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50화 (50/350)

50화

* * *

“상황은?”

“안 좋죠.”

“아니, 이 새끼가?!”

“아악!!”

대답 한 번 잘못했다가 정수리를 얻어맞은 중년인이 울상을 지었다.

“아니, 제 나이가 몇인데 자꾸만 주먹질입니까! 형님!”

“처맞을 짓을 하니까 처맞는 거지!”

“제가 뭘요! 우리 빼고 나머지 다 죽었는데 다른 표현을 뭘 말해요?”

“좋아. 오늘 천마 목 따기 전에 네 목부터 분질러주마!”

“아아악!! 가주님! 가주님!! 살려주세요!!”

구원을 찾는 애탄 외침에 선두에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고고한 학자와 같았을 옷차림이지만, 이제는 여기저기가 찢겨 엉망진창이 된 의복을 입은 그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형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이 자식 딱 한 명만 없어지는 건데?”

“형님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저희 중 제일 신법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그가 있으면 발목을 끌어줄 마교도가 몇이겠습니까.”

“흥, 제일 잘 튀는 거겠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부정은 못 하겠는지, 멱살을 쥔 중년인을 놓아주는 또 다른 중년인, 당유혼이 쳇― 하고 혀를 찼다.

그러다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가주.”

“왜 그러십니까?”

“아직… 생각은 안 바뀌었나?”

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물음, 그에 당대의 당가주 당사명은 옅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당유혼은 결국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가주라도 살아야지! 여기서 다 죽을 거야? 저 녀석 말, 못 들었어? 우리 빼고 나머지는 다 죽었다잖아! 무당의 그 녀석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그 하오문 새끼도 실종됐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희가 여기 있어야겠지요.”

천년을 버텨온 고목처럼.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노라, 그리 말하는 당사명은 고개를 들어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들였다.

“결국 사람은 태어나고 죽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곧 시대의 흐름일지니, 우리가 이곳에서 천명을 타하고 후대에 그것을 넘겨줄 수 있다면 전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살며시 눈을 뜬 그는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당유혼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이 계신데, 죽기는 누가 죽겠습니까.”

“…끄응, 너 진짜…….”

“맞습니다, 형님. 그리고 혹시 답 없다 싶으면 발 빠른 저라도 튀어서 후일을 도모할 테니… 으악!!”

“넌 그냥 뒤져, 이 새꺄!”

밀려올 마지막 전투에 애써 긴장을 풀듯, 정사 연합 최후의 별동대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누구 하나 물러섬 없이 천마를 요격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고,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야, 대답해……. 이, 이 개자식들아!! 감히, 감히 대형이 부르는 데 아무도 대답이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온통 피로 물든 세상에서, 홀로 피범벅이 된 채 절규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가장 먼저 튈 거라고 말하던 녀석은 정작 예상치 못한 천마의 일격을 대신 맞아주다가 가장 먼저 죽어버렸고, 언제나 그의 곁에서 든든히 있을 것 같던 가주는, 가장 강력했던 천마의 일격을 대신 맞아주다가 죽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홀로 살아남았다. 아니,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슬픈가?”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이곳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함께 죽어가는 동반자. 그리고 평생의 대적자가 입을 열었다.

“놀랍군. 그대와 같은 자가,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 물들어 괴로워하다니.”

독기에 물들어 사지를 잃고 핏물 속에 죽어가는 자, 천마(天魔).

따르던 모든 이들이 죽고, 저 자신마저 죽어감에도 한점 감정의 변화 없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당유혼은 버럭 소리 질렀다.

“닥쳐!! 네가, 네가 뭘 알아!!”

“흠. 그건 그렇군. 어떻게 내가 패배했는지… 그건 아직도 알 수가 없는 일이야.”

조금 전까지 서로의 목숨을 노린 사이가 맞기는 한지, 흥분한 기색 없이 말을 받아주던 상대는 먹먹한 하늘을 응시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기도 하군.”

그 너머를 꿰뚫어 볼 듯, 저 천기를 읽어내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에 당황해 소리치려 할 때,

휘청―

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니, 세상이 무너진다.

