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3화 (33/350)

33화

청하루.

사천성 내에 있는 기루로, 밤이면 음주 가무를 즐기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곳이 오늘은 사나운 고함과 우악스러운 발길질로 뒤덮이고 있었다.

“샅샅이 뒤져라!”

“하오문 쥐새끼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찾아내라!!”

“명을 받듭니다!”

허리춤에 칼을 찬 용독문도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은 강제로 청하루를 점령한 채 하오문도들을 불러오라고 윽박질렀다.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손님들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감히 용독문에 저항할 수 없어 쥐 죽은 듯 처박혔고, 자신들의 생업이 짓밟힌 기녀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서봤지만,

“무, 무사님… 진정하십시오. 찾으시는 게 있다면… 꺄아아악!!”

“이년이 어딜 감히 손을 뻗는 것이냐!”

짜악―

우악스러운 손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따귀를 맞거나 복부를 걷어차여 여기저기 쓰러져 숨을 꺽꺽거리며 괴로워하는 기녀들이 하나둘이 아니었고, 평소 취객을 상대하던 호위 무사들은 배에 구멍이 뚫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아. 네놈들이 하오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당장 하오문 버러지 놈들을 내놓아라!”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칼을 들고 고함을 내지르는 남자, 흑호단주 구만호가 부리부리한 안광을 빛냈다.

하지만, 사실 이리 포효하듯 존재감을 뿜어내는 구만호의 속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젠장, 나는 절대 그 꼴이 되고 싶지 않아…….’

그의 의식이 과거를 향했다.

* * *

용독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휘장이 걸린 공간. 그곳에는 흑견단주 고울진의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해서, 그 쪽팔림을 당하고 꾸역꾸역 살아왔다고?”

“죄, 죄송합니다, 문주님……!!”

저잣거리에서는 왕처럼 떵떵거리던 고울진이지만, 지금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죄송하겠지. 그런 일을 겪고도 죄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터벅터벅.

권좌에 앉아있던 용독문주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거기다, 하필 이 시기에 본문의 자존심에 큰 흠집을 내버렸단 말이야.”

“당가를 지워 버리라고 명령하면 되겠습니까?”

그에 한쪽 벽에 있던 쥐 상의 남자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남자의 이름은 채용, 용독문의 군사 노릇을 하는 인물이었다.

“흥, 개파 대회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병력을 움직여서야, 우리가 창피를 당한 것을 스스로 알리는 꼴밖에 되지 않겠지.”

“지당한 의견이십니다.”

실제로도 용독문주가 먼저 그런 의견을 내면 만류하려 했던 채용은 스산한 눈빛으로 고울진을 내려보며 말했다.

“허면 이놈의 처리 문제인데… 마침, 대법의 재료가 부족하던 와중이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크크크, 좋은 생각이야. 본문에 끼친 죄는 스스로의 목숨으로 갚는 수박에.”

“대, 대법의 제물?! 문주님!! 제게 만회할 기회를… 크아악!!”

콰직―

‘대법’이란 말에 헐레벌떡 고개를 들던 고울진이었으나, 그보다 빠르게 머리를 짓밟혀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벌레면 벌레답게 굴어.”

단박에 고울진을 제압한 채용이 용독문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허면, 이번 일은 일단 이것으로 마무리 짓습니까?”

“아니, 왠지 감이 좋지 않아.”

고개를 젓는 용독문주의 두 눈에 살의가 짙게 어렸다.

“하필 행사를 앞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영 꺼림칙하군. 이렇게 된 이상, 문제의 싹이 될 것들은 확실하게 정리하고 간다.”

“알겠습니다.”

주인의 의사를 이해한 군사 채용이 고개를 돌려 겁에 질린 채 딱딱히 굳어있던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흑호단주. 흑서단주. 흑사단주.”

“조, 존명!!”

단주 셋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당장 무력대를 이끌고 가서 하오문을 공격합니다.”

“예, 예?”

갑자기 하오문을 공격하라고?

