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61화 (61/350)

61화

번쩍―

높이 들어 올려진 검 끝이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반사하며 빛을 냈다.

처형인 망나니의 그것과 같은 검극이 빛을 발하는 순간,

슈슈슝!

갑작스레 무언가 날아드는 것을 느낀 진혁수는 혀를 차며 검을 휘둘렀다.

카카캉!

갑작스러운 기습이지만 진혁수는 어렵지 않게 그것들을 쳐냈다.

‘젓가락?’

이후 자신이 베어버린 것들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놈의 거지 문파. 던질 게 없어서 나무젓가락이나 던지고 있나?”

“그러는 그쪽은 얼마나 처먹을 게 없으면 거지 문파를 털어먹고 있지?”

젓가락을 던진 존재, 당지명이 걸어 나오며 그 말을 받아쳤다.

“털어먹다니……!”

그 말에 자존심이 구겨진 진혁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딴 건 관심도 없다! 그냥 놔두고 꺼졌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응, 개소리죠?”

다만 돌아온 반응은 신랄했으니.

“병신. 산적 새끼도 짐만 놔두고 가라고 하는데 뭔 헛소리야?”

“내버려 둬요. 복면까지 써놓고 고고한 척하는 거 보면 뻔하죠.”

어느새 따라붙은 당율기까지 합심하며 그들의 대형에게 배운 필살 아가리술을 놀려댔다.

“이, 이놈이?”

그 말에 진혁수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명문 정파 청성파에 들어가 평생을 수련만 해온 그가 언제 이런 저속한 말을 들어봤을까?

막말에 면역력이라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청정수 진혁수의 눈에 불이 켜졌다.

“아주 천박한 언변이구나. 그래, 하나가 안 되니 둘이서 덤비겠다는 것이냐?”

“둘이라니, 이 자식아…….”

그때 그 사이로 끼어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하나.

“셋이야. 나까지 포함해서.”

끄응차―

몸을 일으킨 당불퇴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두 주먹을 쥐었다.

“몸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걱정 마쇼, 형님. 아직 더 싸울 만하니까.”

“아니, 거치적거리니 저리 가달라는 말이다만.”

“…….”

맵다, 매워. 한때는 형제애로 가득하던 당가가 언제 이 꼴이 돼 버린 걸까.

처맞을 때도 나지 않던 눈물이 안구를 채우는 기분에 당불퇴는 애써 소리쳤다.

“나 못 믿소, 형님? 나 당가의…….”

“패배의 상징이지 않느냐.”

“너만 끼면 질까 봐 무서운데.”

개자식들아…….

진짜 오늘 형님이고 뭐고 계급장 다 떼고 한판 뜰까 싶은 당불퇴였다.

그리고,

“이놈들이 감히… 나를 앞에 두고 만담이나 나누고 있느냐?!”

어느새 펼쳐진 형제들의 대화에 무시 받았다는 생각이 든 진혁수가 살기를 피워올렸다.

그 기세를 무척이나 살벌해서 순간적으로 방계들을 움찔하게 만들었고, 당지명 역시 긴장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안 되겠군. 유혼진으로 간다.”

“응? 진심이시오, 형님?”

“저자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각오로 임해야 될 상대는 맞다.”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당불퇴와 당율기는 이내 자리를 잡고 천천히 귀원일기공을 운용했다.

우우웅―

그들 삼 형제를 축으로 기의 흐름이 생성되었고, 그 가운데에 있던 진혁수는 문득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뭐야, 왜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거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확실히 체감되는 수준이었다.

“이놈들, 무슨 사술을 부리는 거냐?”

“사술은 무슨. 니들이 모르면 다 사술이냐?”

“…흥, 그래도 한때는 명문이라 부르던 것들이 몰락하니 아주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와, 이 자식. 자기 할말만 하네?”

“됐다, 사술이나 쓰는 놈들과 섞을 말은 없다!”

파팟!!

갑작스레 몸이 무거워졌음에도 진혁수는 개의치 않고 당지명을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쾌속한 움직임에 당지명은 가까스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냈다.

‘광운대주보다 몇 배나 빠르고 강하다.’

새삼스레 체감하니 그 위력이 실감이 났지만, 그에 당황하기보다는 정신을 집중하며 두 손을 움직였다.

원(圓).

몇백, 몇천 번이나 그려낸 그것이 고아한 궤적과 함께 만들어졌다.

한쪽 손으로는 진혁수가 내뻗었던 검의 측면을 때려 빈틈을 만들고, 반대편 손은 그 틈을 향해 찔러 넣었다.

“흥!”

완벽한 반격이었으나 진혁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숙여 피해 냈다.

우웅―

다음 순간, 진혁수의 검이 떨리더니 푸르스름한 기운을 맺었다.

‘저건, 검기(劍氣)……?’

고강하게 쌓은 내공이 외부로 뿜어져 칼날과 같은 형상을 이룬 것. 그게 휘둘러지는 순간 당지명은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검격이 두 눈에 또렷이 보였다.

그건 너무나 느려서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세상이 느려진 만큼 당지명 스스로도 느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주마등.