‘…그게, 무슨…….’

말을 하려 하지만 목이 막혀 어떤 목소리도 나오지가 않는다.

물에 빠진 듯 점점 의식은 침수되고,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은 꿈.

그러니까…….

* * *

삐약삐약.

눈을 뜨니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인가 싶어 눈을 뻐끔거리고 있으니,

“…니들 거기서 뭐 하냐?”

침상 옆으로 쓰러져 있는 무더기가 하나.

이건 뭐 병간호를 하는 건지, 단체로 인간 탑을 쌓아놓은 건지 싶어 몸을 일으키는데,

“…큭……!”

지독한 통증이 몰려와 다시금 허물어졌다.

‘…젠장, 단전이…….’

몸 상태가 엉망이다.

기껏 약초니, 독초니 하며 씹어먹어 모아놓았던 내공은 산산이 흩어져 있고, 단전은 금이라도 간 듯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혈맥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있어서,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만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연스레 흘린 침음성에 반응한 당가의 방계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큼… 무슨… 어… 어?”

“으음… 왜 그래… 무슨 일……. 어어?”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드는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가까스로 침상에 몸을 기댄 채 깨어나 있는 당유혼.

그러니까,

“기적… 기적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그들의 심정 전부를 대변했다.

“그러니까.”

한참 시끄러워 소리치는 방계들 덕에 젓가락을 집어 던지려다가 제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당유혼이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지려는 순간, 그들의 함성을 듣고 찾아온 당위혼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방계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후 있었던 상황들을 차례차례 나열하니, 대충 상황을 파악한 당유혼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일곱 밤을 내리 처잤다고?”

“일주일 만에 눈을 뜨셨습니다. 달리, 기적이라 할 만한 일입니다.”

듣자 하니, 자신을 주워온 것은 하오문 사천 지부장 하윤호라고 했다.

원래도 축제 중 자신이 없음을 깨닫고 찾아 나서기 위해 온 사천 거리를 뒤지던 방계들 앞에 나타난 하윤호는 반송장 상태의 자신을 인계하고, 갖은 약과 독, 의원을 수배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 쓸데없는 것까지 다 불었구만.”

“…형님.”

전후 사정을 당위혼에게 오롯이 누설했으니, 지금 그의 눈빛은 마치…….

‘누가 후손 아니랄까 봐… 제삿날 술 먹다 걸렸을 때 사유 녀석의 눈빛을 빼다 박았구만?’

당유혼조차 마주 보지 못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무거운 침묵.

그 끝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당가의 어린 가주였다.

“…저희를, 믿지 못하신 것입니까?”

“거, 믿음이니 뭐니 하는 건 그만 말해라. 난 그 믿음이란 단어만 들어도 아주 정신이 어질어질한 사람이거든.”

마교 광신도 놈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데?

애써 입술을 삐죽거려 보지만,

“형님.”

무겁게 뱉은 한 단어에 결국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거 아닌 거 알잖냐.”

“…허면……!”

하지만, 그 단어에 당위혼은 참아왔던 무언가가 폭발하듯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어째서……!!”

다만, 그 외침은 차마 이어지지 못했고 중간에 끊겨 버렸으니, 스스로 수많은 감정의 격랑을 제어하는 사공처럼 눈을 꾹 감은 당가의 어린 가주는 그저 주먹만을 꾹 움켜쥐었다.

“…하고픈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들도 지금의 형님께 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주…….”

처음 등장부터 의심스러운 당유혼이었다. 그럼에도 당위혼은 문답무용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이런 시국에도, 망한 가문의 일원이라고 찾아온 그를 내칠 수 없었으니까.

그러고도 온갖 억지를 부리는 그를 끌어안았다. 한번 받아들인 이상, 우리는 결국 가족이라 여겼으니까.

그가 보여준 게 무엇이든, 그가 가져다준 재물이 무엇이든… 그런 한낱 금전적인 것보다… 당가의 가주 당위혼에게는 가족이라는 그 한 단어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제가, 그렇게도… 못 미더우셨습니까?”

