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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56화 (56/350)

56화

‘이런.’

작게 말했다 생각했는데 들린 걸까?

다가서는 방계 중 하나를 보며 광운대원 하나가 난처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런. 들렸다면 미안하오. 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소.”

“뭐요? 좀 전에 무식하다며!”

“예? 아니… 그, 그냥 너무 비합리……. 흡?!”

뭐, 어찌 돌려 말할까 하다가 본심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게 무식하다는 거 아니오?!”

쾅쾅!

당불퇴는 가슴을 두들기며 콧김까지 킁킁 내뿜었다.

“…하아, 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소.”

“미안? 미아아아안?”

“왜, 왜 그러시오? 내 사과하리다.”

“허, 참. 세상 좋아졌네. 사과로 다 끝날 거면, 세상에 법은 왜 있소?”

아니, 그 말대로라면 사과는 왜 있어?

“…뭐 어쩌라는 것이오?”

“흥, 내 우리 수련을 무시당하고는 못 참소. 그대들은 얼마나 훌륭한 수련을 하는지 한번 봅시다.”

“지금 비무를 하자는 것이오?”

“비무라 할 것까지야 뭐 있나.”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한 판 붙어봅시다.”

‘그게 그거잖아?!’

거의 억지로 싸움을 붙자는 수준.

당혹감에 찬 광운대원이 슬쩍 고개를 돌려 광운대주의 눈치를 봤다.

그 역시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까딱이는 게,

‘한 번 어울려드려라.’

딱 봐도 말로 끝날 기색은 아니다.

솔직히 광운대원 역시 조금 열이 받기는 했다.

‘무식한 걸 무식하다고 말한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열을 내?’

세상 어떤 수련이 저따위로 뒤통수에다 돌을 던져대는 식으로 하는지…….

사실 광운대원도 여러 가지가 쌓인 상태라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나, 광운대 삼 조장 서조형이 그대를 상대하리다.”

“킁, 좋수다. 난 당불퇴요.”

그렇게 둘의 비무는 성립되었고, 곧장 연무장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무장을 들지 않소?”

자신의 철검을 패용한 채 그 손잡이를 잡아가던 서조형이 문득 맨손으로 연무장에 서는 상대를 보며 의아해했다.

“엥? 당가에 대해 모르시나?”

“…독과 암기를 다룬다고 들었소만. 독을 쓸 생각이오?”

“아니, 뭐, 아무리 나라도 그건 아니지. 암기 정도는 쓸 생각이기는 한데?”

“설마, 그게 암기요?”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가리켰다.

그 안에 올록볼록한 정체는 다름 아닌 돌멩이. 조금 전까지 자신들의 형제들에게 던져대던 그것이 담긴 것을 지목받자 당불퇴는 씨익 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 오만한.”

순간 서조형의 얼굴에 분노가 깃들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자기가 먼저 괜한 말을 했다는 미안함이 있었다면, 이쯤 되니 상대가 숫제 시비를 거는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좋소. 그 건방진 콧대를 꺾어드리지.”

“킁, 그렇게 안 해도 될 거요. 안 그래도, 평소에 하도 처맞고 살아서 말이지.”

짠내가 깃든 답변과 함께 둘은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심판으로 선 광운대원 하나가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냈고, 그에 따라 서조형은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갔다.

‘암기를 다루는 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거리를 주지 않는 것.’

광형 상단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무력 부대인 광운대 역시 정통적인 무리를 추구하고 있다.

서조형의 광운십삼식 역시 그러한 검법이었고, 장거리 무기인 암기를 상대할 때는 검수로서 가장 먼저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것 역시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파팟!!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서조형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가만히 있다가는 가슴팍이 베일 것 같아 당불퇴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고, 가슴 앞섬을 스치고 지나가는 예기를 느끼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서조형도 쉽게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쾌속하게 움직이며 휘두른 검이 갈지(之) 자를 그리며 날아들었다.

부웅― 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세차게 때렸다.

귓가를 스치고, 옆구리를 스치고, 어깨를 스치고, 다시 허벅지를 스쳤다. 모두가 유효타가 될 수 있는 검격들이 한 끗 차이로 빗나갔다.