두려움은 두려움이고, 갑작스러운 명령에 당황한 그들이 눈을 껌벅였다.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고관대작이 머무르지 않는, 그러니 난리를 일으켜도 피해 볼 게 없는 적당한 기루로 쳐들어 가세요. 적당히 반항하는 것들의 복부에다 칼침 몇 번 놔준 뒤 으르렁거리면 알아서 놀란 하오문도들이 뛰쳐나올 겁니다.”

“크하하, 훌륭하군, 채 군사! 타초경사의 계책인가?”

“비슷합니다, 문주님.”

그러니까, 갑작스레 쳐들어 가 칼부림을 하라고?

그런 계책을 내는 군사도, 그것이 좋다고 박수를 치는 문주도, 단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 그들의 목숨은 눈앞의 이들에게 쥐어져 있고 설령 죽더라도 지금 땅에 처박힌 흑견단주처럼 되고 싶은 이는 없으니까.

“며, 명령을 받듭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외침만이 울려 퍼졌다.

* * *

‘젠장, 난 절대 ‘대법’의 제물이 되지 않을 거야……!!’

대법. 용독문 내에서도 일부 수뇌부만이 아닌 그 단어는 용독문도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다.

죄를 저지른 용독문도들이 처벌받는 가장 최악의 형벌이 그것이었기에, 흑호단주 구만호는 더욱더 사납게 소리쳤다.

“샅샅이 뒤져라! 당장 이놈들을… 아니다, 비켜라!”

촉박함에 몰려 칼을 휘두르던 구만호의 눈에 문득 횃불이 들어왔다. 단번에 그걸 머리 위로 집어 들고 외쳤다.

“하오문 쥐새끼들아, 잘 들어라!! 지금 당장 기어 나오지 않는다면 이곳 기루에 불을 지르겠다!! 저 연놈들이 전부 타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나타나란 말이다!!”

기녀들과 점소이들을 전부 산채로 불에 태워 버리겠다는 선언.

그건 모두를 겁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용독문도들까지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그들 역시 적잖이 패악질을 부려온 이들이지만, 사람을 산 채로 태워 버리는 것은 또 다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또 다른 이들이 있었으니,

“저놈들, 이제는 막 나가자는 수준인데?”

지금까지는 남의 일이라 팔짱이나 끼고 있으려던 당유혼마저 심사가 크게 뒤틀리는 게 느껴져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소협.”

그의 앞을 하윤호가 막아섰다.

“정말 송구합니다만… 이번 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요?”

“뭐? 그게 무슨 개소리… 쯧.”

단번에 눈에 쌍심지를 켜려던 당유혼이지만, 순간 자신의 앞을 막아선 하윤호의 손끝이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평소 굽실거리던 그의 전신이 분노에 잠식되고 있었으니, 돌아선 눈에서 타오르는 서늘한 귀화(鬼火)에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형님. 여기서부터는 나서지 마십쇼.”

“뭐? 너 뒈지고 싶냐?”

“…죽이려면 죽이십쇼. 다만, 이 일이 다 끝난 뒤에.”

삼십 년 전에도 저렇게 자신의 앞을 막아서던 녀석이 있었다. 그 기억이 어지럽게 얽혀 당유혼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너, 나한테 빚 하나 진 거다.”

“감사합니다요, 소협.”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하윤호는 천천히 몸을 바로 일으키며 낮게 읊조렸다.

“홍단.”

“예, 지부장님.”

“당장 저 벌레들을 쓸어버리도록 하세요.”

“존명.”

그의 명을 받들며, 전신을 붉게 물들인 여인 홍단이 앞으로 나섰다.

감겨 있던 복대를 천천히 풀어 휘두르니, 그것은 하늘하늘 휘날리면서도 날카로움을 간직한 연검(軟劍)이 되었다.

“멈추시지요.”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로부터 흘러나온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에 무겁게 내리깔렸다.

“…흐, 뭐냐. 역시 나오긴 나오는구나.”

당장에라도 횃불을 집어 들고 불을 지를 듯하던 흑호단주의 고개가 돌아갔고, 이내 광기 어린 눈빛이 주변을 훑었다.

“그런데, 고작 네년 하나가 끝이냐?”

