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 *
무수한 투골저의 세례!
놀랍게도…….
파파팟!!
“으아아아!!”
“꺄아아악!!”
제법 피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벌써 삼재진의 효용이 있었느냐? 당연히 아니었다.
“삼재진의 감각 공유로 피하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
“머, 멈춰!!”
미친 듯이 날아드는 젓가락 세례를 피하기 위해 방계들은 죽어라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살아있냐?”
“…살아있어 보이냐?”
“…주둥이는 살아있네.”
사막에 존재한다는 선인장과 같은 몰골.
온몸에 젓가락 대여섯 개씩은 박은 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방계들의 모습을 보던 당유혼은 이내 고개를 돌려 광세운에게 물었다.
“어때요?”
“예?”
어떻긴 뭘 어떻냐는 거지? 이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보고 어서 빨리 관청에라도 신고해 달라는 건가?
“튼튼하죠?”
“트, 튼튼하다니요?”
“장거리 상행에 일꾼으로 써먹으려면 일단 몸이 튼튼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습니다.”
장거리 표행에 나서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첫 번째가 체력이요, 두 번째가 체력이며, 세 번째가 체력이다.
한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향하면, 그 지역 특유의 풍토병이 들 수도 있고 장거리 행군으로 골병이 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
“짐 들고 가던 짐꾼이, 골병들어서 도로 짐이 되어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걸 꼭… 이런 식으로 확인해야 했을까?
“에이, 요샌 과일도 사기 전에 한 번씩 찔러본다잖아요.”
‘그, 그 찌르기가 이거랑 같은 게 아니지 않나……?’
참 많은 생각이 드는 광세운이었고, 그렇기에 광세운은 또 생각했다.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하자.
* * *
방계들을 곱게 차양당의 연무장에 심어놓은 당유혼은 광세운에게 적당히 쉬게 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한, 하오문 사천 지부의 암가였다.
‘이젠 뭐 자기 집 안방이 따로 없구만?’
여~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해 오는 모습에 하윤호는 초인적인 표정 관리 신공을 보이며 마주 인사했다.
“아이고, 소협! 오셨습니까요?”
“어, 그래. 별래무양했지?”
“제가 뭐 별일이 있겠습니까요?”
나는 없는데 니들은 있더라?
하윤호가 극한의 돌려 까기를 선보이자 당유혼은 허허 웃으며 따라주지도 않은 찻잔을 알아서 채우며 말했다.
“그치? 그럼 별일 없으면 우리 일 좀 할까?”
“허허, 저희 하오문 따위가 어찌 당가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요?”
이것 봐라. 빨아먹을 거 다 빨아먹었으니 손절각을 재겠다, 이건가?
“…쓰읍, 그러면 재미없을 텐데?”
“아이고, 재미 볼 일이라니요. 저희도 일이 바빠서 뭔가 할 여유가 없습니다요.”
우리는 이미 볼 장 다 봤고, 먹은 거 소화시킬 여유도 없어! 그러니 알아서 떨어져 주지 않을래? 라는 완곡한 표현에 당유혼의 이마에는 힘줄이 하나, 둘 솟았다.
“이야기는 들어보지?”
“뭐, 광형 상단 건수 말입니까요?”
사천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모를 리가 있겠냐고. 두 손 모으고 공손히 저리가! 라고 외치는 하윤호의 모습에 당유혼은 차 한 잔을 시원하게 비워 버리고는 말했다.
“그럼 얌전히 협업하지? 사천의 넘치는 물자를 감숙에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여기다 한 발만 걸치면 얻어걸리는 게 좀 많을 텐데?”
“허허, 그러다 넘어질 게 무섭습니다요.”
‘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 끝까지 안 넘어온다 이거지?’
‘한 발 담갔다가는 그대로 저 진창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 같은데 무슨…….’
숨 막히는 눈치 싸움.
그 끝에서 결국 백기를 든 건,
‘급한 놈이 먼저 패를 까라 이거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심술 보따리를 드러내는 당유혼이었다.
“쯧, 좋아. 까놓고 말하지. 너희들이 제일 잘하는 게 필요하다.”
“호오?”
그 말에 하윤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것참…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씀이십니다요.”
“오해의 소지는 개뿔.”
뒤틀린 빈정 만큼이나 목이 꺾인 당유혼이 말했다.
“우리 시간 얼마 없는 거 알잖아. 간 보지 말고 빨리 들어와.”
“흐음…….”
살다 보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단순히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이 틀리게 되는 그런 선택의 기로.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온몸이 짜릿해지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서늘한 감각을 즐길 수 있어야만 진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또 한 번 인생에 그런 기로가 왔음을 느끼며 하윤호는 빙그레 웃었다.
“광형 상단. 감숙성에 뿌리를 둔 상단으로, 표국을 겸하며 그 역사가 삼백 년에 이르는… 어지간한 명문정파와 비견될만한 상단입니다요.”
‘이 자식, 역시…….’
다 알고 있었구만.
주르륵 광형 상단의 역사를 읊는 하윤호의 모습을 가만히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데, 그는 멈추지 않고 광형 상단에 대한 정보를 읊어갔다.
그들의 주력 사업이 무엇인지, 주력 상품은 또 무엇인지, 인구수는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등등…….
그사이에 하오문의 정보력을 통해 조사를 마친 하윤호는 약 일각 정도 광형 상단에 대한 정보를 읊다가 끝으로 짤막하게 평했다.
“…라고 할 수 있는 상단이지만, 단점으로는 그들이 삼백 년에 이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로 세력을 떨친 적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흥, 그래서?”
