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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57화 (57/350)

57화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조금 전까지 가슴 먹먹해지는 감정의 흐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달랐다.

중간 관리자란 세속이 잦을 날이 없는 직종. 자연스레 강해질 수밖에 없고, 다부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강하다. 그리고, 빈틈이 없구나.’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당지명에게서는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단순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기세에서는 당불퇴가 앞서는 듯했지만, 그만큼 빈틈투성이라 허점을 찌르기 좋았다.

‘하나, 이 남자는 그러지 않으니…….’

스르릉―

조심스레 꺼내 드는 검날이 서늘한 마찰음을 토했다.

‘그렇다면, 정공법으로 나가는 수밖에.’

타탓!

광운대주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검을 휘둘러 왔다.

아름다운 반월(半月)이 그려지며 전방을 휩쓸어 왔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당지명이 간발의 속도로 피해 냈음에도 앞섬이 베였다.

“형님?!”

“너,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대주님!!”

지켜보던 이들이 깜짝 놀랄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 하지만 정작 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빙글―

검을 고쳐 잡은 광운대주가 전방을 향해 연이은 찌르기를 펼쳤다.

파파팟!!

삽시간에 이어지는 대여섯 번의 찌르기!

그에,

스윽―

당지명의 두 손이 좌우로 크게 뻗어지며 원을 그렸다.

쩡― 쩌엉!

기이한 몸놀림으로 피해 내고, 또 기이하게 손을 움직여 검면을 쳐냈다.

‘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지명은 반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재빨리 광운대주의 빈틈을 향해 파고들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사복수(蛇伏手).

내뻗은 당지명의 손이 뱀처럼 광운대주의 검을 쥔 팔에 얽혀들었다.

“흐아압!”

그 상태로 작렬하는 메치기!

광운대주의 몸이 완전히 붕― 뜨며 날아갔고, 그 뒤를 쫓는 당지명의 추가타가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

타탓―

몸이 완전히 뒤집은 상태에서 두 손으로 땅을 짚는 광운대주의 모습이 보였다.

‘검을, 놨어?’

바로 곁으로 튕겨 날아가는 검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이 쏠릴 때, 광운대주의 다리가 풍차처럼 돌아가며 당지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빠악―

“큭!”

방어하기 위해 올렸던 팔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

그 틈에 몸을 추스르고 물러서는 광운대주가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검수가 검을 놨다는 건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당지명은 계속해서 그 뒤를 쫓았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에 당황했지만, 어쨌거나 검수가 검을 놓았다면 유리한 것은 맨손 박투의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걸 확신하고 쫓는 당지명이었으나,

광운검법(廣雲劍法), 운중벽(雲中霹).

번쩍― 하는 섬광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깜짝 놀라 멈춰서니,

“…검집.”

검을 잃었음에, 검집을 내뻗어 검술을 전개한 광운대주의 모습에 적잖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

동시에, 광운대주 역시 같은 생각을 떠올렸으니.

‘강하다…….’

‘강하구나.’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이내 서로의 표정을 보고 씨익 웃었다.

“빈틈이 없으십니다.”

“당주야말로.”

짧은 사이에 수차례 공방전이 오갔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알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붙으니 더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우린, 비슷하군.’

‘동류라고 할 수 있으려나?’

둘 다 모나지 않고 정도에 착실했다.

광운대주는 아무래도 한 지역에서 유구한 역사를 쌓아온 광운검법을 수련하다 보니 그 성격이 생겨났고, 당지명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완벽(完璧)을 상징하는 차양십이수의 원(圓)을 그리는 수련에 충실했기에 지금의 성격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누군가를 이끄는 입장이기에 비슷할 수도 있었다.

서로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지만, 그 끝에 귀결되는 것은 한 가지였으니.

“두 명이 다 모나지 않고 빈틈없는 무(武)를 추구한다면,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누가 더 완벽한가, 겠지.”

누군가는 선대가, 누군가는 허구한 날 젓가락질을 갈겨대는 대형이 주입해 준 지식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둘은 자연스레 전의를 가다듬으며 자세를 고쳐 잡고,

터엉―!

다시 한번 격돌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뇌명타(雷鳴打).

빠르게 내뻗어진 당지명의 손이 천둥소리를 내며 광운대주의 검집을 때렸다.

‘더 빨라졌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른 움직임을 검집으로 막아낸 광운대주는 감탄하면서 몸을 뒤로 뺐다.