“당신과 같은 벌레 하나를 잡는 데는 소녀 하나면 족할 듯합니다만… 역시 벌레답게 떼를 이루고 있으시군요.”

타타닥…….

연검이 가볍게 바닥을 두들기자 숨어 있던 무사들이 기둥 사이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리하세요.”

“존명!”

그림자 무사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용독문도들을 향해 쇄도했고, 순식간에 칼 소리가 기루를 가득 채웠다.

그 속에서 구만호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좋군. 네년을 잡아 족치면, 적어도 이것보다 배는 더 튀어나오겠지?”

“글쎄요? 그보다는, 당신의 방정맞은 주둥이가 날아가는 게 더 빠를 것입니다.”

“크하하, 해볼 수 있다면 해보거라!!”

부웅―

검의 크기를 자랑하듯, 구만호의 검격이 강맹한 위세를 뿜으며 휘둘러졌다.

바람 소리부터 살벌한 검격에 하늘하늘한 홍단의 연검은 그대로 썩둑― 잘려 나갈 것만 같았지만, 그 둘이 맞붙는 순간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카카캇!!

거친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홍단의 연검이 구만호의 대검을 휘감았고, 그녀는 그대로 손목을 휘둘러 검의 궤적을 바꾸었다.

콰앙!!

사나운 검격에 애꿎은 기둥이 박살 났다.

나무 조각이 튀며 분진이 휘날리는 사이로, 홍단은 연검을 회수하며 빙글 몸을 돌려 구만호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홍단검무(紅丹劍舞).

혈화난무(血花亂舞).

파파팟!!

홍단의 연검으로부터 붉은 검기가 핏빛의 꽃잎을 흩날리듯 퍼져나가 구만호의 전신을 휩쓸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가죽이 전부 벗겨져 전신의 뼈가 다 드러났을 만큼 무지막지한 공격이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흐, 간지럽구나. 하잘것없는 것아.”

‘…뭐?’

피가 질질 새어 나와야 정상이건만, 찢긴 의복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벌겋게 부어있을 뿐 생채기라 할 만한 것도 남지 않았다.

“그럼, 내 차례다!”

안으로 파고든 홍단을 향해 다시금 구만호가 검을 휘둘렀다.

부웅―

홍단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녀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일격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다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그녀의 붉은 삿갓이 대신 잘려 나갔고, 흑단과 같은 머릿결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크크, 놀랐느냐?”

숨기지 못한 당황이 만면에 드러나자 구만호는 그것을 즐기듯 검을 겨누었다.

“놀랄 만도 하지, 너희들같이 뒷골목이나 누비고 다니는 하오문 나부랭이들은 결코 익힐 수 없는 신공절학일 테니!”

다시금 휘둘러 오는 검격은 매섭기 그지없었고, 그에 홍단은 이를 악물고 맞섰다.

‘흡!’

다시금 연검이 구만호의 대검을 휘감았고,

카캇.

그 각도를 바꿔 천장으로 박아넣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앞부분이 천장에 깊게 박혀 버린 대검!

역량에서 밀려도 기량을 발휘해 상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 틈을 노려 다시금 반격을 노리려 하는 홍단이었으나,

“무언가 착각하고 있구나.”

휘둘러져 오는 검을 향해 구만호는 오히려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건, 그냥 그게 손맛이 좋을 뿐이어서란 걸.”

흑살장(黑殺掌).

천참만륙(千斬萬戮).

쿠구구구!!

구만호의 두 손에서 검은 기운이 뭉실뭉실 뻗어나갔다. 짙은 구름이 뻗어 나오는 것만 같았고, 낭창거리며 휘둘러져 오던 홍단의 연검을 단번에 쳐 날려 버렸다.

‘이, 이건……!’

검을 휘두를 때는 무식한 힘만을 경계하면 된다 생각했으나, 두 손을 휘두르며 권장을 사용하기 시작하니 그 경로마저 기이해졌다.

검은 기운이 두 손을 뒤덮었기에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몰라 미처 대처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두 손이 시야를 뒤덮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

- 고개 숙여. 몸을 낮추고, 하단을 향해 검을 휘둘러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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