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 *
도망친 자의 흔적을 뒤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밤이라지만 허겁지겁 도망쳤는지 땅바닥에 남아있는 발자국이 선명했고, 그 끝은 어느 창고로 이어져 있었다.
시꺼멓게 칠해진 검은 문.
아주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으스스한 바람 소리가 귀곡성처럼 들려왔다.
“…….”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당유혼은 이내 손을 뻗어 문을 열어젖혀 안으로 들어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걸음 째에,
푸슉―!!
안쪽에서 날아든 무언가에 꿰뚫렸다.
“흠……!”
파육음과 함께 삼킨 침음.
어깻죽지에서 느껴지는 저릿함을 되새기며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방심했나?’
아니, 그건 아니다.
이미 이곳은 죽고 죽이는 전장. 그런 판에서 방심 따위나 할 정도로 그는 모질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하나.
‘이건, 지금의 내가 애초에 막지 못할 놈이군.’
“크흐흐… 어떻습니까?”
가볍게 결론을 내리는 그를 반기듯, 번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때, 잘나신 당가의 칠대 금기라 불리던 놈입지요. 흑염화(黑炎花)라고… 들어는 보셨습니까?”
“흑염화라…….”
그에 대비되는 메마른 목소리와 함께 어깻죽지에 박힌 비침을 뽑아낸 당유혼은 검게 죽은 피를 탁― 뱉어내며 이죽거렸다.
“제대로 된 흑염화는 아닌 것 같은데?”
“큭, 크흐흐…….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반푼이인지라, 잘나신 당가의 직계의 모가지를 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손에 들린 작은 통 같은 걸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웃는다.
“하지만 뭐, 상관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 의미가 없으니까요.”
큭큭큭…….
공간 내부에 음험한 흉소를 채워 올리는 용독문의 군사, 채용을 바라보며 당유혼은 짤막하게 소감을 표했다.
“음침한 새끼.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만.”
단정하던 머리를 헝클어져 있고, 항상 침착으로 일관하던 표정은 망가져 있다.
미쳐 버렸다기에는, 원래 간직해서 잘 숨기고 있던 광기가 이제 슬슬 새어 나오는 모습.
그에 인상을 찌푸리다, 서서히 인기척을 드러내는 존재들에 시선을 돌렸다.
“해서, 믿고 있는 게 저 완성되다 만 시체들인가?”
“크하… 시체라니요. 이것은 당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금술, 독강시를 개조한 전투 병기들입니다.”
“크르르르…….”
사람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번에 분명 망가트렸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생각은 아니기에 곧장 지워 버렸다.
“전투 병기는 개뿔. 재활용 쓰레기겠지.”
한때는 용독문에서 던져주는 훔친 당가의 무공을 익히고 되도 않는 자리를 하나씩 받아 떵떵거렸을 이들.
그런 것들이 죽어서 되살아난 강시들을 보며 당유혼은 서서히 식후 소화를 진행 중이던 탐을 깨웠다.
- 크르르……!!
‘소화 중에 건드려서 화났냐?’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는 것도 모르는지…….
무식하고 포악한 짐승을 일깨운 당유혼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콰아앙!!
그가 있던 자리에 울려 퍼지는 폭음!
어느새 날아든 것인지 강시 하나가 있었고, 땅바닥에 발길질을 갈겼음에도 천둥,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둥차기?’
익숙한 무공이다.
높이 뛰어올라 내려찍는 발차기는 다름 아닌 당유혼이 몇십 년 전에 당가의 가솔들을 위해 재정립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런 위력을 기대하고 만든 무공은 아니었는데…….’
창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성취를 보여주는 무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할 때,
콰쾅!!
측면에서 날아든 일격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헉!”
그대로 날아간 당유혼은 창고의 벽에 처박혔다.
찌르르― 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흘렀고,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리며 풍겨 올랐다.
하지만 고통에 겨워할 시간은 없었다.
쿵!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함과 동시에 또 다른 강시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생각보다 펼치는 무공 자체는 단순해.’
조금 전 발차기나 다른 주먹질 역시 당가에 전해지는 아주 기본적인 박투술이었다. 다만, 강시로 변하며 신체 능력이 초월적으로 변했기에 이런 위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팟!!
당유혼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맹렬히 회전했다.