검을 움직일 간극을 만들어 내기 위한 퇴각에 당불퇴는 그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바싹 따라붙었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파파팟!

세 번의 끊어치기가 차례로 작렬했다.

머리와 몸통을 노리는 공격은 검집으로 차분히 반응한 광운대주지만, 마지막 세 번째 공격에 쥐고 있던 검집을 놓쳐 버렸다.

‘의도적으로… 검집을?’

아차 싶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공격으로 검집을 크게 휘두르게 해서 마지막 공격으로 검집 그 자체를 노려온 것이다.

검이었다면 검날에 손이 베이리라는 염려에 할 수 없었겠지만, 검집이었기에 할 수 있는 기예.

손아귀에서 검집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때, 당지명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우우웅―

단전에서 끌어 올린 힘과 귀원일기공을 통해 온몸을 순환하던 거대한 힘이 끌어 올려졌고, 그것을 담은 일수(一手)가 내뻗어졌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호양차력(護陽借力).

파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을 낼 수 있다 여겼던 당지명이지만, 자신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검수가 그렇게 검을 쉽게 내버려도 됩니까?”

마지막 순간, 광운대주는 들고 있던 검집까지 내다 버렸다.

“글쎄. 이 나이까지 표행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다 보니… 검에 집착하는 자존심만큼 부질없는 게 없더구려.”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은 검집을 휘둘렀다간 도저히 당지명의 일격에 맞설 자신이 없었기에, 그래서 그냥 내던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눈앞까지 내던져진 검집에 시야가 어긋난 사이, 광운대주는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땅을 굴러 그 공격을 피해 냈다.

덕분에 옷에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위기 상황에서 완벽히 빠져나오고는 어느새 검이 떨어져 있는 위치까지 와서는 다시금 자신의 무장을 주워 들었다.

“우린 참, 비슷하지만 다르구려.”

그러고는 불현듯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당지명 역시 비슷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모나지 않는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슷했다. 하지만 뭐랄까…….

“당주가 저와 같은 길에 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구려.”

“들켰습니까?”

당지명은 그 정확한 지적에 옅게 웃었다.

“저희가 좀, 거칠게 자랐습니다.”

대형 당유혼이 오기 전까지 당가의 무공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역사와 전통이 대부분 끊겨 있었기에, 지금 익히는 차양십이수와는 전혀 다른 무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익혀 왔다.

때문에, 임기응변과 잡기 위주로 자라나다 지금에 이른 게 당지명이었다면,

“나와는 반대시구려.”

광운대주는 정반대.

실질적으로 표행에 나서기 전, 정도(正道)라 부르는 검법을 수련하였지만, 표행에 나서 산적들과 싸우고 수적들과 싸우다 보니 임기응변과 잡기가 섞여 들어갔다.

눈앞의 어린 당주가 빈틈을 만들기 위해 잡기를 사용하고 중요한 순간에 정도로 부딪친다면…….

‘나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잡기를 사용해 임기응변으로 생로(生路)를 모색하지.’

그게 광운대주는 참 재밌었다.

인생사 요지경이라고, 무공이 달리 무도(武道)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같은 무공을 수련해도, 살아온 방식에 따라 이렇게 성격이 달라지고, 방식이 달라지니… 광운대주는 오랜만에 타인과 서로의 무를 견주는 게 재밌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비무(比武)인 것이다.

전혀 다른 곳,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서로가 무를 견주어 서로의 삶을 반추하는 것.

그것이 즐거웠기에 클클 웃음을 흘리던 광운대주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어떻소이까, 당주. 이대로라면 결판을 내기가 힘들 것 같은데.”

“마지막 한 수로 끝을 내자는 것입니까?”

“여흥으로 좋지 않으신지.”

“…최고군요.”

당지명 역시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끝맺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집을 집어 던져주자 광운대주는 그것을 잡아채 도로 칼을 집어넣는 납검을 보였다.

“그걸 아시오, 당주? 소싯적에 나는 발검술(拔劍術)이 주특기였다오.”

“그렇습니까? 그것참,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고, 그리 선언하는 광운대주의 말에 당지명 역시 비릿하게 웃으며 두 손을 소매에 집어넣었다.

‘암기술인가?’

사천당가의 주특기가 독과 암기라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무에 독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으니 암기를 사용할 것 같았다.

‘과연 어떤 암기술을 보일까?’

어린아이처럼 심장이 두근거렸기에 광운대주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이미 칼집 끝까지 밀어 넣은 검을 괜스레 더욱 집어 누르며 서서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꾸구국…….