처음에는 아깝다 생각했던 서조형이지만, 그게 반복될수록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통적이지만, 그만큼 착실하고 빈틈이 없는 검법.’

그리고 그동안 당불퇴는,

‘그렇다면, 그 빈틈을 강제로 만들어야지!’

단 한 번의 변수만을 노리고 있었다.

‘바로, 지금!’

팟!

손장난을 하듯 손가락이 움직이고, 소매에 숨겨져 있던 돌파편이 쏘아졌다.

캉―!

휘두르던 검날에 돌조각이 부딪치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의 궤적이 휘었다.

그 틈을 노리고 당불퇴가 앞으로 쇄도했다.

흠칫!

‘이건… 너무 가까운…….’

암기를 상대할 땐 검수로서 가까운 거리가 이득이다. 하지만 이건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검을 휘두를 거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떨쳐내야…….’

아주 당연한 서조형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 순간 날아든 발차기가 검날을 후려쳤고, 그 충격에 팔이 쩍 벌어지자 열린 가슴에 손바닥이 닿았다.

투웅―

가벼운 밀치기.

뒤로 세 걸음 물러나는 게 고작이지만,

“…하.”

“패배를 인정하시나?”

서조형은 입술을 꾹 깨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금 전 자신이 검을 휘두를 때처럼 저자가 힘을 담아 가슴을 두들겼다면, 그대로 갈비뼈 몇 대가 부러졌을 게 뻔하니까.

“…손속에, 사정을 두어 감사하오.”

굴욕을 감내하고 일어서자 당불퇴는 씨익 웃었다.

“뭐, 감사까지야. 그보다는, 다음은 누구요?”

“…다음?”

“당신이 조장이라 했으니, 그다음은 역시 하나뿐이겠지만.”

“당신, 설마?”

적당히 사과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에 서조형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

“처음부터 내가 목적이었구려.”

가만 지켜보고 있던 광운대주가 몸을 일으켰다.

“대주님?!”

“저런 도발에…….”

“되었다.”

당황하는 다른 대원들의 반발을 가벼운 손짓으로 제지하며 일어선 그는 도발 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당불퇴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자는, 타고난 투귀(鬪鬼)로군.’

가끔 그런 이들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부귀영화나 쾌락이 아닌, 단순히 싸우는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이들.

그런 이들에게는 자신보다 강한 이들과 한 번 부딪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이고, 거기서 깨진다 한들 바닥에 드러누워 낄낄 웃어댈 여흥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붙고 싶었다면, 진작 말하지 그러셨소.”

광운대주는 옅게 웃으며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킁, 그 반응을 보니까 대충 눈치채신 듯한데.”

무안하게시리.

“그럼 뭐, 한 판 붙어봅시다.”

다시금 자세를 잡는 당불퇴의 모습에 광운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극을 겨누었다.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거요?”

“무엇을 말하시오?”

“검… 안 뽑으시려고?”

광운대주가 들어 올린 검은 정작 검집에서 뽑아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린 광운대주는,

“뭐,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겠소?”

씨익― 웃으며 검극을 까딱였다.

“들어오시오.”

“하… 그렇단 말이지?”

아주 단순한 도발이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그럼, 직접 뽑게 해드리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뛰쳐나간 당불퇴가 손을 뻗었다.

그 손길은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내뻗어졌으나…….

따악!

“악!!!”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이……! 이, 이게 뭡니까?”

“허, 참. 실전이었다면 조금 전에 손목이 잘렸을 텐데?”

순식간에 휘둘러진 검집이 당불퇴의 손목을 두들겼다.

검날이었다면 잘려도 할 말이 없었으니, 당불퇴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었다.

“다시!!!”

이번엔 더 빠르게 내뻗는다!

하지만,

따악―

“끼야아아악!! 내 손가락!!!”

이번에도 휘둘러진 검집은 정확히 내뻗어진 주먹을 요격했다. 그러나 광운대주의 검집 휘두르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딱―

“끄악!!”

따악―

“아아악!!”

딱, 따악! 딱! 따악!!

