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허.”
당가의 어린 가주는 힘이 쭉 빠졌다.
“형님, 정말 미친놈이십니까?”
미친놈이란 말은 당유혼의 입장에선 극찬이나 다름없었다. 대게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떠올릴 때 나오는 표현이니까.
그리고 당유혼과 달리 지극히 보통 사람인 당위혼은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며 첨언했다.
“하오문이 형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놀랍습니다만… 저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이 사파 새끼들인 놈들은 못 믿겠지?”
“아니…….”
어떻게 하면 곱게 말할까 하는 고민을 단번에 덜어준다.
그 친절함에 한숨만 푹 내쉬고 있자니 정작 그 심란함을 선사한 당유혼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근본이 사파인 새끼들은 애초부터 믿음으로 다가가면 안 되는 것이거든.”
뿌리 깊은 사파 혐오!
‘말하는 건 무슨 총관과 같이 반백 년을 넘게 산 노선배님들을 보는 것 같으니…….’
“…그럼 믿지도 못할 이들과 어찌하여 협업을 하는 것입니까?”
“못 믿을 것이라 해서 못 써먹을 것도 아니지.”
“믿지도 못할 것을 어찌 사용을… 아.”
그게 말이 되나 싶어 반문하려던 당위혼은 문득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서 언제나 안심할 수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문파가 바로 사천당문이었으니까.
“그들은 독과 같군요. 위험하지만, 잘 다룬다면 약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그 유명한 격언을 새삼스레 떠올리자…….
“아니? 그 새끼들은 그냥 개똥이지. 독은 무슨 독이야? 그냥 다른 놈 얼굴에다 처발라서 기분 나쁘게라도 만들면 그걸로 고작인 놈들이 무슨…….”
“…아, 예. 그렇습니까.”
그래, 무슨 말을 더할까 싶다.
“뭐, 어쨌거나 써먹을 수 있다면 다 써먹는다는 전제는 옳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순히 그놈들만 써먹을 게 아니지.”
이젠 그냥 얌전히 듣기로 한 어린 가주를 앞에 두고 당유혼은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이 판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오문과 용독문의 대전이지만, 실은 사천삼주라 불리는 위선자 새끼들의 사연이 끼어있다.”
이제는 위선자일까…….
깃발 셋을 차례로 가리키며 삼각형을 그렸다.
아미, 청성, 점창.
“꼴에 구대문파라고 말석에서 유서 깊은 바닥 경쟁을 하고 있는 놈들이지.”
말하자면 아청점 동맹이랄까?
말하다 말고 구대문파에 대한 온갖 비난과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이 모든 상황이 익숙해진 당가의 가주는 의연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재주를 선보였다.
“당가가 쇠락한 이후, 이 셋들은 언제나 사천에서 제일이 되고 싶어 했을 게다.”
그전까진 당가가 사천을 꽉 잡고 있었으니, 주인이 없어진 지금 그 자리를 노리는 건 당연했다.
“하나, 워낙 고만고만한 놈들이라 한 놈이 먼저 나섰다간 다른 둘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해서, 그들이 적당히 합의를 봐서 제삼의 세력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입니까?”
탁―
“그렇지. 그게 바로 용독문이고.”
사천 성도 내로 깃발 하나가 꽂혔다.
“용독문은 사천삼주라 불리는 세 문파가 배양한 독버섯이다. 하지만, 사천성도 내에는 먼저 피어있던 곰팡이가 하나 있었단 말이야.”
그게 바로 하오문이었다.
“하오문은 정보를 다루는 문파인 만큼 단번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주먹을 내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
“하오문 입장에서는 이겨도 문제인 싸움이 된 것이군요.”
“바로 그거다.”
독버섯이란 그 성질이 지독하기 그지없어 주변에 자라나는 다른 것들의 양분까지 전부 빨아먹는 독물이다.
용독문은 사천삼주가 서로 가장 공평하게 사천을 집어삼키기 위해 만든 문파이며, 하오문을 치워 버리기 위한 대전사이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면 내 뿌리를 잡아 뜯으려는 놈들인데, 그렇다고 또 죽탱이를 갈기자니 후환이 두렵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그때 등장한 게 바로 우리 당가다.”
“…저희가 등장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눈앞의 형님이 오고 난 후로, 당가는 연일 상한가를 갱신하며 성장해 왔다. 그 부분은 분명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당가는 아직 미약했다.
“아직 우리가 이 판에 낄 깜냥은 안 될 것 같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애들이 덜 여문 것은 사실이니까.”
직접 키워본 내가 안다.
아직 난다 긴다 하는 방계들이지만, 지난번에 하오문에 쳐들어 온 애들 앞에서 나대다간 벌레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뒤질 게 뻔하니까.
“하지만, 이 판에 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본가만이 가지고 있는 흉기가 하나 있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숨겨진 가보가 있나 싶어 눈을 크게 뜨는 현직 가주에게 당유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명분이다.”
단언컨대, 정파에서 이만한 놈이 없다.
