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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41화 (41/350)

41화

처음은 이 바닥의 행사란 것이 다 그렇듯 처음엔 용독문의 온갖 무사들이 나와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아리따운 가희들이 나타나 풍악을 울렸고, 무슨 맛집 개장이라도 한 듯, 잔치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손님들에게 주어졌다.

분명 대축제지만, 당가의 누구도 그것을 즐길 수 없으리라 여겼다. 이것은 사천당가라는 한 문파의 최후를 장식하는 장례식이자, 그들의 시체를 파 올려 부관참시하는 끔찍한 처형식이었으니까.

당가의 방계들은 그 끔찍한 패배 속에서 그 누구도 이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캬, 이 집, 닭구이 잘하는구만!”

딱 한 명, 그 누구보다 이 축제에 진심인 자가 있었으니.

“대, 대형?”

우물우물.

“뭐야? 너도 먹을래?”

“아니…….”

한 손에는 닭구이, 한 손에는 알감자 꼬치.

소금 짭조름하게 묻힌 감자 한 알을 내밀어 오는 모습에 당지명은 진지하게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싶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원래 미친놈이지.’

‘포기하십쇼, 형님.’

‘안 돼요, 그 인간은 이미 구제 불능이야…….’

조심스레 이러시면 안 된다 말하려다 말문이 막혀 버린 당지명을 애도하는 시선들이 쏟아졌다.

닭 날개의 뼈와 살을 완전히 해체시켜 버리겠다는 기세로 먹어 치우는 당유혼의 손은 끝도 없이 음식이 깔린 좌판으로 뻗어져 갔다.

‘저 정도면 용독문의 가산을 다 먹어 치워서 파산시켜 버리겠다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마저 할 때,

척―

당가에서 유일하게 당유혼에게 험한 소리를 할 수 있는 이가 앞으로 걸어 나섰다.

‘총관님?’

‘총관님이라면!!’

‘제발… 저 새끼 좀 말려주세요!!’

그의 이름은 당궁상.

얼굴 가득한 주름이 그 세월을 증명해 주는 당가의 가노(家老)가 당유혼의 앞에 섰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호랑이의 그것과 같은 포효가 내질러지고, 쑥― 하고 손이 내뻗어졌다!

“네 놈은 노인 공경도 없느냐? 혼자 처먹지 말고 나도 하나 줘봐라.”

‘……?!’

‘초, 총관님?!’

세상에 이런 일이.

부모가 당과를 사주겠다고 쫄래쫄래 따라갔더니 의원의 집에서 충치를 발치 당한 아이들과 같은 기분!

하지만 방계들이 배신감에 젖어 허우적거리든 말든 당궁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유혼은 피식 웃으며 그 손에 알감자 구이 하나를 쥐여주었다.

“먹으쇼, 특별히 제일 맛난 걸로 줄 테니까.”

감자알이 가장 토실토실한 걸로 하나 넘겨주자 당궁상은 그걸 받아 쥐더니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흥, 빌어먹게도 실하구나.”

으적으적 씹어 삼킨 당궁상은 흘깃 뒤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뭐 하느냐, 안 먹느냐? 너희들 모두 아침 일찍부터 오느라 밥도 안 먹었을 텐데?”

“초, 총관님…….”

모두가 당혹감으로 물들 때, 결국 참다못한 당지명이 나서서 말했다.

“총관님…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용독문입니다. 저희 당가에게 있어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달리 적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참혹하리만치 비참한 어조로 항변했다.

언제 그들이 당궁상에게 이리 대든 적이 있겠냐만, 차마 지금만큼은 그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나,

“흥, 그래서?”

당궁상은 서늘한 어조로 이죽거렸다.

“여기가 적진이니 배곯고 힘도 없는 몸으로 칼춤이라도 추겠다는 거냐?”

“…….”

“닥치고 배들 채워라. 이곳은 저 간악한 배신자들이 본가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려는 사형장이다. 얌전히 교수대에 끌려가기 싫어 저항할 거라면, 배라도 든든히 채워놔야지.”

