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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5화 (35/350)

35화

구만호는 조금 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 못 했다.

갑자기 세상이 휘릭― 하고 회전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신은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누군가 머리를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누가 날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멍한 정신 속에서 또다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어디서 난 거냐고.”

차갑고, 서늘하며 고저 없는 목소리.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오는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구만호가 거칠게 으르렁거린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이건 또 뭐 하는 놈이냐!!”

거칠게 손을 휘두르며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손은 애꿎은 허공만 휘젓고 아무것도 쥐지 못했다. 두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훑으니 다섯 걸음 앞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청년이 보였다.

“웬 피도 안 마른 놈이…….”

잘 쳐줘도 스물이 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졌고, 때문에 구만호는 더더욱 사납게 포효했다.

“뒈지고 싶으냐!!”

“…그래, 입 아프게 말로 할 필요는 없겠지.”

파팟!!

“어… 엇?”

차마 먼저 다가가진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그때, 갑작스레 당유혼의 모습이 구만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가 싶어 눈을 껌뻑거리는데,

뻐억―

“…컥?!”

무언가 아래쪽에서 솟구치며 고개가 위로 쳐올려졌다.

턱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에 구만호는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고, 뇌가 징징 울리는 듯한 감각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이, 이놈이… 어디……!”

“여기야.”

휘적거리는 손아귀 사이로 유유히 다가온 당유혼이 그대로 발차기를 갈겼다.

뿌각― 하는,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다리가 기이하게 접질려지더니 그대로 구만호의 거대한 몸이 아래로 거꾸러졌다.

“자, 잠깐… 소, 소협?!”

일방적인 폭력.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할 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하오문 사천지부장 하윤호였다.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문파 내부의 일이라고, 그리 말하려던 하윤호였으나,

흠칫―!

자신에게 향한 당유혼의 눈빛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문파 내부의 일이라…….”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긴 당유혼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쪽의 집안일이거든.”

‘집안일?’

그 말에 하윤호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상대방에게서 양보받기 힘든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해서 말인데.”

다시금 고개를 돌린 당유혼은 이내 반쯤 이성을 잃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구만호를 응시하며 말했다.

“누구냐. 네게 그 금단(禁斷)의 술법을 일러준 자가.”

“크르르르…….”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만호의 두 눈은 어느새 흰자위로 뒤덮여 있었고, 입 안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과 짐승의 울음소리는 그에게 더 이상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벌써 이지를 잃는 단계까지 가버린 건가?”

“크아아아아!”

마침내 폭주하듯 구만호가 달려들었고, 당유혼은 서늘한 눈빛으로 마주 달려들었다.

파팟―!

둘은 겹치듯 부딪혔다가 이내 서로를 지나쳤다.

구만호의 팔뚝에는 어느새 못 보던 젓가락 하나가 깊게 박혀 있었고, 당유혼은 손아귀를 까닥거리며 그 안에 남은 감각을 떠올리다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이걸론 안 되나?”

젓가락 몇 개 쑤셔 박아봐야, 저 상태에서는 간지럽지도 않을 듯했다.

“딱 좋은 게 있긴 하네.”

그런 당유혼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진 쇠사슬들이 들어왔다.

그것들을 뭉치로 들어 올리는데, 구만호가 이차 돌격을 감행해 왔다.

쿠쿠쿠쿠쿵!!

“죽어라아아아아!!”

진득한 살의를 담은 포효!

그에,

“글쎄.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거든.”

당유혼의 손에서 거미줄 같은 쇠사슬 세례가 퍼부어졌다.

흑룡쇄(黑龍鎖), 암흑결박(暗黑結縛).

촤르르륵!!

퍼부어진 쇠사슬은 삽시간에 구만호의 전신에 휘감기더니 온갖 관절들을 꺾으며 제압했다.

“크아아아!!”

목줄이 메여 포효하는 짐승이 된 구만호가 울부짖었고, 그에, 쇠사슬이 금방이라도 끊길 듯 거칠게 출렁였다.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어서 마무리를……!”

실제로도 자랑하던 연쇄진이 부서진 홍단이 서둘러 끝낼 것을 종용했다.

하나,

“아니. 그건 내가 정해.”

겁 없이 우리 속 맹수를 향해 다가가듯 걸어간 당유혼은 구만호의 단전 어림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러자,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구만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거… 어… 어…….”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침을 질질 흘리는 구만호를 향해 당유혼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말해. 이 대법, 네놈들이 전부 익히고 있는 건가?”

“…그어……. 나, 나는… 아무것도…….”

“그런가.”

격렬히 떨리는 눈동자, 그 속에서 당유혼은 한 가지 진실을 읽었다.

이 녀석은 역시, 아는 게 없다고.

“버림 패인가, 아니면… 욕망에 집어 삼켜진 멍청이인가.”

물론 어느 쪽이든지 간에…….

“달라질 것은 없지만.”

콰직―

당유혼의 손끝에 구만호의 목이 비틀어졌다.

괴물 같던 신위를 보이던 것치고는 허무한 죽음이었으나, 그 결과를 만들어 낸 당유혼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스윽―

가볍게 머리를 쓸어 넘긴 그는 이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용독문에서 쳐들어 왔던 다른 이들은 이미 하오문의 문도들에게 정리된 이후였고, 그 사이에서 복잡한 시선을 던지는 하윤호가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다가간 당유혼은 더없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알고 있었지?”

“예, 옙?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척하지 마.”

당유혼의 손가락이 구만호의 시체를 가리켰다.

“용독문이 훔쳐 간 것은… 단순히 당가의 무공만이 아니잖아.”

