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 *
표행길에 오른 방계들.
우마(牛馬)처럼 수레를 끌고 산길을 오르는 방계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죽을상이었다.
‘개자식… 인간도 아닌 놈……!’
‘똥물에 튀겨 버릴 놈……!’
‘악귀 같은 놈!! 니가 사람이냐?!’
오로지 한 명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원동력으로 삼아 산길을 꾸역꾸역 오르는 방계들을 보며 광운대원들이 서로 쑥덕거렸다.
“이거 진짜 맞는 건가…….”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지금 말려도 저거 다시 끌고 돌아가야 하잖아.”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수레를 끌고 사천 땅을 벗어나고 있는 이 정신 나간 상행에 벌써 몇십 번의 상행을 완수한 표사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건 광운대주 역시 마찬가지.
“저… 소협.”
“옙?”
우물우물.
입 안에 육포를 넣은 채 질겅이던 당유혼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한 손에는 육포가, 한 손에는 젓가락 뭉치가 쥐어져 있다. 저게 그 당근과 채찍이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아, 잠깐만여! 우물우물, 꿀꺽. 이놈시끼! 더 빨리 안 움직여?!”
표표푝!!
“아아악!!”
육포는 지가 먹고 젓가락은 뒤처지는 방계한테 날아가 박혔다.
뭐 이런 악덕 노예 상인이 다 있을까, 싶은 광경에 결국 광운대주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금… 쉬었다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말리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말렸다가는 괜히 방계들만 더 괴롭힐 것 같아 차라리 휴식 시간이라도 가지자 싶어 물어보지만,
“예? 좀 전에 쉬었잖아요.”
“아니, 그래도…….”
광운대주 역시 밑에 사람들을 굴릴 때는 확실하게 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말 안 듣는 대원들을 훈계할 때 타격각성검갑술이란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닐 정도로.
하나,
“…이러다 진짜 사람 하나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보기에도 이건 사람 여럿은 잡아야 끝날 미친 짓이었다.
말도 이렇게까지 험하게는 안 굴릴 텐데 사람을 이리 혹독하게 굴리다니!
최소한의 인간성은 보유하고 있다 자부하는 광운대주가 그리 말해 보았지만,
“에이, 괜찮아요. 이 정도로 안 죽어요.”
당유혼은 오히려 무슨 말이냐는 듯 손을 저었다.
“…소협, 농담이 아닙니다.”
“저도 농담이 아니에요.”
이 아저씨가 사람 못 믿네.
“이거 진짜 저 녀석들 잘되라고 하는 짓이라니까요?”
“저러다 골병듭니다, 소협.”
“아닐걸요? 내기해도 좋아요.”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지만, 당유혼은 진심이었다.
‘저 녀석들이 먹은 약력을 소화하는 데 이만한 수련이 없으니까.’
잡룡탕(雜龍湯).
온갖 약초와 독초를 섞어 방계들이 매일 아침 먹고 있는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귀원일기공을 통해 체내에 흡수되어 전신에 잠들어 있었다.
당유혼 자신쯤 되면 육체를 뜻대로 다루는 능력이 경지에 도달해 있어 그걸 전부 사용할 수 있지만, 방계들은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요원했다.
그렇기에 강제로 외부자극에 의해 그 힘을 녹여 내릴 필요가 있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어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었을 때 더 단단해지듯, 체내의 잠력을 사용하고 다시 회복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그릇은 더욱 커지는 법이지.’
방계들은 모르겠지만, 당유혼의 눈에는 분명 보였다. 죽겠다, 죽겠다, 반복하면서도 체력이 매일매일 눈부시게 상승하는 모습을.
‘저놈들은 모르겠지만.’
체력이 상승하면 또 하는 대로 한계를 높여 몰아붙이니 매일매일 죽어 나갈 것 같은 게 방계들의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그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후, 그렇습니까.”
물론, 그걸 알 리 없는 광운대주는 이 양반이 절대 마음 고쳐먹을 리 없구나, 라는 생각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예예. 그것보다는 산적들이 닥쳐오지 않을지나 조심하죠.”
“허허, 산적 말입니까?”
그 말에는 광운대주도 피식 웃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흠, 왜요?”
“여긴 사천이잖습니까.”
산적이 어디서 나오냐 묻는다면, 당연 그 대답은 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천에는 사천삼주가 존재한다.
청성, 아미, 점창.
그리고 이 셋의 공통점은 다 본문이 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사천에서 완전히 벗어나 감숙에 이르면 모를까. 아직 경계를 벗어나지도 않은 이곳에 둥지를 튼 산적은 없습니다.”
산적 청정구역이라고 할까? 그 잘난 산적들의 집단 녹림 칠십이 채도 사천에는 둥지를 안 만든 게 그 방증이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럼 저건 뭘까요?”
“예? 그게 무슨…….”
여기 산적이 있을 리가… 있네?
고개를 돌려 그 방향을 바라보던 광운대주의 눈에 보인 일단의 무리.
이 산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외길을 막아선 무리는 하나같이 허리춤에 칼을 차고 얼굴에는 복면을 쓴 게, 딱 봐도 ‘나 수상한 무리요!’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정지!”
당황스럽기 그지없어도 일단정지 명령을 내리자 그제야 상행이 멈추었다.
“헉… 헉… 뭐, 뭐야?”
“휴식! 휴식 시간인가?!”
바로 앞만 보고 달리던 방계들은 정지 소리에 멈춰 서며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다가 마찬가지로 저 앞에 있는 흑의인 무리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또 뭐야?”
“싯팔, 왜 길을 막고 서 있어?”
