온 대답은 그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옙?”
“뭐, 수련하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요…….”
이게 맞나……?
불안한 듯, 당지명의 눈이 잔뜩 떨린다.
그에,
“하. 이놈이.”
당유혼의 시선이 삐딱하게 돌아갔다.
“이 자식아, 네가 무슨 대단한 협객행이라도 했냐?”
“예, 옙? 그, 그건 아니죠…….”
당불퇴라면 몰라도… 따지자면 자신은 그냥 복수를 했을 뿐이다.
“그럼 네가 무슨 대단 무쌍한 고수들이라도 썰었어?”
“그, 그것도 아니죠…….”
흑견단이 사천 저잣거리에서 악명을 떨치기는 해도, 그건 뒷골목 왈패의 패악질에 의한 악명이지, 무인으로서의 위명은 아니었다.
“그럼 뭐 대단한 것 했다고 궁상을 떨고 앉아있어? 네가 당궁상이야? 가서 수련이나 해, 인마!”
“꺄울!!”
총관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궁둥짝을 차버리는 행태에 연무장 바닥까지 날아간 당지명.
고통이 차올랐지만,
“으음…….”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스윽스윽―
당지명은 차인 엉덩이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고개를 돌리는 당유혼을 바라보다 다시금 못 본 척, 수련에 열중하는 다른 방계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수련이나 하자.’
당불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또 저런 대형의 모습을 보니 그런 걱정이나 불안도 전부 사라져 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조금은 무게감이 덜어져 가벼워진 어깨로 천천히 팔을 휘둘러 원을 그렸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같이 수련을 시작하는 당가의 방계들.
그렇기에 그들은 보지 못했다. 당유혼의 눈이, 지금껏 보지 못한 스산한 기세를 풍기며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