“……!!”

“역시, 그런가.”

그 반응에서 답을 얻은 당유혼은 우묵한 시선을 던졌다.

“우선은, 다 말해 봐.”

순서를 좀 바꿔야겠으니까.

“그동안, 당문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건지.”

* * *

청화루의 내부는 한바탕 습격의 뒤처리를 하느라 부산스럽기 그지없었다.

부상자를 수습하고, 인질로 잡은 이들을 구금하며 부서지고 어질러진 집기들을 치우느라 북적거렸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곳이 있었다.

바로, 당유혼과 하윤호가 독대하고 있는 방 안이었다.

‘…이건 또 무슨.’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당유혼의 모습에 하윤호는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당유혼이 이번에 보인 모습은 그간 하윤호가 수집해 온 정보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손부터 비비기로 했다.

“헤헤. 소협! 승전을 축하드립니다요!”

“승전을 개뿔.”

‘이 새끼, 하는 짓이 진짜 그놈이랑 다를 바가 없네.’

하오문과의 인연은 삼십 년 전에도 이어져 있었다.

그 주인공이 되는 녀석도 일단 막막하다 싶으면 두 손부터 비비고 보더니…….

“됐고. 이제 슬슬 얘기해 봐. 당문이 어쩌다가 삼십 년 만에 쫄딱 망해 버렸는지.”

그동안은 질질 미루어 왔지만, 오늘 일로 인해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그 기색을 느낀 것은 하윤호도 마찬가지였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우, 처음부터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요?”

“그래.”

단호한 끄덕임에 하윤호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것은 삼십 년 전, 당시 천하제일가로 불리던 당가가 마교의 발족에 맞서 무림을 구원하며 시작되었습니다요.”

그의 눈이 오랜 과거를 훑었다.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재앙. 마교를 토벌하기 위해 무림의 모든 집단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그중에서도 선두에 섰던 당가의 피해가 가장 극악했다 전해집니다요.”

“…그래, 그 부분 말인데.”

그게 좀 이상하잖아.

“당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당가뿐만이 아닐 텐데. 왜 당가만 망해 버린 거야? 어쨌건 그 당시 천마의 목을 따는 데는 성공한 거 아니야?”

천마. 이름만 떠올려도 소름이 다 끼치는 그 괴물 자식의 마지막은 아직도 꿈에 나올까 무서울 지경이다.

‘특히, 마지막에 녀석이 보인 모습은…….’

애써 그 기억을 털어내는 당유혼에게 하윤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는 분명 십만대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전해집니다요. 하지만, 광신의 대상이었던 천마의 최후는… 더더욱 끔찍한 결말을 초래했습니다요.”

“…설마.”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숭배의 대상을 잃은 마교도들은 그분을 풀듯 무림으로 쏟아졌습니다요. 살아갈 이유를 잃었기에, 죽을 자리를 찾아가듯 그들이 향한 가장 복수의 우선순위는…….”

“당가…였구나.”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잠깐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잖아. 사천이 무림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기는 해도, 십만대산과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 아닌가? 게다가 여긴 구파일방에 속한 문파만 해도 셋이 넘는…….”

믿기지 않아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던 당유혼이었지만, 씁쓸한 하윤호의 눈빛을 바라보는 순간, 말문을 잃어버렸다.

“…하, 설마. 버림받았던 거냐?”

하윤호는 말없이 눈을 꼭 감았다.

그 모습이 많은 것의 대답이 되었기에 당유혼은 울컥 솟구쳐 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삼키려 입술을 깨물었다.

“…왜? 어째서? 당가가, 그들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바쳤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많았다.

당가 대부분의 전력이 빠져나갔다고는 하지만, 당가 내부에는 당시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듯 온갖 절진과 극독, 암기 등으로 무장한 함정들이 즐비했다.

공성은 무리라도, 수성이라면 제아무리 마교가 몰려와도 칠일 밤낮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당가는 칠일 밤낮을 마교도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요. 하지만…….”

그 끝을 차마 잇지 못한 하윤호는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다른 문파들이 어째서 당가를 구원하러 오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요. 천하제일가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고, 마교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엇이든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뒤에 있었던 용독문의 발호는 당문의 명맥을 완전히 끊는 일과 같았습니다요.”

설상가상 용독문은 그 최악의 순간에 만들어졌으니…….

“그걸 아십니까요? 용독문의 문주인 용극신은 당가의 방계 출신이란 것을.”

“…뭐?”

“방계, 그중에서도 노예 출신이던 용극신은 당시 당가에 남은 재산과 독을 훔쳐 달아나 지금의 사천삼주라 불리는 이들에게 의탁했습니다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었으니,

“…하.”

삼십 년 만에 돌아온 세상이 변해 버렸음을 실감한 당유혼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당유혼은 저도 모르게 손을 꾹 움켜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일주일.”

드르륵―

의자를 밀어젖히며 몸을 일으켰다.

“일주일이면 되겠냐?”

“무, 무엇을 말입니까요?”

“용독문이란 이름 석 자를 사천 땅에서 지울 방법 말이야. 그 안에 가져와.”

고작 일주일이라고?

하윤호는 절대 무리라고 외치려다 멈칫거렸다.

‘저 눈…….’

분노와 슬픔, 연민과 죄책감……. 어떠한 한 가지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 당유혼의 두 눈에 어려 있었다.

“먼저 돌아가지. 방법을 찾으면 연락해.”

삐걱―

당유혼은 망연한 하윤호의 시선을 뒤로 한 채 하오문을 빠져나왔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길을 걸으며 당유혼은 문득 고개를 들어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이 고독이 조금 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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