인간에게 주어지는 강렬한 노동 강도가 얼마나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방계들을 제치고 광운대주가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본인은 감숙성에서 상행을 하는 사람이오. 혹시 그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소?”
광세운도 있지만, 이 경우에 나서는 건 광운대주였다.
만일에 모를 무력 충돌을 대비하며 소리치자 길을 막아선 흑의인들은 저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더니 개중 하나가 나서서 소리쳤다.
“짐을 이곳에 놔두고 떠나라. 그렇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내주겠다.”
“…허?”
돌아온 답에 광운대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이런 상도덕 없는 놈들이 다 있나?’
산적들이 상행을 덮치는 거야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도 밥 벌어 먹고살려는 입장상,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상식이었다.
막말로 산적이 상행을 다 털어버리고 난다면, 어떤 상행도 그쪽 산을 지나가지 않을 테니, 결국 산적도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 진심인 것 같은데…….’
오랜 상행 경험이 있는 광운대주는 본능적으로 저들이 진심으로 외치는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허허… 어느 산채에서 온 산군(山君)들이신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소?”
그래도 광운대주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고 싶어 타협점을 제시했다.
“산군들께서 발품을 파신 수고비는 결코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리리다. 우리 이러지 말고…….”
“닥쳐라!”
하지만 그 협상은 단번에 파국을 맞이했으니,
“몸 성히 돌아가고 싶다면 가진 물건을 다 내려놓고 꺼져라!”
칼을 뽑아 든 사내는 흉흉한 살기를 내비칠 뿐이었다.
그에 광운대주가 말문이 막혀 눈만 껌벅거릴 때,
“됐어요. 대주님. 딱 보면 모르겠어요?”
어느새 터벅터벅 걸어온 당유혼이 그의 뒤에 섰다.
겉보기론 아직 스물도 안 되어 보이지만 그 속은 닳고 닳은 노강호.
그 무수한 경험이 쌓아 올린 연륜은 그에게 한 가지 능력을 주었다. 과연 이 새끼가 말로 해서 들을 놈인지, 아니면 처맞아야 말을 들을 놈들인지 알아보는 눈이다.
그러니까,
“저 새끼들. 처맞아야 말을 들을 놈들이잖아요.”
“후우…….”
무식하고, 무례하며, 무모한 언동. 그럼에도…….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딱 봐도 좋은 의도로 다가오지는 않은 이들에, 결국 광운대주가 검을 뽑아 들었고, 다른 광운대원과 차양당의 방계들도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쯧,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는군.”
그런 상대의 반응에 복면인들의 선두에 있는 이가 사납게 혀를 찼다. 그에, 당유혼도 담백하게 답했다.
“쯧, 뭐래. 병신이.”
“뭐, 뭣?”
“권주는, 싯팔. 가만히 있으면 짐 뜯기게 생겼는데 그게 권주야? 뇌가 없냐?”
“이, 이놈이?”
당유혼의 언변은 기막힌 재주가 있었다. 바로 듣는 이의 인내심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것!
게다가, 평소 고고한 삶을 살아온 복면인으로서는 들어본 적 없는 원색적인 비난은 그를 무척이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니가 누군지 내가 알아?”
뭔 병신같은 소릴 하고 있어.
“니가 누군지 알아주길 원했으면 복면이라도 벗고 오든가. 지가 숨기려고 그따위로 와놓고는 내가 네놈을 어떻게 알아?”
한심하다는 듯 조소하던 당유혼은 그때 갑자기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아, 그런데 알 것 같기도 하네. 요즘 청성산에 새로운 산적채가 들어섰다는데… 그놈들이신가?”
“…뭐?”
그 말에 복면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체는 청성일검 진혁수.
청성파의 일 대 제자로서, 사문의 명을 받고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조금 전까지야 이런 임무나 맡는 자신의 현실이 수치스러워 빨리 끝내고 가려는 윽박지름과 분노뿐이었지만, 자신들의 정체가 들킨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보통이 아닌 놈이구나.”
“뭘 새삼스럽게. 우리 청성채 산적님들은 털어먹으려는 게 누구인지도 조사하지 않고 나오셨나?”
“이놈이 끝까지!!”
극에 이른 깐족거림은 차갑게 식던 이성도 다시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래, 네놈들이 우리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된 거, 다 쓸어버리는 수밖에.
“쳐라!”
검을 뽑아 들고 소리치는 진혁수의 외침에 뒤쪽 청성의 제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얘들아, 손님 오셨다. 맞아드려라.”
당유혼은 재빨리 뒤로 빠졌다.
그 모습에 당지명이 당황해 그를 불렀다.
“대, 대형?”
“뭐.”
“어디… 가십니까?”
“이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나서리? 이젠 니들 선에서 좀 처리해라.”
그러고는 곧장 광세운이 올라탄 수레 옆에 앉았다.
“난 우리 단주님 지켜야 하니까.”
“아니, 뭐 이런?!”
그 모습에 당황하는 방계들이지만, 뭐라고 할 틈은 없었다. 이미 당유혼의 광역 도발에 제대로 걸린 청성파 제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하…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당지명은 결국 다시금 앞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다들 진법을 펼치고 응전해라!”
방계들은 저마다 연습한 대로 세 명이서 짝을 지어 삼재진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대응한 것은 광운대주 역시 마찬가지.
“전원 응전하라!!”
아직 당유혼만큼 정확히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전투가 벌어졌으니 할 일은 하나뿐.
상행을 지키기 위한 차양당, 광운대와 위장한 청성파의 제자들이 맞부딪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