“악! 아악!! 그, 그만!!!”

“그만?”

“그, 그만둬 주세요!!”

주먹, 손목, 팔, 어깨, 머리 아주 골고루 매질이 작렬했다.

이쯤 되면 숫제 대련이 아니라…….

‘그, 그냥 쥐어패는 거잖아?!’

허허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광운대주의 모습에 당불퇴는 어째 익숙한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걸 느꼈다.

‘왜 대형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 같지……?’

투지고 뭐고 사정없이 꺾어버리는 그 본능적인 두려움에 당불퇴마저 몸을 벌벌 떠는데,

“나, 나왔다…….”

“대주님의 타격각성검갑술(打擊覺醒劍匣術)……!!”

어째 쾌재를 불러야 할 광운대원들 역시 몸을 떨고 있다.

“저건 악몽이야…….”

“우리들을 쥐어팰 때 쓰던 저 기술을 여기서 쓰다니…….”

삼백 년의 역사를 가진 광형 상단.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는 말 더럽게 안 들어 먹는 제자들을 위한 사랑의 매질도 전승되었으니, 검갑으로 때려 사람 만든다는 타격각성검갑술이 바로 그러했다.

“허허, 소협. 왜 그러시오. 더 하셔야 하지 않겠소?”

“자, 잠시만요. 제가 생각을 좀 잘못한 것 같은데…….”

“생각을 잘못하셨다? 그럼 잘 되게 도와드려야지. 그대들의 대형께 우리가 받은 은혜가 한둘이 아닐진대, 응당 갚아드려야 하지 않겠소?”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당불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릴 때,

따악―!!

“끄아아악!!”

울려 퍼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당불퇴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허물어졌다.

‘응?’

그건 광운대주도 예상하지 못한바.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문득 당불퇴의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이 부풀어 오른 게 보였다.

그리고,

“이것 참,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설레설레 걸어오는 방계 하나. 그 손에 큼지막한 짱돌 하나가 들려 있었으니,

“이게 다 동생 녀석들을 못 돌 본 저의 잘못입니다.”

…이 정도면 과실치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는 광운대주를 향해 눈앞에 선 이가 말했다.

“그러니, 책임도 이 녀석들의 맏이인 제가 져야 맞겠지요.”

“책임이라 하면?”

“그 가르침. 차양당의 당주인 제가 넘겨받아도 되겠습니까?”

당지명, 그가 광운대주의 앞에 마주 섰다.

자신의 앞에 마주 선 당지명, 그를 보며 광운대주는 살짝 의외란 듯 말했다.

“허허, 당주께서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세가 안정적이다.

조금 전 자신의 앞에 섰던 당불퇴라는 이의 기세가 상당히 도전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호승심 같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런 치기 어린 감정은 아닙니다. 다만.”

쓴웃음을 짓는 당지명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분명 어디선가 보고 있을 악독한… 큼큼. 대형께서 이 모습을 보면 저희를 가만 놔두실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지명도 딱히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불퇴가 광운대주에게 처맞고 온 걸 그들의 대형이 본다면?

“이야~ 역시 우리 동생들 대단해~ 기껏 좋은 것 다 먹이고 좋은 무공 가르쳐 주고 좋은 곳에 자게 해주니까 어디 가서 처맞고 오네?”

“대, 대형!! 상대는 그냥 일반 대원이 아니라 대주님이신데……!!”

“아, 그렇지.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그런데, 니들은 평범하지 않으면 처맞고 와도 그게 용서가 되냐? 싯팔, 내가 니들을 그렇게 평범하게 키웠냐?”

“아니, 그게 아니라……!!”

“오냐, 오늘 어디 한번 특별하게 처맞아보자!”

주룩―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릴 것만 같은 표정의 당지명을 보며 광운대주는 동질감을 느꼈다.

“아아.”

그것참…….

“…이해가 됩니다.”

사고는 아랫것이 쳤는데, 윗사람은 나를 갈군다.

실로 눈물 나는 중간 관리자의 처지.

동병상련의 감정에 애틋한 시선이 오가고, 당지명은 고마움을 금치 못하는 눈빛으로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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