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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2화 (32/350)

32화

* * *

깊은 밤이 되었다.

하루 종일 수련하던 당가의 방계들마저 결국 지쳐 쓰러져 잠들어 버린 때, 누군가 조용히 당가의 담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게 있다면,

“…왜 좋은 문 놔두시고 담을 넘어 나오십니까요?”

움찔―

“…니들 뭐냐?”

“후우, 이러실 것 같았습니다요. 당유혼 소협.”

아닌 밤중에 당문의 담장을 넘으려던 괴한, 아니, 당유혼은 쳇― 하고 혀를 차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당문이 감히 하오문 나부랭이가 찾아올 만큼 만만한 곳으로 보이냐?”

“그래서 정문으로 안 들어왔습니다요.”

“…….”

할 말이 없네.

“…그래서 뭐하러 뒤에 부하까지 데리고 왔어?”

“만류하기 위해서입니다요.”

“만류?”

“지금, 용독문으로 가는 길이셨잖습니까요.”

역시, 알고 있었나.

오늘 대낮에 벌어졌던 일이 하오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하윤호는 그 소식을 듣고, 오늘 자신이 벌일 일을 눈치채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내가 지금 쳐들어 갈 걸 알았지?”

“소협께서 참으실 성미는 아니지 않습니까요? 그렇다고 아직 덜 여문 방계들을 데려갈 일은 없을 테니, 적당히 밤이 깊어지면 월담을 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요.”

“그 적당히를 어떻게 맞히는데?”

“맞힐 필요가 있겠습니까요? 어차피 용독문으로 가는 길이 이쪽 방향이니, 그냥 죽치고 눌러 앉아있으면 되는 일이지요.”

대단한 자식.

‘확실히, 머리 굴리는 것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군.’

당가의 어떤 이도 눈치채지 못한 걸, 겨우 몇 번 본 하윤호가 알아채는 걸 보며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 걸린 것은 홍단.

조용히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해서, 뒤편에 부하까지 데려온 걸 보니… 나를 막기 위해서 무력 시위까지 불사하겠다는 거냐?”

“아이고, 설마 그러겠습니까요? 다만, 소협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요. 지금 혼자 가시는 것은 무리입니다요.”

무리?

그 단어에 당유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쿠구구…….

흠칫!

갑작스레 당유혼을 주변으로 풍겨 나오는 무형의 기세.

깜짝 놀란 홍단이 하윤호의 앞에 서서 그 기세를 대신 막아서는데, 당유혼이 씹어뱉듯 말했다.

“내가 너희와 손잡으려 했던 것이 고작 저 버러지 하나 못 썰어서인 것 같냐?”

‘이 남자…….’

진심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본 하윤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유혼의 능력이 실제로 용독문을 밀어버릴 수 있든 아니든, 그는 진정 오늘 밤 용독문을 없애 버리려 마음먹었다는 것을.

“…후우, 그러시면 안 됩니다요.”

“내가 왜 그런 썩은 고름 같은 것들을 놔둬야 하지?”

“고름… 정확하신 표현입니다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터무니없이 비대해져 버린 종기와 같습니다요.”

비대해져도 너무 비대해져 버렸다.

자신을 지키려 앞을 막아선 홍단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 하윤호가 진중한 눈빛으로 당유혼을 마주했다.

“설혹 하룻밤 만에 용독문을 멸문시킬 수 있다 치더라도, 그렇게 된다면 사천 전체가 휘청거립니다요.”

당금의 용독문이 사천에서 이루는 영향력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이 벌이는 사업체가 몇 개이고, 그들 휘하에 속한 자잘한 문파들이 또 몇 개일까. 표국, 상단, 주루 등등… 어떤 분야에도 국한하지 않고, 사천의 경제 활동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과거에 사천당가가 그랬다면, 지금은 용독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 용독문이 갑작스레 사라진다면 사천에 찾아올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내가 알 바인가?”

이미 분노로 가득한 당유혼에게 그것은 고려할 바가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당가를 먼저 잊은 것은 사천이 아니었나?’

그의 분노는 이제 비단 용독문만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에게 책임을 묻겠다.’

원래라면 참으려 했다.

당가를 몰락시킨 이들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겠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이까지 미친놈처럼 달려들어 봐야 그저 광기에 물든 복수귀가 될 테니까.

하지만, 오늘 방계 하나가 맞고 온 모습을 보며 마음속 무언가가 깨어나는 걸 느꼈다.

그건, 죄책감 속에 눌려 있던 증오.

‘사명아. 나는 너와 다르다. 나는 너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당사명이 못다 한 협의의 길을 걸어가려 했으나, 그건 도저히 자신과는 다른 길.

당유혼에게는 당유혼의 길이 있었다.

“당가에게는… 오히려 그게 좋을 것 같단 말이야. 애초에, 먼저 처맞은 그놈들도 참고 있지는 않을 테고.”

‘이런…….’

당가는 아직 작은 문파다.

작은 문파가 성장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보다 위쪽의 큰 문파를 끌어내리는 게 훨씬 쉽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놔두고 볼 수는 없으니…….’

결국 하윤호는 한 번 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진정하셔야 합니다요. 그리고, 용독문도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요.”

“그놈들이? 참는다고?”

듣자 하니, 자신들의 행사를 가로막았다고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든 뒤, 그 공포를 알리기 위해 저잣거리에서 처형식을 개최하려고 했던 놈들이 용독문이다.

그런 용독문이 공개적으로 쪽이 팔렸는데 참는다는 게 말이나 될까?