휘몰아치는 선풍(旋風)과 같은 움직임과 동시에 주변으로 빛살과 같은 것들이 퍼부어졌다.
티티팅!
그 정체는 뼈도 뚫는 젓가락인 투골저!
하지만 강시에 부딪힌 것들을 대부분 철판에 부딪친 쇳덩이와 같은 소리를 내며 튕겨 나왔고, 몇몇 개만이 한 치 정도의 깊이로 박힐 뿐이었다.
‘역시.’
가죽의 강도부터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보라, 저렇게 팔뚝에 투골저를 꽂은 채 달려오는 모습을!
실로 괴기하고 공포스럽지만, 당유혼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강시가 아무리 강해 봐야 저들이 사용하는 것은 모두 당가의 무공.
그 무수한 당가의 무공 중, 당유혼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것은 없었다.
스스슥―
밀물처럼 밀려오는 살기의 중앙으로 몸을 던졌다.
강시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흉기나 다름없는 주먹과 발을 휘둘러 올 때, 당유혼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천천히 원을 그려나갔다.
타타탁―
강시 하나의 팔뚝을 손으로 내리누르고, 강시 하나의 발등을 발로 짓밟고, 강시 하나의 주먹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잡아채고, 강시 하나의 팔꿈치를 몸을 트는 것만으로 피해 내며, 마치 처음부터 맞췄던 것처럼 공격들을 파훼한 당유혼은 입술을 달싹였다.
‘뭐든 상관없다.’
이 끔찍한 마물들을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것들. 그것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더더욱 끔찍한 것이 단전에서 솟구쳤다.
- 크르르르…….
그 어떤 독도 씹어 삼킬 탐(貪)이 포악하게 아가리를 벌려 그걸 물어뜯었다.
그리고,
‘…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과…….
“흐흐, 역시. 그 저주받을 무공의 전문가시군요.”
바로 목 뒤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음침한 목소리.
서걱!!
“…큭?!”
화끈한 감각이 옆구리를 헤집었다.
쩌엉!!
반사적으로 내뻗은 반격으로 적을 쳐냈지만, 쭈욱 미끄러져 후퇴한 상대는 주먹을 막아낸 검면을 내보이며 킬킬 웃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 놀란 표정입니까? 설마, 내가 책만 읽는 골방 서생일 줄 알았습니까?”
기습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채용.
그저 서생처럼 보였던 그가 피 묻은 검날을 핥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너.”
느껴진다. 저 녀석에게서, 그리고 탐이 그 사나운 이빨로 물어뜯었던 저 강시들에게서.
“…설마.”
“응? 왜 그러십니까? 크흐흐흐, 설마 나 같은 책사 나부랭이에게 옆구리가 그리 뜯길 줄은 몰랐던 것입니까?”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본능은… 그리고 뇌리에 새겨진 그 끔찍한 기억은 이것이 맞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마교의… 종자구나.”
“걱정 마시오, 이제는 더… 뭐?”
계속해서 낄낄거리던 채용조차 그 말에는 우뚝― 굳을 수밖에 없었다.
다 잡은 사냥감을 노려보듯 강시로 당유혼을 포위한 채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던 그 안색이 딱딱하게 굳고, 이내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살기를 일으켰다.
“이… 너, 이 더러운 놈아……. 지금 그 주둥아리로… 뭐라 지껄였느냐……?!”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이, 분노로 찬 포효가 터져 나오자 당유혼의 표정 역시 일변했다.
“크크… 이상하다 했지. 내가 집어삼키지 못하는 독이라니. 마기(魔氣)를 넣어 완성시켰구나.”
실로 기이하게도,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마주한 둘의 표정은 소름 끼치도록 비슷했다.
‘중요한 부분을 다 빼놨던 강시가 어떻게 움직이나 했더니…….’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독마(毒魔) 강시……. 감히, 이 땅에 그 흉물을 끄집어놓았다는 말이지.”
“이 더러운 놈이!! 방금 무어라 중얼거렸냐고 물었다!!”
실로 평행선상을 달리는 대화.
이미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고, 원초적인 감정 하나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귀살검법(鬼殺劍法)이겠군. 말단이나 익히는 무공을 익히는 걸 보자면 마교 끄나풀에 불과한 것 같은데……. 너, 그 모습도 가짜지?”
