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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36화 (36/350)

36화

차양당 연무장.

여느 날과 같이 수련을 하던 방계들이지만, 오늘따라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대형 왜 저러시냐?”

“그러게요…….”

“자꾸만 한숨만 빽빽 쉬시고…….”

그 범인은 차양당 지붕 위에 앉아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당유혼.

원래라면 전용석인 저곳에서 젓가락을 던져대며 자신들의 수련을 닦달해야 할 그가 오늘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러다 가끔 입이 열리면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설마, 우리 수련이 더뎌서 그런 건 아닐까?”

“예? 아니, 이 정도면 됐지. 뭘 더해요?”

“그 왜… 불퇴가 얼마 전에 용독문 패거리한테 두들겨 맞고 왔잖아.”

“이게 내 잘못이라고?!”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채 주먹을 휘두르던 당불퇴는 갑작스러운 지명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일대일로 졌냐? 내가 젖힌 놈들만 열 명이 넘…….”

“어쨌든 졌잖아.”

“어쨌든 졌지.”

“그냥 진 게 아니라, 지명이 형님 아니었으면 쪽도 못 쓰고 털릴 뻔했다면서?”

“…개자식들.”

이걸 정치하네.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는 당불퇴였지만, 딱히 변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솔직히, 스스로 생각해도 당유혼의 성격이면 괜찮냐고 걱정해 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걸 처맞고 왔냐고 젓가락을 던지지나 않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시무룩해진 당불퇴를 뒤로하고 남은 방계들은 계속해서 수군거렸다.

“어떻게 하지? 이거… 잘못하다간 불똥이 우리한테 튈 것 같은데?”

“불퇴를 제물로 바치는 건 어떻습니까, 형님?”

“누, 누굴 제물로 바쳐?!”

“니가 희생해, 인마.”

“그래, 우리가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잖아.”

“이, 이놈들……!!”

가히 눈물 나는 형제애가 아닐 수 없었다.

“…에라이, 한심한 것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당지명이 나섰다.

“아무리 대형이 무섭다지만, 너희들 살자고 불퇴 하나를 제물로 바쳐?”

“혀, 형님…….”

“죄송합니다…….”

흔치 않은 당지명의 호된 비판에 다른 방계들이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 그들에게 당지명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대형 성격에 불퇴 하나 바친다고 용서해 주시겠냐? 연대책임이니, 뭐니, 하며 싹 다 집합당할 게다.”

“앗…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것은 실로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미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흠… 별수 없지.”

애초에 그들 차양당에게 선택지는 하나뿐.

“수련이나 열심히 하자.”

자연스레 연무장의 수련 소리만 더더욱 커져 가는 순간이었다.

한편,

“…후우.”

그렇게 방계들에게 심란함을 선사한 당유혼 역시 무척이나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그동안 그 고통들을 버텨온 건가.’

지금 방계들의 훈련 강도는 삼십 년 전 당유혼이 직접 훈련시켰던 당가의 무인들 못지않았다. 다만, 이전 세대와 현세대의 큰 차이가 있다면 이전 세대는 그만큼의 보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부와 명예는 기본, 누리고 싶은 것은 뭐든 누릴 수 있을 만한 힘이 있었지.’

천하제일가란 그 정도의 힘이 있는 가문을 뜻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우리가 멋대로 한 행동의 업보만을 짊어지고 살아왔겠지.’

세상을 구하겠다는 전전대 가주의 뜻에 따라 산화했던 이전 세대가 남긴 멍에만을 안고 온 현세대의 방계들.

과거의 진실을 알고 그들을 보자니… 제아무리 당유혼이라도 마음에 무언가 응어리지는 것이 있다.

‘지금도 저렇게 죽어라 수련하고 말이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들려오는 함성 소리는 당유혼에게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복잡한 죄책감과 미안함.

그런 생각들이 계속되니…….

울컥.

문득, 짜증이 났다.