그리 말한 당가의 늙은 총관은 다시 감자 한 알을 베어 물었다.

‘궁상이 녀석 주제에 제법이구만.’

당궁상에게는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지 않았다.

오늘 있을 일을 알고 있는 이는 오로지 하오문의 하윤호와 당가의 어린 가주 당위혼뿐.

하지만 따라온 이 자리에서도 당궁상은 의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하려 했다.

“그래, 농촌에서 밭 가는 춘식이도 밥은 잘 먹고 일한다더라.”

“…죄송합니다.”

당지명이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서고, 결국 다른 방계들도 하나둘 알감자니, 닭 구이니 하는 것들을 입에 물어 우물우물 삼켰다.

그리고 모두들 닭구이니, 알감자니 하는 것들을 배 안에 채워 넣었을 무렵 저편에서 열렬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용독문주께서 나오십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와와아아아아아아아!!”

어우, 시끄러워라.

북과 장구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거대한 단상 위로 한 남성이 올라왔다.

얼마나 잘 먹고 살았는지 듬직한 풍채를 자랑하는 중년인.

“반갑소, 강호의 동도 여러분.”

주변의 함성을 음미하듯 단상의 중앙까지 천천히 걸어 나온 그는 함성이 어느 정도 잦아든 후에야 입을 열었다.

“부족하나마 용독문의 문주를 맡고 있는 용제운이오.”

“우와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한 마디를 뱉을 때마다 함성이 폭발한다.

분명, 저 곳곳에 숨겨둔 바람잡이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본문의 개파 대회에 앞서 내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소. 여기 있는 이들은 다들 기억할 것이오. 삼십 년 전 발호하였던 마교가 몰락하고, 그들은 그 원한을 갚기로 하듯 이곳 사천 땅을 향해 몰려왔던 그 끔찍한 기억을.”

그리고 그 속에서 용제운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첫 연설을 시작했다.

“그들이 이곳 사천을 향해 남은 잔존 병력을 투여한 이후는 다들 잘 알 것이오. 바로, 우리 사천인들이 그들에게 가장 심대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었지!”

“……!”

“……!!”

듣고 있던 장내의 인사들이 격동했다.

삼십 년 전에 있었던 대사건에 맞서 싸웠던 이들은 사실 여기 없다. 왜냐면 이들은 그때 당시 열 살 남짓의 어린 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온 무림의 이들이 이미 끔찍한 피해를 입은 상황! 하지만 우리 선대의 선배들은 그들에게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소! 그 결과, 우리 사천인들은 간악한 마교의 악적들에게 승리를 쟁취하여 냈소이다!”

어떤 때보다도 유년기의 기억은 선명히 남는 법.

성장기에 각인된 그 끔찍한 시절의 기억들이 그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첨단에 있었던 것이 바로 사천당가, 이제는 몰락하여 그 이름만이 우리의 기억에 남게 된 사천의 자랑이었소!”

‘아니, 저 새끼가?’

왜 멀쩡히 살아있는 가문을 뒈진 놈으로 만들어?!

- 크릉크릉.

본능에 반응하듯 내면에 웅크려 있던 탐이 으르렁거리는 게 들려왔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니까.

“본문이 세워진 지 어언 십 년. 그에 이 용모는 단순히 개인의 부귀와 영화에 그치지 않고 사천의 의기를 다시 세우려 하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감히 선포하겠소!”

그리고, 누군가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참자, 참자, 참자, 참자, 시발, 참긴 뭘… 참자, 참자, 참…자객을 보낼ㄲ……?’ 하는 동안 용제운은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 용독문이, 사천당가의 이름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을!!”

“오오오오오오오오!!”

“우오와와와아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함성이 폭발했다.