죄책감과 슬픔, 분노와 서러움 등등… 복잡한 감정이 응어리져 마침내 깨진 가면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것은 당위혼이 결국 아직은 어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끄응.”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한 슬픔이 짙게 느껴져 천하의 당유혼도 입을 꾹 다물었다.

홀로 남겨지는 슬픔.

그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유혼이기에, 결국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입술을 달싹였다.

“…반대다. 말하자면, 오히려 널 믿었던 것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려운 와중에도 당가를 지켜와 주었던 너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이루고 난다면… 나의 유무와 상관없이 네가 앞으로도 당가를 잘 이끌어나가 줄 거라 믿었던 거다.”

자신과는 달리. 그리고 이제는 죽어버린 그 녀석과도 또 달리. 너만은 살아남아 당가를 이끌어주길 바랐다며…….

하지만, 정작 그 대부분의 단어는 빠트렸기에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당가의 어린 가주는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소리치려 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 순간,

“진심이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또렷이 당위혼을 바라본 그의 어린 형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너를 믿었던 거다.”

“…….”

그 눈빛에 당위혼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전까지 자신을 통해 누군가를 투영하던 그 눈빛이, 이번만큼은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붕이든 담장이든 자신 내키는 대로 날아다니던 그가 지금은 침대 등받이에 기대지 않으면 채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태로 골골거리면서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당가를 지키겠다는 그 말을 믿는다.”

많은 변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와닿는 그 말이 이 순간 당위혼의 마음에 와닿았고,

“…하.”

그는 결국 자신의 어린 형님을 보며 종종 느꼈던 감정을 이 순간에 다시 한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형님은, 정말 못 말리시는 분이군요.”

“크흠…….”

어떻게 내가 수십 년 전에나 듣던 말을…….

새삼 과거의 누군가가 종종 했던 말과 겹쳐져 들려 헛기침을 하는 사이, 당위혼이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뭐야, 어디 가냐?”

“쌓인 직무가 많습니다. 해야 할 것들도 많고, 앞으로 생각해야 될 것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문 앞까지 다가간 당위혼이 그대로 문을 열어젖히니,

우당탕!!

“우아아악!!”

“미, 밀지 마!!”

“끄아악!!”

그 뒤에 옹기종기 붙어있던 방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들이 형님을 참 많이 기다렸습니다.”

“어휴…….”

기척이야 이미 느끼고 있었다지만, 저 한심한 모습들을 보라.

통탄을 금할 수 없는 모습에 당유혼이 인상을 찌푸리는데,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던 방계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크, 크흠… 일어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병이라도 왔다고?”

“그… 비슷한 거죠.”

잘하는 꼴이다, 그래.

“저… 대형.”

“뭐.”

“그러니까… 저희 다 끝난 것입니까? 듣기로 대형께서…….”

대략적으로 용독문과의 사건을 전해 들은 당지명이 묻자, 당유혼은 몸을 기댄 채 고개만 까딱거렸다.

“용독문은 이제 신경 안 써도 돼.”

“그, 그럼……!”

“저희가 승리한……!!”

드디어 기쁨의 함성을 내질러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

“다만.”

당유혼은 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겠지.”

“…넵?”

“용독문 말고 또 문제가 있다구요?”

“그래, 당가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독문을 거대한 벽이라 보던 방계들에게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생각하겠지만, 당유혼의 눈에는 보였다.

당가의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그러니까…….

“니들이 조금이라도 쓸모 있도록. 개처럼 굴려주마.”

“예에에에에?!!”

“아니, 왜?!!”

그대로 울상으로 변하는 방계들.

이건 꿈이라고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사 요지경이라고, 앞으로 다가올 고난이 무엇이든 저 가솔들과 자신의 어린 형님과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어린 가주는 그저 웃으며 문을 닫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니, 형님! 좀 다 끝났잖아요!!”

“끝나긴 뭐가 끝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당가 노리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구만!!”

오늘도 당가는 당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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