“빌어먹을 놈이!! 감히 신공(神功)의 이름을 더러운 입에 올려?!!”
쿠구구구…….
채용의 주변으로 짙은 살기와 함께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온 천지에서 이런 기운은 단 하나, 마기(魔氣)였다.
“역시 더러운 핏줄의 후손은 다르군. 내 당장에 네놈의 혀를 뽑아다 교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바치리라!!”
“그 말을 들으니까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아 기쁘군.”
멈췄던 강시들이 다시금 서서히 움직여 포위망을 형성함에도 당유혼은 히쭉 웃었다.
“너, 버림받은 놈이로구나.”
“…뭐?”
“처음엔 걱정했었다. 마교의 종자들이 사천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을까 봐. 하지만, 네 하는 꼬라지와 익힌 마공의 수준을 봐서는 삼십 년 전에 쳐들어 왔다 씨 몰살을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말단 생존자가 분명해.”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아는 척이냐!!”
“아아, 잘 알지.”
마교에 대해서라면 전 무림을 통틀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정도로.
그러니까…….
“넌 여기서 뒈지는 거다.”
- 쿠구구…….
“뭐, 뭐냐? 그건……?”
금방이라도 죽일 듯 달려들려던 채용은 흠칫 몸을 떨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옆구리에서 피를 질질 흘려내고 있던 당유혼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무언가 거대한 형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전설상에 나오는 신수, 용(龍)과 같은 형상이 공간 전체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었다.
“사술!! 더러운 사술이구나!! 당장 저 불신자를 죽여라!!”
“사술이라…….”
달려드는 강시들의 가운데에서 당유혼은 킬킬 웃음을 흘렸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들이 그리 말하면 안 되지.”
이걸, 누구에게 배운 건데.
기존 무림에 존재하던 무공의 상식을 뛰어넘은 무공.
운기조식을 반복해 단전에 내공을 쌓고, 그걸 손끝 발끝으로 뻗어내 무기에 덧씌우기만 하던 기존 상식에서 벗어나 내공 그 자체에 의지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무언가가 되게 하는 그런 무공.
그 끝에, 흉포함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제 주인마저 집어삼키려는 무공!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식(食).
콰직―
콰직―
콰직―!
그 흉포한 녀석이 쩍 벌린 아가리로 무자비하게 강시들을 씹어 삼켰다.
달려들던 강시들의 태반이 무참히 박살이 났고, 그로부터 솟구치는 독기와 마기가 용의 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것은 다시 당유혼의 체내로 흡수되었으니,
‘저, 저 녀석 설마… 신공의 힘을 삼킨 건가?’
그 말도 안 되는 일에 채용이 경악해 입을 쩍 벌릴 때,
“…커억!”
당유혼은 폭포수와 같이 피를 토해냈다.
“서, 설마……!”
검게 죽은 피와 새빨간 생 혈이 섞여 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
“크… 크하하하!! 이 어리석은 놈!! 불신자 따위가 그 힘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실제로도 독기와 함께 마기를 삼킨 녀석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내장 육부가 뒤틀리고, 녀석이 지나간 혈도는 전부 쑥대밭으로 변모해 갔다.
‘이 건방진 놈. 주인도 못 알아보고 집어삼키려 날뛰는구나.’
가만히 서 있어도 관절이 부서질 듯 삐걱거리고, 근육이 하나둘 찢어지며 비명을 토해냈다.
그럼에도,
꽈악―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나아가 땅에 떨어져 있던 나무 몽둥이를 하나 주워 들어 서서히 휘두르기 시작하니…….
꾸득― 꾹… 끽― 끼익…
그것은 실로 기괴한 것.
사람이 펼치기에는 너무나 불친한, 오로지 목적의 완수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니… 상대를 찢고 가르고, 죽이기 위해서 스스로의 육체조차 파괴하는 그런 무공.
즉, 마공(魔功)이라 불리는 것이 펼쳐졌다.
“…뭐, 뭐?”
그 정체를 깨달은 채용은 찢어져라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서서히 전조 동작을 끝내고서 고개를 드는 당유혼을 향해 채용은 소리쳤다.
“네가… 신공을… 귀살검법을 펼칠 수 있단 말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