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집채만 한 바위가 너른 연무장 위에 존재했다.
갑자기 없던 바위가 생겨난 것도 놀라운데, 그 바위들은 위아래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당유혼을 따라 나왔던 광세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슨 수련이…….’
차양당 연무장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바위, 그 아래에는 하나 같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차양당 방계들이 있었다.
“어허, 똑바로 못 버티지?”
그러다가 누구 하나 실수라도 하면,
“야, 야, 저 새끼 내려간다, 내려가.”
폭풍 같은 잔소리가 퍼부어졌다.
“한 시진 못 버티면 싹 다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 알지?”
아침에 일어나면 마보. 그다음은 동네 뒷산 등산…이라는 이름의 암벽 등반과 약초 캐기.
거기까지가 매번 반복되는 일상 반복이었다면, 요 근래들어서는 한 가지 일정이 추가되었으니, 그 동네 뒷산에서 구해 온 큼지막한 바위 하나를 들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지금의 수련을 빙자한 고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제, 제발 버텨줘……!!”
“이 자식아… 못 버티면 오늘 저녁도 굶는다고……!!”
“끄어어어어어……!!”
오늘도 뜨거운 전우애를 생산해 가는 합동 훈련.
광세운 역시 무림에 속한 상가의 후계자로서 어린 시절부터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만, 이건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었다.
“…저, 당유혼 소협. 이게 대체 무슨 수련입니까?”
“예? 하체죠. 매일 하는 거예요. 이제 곧 끝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기어이 오늘치 할당량을 끝내고서야 널브러진 방계들.
당유혼은 그들에게 걸어가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자? 연무장이 안방이야?”
“끄어어어… 대, 대형… 다, 다리에 쥐가 나서…….”
“쥐가 나? 그래서 드러누워? 아주 묫자리를 파줄까?!”
“어흐흑…….”
마귀보다 더한 새끼…….
방계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반송장처럼 일어섰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기어코 일어나는 모습에 당유혼은 팔짱을 끼며 슬슬 때가 됐음을 느꼈다.
‘기본 수련은 이 수준으로 계속하면 된다.’
방계들이 들었다면 ‘이게 어떻게 기본이냐!’라고 소리쳤겠지만, 당유혼은 꽤 진지하게 그들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었다.
‘약해도 너무 약하고, 늦어도 너무 늦다.’
현 무림을 일컬어 만가쟁패의 시대라고 부른다.
마교의 궐기를 제외하고, 근 삼백 년간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라 칭해지는 지금은 온갖 집단이 서로 뭉치고 대립하는 시기.
그런 시대에 던져진 현재 당가의 위치란 애매모호 그 자체.
‘내가 없는 이 녀석들이 앞으로 다가올 분쟁을 버틸 수 있을까?’
좋은 걸 먹이고, 뛰어난 무공을 익히고, 자신이라는 천하에 둘 없을 스승이 직접 가르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재화가 부족했다.
‘후기지수의 급에서는 얼추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사십 줄도 넘은 원로나 장로가 즐비한 격에서는 한참 모자라.’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당유혼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모지리들이 어디 가서 죽어 나자빠지지는 않게 하자, 라는 일념으로 머리 부서지도록 고민하여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냈다.
“자, 기쁘고 즐겁게 들어라.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한 가지 일과가 더 추가될 거다.”
“여, 여기서 더요?”
“왜? 너무 기쁘냐?”
안 기쁘면 머리가 깨질 거야.
살포시 들어 올린 주먹에 방계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그쵸!”
“와하하! 즐겁다!!”
집단으로 미소를 자아내는 광기 섞인 풍경. 아주 아름답다.
“그래. 너희들이 그리 기쁘게 익히게 될 건 진법이다.”
“진법?”
“여러 명이서 칼 들고 싸우는 거?”
“…….”
예상은 했지만…….
‘…이 새끼들, 이렇게 무식해도 되는 건가……?’
어마어마한 집단 무지성에 감탄을 금치 못할 때…….
