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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49화 (49/350)

49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과 닮아간다.

삼십 년 전, 마교와 박 터지게 싸웠던 당유혼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닮아갔다.

무공 하나 베끼는 건 일도 아니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걸 실현해 낸 당유혼은 지독한 고통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 크르르르르…….

마(魔)를 삼키고, 그 흉포함이 한층 배가 된 녀석이 사납게 용트림을 하는 게 느껴졌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단전이 깨질 듯 부풀어 오르고, 혈맥 이곳저곳이 그 출력을 감당하지 못해 뒤틀리는 게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힘에 고통을 느끼며 그 힘을 뽑아낸다.

“귀살검법이라…….”

나무 몽둥이 끝에 어려 있는 마기의 아지랑이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거 아냐? 무공이름에 귀(鬼)나 살(殺)이 여긴 것들은 하나 같이 약해 빠졌다는 거.”

“뭐, 뭣?! 감히 네가 신공을 평가절하하느냐!!”

“평가절하라니. 너도 알잖아.”

내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아무 마공이나 다 베낄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귀살검법은 마공 중에서도 하급이지. 일반 평무사들이나 익히는 거잖아.”

“크학!! 감히 본교의 신공을 업신여기다니!!”

“글쎄, 그러는 거 아니라니까.”

마공이 괜히 마공일까.

어찌 된 게, 일반 평무사들이 익히는 무공조차 정상의 궤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우습게도, 마공이야말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살상력이 높은 것이다.’

그 검식을 천천히 펼쳐내며 검극을 상대의 목을 향해 겨눈다.

“들어와. 그 목을 따 줄 테니까.”

“크아아아!! 죽어라!!”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용이 발작하듯 소리치자 독마 강시들이 일제히 당유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령귀살진인가?’

아무렇게나 덤벼드는 것 같지만, 한낱 강시들이 일정한 규칙으로, 진법을 이루며 달려든다.

그 속에서 당유혼은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무언가를 찢는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짓쳐 드는 손아귀와 발길질을 피해 낸 당유혼의 나뭇가지가 가장 가까이 있던 독마 강시의 몸통에 맞닿았고, 그대로 어깻죽지를 찢어발겼다.

푸화아악!!

온갖 약물과 독으로 된 기체가 뿜어져 나왔고, 자욱한 마기가 시야를 가렸다.

완전히 전투 불능이라 할 수는 없어도 한 개체의 전투력을 크게 떨어트린 셈이지만, 당유혼은 기뻐할 새가 없었다.

카칵!!

강시를 찢어버림과 동시에 뒤로 돌린 나무 몽둥이와 어느새 날아든 채용의 검이 부딪혔다.

“이, 이놈……!”

“어때, 제법 비슷하지?”

서로의 병장기를 맞닿은 상태에서 히쭉 웃는다.

경악과 분노로 일그러진 채용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밀어붙였다.

“감히 그 더러운 주둥이에 본교의 신공을 올리지 말라!!”

카가가가가각!!

무시무시한 괴력!

살아온 세월이 세월이며, 그간 익혀온 마공의 깊이가 있다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역시…….

“목숨을 바쳐서 힘을 끌어내고 있구나.”

“성전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를 뿐이다!!”

미친놈.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내 살이고 뼈고 피고 다 잘라 바치는 방식.

훌륭한 광신도의 표본을 보며 당유혼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 역시 마공을 사용하는 이상, 그와 비슷한 짓을 할 수 있지만, 그가 있던 자리에 몰려드는 독마 강시들의 습격은 단순히 그걸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부웅!

당유혼이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가는 주먹들이 세찬 바람을 일으켰다.

이미 마기와 독기로 자욱한 공간에서 그 소리는 제법 살벌하게 울려 퍼졌고, 당유혼은 전신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일깨우며 측면에서 쫓아오는 독마 강시를 향해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끼긱― 긱!!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독마 강시의 목이 기괴하게 돌아가다 멈추었다.

죽어서도 두 손으로 나무 몽둥이를 잡아 오는 게,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려는 게 뻔했다.

“죽어라!! 불신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채용이 달려들었다.

짙은 마기를 뿜어내는 검격은 실로 날카로워 가까스로 피해 냈지만, 그 틈에 균형이 무너져 추가 타로 들이닥치는 독마 강시들의 공격은 그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쨍그랑!

“크학!”

이번엔 또 어디 부딪친 건지.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끄럽게 쇳소리들이 엉망진창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응? 쇳소리?

“…이건 또 뭐야?”

손을 뻗어보니 깨진 항아리 안에 가득하던 것들 중 하나가 쥐어졌다.

