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40화 (40/350)

40화

* * *

차양당 방계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웬일로 아침 수련을 넘긴다는 당유혼의 말에는 좋아죽으려 했지만, 그러고 나서 향하는 곳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용독문으로 간다고……?’

그들도 귀가 있는 이상 요즘 사천 거리에 파다한 소문을 모를 수가 없었다.

개파 대회를 사흘 앞두고 용독문이 온 사천성 내에 개파 대회를 광고하다시피 했으니, 그 소식을 듣고 한때 당가에서도 난리가 났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

“아니, 형님! 이걸 어떻게 가만히 있…….”

“처맞고 가만히 있을래, 그냥 가만히 있을래.”

“헤헤, 저는 손가락 하나 안 움직였습니다요!”

정작 누구보다 앞장서서 뛰쳐나갈 것 같던 당유혼이 그들을 제지시키니, 방계들은 이게 다 저들이 약한 탓이라 여겨 애써 이를 악물며 수련에만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개파 대회에 참가한다고 말했고, 무려 그들의 가주까지 함께한다고 한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도 방계들은 얌전히 따라갔다.

‘여기가 용독문…….’

‘자, 장난 아닌데?’

‘야… 야, 크기로 쫄지 마……. 규모만 따지면 우리도…….’

그리고 느낀 것은 위압감.

지금까지는 같은 사천에 살면서도 애써 관심 가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된 용독문의 위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젠장…….’

‘허리 펴, 인마! 고개 들고!’

‘나중에 대형한테 뒤지게 처맞고 싶어?’

그나마 마지막 말로 애써 주눅 든 몸을 피고는 있지만, 그들은 용독문이 주는 위압감에 완전히 짓눌려 버렸다.

그래서였다. 채용이라는 저 뱀 같은 남자가 그들의 가주에게 간교한 혓바닥을 놀릴 때도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저, 저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감히 가주님께……!!’

바들바들.

꽉 쥔 주먹만 그렇게 덧없이 떨릴 때였다. 그 간교한 목소리를 찢어발기듯,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암, 그렇지. 감사해야 할 건 우리 가주님이 아니라 그쪽이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방계들은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이런 귀한 분이 찾아왔으니까.”

‘진짜 미친놈이신가?’

* * *

당유혼이 오늘도 방계들에게 질리지 않는 참신함을 선사할 때, 용독문의 군사 채용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뭐지? 미친놈인가?’

채용이 처음 소란을 듣고 정문으로 걸어올 당시만 해도,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이 소란을 만든 수위의 목을 베는 것이었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감히 소란을 제어하지 못한단 말인가?

짜증과 분노가 솟구쳤지만, 그것들은 곧 정문에 서 있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환희와 악의 섞인 쾌락으로 바뀌었다.

‘당가의 가주?’

크핫―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걸작이잖아, 이건……!!’

어떻게 하면 저 어린 가주를 가지고 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것을 가장 참혹하게 망가트릴 수 있을까?

평생 남을 무너트리고 살아온 자의 뇌는 그런 악상(惡想)을 수도 없이 생산해 내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살아온 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가 있었으니…….

“뭐여, 이 자식은? 웃는 거야, 우는 거야?”

경악으로 일그러진 방계들을 뒤로 한 채, 건들거리는 짝다리를 짚은 방문자가 그의 망상을 찢어버렸다.

“손님맞이 똑바로 못하냐? 암만 근본이 없는 곳이라도, 귀한 분이 왔으면 주인이 버선발로 뛰쳐나와야 하는 것 아냐?”

쩌렁쩌렁 터져 나오는 외침이 가뜩이나 온 관심을 끌어모은 대중들의 귓가에 속속들이 꽂혀 들었다.

‘대, 대형?!’

‘지, 진짜 미친놈인가?’

‘모른 척… 모른 척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끼던 방계들의 머릿속에 X됐다, 라는 감상이 차올랐다.