“십 년 목숨줄 붙이고 있으면 오래 산 사파 새끼들과는 달리, 소위 명문 정파들은 기본으로 이백 년을 넘어섰다. 그래서 이 새끼들은… 하나같이 대가리가 딱딱히 굳어있지.”
얼마나 딱딱히 굳어있는지, 문파의 낡은 부분이 있어 후손이 고치려 하면 곧바로 발광을 하는 집단이 정파라는 것들이다.
“그런 놈들에게 명분이란 더없이 예리한 칼이다.”
예를 들어…….
“쇠락한 사천당가의 후손이 다시금 본가를 재건한다 일어섰을 때, 뒤에선 당장에라도 칼을 들이밀고 싶어도 앞에서는 박수를 쳐 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위혼은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렇군요. 하오문은 용독문을 공격할 수 없지만… 형님의 계획대로 행동한다면 본가는 용독문을 공격할 수 있으니.”
다시 한번 눈앞의 어린 형님이 읊어준 계획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오문 새끼들이 최소한 싸움이라도 붙어보려면, 우리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다.”
그렇기에…….
“네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다. 어때,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겠냐…라…….
그 물음에 당위혼은 눈을 꼭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설움과 역경을 버티고 살아왔던가?
태어나자마자 수령에 처박힌 채 눈을 떠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왔다. 그러다, 지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은 그 누구도 감히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당유혼 역시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가주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뜬 당가의 어린 가주가 선언했다.
“해야지요.”
할 수 있든, 할 수 없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반드시 해야만 할 일에 그 무게감을 담고 진중히 선언함에 당유혼은 씨익 미소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래야 당가의 가주답지.
* * *
사천 성도에 거대한 축제가 열렸다.
주최 측이 얼마나 돈을 뿌려댔는지, 저잣거리마다 풍악 소리가 가득하고 성도 주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구휼 사업하듯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이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사의 중심이 되는 곳, 용독문의 입구에는 사천의 명사니, 하는 이들이 줄줄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저길 봐! 백검문이야!”
“패왕보의 무사들도 보이는군!”
“사천에서 힘깨나 쓰는 이들은 다 오는 것 같은데?!”
과연 용독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시끌시끌한데…….
“자, 잠깐… 다시 한번 말해 주시겠소?”
입구를 지키던 수위의 당황에 찬 목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응? 누가 온 거야?’
‘수위가 당황을 하다니……?’
지금껏 나타났던 화려한 인명에도 별달리 당황을 하지 않던 수위가 당황하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만면에 의문이 떠올랐다.
언제 나타났는지, 화려한 장포도 제대로 끼지 못해 후줄근한 옷을 입은 채 찾아온 일단의 무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모두의 관심이 쏠릴 때 선두에 선 청년과 소년 사이의 경계에 선 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위혼. 이하, 삼십삼 인의 차양당 방계들이오.”
그건 잔뜩 들뜬 분위기를 차갑게 식히기에 충분했다.
‘뭐라고?’
‘농담이지?!’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무려 용독문이 스스로를 사천당가라 칭하며 사천의 온갖 이들을 초빙하는 개파 대회다.
다시 말해, 원래 있던 사천당가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림과 동시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얻는 행사였으니, 이 초유의 사건은 한낱 수위에게는 뇌를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 어떤 상황대처법에도 나와 있지 않은 상황!
그에 수위가 꼼짝달싹하지 못할 때,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문 안쪽에서, 누군가 반가움 가득 담긴 목소리를 내뱉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신은…….”
“아, 처음 뵙겠습니다.”
자신을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오는 모습에 당위혼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쥐 상의 남자는 포권을 취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현 용독문의 군사, 채용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이는 이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사천당가의 가주께서 본문을 찾아오심에 실로 하회와 같은 기쁨을 누리는 바입니다.”
장내의 모든 이들이 딱딱히 얼어붙은 와중, 오로지 채용만이 혼자 웃고 떠들며 당위혼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다.
“이리도 귀한 분이 이런 날에 본문을 찾아온 것은 실로 더 없는 홍복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웃음소리를 듣는 당위혼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그의 손길은 마치 뱀이 타고 스르르 기어오르는 듯했고, 그의 혀는 간교하게 놀려 사람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이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그 연유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함에 당위혼이 손을 빼내려 할 때,
덥석―
그 두 손을 마주 잡은 손에 힘을 더한 채용이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다.
“힘들게 발걸음을 놀릴 필요는 없으십니다. 제가 특별히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놨습니다.”
“말씀은 감사하…….”
나아가지 못하게,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못하게 잡아챈 채용은 진한 웃음을 더했다.
“고마워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이처럼 귀한 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니까요.”
그러고는 정중히 거절하려는 당위혼의 말을 자르며 더더욱 짙게 엉겨 붙는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엄습하는 그 순간,
“암, 그렇지. 감사해야 할 건 우리 가주님이 아니라 그쪽이지.”
얼어붙은 분위기를 또다시 산산조각 내버리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이런 귀한 분이 찾아왔으니까.”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