칼이었다.

“그렇군. 저 자식들이 부활하면 주려던 무기였구나?”

“크아아악! 기고만장하지 마라! 검 하나 주웠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글쎄. 적어도 저 나무 몽둥이보다는 잘 썰 수 있겠지.”

조금 전, 등판을 얻어맞고 날아오는 와중에도 독마 강시의 몸뚱이에 박아놓은 나무 몽둥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기다려봐. 전부 썰어 줄 테니까.”

그야말로 무도함의 극에 치달은 모습.

“이 불신자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채용의 분노가 폭발할 때,

“…컥?!”

휘청―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두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균형이 일순간 어지러지는 듯했다.

“뭐… 뭐…….”

“멍청한 놈.”

이제야 반응이 왔나.

“네, 네놈… 무, 무슨 짓을…….”

“무슨 짓은 개뿔. 뭘 한 것은 너잖아.”

당유혼은 천천히 손을 들어 채용이 쥔 검날을 가리켰다.

“우리랑 싸울 때. 칼날을 핥는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말라고… 느그 선배들이 안 가르쳐 주더냐?”

삼십 년 전 대란으로 공포의 상징이 된 마교라지만, 그전까지는 당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과 전장에 서면 온 바닥에 범벅이 된 피가 전부 독이었고, 그들의 땀과 체액에서 난 모든 것들이 독물이었으니.

‘병신같이 칼에 묻은 피를 핥으며 공포감을 조성하던 사파 새끼들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갔었지.’

“이… 이익……!!”

그제야 그 사실을 떠올린 듯한 채용이지만,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 웃기지 마라!! 내가 용독문에 몸을 숙이고 있으며 복용한 독물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독에 대한 저항력이라면 만독불침을 넘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진대……!!”

“지랄도 풍년이구만, 아주.”

이젠 아주 개나 소나 다 만독불침이냐?

“니가 만독불침이든 뭐든, 내 독은 못 막아. 그건 천마 그 새끼도 마찬가지였거든.”

“뭐… 이, 이 불경한 놈!! 지금 뭐라……. 크윽?!”

피를 토하며 소리치던 채용은 기습적으로 날아든 검격을 막아서며 뒷걸음질 쳤다.

“아, 그놈 참. 주둥아리로 싸울 테냐?”

“크, 그래… 일단 그 주둥아리를 찢어주마!!”

다시금 멈췄던 혈전이 재개되었다.

손아귀가 찢기고 어깨에 뚫린 구멍과 크게 벌어진 옆구리에서는 아직도 검은 피가 주룩주룩 흘러내리지만, 당유혼의 검무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콰직!!

카가가가각!!

‘이, 이건……!!’

계속해서 끔찍한 소리가 이어질수록 채용의 안색도 변해 갔다.

그가 사력을 다해 만든 독마 강시는 분명 제값을 다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톱을 상대에게 찔러넣고 파괴되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것이냐?!’

당유혼은 당장에라도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할 게 없는 모습.

이미 한쪽 팔은 너덜너덜해져 검을 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자신이 직접 뚫은 옆구리의 구멍 외에도 그 비슷한 상처가 대여섯 개는 더해진 꼴로도 당유혼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건 마치……

‘성전에 임하는… 본교의 전사들과 같지 않은가…….’

흠칫!

스스로 떠올리고도 그 불경한 생각에 몸을 떨 때, 마침내 마지막 독마 강시까지 파괴해 버린 당유혼이 고개를 돌려 채용을 응시했다.

“…하!”

그 지독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채용은 울분이 치솟는 걸 느꼈다.

“너만… 너만 아니었다면……!!”

삼십 년을 준비한 대계를 완성시키고, 저 더러운 당가의 핏줄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찬란했던 이름을 가장 비천한 노비 출신에게 던져줘 더럽히고, 그들의 역사를 부정하며 그 지도한 명줄을 끊어낼 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갔음을 직감한 채용은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단 한 가지의 목적만을 떠올리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된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 모든 대계가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저 간악하고도 끔찍한 악귀만은 함께 지옥으로 데려가야 할 터.

“죽어라!! 악귀의 후손……!!”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는 채용이 한 자루 검을 꼬나쥐며 달려들었고, 당유혼 역시 마지막 힘을 끌어내듯 몸을 던졌으니, 기괴할 정도로 닮은 둘은 똑같은 검초를 펼치며 맞물려 들었다.

그리고,

부웅―

아주 간발의 차.

채용의 검은 허공을 그었고, 당유혼은 그것을 피해 내며 검을 내질렀다.