얼마나 파격적인지, 당유혼이 아니었으면 먼저 채용의 강냉이를 갈기려 주먹을 쥐던 당궁상마저 두 손에 힘이 빠져나가고 턱을 쩌억― 벌릴 정도였다.

“허허……. 누추한 곳이라니. 그런 모욕은…….”

“뭐, 니가 우리보고 귀하다며? 그럼 상대적으로 니들은 누추한 곳 아니냐?”

‘아니, 뭐 이런…….’

시장바닥 애새끼들 말싸움도 아니고.

머리 쓰는 군사라는 직업이 그렇듯, 타 세력과의 언쟁을 질릴 듯 경험한 채용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렇게 유치한 언쟁을 걸어오는 이는 없었다.

“말 못 하죠? 지가 말해 놓고 말 못 하죠?”

…죽일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근처에 은신해 있는 용독문의 암살자들이 이 어린 노무 자식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싶었다.

군사로서 책략이고 나발이고, 일단 이 새끼 목부터 따고 시작할까… 하는 살기가 두 눈에 어른거릴 무렵,

“형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시기적절하게 끼어든 당위혼의 목소리가 판을 깨어냈다.

‘…어느새?’

두 눈을 껌뻑거려 보니 자신이 두 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당위혼은 어느새 세 걸음 뒤로 물러서 있다.

그제야 저 미친놈의 흐름에 자신이 말렸음을 깨달았지만, 그건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가주로서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오는데, 어째 한 가문의 가주가 고개를 숙임에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저 새끼, 웃고 있다…….’

당위혼의 손길에 애써 고개가 숙여진 당유혼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그 증거였다.

아니, 뿐만 아니라…….

‘역시 대형이다…….’

‘X된 것 같긴 한데…….’

‘그건 그거고, 너무 통쾌하잖아!’

어느새 그들의 대형에 물들어 버린 방계들 역시 애써 어금니를 깨물고 있는 게 눈에 훤할 정도였다.

“후우…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소란을 일으켰군요.”

그래서인지, 이젠 눈앞의 이 어린놈이 가식을 부리는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이 슬슬 피어오르는 채용이었지만,

‘요놈, 요요요 뱀 새끼!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만.’

당유혼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싹 다 읽고 조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니들 같은 놈들을 한두 번 상대해 봤겠냐?’

천성이 그런 놈들이 있다. 인간의 거죽을 쓰고 태어난 뱀 같은 놈들. 서서히 사냥감을 옥죄어와 마침내 숨통을 끊고 그 전부를 통째로 삼키는 데 희열을 느끼는 부류의 인간들!

마찬가지로 겉가죽은 아직 덜 자란 청년에 불과해도, 그 속은 닳고 닳은 노강호인 당유혼은 이런 이들에 대한 상대법도 빠삭했다.

‘이런 놈들한테는 제 흐름을 주면 안 돼.’

뱀을 뱀굴에서 잡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으니, 당장에 대가리를 잡고 다른 곳에 내동댕이치는 게 상책!

얌전히 당위혼의 뒤에 숨은 당유혼은 언제 입을 털었냐는 듯 주둥아리를 꽉 다물고 숨었다.

“후우…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그 대신 말썽쟁이들을 수습하는 소년 가장 가주가 열심히 허리를 숙여댔으니, 결국 채용 역시 일단은 이 난장판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객을 초청하고 어찌 이리 대하겠습니까.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사천당가, 용독문에 입성했다.

* * *

용독문주 용제운.

그는 지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주님! 백의검문의 문주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청학검문에서도 문주가 청학검수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사천뿐 아니라 다른 성도의 난다 긴다 하는 문파들도 저희 용독문을 축하하러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기 참가한 모든 이들이 용독문이 사천당가가 되는 것을 인정한 이들이다. 즉, 명실상부, 용독문이 사천의 패주가 되는 것을 온 무림이 인정하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흐하하, 당연하지!! 본문이 아니면 누가 사천의 패주가 되겠느냐!!”