“아니. 내가 왜 미안해야 해?”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죄책감과 자책은 당유혼에게 낯선 것이었고, 가뜩이나 안 맞는 옷을 자꾸만 입으라는 강요는 어딘가 한 부분을 잔뜩 뒤틀리게 만들었다.

왜 사과해야 하는가, 는 곧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로 바뀌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는 저놈들이 처맞고 와서라는 결론으로 도달했다.

“그래! 저놈들이 처맞고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던 거잖아?!”

결론이 도출되니 행동은 신속할 수밖에.

“오, 온다!!”

“아니, 결국 저럴 거면서 왜 저렇게 고민하는 척을 한 거야?”

애써 모른 척하고 죽어라 수련하던 방계들을 들이닥치는 재앙에 반쯤 체념했고,

“야, 이 머저리 같은 것들아!!”

들이닥친 재앙은 그대로 당지명의 몸통에 날아 차기라는 형태로 현신했다.

“꾸에에엑!!”

그대로 날아서 두 바퀴 반.

실 끊어진 연의 추락 비행을 신체로 보여준 당지명은 바닥을 기며 억울한 목소리를 높였다.

“왜, 왜 이러십니까!!”

“왜?! 왜애애?!”

큰일 났다.

방계들의 뇌 내에 비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맹렬히 땅바닥을 두드리는 한쪽 다리와 터질 듯 차오른 두 짝의 심술 보따리가 결합하면 하나의 미래만이 남는다.

“그걸……!!”

처맞고 기어들어 오냐― 라고, 차양당이 떠나가라 외치기 위해 있는 힘껏 들숨을 삼키는데,

“가, 가주님?”

누군가 하나가 허겁지겁 소리쳤다.

“뭐? 가주? 이 자식이 살고 싶어서 가주를 팔아?”

순간 숨이 끊긴 당유혼은 이내 눈에 불을 켜고 목표물을 쫓는데,

“오늘도 기운이 좋으십니다, 대형.”

저 멀리서, 진짜로 가주 당위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진 두 눈으로 식별도 안 될 만한 거리였지만, 방계들은 생존 본능에 따라 그를 발견했고, 그 먼 거리에서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당위혼이 그를 받아준 것이다.

“에잉…….”

암만 그래도 가주 앞에서 드잡이질을 할 수 없기에 아무나 골라잡은 방계 하나의 멱살을 놓아주자 조용히 ‘살았다…….’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련 중이셨나 봅니다.”

그러는 와중 설레설레 도착한 당위혼이 입을 열었다.

“수련은 무슨. 모자란 것들 인간 만들고 있었지.”

그사이, 죽빵을 얻어먹은 네 명의 방계들은 차례로 피눈물을 흘렸지만, 그들은 이미 당유혼의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왜 왔냐?”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된 어린 가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별일은 아닙니다만, 형님.”

“왜?”

“대련 한 판 어떻습니까?”

“응?”

대련? 갑자기?

그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유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무인이 호승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

대련을 신청하는 것도, 서로의 무를 겨루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무인은 다 그래도 당위혼이 그런다는 것은 영 낯선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뺄 수 없는 건…….

‘와, 싸운다!’

‘가주님이랑 대형이 싸운대!’

‘설마 빼지는 않겠지?’

‘쫄? 쫄?!’

뒤편에서 쏟아지는 기대와 도발 어린 눈빛 세례가 내밀어진 창끝처럼 뾰족하다.

“…킁, 어디서?”

“뭐, 굳이 뺄 것 있겠습니까? 바로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 순간,

파밧―!

말을 끝냄과 동시에 당위혼의 몸이 앞쪽으로 쏠리더니 주먹을 내뻗어 왔다.

‘허허.’

해보자는 거지?

부웅― 하고 날아드는 주먹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나, 그걸 가볍게 피해 낸 당유혼은 이내 두 손을 뱀처럼 휘둘러 역으로 팔을 잡아챘다.

이윽고―

“한 판 붙든가!”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미, 미쳤어!”

“가주님을 던져?!”