망해 가는 가문의 뒤통수를 갈기고 등판에 비수를 꽂은 채 가산을 훔쳐 간 도둑놈이라지만, 그래도 한 집단을 일군 우두머리인 만큼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킬 재주는 있었다.

거기다 사천당가라는 그 이름값이, 이제는 반쯤 잊혀졌다 해도 사천인들에게는 보통이 아니었으니, 이렇게 열광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람들의 환호를 그러모아 만들어 낸 열띤 분위기 속에서 용제운은 한 걸음 더 걸어 나섰다.

원래라면 준비해 둔 연설은 여기까지였을 테지만,

스윽―

그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 역시 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있는 건…….

“그리고 여기 사천당가의 부활을 알리는 축제의 장에 귀한 발걸음을 해준 분이 있소. 바로, 사천당가의 명맥이 끊기지 않게 지금까지 이어준, 당위혼 가주님이시오!”

“…….”

쏟아지는 수백의 시선 앞에서도 담담히 서 있는 당대의 당가주 당위혼!

“우리 사천인들이 하나 됨에 앞장설 당위혼 가주께서 이 자리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 왔으니, 어찌 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

크게 외친 그가 포권을 취해 온다.

처절하리만치 잔혹한 공개 처형식이다.

과연 이 광기에 가까운 열기 앞에서 용독문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그렇게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 속, 당위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용제운을 마주 바라보았다.

탐욕, 가학심, 악의.

그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선을 바라보며, 당위혼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저벅―

저벅―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결코 빠르지 않게 천천히 나아가는 걸음걸음에 앞쪽에 있던 군중들은 저도 모르게 앞을 비켜주었다.

기묘한 분위기가 당위혼을 감싸 안았고, 그 속에서 계속하여 걸어 나간 당위혼은 마침내 단상 앞에 도달했다.

‘…뭐야?’

그 모습에 용제운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미 편승한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조금 전 스스로가 넘긴 칼자루는 함부로 받아 들었다간 손목이 부러져 버릴 만큼 무거웠으나,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어떤 이도 침음을 삼킬 정도로 날카로웠으니까.

그것을 손에 쥔 당위혼은 서서히 단상에 올랐고, 용제운의 바로 곁에 섰다.

무겁디무거운 침묵.

뜨겁던 열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고, 관중의 시선은 오로지 당위혼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듯, 당위혼에게 몰려 있었다.

그 속에서 불현듯 당위혼은 생각했다.

‘많군.’

참 많은 시선들이 몰려 있다.

긴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언제 자신이 이렇게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아보았을까?

‘사천에서 이름을 날리는 문파들은 다 있구나. 게다가, 저쪽은 사천 성주가 보낸 관인인가?’

울컥―

저 깊은 내면의 무언가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에라도 요동치는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다.

길지 않은 삶이었다지만, 그래도 그 평생을 인내하고 살아온 당위혼조차 참아내기 힘든 벅찬 감정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도 누군가에게 답을 구할 수 없었던 어린 가주는 언제나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

또다시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던 당위혼은 자연스레 자신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씨익―

그곳에 있는 것은 악동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의형. 장난기 가득하고, 진중함 따위는 내던져 버린 듯한 모습이지만,

‘저질러 버려.’

그렇게 말하는 듯한 그 웃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당위혼은 저도 모르게 그와 비슷한 미소를 그렸다.

“당대 사천당가의 가주 당위혼이라 합니다.”

그래서일까? 말문을 떼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쉬웠으니…….

“금일 본가의 행사에 방문해 주신 이토록 수많은 귀빈 여러분께 이 가주는 하해와 같은 감사를 느끼는 바입니다.”

힘 있게, 그리고 강하게.

좌중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당겨 이 무대를 장악한다.

“이 자리를 빌려 본 가주는 한 가지 사실을 강호의 동도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낡은 서책.

촤르륵―

그 봉인이 풀려나가며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내니, 모두가 그 작은 글씨에 도대체 무엇이 쓰여 있나 안력을 돋울 때, 당위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가의 노비명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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