근래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아 불쾌 지수가 천정부지 치솟는 용제운이었지만, 이번 개파 대회로 묵은 체중이 싹 내려가는 듯했다.

‘본문이 정식으로 사천당가가 되면 사천을 완전히 장악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전까지는 사천삼주와 본문의 연관 관계를 대놓고 드러내지 못해 알음알음 지원을 받는 형식이었지만, 정식적으로 사천당가가 되는 순간 그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용독문은 사천의 양지와 음지를 전부 먹기 위해 정파와 사파의 문파, 흔히 말하는 정사지간의 문파로 활동하였다.

그때문에 사천삼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으나, 이제 사천당가로 발돋움하고 정파로 거죽을 뒤집어쓰는 순간 그들로부터 확실한 지원을 받아 눈엣가시 같은 하오문을 밀어버릴 수 있다.

‘아니, 꼭 그럴 필요도 없긴 하지. 곧 대법이 완성된다면…….’

근 십 년간 연구하여 온 ‘대법’이 곧 완성된다.

그의 내면에 자리한 탐욕은 용독문이, 아니, 이제 사천당가가 될 그의 문파가 사천삼주의 한낱 첨병으로 자리 남길 허락하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이름을 쓰는 이들이라면… 응당 사천의 패주가 되어야지!’

욱일승천하는 용독문의 기세와 같이 용제운의 콧대도 그렇게 높아져만 갔다.

그러던 중,

“문주님. 군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군사가? 그래, 어서 들라 하거라!”

그가 작금의 상황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든 일등 공신, 채용의 등장에 용제운은 함지박만 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시오, 군사! 맡은 일이 바쁠 텐데 어인 일이오?”

“급히 알려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음? 그게 무엇이오?”

“사천당가의 어린 가주가 참석했습니다.”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멈칫했던 용제운은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큭… 크하하하하!! 진정인가? 그 어린 가주가 찾아왔다고?”

당위혼, 그 이름 석 자는 용제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찾아왔지? 납작 엎드려 굴종이라도 하던가? 새로운 사천당가에 한 자리라도 달라고 찾아왔던가?”

“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예. 그와 함께 온 다른 당가의 일원들은 굴욕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듯했으나… 그 어린 가주의 기색은 생각보다 담담했습니다.”

“뭐……? 큭, 크흐흐흐……. 그래, 그 ‘핏줄’의 후손이라 이거지?”

용제운의 인상이 왈칵 일그러졌다.

‘빌어먹게도 고고한 놈들.’

당가의 일족은 그에게 있어 여러 가지 의미로 짙게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 같았다.

단순히 한 가지 감정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심경이 응어리져 있었기에, 용제운은 몸을 부르르 떨며 웃는 것을 택했다.

“크흐흐… 그래, 좋아. 굳이 내 목에 숨통이 뜯기고 싶다면, 내 직접 그리해 줘야지!!”

쾅!!

손 걸이를 부술 듯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선 용제운이 버럭 소리쳤다.

“행사의 시작이 얼마나 남았지?”

“이각 정도입니다.”

“일정을 앞당긴다, 지금 곧바로 그놈들의 얼굴을 보고 싶군……!!”

“예? 그렇게 되면 다른 문파들은…….”

“됐다! 어차피 그 고고하신 사천삼주에서는 이해관계인지 나발인지 때문인지 불참을 알려 왔으니까. 나머지 쭉정이들이야 본문이… 아니지, ‘본가’가 사천당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면 머리를 조아릴 것들에 불과하다!”

다른 모든 것은 상관없었다.

그의 저열한 욕망은 당장에라도 저 잘나신 사천당가의 후손이 패배감에 얼룩지는 것을 두 눈에 담고 싶다고 소리쳤으니까.

“개파 대회를 시작한다!!”

용독문의 개파 대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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