“대형. 진법이라면 삼재, 오행과 팔괘, 구궁 등의 이치에 따라 조화를 이루는 집단 무공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오오… 그래, 그거다!!!”
그래도 이 짱돌들 속에 그나마 굴러가는 머리가 하나쯤은 있구나!
유일하게 머리가 단순히 박치기 용도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님을 보여준 방계, 당율기가 곧장 의아함을 표했다.
“하지만 대형. 보통 무림에서 사용하는 진법은 저 소림의 나한장이나 다른 무가의 검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가에는 진법이란 게 딱히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그렇죠.”
애초에 당가에 진법이란 게 있을 수가 있을까?
당가는 독 병이나 암기를 던지는 게 기본이다. 서로가 투척한 독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알아서 거리를 벌려야 하는 게 그들인 만큼, 진법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맞아. 없었지.”
실제로도 당유혼이 활동하던 시절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 그러면…….”
“그래서 만들었어.”
그런데 없는 건 만들면 그만이잖아?
“지, 진법을 만들었다구요?”
명쾌하게 말하는 당유혼과 달리 당율기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왜 그래?”
“뭔데 그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야?”
나머지들은 저 녀석 뭐 잘못 먹었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능지처참할 것들 같으니라고.’
‘바위처럼 단단하게!’라는 모토로 녀석들을 키우기는 했지만, 진짜 머리까지 바위처럼 단단하게 변해 버린 걸까…….
“…니들 이번에 장서각에 채워진 책들은 안 봤냐?”
“안 봤죠.”
“왜?”
“볼 시간이 어딨습니까?”
아침에는 약초 캐러 가고, 오후에는 그걸 팔러 가고, 저녁에는 싸우다가, 밤이 되면 지쳐 쓰러진다.
이 완벽한 반복 일정에 먹물이 뿌려질 일이 있기는 하겠냐고.
되묻는 짱돌들의 모습들을 보자니, 오늘따라 당율기가 더욱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처럼 보였다.
“…그럼 쟤는 어떻게 아는데?”
“쟨 율기잖아요.”
“율기니까.”
“율기는 좀 다르지?”
아예 자신들과는 격이 다르다구?
‘…내 살다 살다 자신과는 격이 다른 천재를 보고 포기하는 놈들은 여럿 봤지만, 책 좀 읽는다는 놈들보고 벽을 느끼는 것들은 처음 봤다…….’
사명아, 사유아. 내가 이 새끼들을 이끌고 진짜 당가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암울해지는 미래에 고뇌하던 당유혼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됐다. 그럼 그냥 익히기나 해라.”
무슨 말을 해. 돌대가리 자식들 같으니라고.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줄 건 삼재진(三才陣)이다. 다행히 너희 수가 서른세 명. 즉, 삼의 배수이니 어떻게든 형성할 수 있는 복합 삼재진을 알려주마.”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방계들을 세 명씩 무리를 지어 나눴다.
“삼재란, 무공뿐 아니라 도가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단어다. 때문에, 삼재를 상징하는 요소들 역시 하나가 아니다. 천지인(天地人)의 세 요소는 너희들도 알 거라 생각하는데, 이 삼재진에서 의미하는 바는 해, 달, 별의 일월성신(日月星晨)이다.”
“어…….”
“그,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어나자마자 마보를 한 시진 동안 하거나, 맨몸으로 절벽을 등반하던 단순무식한 수련에서 저기 황궁의 학사들이나 배울 법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니들이 이것까지 이해하리라고는 기대 안 했어. 대신, 하나는 확실히 이해해라. 삼재진을 꿰뚫는 기본적인 이치는 순환이다.”
“순환…이요?”
“그거…….”
“익숙하지? 너희들은 관련된 무공을 이미 배웠거든.”
“아……!”
가만 듣고 있던 당율기가 탄성을 흘렸다.
“귀원일기공(歸原一紀功)! 귀원일기공이군요!”