광운대주의 기세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폭발하기 직전처럼 커져 갔다.

허리를 굽히고, 칼을 든 오른손을 몸에서 아래쪽의 각도로 낮추는 자세. 발검술(拔劍術)의 자세를 취하는 광운대주의 모습을 보며 당지명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중천에 떠 오른 해.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맑으니, 저 아름다운 배경에 자신이 그림을 그려 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륵―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치다 보니 어느새 땀이 맺혔고, 그것이 턱 끝으로 흘러 방울이 생겨났다.

뚜욱―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그게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참으로 크게 들렸다.

그래서, 그게 신호가 되었다.

당지명의 두 손이 크게 펼쳐지며, 소매 속에 감추어져 있던 젓가락들이 하늘을 향해 펼쳐졌다.

당가암기술(唐家暗器術), 낙화유수(落花流水).

파파파팟!!!

하늘을 향해 쏘아졌던 암기들이 최고 고도에 도달했을 때, 다시금 일제히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마치 흐드러지는 꽃잎과 같았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꽃비는 흐르는 물처럼 퍼부어졌다.

아름답지만, 지독히 위험한 일격!

그럼에도 그 한가운데에 있던 광운대주는 씨익 웃더니,

광운검법(廣雲劍法), 발검술(拔劍術), 운단(雲斷).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푸푸푸푹!!

옷깃을 스쳐 지나간 꽃잎들이 광운대주의 살가죽을 베었다. 핏물이 번져 나와 옷 위로 꽃이 피어났지만, 광운대주는 아무렇지 않게 당지명의 근처까지 당도해 있었다.

‘아…….’

그야말로 섬전(閃電)과도 같다.

당지명은 도저히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 역시… 질 수는 없잖아.’

이대로 끝을 맺을 수는 없으니까, 숨겨져 있던 마지막 젓가락을 꺼내 들어 내찌른다.

당가암기술(唐家暗器術), 은점혈(隱點穴).

무수한 꽃비 속에 숨겨져 있던 마지막 가시!

그것이 내뻗어진 결과는……!

“…아!”

“오, 오…….”

지켜보던 장내의 이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깜빡하고 있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저, 저건…….”

“이렇게 되면 이거…….”

“무승부…인가?”

당지명의 목전 앞에 뻗어진 검은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었고, 그건 광운대주 역시 마찬가지. 내뻗었던 젓가락 끝이 목젖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으니, 만약 누구라도 멈추지 않았다면 하나는 치명상을 입었을 터였다.

그러나 둘 다 최후의 순간에 멈추었으니.

“파…하……!”

“하하하하……!”

둘은 결국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당주야말로. 감탄했습니다.”

너무나 즐겁게 웃는 둘의 모습.

비슷하게 서로의 무기를 거둬들이는 그 모습에,

“우와아아아아아아!!”

“최고다아아아아아아아아!!”

얼떨떨하게 지켜만 보던 관중들은 방계고 광운대고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최고의 대결이었으니까!

이 순간만큼은 누가 더 잘났다고 할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표하는 우두머리의 무공에 충만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

모두가 열광하는 모습에 당지명과 광운대주는 즐겁게 웃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두 명이 있었으니…….

“훌륭하군요. 소협은 이런 결과를 예상하신 것입니까?”

그건 바로 광세운과 그를 이끌고 전각 하나의 지붕 위를 점거한 당유혼.

처음 광운대와 차양당 사이의 분란이 벌어지려 할 때만 해도 광세운은 깜짝 놀라 말리려 했지만, 당유혼이 그를 붙잡아두었다. 광세운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표행을 떠나다 보면 산적들의 습격을 겪는 경우가 왕왕 있게 마련. 그때 출신이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 불신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에, 그걸 미연에 이렇게 서로 실력을 확인하여 예방하신 것이군요!”

들은 적이 있다.

용병 일을 하는 거친 이들끼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다툼을 벌이고, 그를 통해 서로의 실력을 확인해 믿음을 쌓는다고.

이 모든 걸 예상했다 생각하니… 광세운의 마음속에는 새삼스레 당유혼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이야.”

그때,

“옙?”

불현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그게 뭔가 싶어 귀를 기울여보니…….

“쳇, 멋진 척하기는. 당지명 주제에 말이야. 재수 없게…….”

“…….”

음, 그러니까.

‘…그냥 못 들은 척하자.’

어쨌든 결과는 좋잖아?

광세운은 얌전히 귀 닫고 눈 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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