푸욱―

심장이 있을 부위를 향해 정확히 찔러 넣은 검이 등을 뚫고 나와 반대편 허공으로 치솟았다.

“…커헉!”

더러운 피를 토해내며 죽어가는 채용.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희끈거릴 때,

‘…됐, 다…….’

피에 젖은 그의 입꼬리는 히죽 올라갔으니.

휘릭―

내뻗었던 검을 역수로 쥐며 그대로 자신의 품에 안기는 듯한 당유혼을 향해 내려찍었다.

그리고,

푸욱―!

살을 꿰뚫는 파육음이 창고에 울려 퍼졌다.

“컥… 커… 어억…….”

끊어지기 직전의 가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틀비틀, 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채용은 믿기지 않아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어, 어떻게…….”

어느새인가 자신의 품에 안겼다 싶었던 당유혼은 채용의 품에서 검을 놓은 채 빠져나와,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헉… 허억… 헉……. 말했잖아.”

마찬가지로 죽을 듯 숨을 몰아쉬는 당유혼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교에 대해서라면, 내가 질리도록 잘 안다고.”

이심법(移心法). 심장을 옮기는 수법.

당연히 한 번 시도했다가는 몸이 완전히 망가져 죽음에 이르지만, 딱 한순간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에 당하고도 몇 호흡 정도는 숨을 붙여놓을 수 있다.

과거, 마교와의 대전 당시 이 수법을 몰라 적을 마무리한 줄 알다가 죽어간 정파의 무인이 몇이던가?

“하… 하… 하하하… 하…….”

그 허무한 최후를 직감한 채용은 허탈하게 웃었고,

“하하… 하… 아… 아아……?”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너… 다, 당유혼… 그, 그 이름……?!”

“뭐, 이 자식아. 내 이름이 동네 개새끼야? 왜 자꾸 불러.”

“하… 하하… 그, 그 저주받을 이름… 신교의 대적……. 그분의 대적자…….”

피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면서도 채용의 눈은 황망하게 흔들렸다.

“독천ㅁ……!”

“아오, 그 이름 부르지 마!”

퍼억!

과거 그를 부르던 저주스러운 이름이 나오려던 순간 당유혼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두 자루 검에 꿰뚫린 채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른 채용은 이제 완전히 눈이 감겨지는 걸 느꼈지만,

“크… 크흐하하… 하하하… 네, 네가… 네놈이 돌아왔구나… 네가……!!”

놀랍게도 그는 지금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냐?”

미친놈들인 건 알고 있지만, 왜 저렇게 웃는 거야?

“크크크… 당연하지 않느냐. 네가 돌아왔다면, 당연 그분도 돌아왔을 테니……!!”

“뭐……?”

“크하하… 나 같은 하잘것없는 것의 생과 사는 의미가 없다. 오로지… 그분이 다시 돌아오는 날… 이 거짓된 세상에 진실한 의미가 부여될 테니……!!”

피 끓는 목소리로 두 손을 번쩍 든 채용이 소리쳤다.

“천마강림… 천세… 천세… 천천세……!!”

마교, 아니, 천마신교의 진언을 외운 채용은,

쿠당탕…….

그대로 숨이 끊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자식이, 가기 전까지 사람 기분 더럽게 하고 지랄이네.”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린 당유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르르…….

그의 주변으로 독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고, 그것은 천천히 독마 강시와 채용의 시체를 뒤덮으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크르르르……!!

“가만히 있어. 이걸 삼켰다간 너도 뒈져, 인마.”

그 독기의 근원은 용독문에 쳐들어 와 흡수했던 모든 것들. 그야말로 얻은 것을 전부 뱉어내는 셈이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독마 강시의 흔적을 지우고… 저놈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마교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직 이 세상이 마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진지도 모르고, 사천성주라면 눈에 불을 켜고 사건의 실마리를 쫓기 위해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가는 아직 그걸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그렇기에 모든 흔적을 지워야 했다.

“…후우, 죽겠군.”

모든 시체들이 녹아내린 뒤, 검은 문을 벗어난 당유혼은 그대로 용독문을 벗어났다.

용독문 내부에 즐비한 시체들이 또 어떠한 논란으로 번질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증거를 조작해 놓은 뒤였으니 당가가 의심받을 만한 일은 없었다.

‘…그래, 지금의 너희들은 그저…….’

지금쯤 한창 축제를 즐기고 있을 당가를 바라보며 걷던 당유혼은,

“웃고만… 있으면…….”

털썩―

사천의 어느 길거리 위에서 허물어졌다.

그것은,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옛 시간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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