“정말입니다요. 제가 다 말씀드릴 테니, 우선은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요.”

“…흠.”

한숨을 픽픽 내쉬는 주제에 꽤 확신이 있는 말투다.

당유혼은 잠깐 고민했지만,

‘어디, 들어는 볼까.’

밑져야 본전.

“좋아. 한 번 설명해 봐.”

대신,

“내가 아주 잘 알아듣게 설명해야 할 거야.”

* * *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자신을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당유혼을 바라보며, 자신의 안가에 도착한 하윤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용독문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행사에 관해서입니다요.”

“행사?”

“그렇습니다요. 그들은 곧 개파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요.”

“뭔 개소리야?”

개파 행사란 일정한 세력을 갖춘 집단이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할 때 이를 세상에 알리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음식점이 신장개업을 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초대해 놓고 열심히 선전을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당연히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려면 해야 할 일은 맞지만…….

“이미 용독문이라고 촌스러운 이름까지 붙인 놈들이 무슨 개파 행사야?”

“보통은 그렇습니다요. 다만, 그들은 단순한 문파를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요. 그들은 가문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요.”

“…뭐?”

당유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색을 느낀 하윤호는 속이 퍽퍽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말을 뱉는 순간 간신히 가라앉혔던 분노가 다시금 폭발할 게 뻔했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부활시킨다는 겁니다요. 그들 용독문은, 스스로가 새로운 사천당가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요.”

“그게 무슨……!!”

- 쿠구구구구구!!

단전에 잠들어 있던 탐(貪)이 주인의 의지에 의해 깨어났다. 게으르고 나태한 녀석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무엇보다 흉포해질 수 있든 폭급한 기세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큭……!’

그것이 얼마나 살벌한지, 하윤호의 손발이 덜덜 떨려올 정도였지만, 애써 주먹을 움켜쥐며 참아냈다.

‘이건 단순히 강함의 고하 때문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가진 그릇이라고 해야 할까? 타고나길 황제의 운명을 타고난 이나 가질 법한 고유의 기질을 애써 버텨내며 하윤호가 소리쳤다.

“진정…하셔야 합니다요! 지금… 여기서, 이렇게 흥분하셔도… 바뀔 것은 없습니다요……!!”

이를 꽉 물어 외치는 그 조언에,

“…빌어먹을!!”

당유혼은 애써 기세를 가라앉혔다.

거처에서 뛰쳐나온 탐이 당장에 때려 부술 상대를 달라며 소리칠 때, 눈을 깊게 감고 녀석의 머리를 우악스레 잡아 누르고 다시금 눈을 떴다.

그러자,

‘…기세가?’

조금 전까지 번들거리던 살기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아니,

‘갈무리했구나!’

예리한 칼처럼, 어설프게 돋아나지 않도록 갈고 닦은 것이다!

놀라운 자제력을 보며 감탄하기도 잠시, 하윤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음지에서 흑도문파처럼 뒹굴려는 게 아니라, 양지로 나가 떳떳이 사업을 진행하고 사천성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두려는 가문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습니다요! 그러니, 그전에 막아야 합니다요!”

용독문의 양지화.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하윤호에 당유혼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그놈들을 쓸어버리는 게 최선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요! 그들이 사라진다면 사천삼주가 움직이게 됩니다요. 게다가, 그들의 실종이 부자연스럽다면 사천삼주는 더더욱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요! 이는 곧…….”

“당가한테는 더 안 좋은 선택지다? 제길, 별의별 외통수가 다 있잖아.”

두 번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이미 증오를 가라앉히며 차분해진 당유혼은 머릿속에서 열심히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그냥 밀어버려도 안 돼. 천천히 천천히 세력을 깎아 먹고 그 자리를 당가가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천삼주란 놈들이 발을 들이밀려 해도 막아낼 수 있겠지.’

정파를 움직이는 것은 명분이다.

지금 용독문을 쓸어버린다고 해도, 당가는 그들의 자리를 대신할 명분도 없고 다른 문파들이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게 할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호구처럼 처맞고 있으라고?”

“그렇지 않습니다요! 저희 하오문에서도…….”

급히 당유혼을 납득시키려 하는 그 순간,

“지부장님!!”

벌컥―

문이 열리며 홍단이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홍단? 이게 무슨…….”

“큰일입니다! 습격입니다!”

습격?

“용독문입니다! 그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무슨…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하윤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쳐들어 온 적들의 숫자는?”

“최소 수십에서 수백… 용독문 전력의 삼분지 일이 공격해 왔다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부가 어디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알고 쳐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입술을 꾹 깨문 홍단으로부터 처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현재 하오문이 운영하는 기루에 무턱대고 들이닥쳐 온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쳐들어 온 곳은 청화루. 그곳의 아이들을 협박하여 저희들을 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쯧―

“전면전이네.”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당유혼이 툭― 하고 내뱉었다.

“하오문의 눈과 귀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그놈들이 별다른 채비도 하지 않고 곧장 쳐들어 왔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그건 무언가 변수가 있다는 뜻일 테고.”

어느 쪽이든 당유혼에게는 큰 상관이 없었다.

천천히 자세를 풀며 걸어 나온 그는 날카로운 예기와 같은 살의를 풀풀 흘리며 말했다.

“일단 가보자고. 안 그래도 찾아가서 때려줄 놈들이 스스로 찾아왔잖아?”

그렇다며 선택지는 하나뿐.

“목 잘 닦고 있으라 말해. 전부 이쁘게 분질러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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