경악에 찬 방계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으나, 정작 당위혼은 공중에서 가볍게 몸을 틀어 그대로 연무장 위로 내려앉았다.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듯한 경극 기예의 끝에 착지한 당위혼은 곧장 품에서 암기를 꺼내 투척했다.

파파팟!!

당유혼을 향해 무수히 쏟아지는 암기의 세례!

무지막지만 강철비가 쏟아졌으나, 당유혼은 갈 지(之) 자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그것들을 피해 내며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기어이 연무장에서 만난 형세가 되자 당위혼은 손가락을 각지게 만들어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휘둘러 왔고, 간발의 차로 그걸 피해 낸 당유혼은 그대로 몸을 낮추며 하단 차기를 갈겼다.

그에 펄쩍 뛰어 피해 낸 당위혼은 뛴 상태로 발차기를 날렸고, 그걸 막아내며 뒤로 물러선 당유혼은 제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른쪽 손에 내공을 듬뿍 담았다.

“이것도 막아봐라!”

바위도 때려 부술 일장이 날아드는 그 순간,

“…….”

진중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위혼은 이내 두 손을 천천히 움직여 원(圓)을 그렸다.

‘저건?!’

강맹한 위세로 날아들던 일장도, 당위혼이 그려내는 원과 맞닿는 순간 힘의 방향 자체가 바뀌었다.

원래라면 당위혼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어야 할 힘의 상당수가 땅바닥으로 거꾸러졌다. 물론, 그러고도 다 털어내지 못할 힘의 여파로 당위혼은 두어 걸음 더 물러서야 했다.

‘이 녀석…….’

천재 부류구나.

그 모습을 본 당유혼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내가… 그 훈련은 너한테 별로 효율이 좋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효율이 좋지 않다고 하셨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녀석들이 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우고, 익혀서 어느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류.

‘대표적으로 나였고, 사명이 녀석이 그랬지.’

피는 못 속인다더니.

형언하기 힘든 기분에 인상만 찌푸리고 있는 그때,

“어떻습니까, 형님.”

아직은 그 힘의 여파로 잘게 떨리는 두 손을 아래로 내린 당위혼은 빙긋 웃어 보였다.

“이정도면, 제법 쓸 만하지 않습니까?”

“쓸 만하다니 무슨 말을…….”

“형님.”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짙은 기시감이 느껴져 멈칫거릴 때…….

“형님께서 보기에 아직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저 역시 당가의 가주입니다.”

“아…….”

“저 역시, 가문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 역시, 가문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어째서일까. 기억 한편에 잠겨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이중으로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건…….”

떠오르는 기억.

거대한 비석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던 누군가의 말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네 녀석…….”

오만상을 찌푸리던 당유혼은 결국 그 말의 진의를 깨달았다.

“눈치…채고 있었냐?”

다른 방계들은 지금 오가는 대화가 무엇인지 몰라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결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당위혼은 이미 무언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내가 혼자 용독문과 싸우는 걸 알고 있었구나.’

어떻게 눈치챘는지는 모른다. 워낙 똑똑한 녀석이니 어떻게든 눈치챘겠지.

그저, 그 사실에 이를 악물었다.

‘그래, 결국 이 녀석도…….’

차양당의 방계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세월, 자신의 세대들이 누려 왔던 것을 누리지 못한 채 그저 그들이 멋대로 행한 무책임한 협행의 업보만을 짊어져야 했던 어린 가주.

그런 녀석이… 지금 자신을 도와 가문을 지키고 싶다 말하고 있다.

그건 정말이지,

‘건방지기 짝이 없구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삼십 년은 이르다고.

…그렇지만,

“걱정 마.”

정작 당유혼의 입이 열렸을 때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으니.

“넌 충분히 가문을 지켜왔고, 지키고 있으니까.”

“형님?”

무언가 중의적인 말을 한 당유혼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연무장을 떠나갔다.

그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그 누구도 그의 발걸음을 잡지 못함에, 당유혼은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차례다.’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기억, 그 속에 이 모든 상황을 종식시킬 열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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