크, 역시 한 놈은 그나마 답이 있구나?
“그래. 귀원일기공을 니들에게 알려줄 때도 순환을 강조했지. 삼재진을 형성하는 법은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다들 선 자리에서 기원일기공을 운용해 봐라.”
갑작스러운 말들의 연속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방계들은 일단 당유혼이 시키는 대로 했다.
대개 그들에게 받는 수련은 이런 식이었기에, 무지성으로 따라 하는 것은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단체로 기원일기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주변으로 미약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광세운은 깜짝 놀라 크게 눈을 떴다.
‘운기행공을 서서 한다고?’
대개, 무림인이 운기행공을 할 때는 앉은 자세로, 그것도 가부좌라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실시한다. 왜 굳이 그런 자세를 취하냐면, 그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기행공은 극도의 안정을 필요로 하는 행위인데… 그걸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참관했다 믿기지 않은 광경을 보고 놀라는 광세운과 달리, 그게 익숙한 방계들은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당유혼을 쳐다봤다.
그다음은 뭐냐는 눈빛이었다.
“좋아. 다음으로, 그 상태에서 백회혈을 통과하는 내공을 밖으로 분출해라.”
“예?”
백회혈을 정수리에 존재하는 혈도.
몸의 끝단에 존재하기에, 대개 운기행공은 여기서 반환하여 체내를 일주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공을 배출하게 되면,
“그, 그럼 내공을 다 빼내는 것 아닙니까?”
가만히 서서 몸 안의 연료를 다 쓰는 격이 되는 것 아닌가?
방계들이 당황해 묻자 당유혼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 해봐.”
언제 일일이 다 설명하고 앉아있어? 까라면 까.
“아… 넵.”
단호한 명령에 방계들은 시키는 대로 내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백회혈, 즉, 정수리를 통해 내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큭… 내, 내공이…….’
원래라면 체내에서 신력을 내게 해줘야 할 원동력들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는 기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가 그들을 당혹감으로 감싸 안을 때, 또 한 가지가 그들을 함께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안개?’
뿌연 안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그들이 발출한 내공이었다. 한두 명일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서른세 명이 동시에 내공을 방출하니, 그것이 안개처럼 주변을 뿌옇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내, 내공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
방출했다고 생각한 내공이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다시금 호흡을 들이켬에 따라 체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는 놀랍게도 가만히 있음에도 그 안개가 상시 유지되었다. 딱히, 이렇다 할 운기행공을 하지 않음에도!
방계들이 그 현상에 놀라워할 때, 당유혼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너희가 한 것은 귀원일기공을 통한 내순환이다. 하지만 삼재진을 형성하며 펼치는 귀원일기공은 외순환이 된다. 체외에서도 내공을 운용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그, 그게 가능한가?
방계들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으나, 실시간으로 그걸 체험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저… 그런데 사형. 이래서 뭘 하는 겁니까?”
내공 운용이 잘 되는 건 알겠다.
참 신기하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래서 이걸로 뭘 한다는 거지?
“걱정 마라, 본 훈련은 이제부터니까.”
스슥―
“자, 잠깐만… 대, 대형 그건 왜…….”
기다렸다는 듯 양손 가득 들려지는 젓가락 뭉치!
“각기 다른 이들의 내공이 거대한 순환을 통해 공유된다는 게 뜻하는 게 무엇인가. 그건 바로 무인의 육감 역시 상호 간에 교류가 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즉, 당장 내 시야에 사각이라 할지라도 함께 삼재진을 운용하는 동료의 시야에 있다면 그 감각을 느끼고 위기 회피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에에에에?!”
그게 말이 되냐! 이 미친놈아!!
“본 교관은 너희를 믿는다.”
“자, 잠깐만요!!”
믿긴 언제 믿었다고!!
“모, 못 피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뒈지는 거지.”
“아니, 씻팔!!”
“자, 간다!”
당유혼의 두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파파파팟!!
무수한 젓가락 세례가 차양당의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