“뿌리 깊은 보수적 폐쇄주의. 당유혼 소협께서는 그들을 통해 현재 외부와 차단된 사천당가에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의도시겠지만…….”
안타깝다는 듯, 하윤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광형 상단은 아쉽게도 사천과 접점이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하며, 이렇게 한 지역의 강대한 세력이 훼방을 놓는 상황에 면역력이 전무하다 봐야 합니다요.”
상단 물건만 잘 판다고 끝이 아니다. 지역 간 거래를 한다면, 그 지역의 유지들에 대한 눈치 싸움과 정치 등등이 기본 소양으로 뒤따라야 한다.
“한 지역에서 역사를 세운 문파인 만큼, 감숙성에서만 상단을 운용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요. 하지만, 사천에서 사천삼주의 훼방을 뚫고 거래를 하기에는 굉장히 지난 할 듯합니다요.”
단순히 사천의 이런저런 거래처에 압력을 주기만 한다면 양반.
“사천삼주가 직접 칼 들고 습격해 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겠습니까요.”
“흥, 굳이 돌려 말할 거 있나?”
그 위험 부담을 말하는 하윤호에게 당유혼은 사납게 이죽거렸다.
“무조건 습격받겠지. 그래서 우리 방계들을 딸려 보내려는 거고.”
지금까지야 상행을 통제하기 위해 상단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게 고작이었다면, 광형 상단을 통해 상행을 꾸린다면 무조건적으로 무력적 압박이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도 상행을 강행하려 하시는 것입니까요?”
“못할 건 또 뭐지?”
불가능을 논함에 오히려 되묻는다.
“습격이 문제인 건,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받을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그건 뻔한 일이잖아?”
언제 공격당하는가?
당연히 상행을 할 때다.
어디서 공격을 당하는가?
당연히 상행을 할 때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는가?
당연히 사천삼주에게다.
억지에 가깝고 궤변이나 다름없는 말이지만, 당유혼의 눈에는 한점 흔들림이 없었다.
“어차피 그 모든 걸 알고 있다면 습격이랄 것도 없겠지. 거기다 니들의 정보력이 더해진다면 정말 습격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는 거야.”
그건 그저,
“용독문, 그다음은 사천삼주. 정해진 싸움을 할 뿐이니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오연히 선언하는 당유혼의 말에 하윤호의 입꼬리가 곡선을 그렸다.
“사천삼주와 전면전을 벌인다라……. 저희 하오문이 무력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요.”
“아무렴. 벼룩의 간을 빼먹겠냐?”
“후후…….”
하윤호는 웃었다.
하나, 그와 달리 지금 그의 머릿속 주판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능할까?’
사천삼주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 하나하나가 현 무림에서 거대한 명성을 떨치는 세력이고, 그런 세력 셋이 연합한 단체다.
그런 그들과 대놓고 싸움을 벌이겠다고?
‘물론, 사천삼주도 체면상… 대놓고 전력을 투여할 수는 없겠지. 습격을 감행해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겨야 하니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기껏해야 일 할에 불과하다. 하나…….’
위험하다.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래서, 하윤호는 한 번 더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위험합니다요. 너무나 위험합니다요.”
“뭐가 말이지?”
“아시지 않습니까요. 저희 상황도 그리 여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두 손을 비비며, 연신 곤혹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미 저희 하오문은 용독문과 대립하여 사천삼주와 척을 진 신세. 여기서 더 나댔다가는 그들이 어찌 나올지 모릅니다요.”
그 말에,
“흥, 웃음이나 지우고 그런 말을 하든가.”
당유혼은 차갑게 조소하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래서 하는 말이야. 말했잖아. 너희들이 가장 잘하는 걸 하라고.”
다시 한번 아까 했던 말을 강조했다.
“…저희가, 가장 잘하는 것?”
그 말이 주는 어감이 묘했다.
하오문이라고 한다면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보겠지만, 정보라고 해서 하오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니다.
무림 삼 대 정보 집단이라 함은, 그들만큼이나 정보에 특화된 집단이 둘은 더 있다는 소리니까.
그러니까 하오문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면…….
“네가 말했지. 지금의 시대를 일컬어 만가쟁패(萬家爭覇)라 부른다고.”
일만 개의 가문이 패권을 다루는 유례없는 혼돈의 시대.
“휘말려 버린다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쓸려가 버릴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너희들의 가장 잘하는 걸 해야지.”
“소협, 설마…….”
손을 뻗는다. 오만하고, 또 오연하게.
“당가의 그늘 아래로 들어와라.”
“…하.”
그렇게 던진 제안이 뜻하는 건…….
“설마, 본문을… 배신하라는 것입니까요?”
쿠웅……!!
그 순간, 막대한 기세가 폭발했다.
한낱 정보 상인에 불과하던, 언제나 반쯤 허리를 굽히고 항상 먼저 고개를 숙여오던 하윤호의 진면목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허허…….”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건 평소와 달랐다. 마냥 사람 좋아 보이고, 마냥 웃기만 하던 때와는 다른, 그러니까, 그건 마치,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겠지요?”
그 진면목을 숨겨왔던 가면이 깨져나가고 흘러나오는 하윤호라는 인물의 본질.
드드드드드득…….
당유혼과 그 사이에 놓여 있던 탁자가 뒤흔들리고, 그 위에 있던 다기가 지진이라도 난 듯 맹렬히 떨린다.
새삼스레 눈앞에 있는 인물이 한 문파의 우두머리임을 알려주는 그 무위에, 당유혼은 가볍게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한심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