죽음에 이르러 세상이 느리게 보인다더니… 당지명이 저도 모르게 체념을 느끼는 순간,

“으라챠!!!”

외마디 외침과 함께 달려든 당불퇴가 진혁수의 측면을 덮쳐왔다.

그 순간, 무언가 깨져나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당지명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진혁수는 짜증스럽게 검을 회수해 당불퇴를 향해 휘둘렀고, 옆구리가 크게 베인 당불퇴는 피를 흩뿌리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불퇴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당지명이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당불퇴는 오히려 괜찮다는 듯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버럭 소리쳤다.

“정신 안 차려요, 형님?!”

고통에 일그러지면서도 그 투지는 변함없는 당불퇴의 모습에 당지명은 순간 우두망찰하여 그 자리에 서버렸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그 끝에 묻은 피를 흘려낸 진혁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놈, 정말 당가 출신이 맞나? 멧돼지가 따로 없군.”

“하…….”

그 말에 당지명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당가가 맞냐라.’

당지명은 당불퇴가 부러웠다.

조금 전, 진혁수의 검에 맺힌 검기는 분명 자신도 보고 녀석도 보았을 텐데, 자신은 겁먹어서 움직이지도 못할 때 당불퇴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패배의 상징이니 뭐니 해도, 그 깡과 배짱은 자신보다 저 녀석이 나았다.

그러니까…….

“불퇴야.”

“킁, 뭐요?”

“전위(前衛)를 맡아다오.”

“이 몸뚱이로?”

“그래.”

팔뚝에 하나, 옆구리에 하나, 허벅지에 하나. 벌써 세 군데에 자상을 입은 당불퇴에게 선두에서 진혁수와 맞서 싸워달라고 한다.

그건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데?”

끌리는 요구 사항이구만.

당불퇴는 낄낄 웃으며 두 주먹을 들었다.

무리한 부탁인 듯하지만, 그 목소리가 조금 전 얼 타는 당지명의 모습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실로 짐승 같은 놈들이군. 보아하니 저 녀석이 네놈보다 아랫사람 같은데… 부상까지 입은 녀석을 앞에 세우겠다고?”

“킁, 그 칼질을 직접 한 양반이 그런 말을 하는 건 둘째 치고…….”

가볍게 핏물 섞인 콧물을 푼 당불퇴가 씨익 웃었다.

“우리 당가가 좀 야수성이 짙긴 하지!!”

그 말과 함께 당불퇴는 다시 한번 돌격했다.

세 군데 자상을 입은 부위에서 욱신욱신한 통증이 치솟았지만, 그쯤은 깔끔히 무시하며 죽어라 익힌 무공, 차양십이수를 펼쳤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뇌명타(雷鳴打).

차양십이수가 가진 열두 가지 성질의 수법 중 쾌(快)를 상징하는, 가장 빠른 일수가 내뻗어졌다.

쩌엉―

“흥!”

하지만 그조차도 진혁수는 기민하게 반응해 검면으로 받아냈다.

“제법 빠르지만, 같잖은 수준이구나!”

그러고는 역으로 반격하기 위해 검을 휘둘러 왔다.

“헉?!”

도저히 반격할 겨를도 없어 당불퇴가 헛숨을 들이켜는 순간,

카캉!!

절묘하게 날아든 젓가락이 진혁수의 검을 요격해 빈틈을 만들어 냈다.

‘이건!!’

당지명의 적절한 조력!

그것을 깨닫자마자 당불퇴의 양손이 움직였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큭……!”

때려 박은 연타가 차례로 진혁수의 검면, 검을 잡은 팔, 가슴팍을 두들겼다.

첫 유효타를 먹여 진혁수를 물러나게 한 당불퇴는 옳다구나, 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림없다!!”

검을 휘두를 틈이 나지 않자 진혁수는 그대로 검을 당긴 채 어깨를 앞으로 내밀며 마주 돌격했다.

“커헉!”

그러고는 당불퇴의 명치에 어깨치기를 박아넣었다.

진혁수의 체구는 호리호리했지만 웅혼한 내력이 담기자 갈비뼈가 다 박살 날 것만 같은 충격을 선사했다.

그렇게 당불퇴가 나가떨어지고, 진혁수는 시선을 당지명에게로 돌렸다.

“귀찮은 젓가락쟁이, 너부터 베어주마!!”

‘젓가락쟁이라니…….’

그것참, 위험한 소리잖아.

당지명은 빨리 이 위험한 녀석을 처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쪽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대형이 이 녀석이 지껄이는 말들에 잔뜩 화가 나 나중에 왜 이렇게 꾸물거렸냐고 성질을 부릴 것 같았으니까.

당가암기술(唐家暗器術), 폭우시(暴雨矢).

파파팟!!

양 소매 사이로 수십 발의 암기들이 퍼부어졌다.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암기 세례에도 진혁수는 꿋꿋이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내며 전진했다. 거의 야차(夜叉)와 같은 모습으로 돌격해 검을 내리그었다.

“큭!!!”

당지명은 그것을 두 팔을 겹쳐 막아냈다.

그의 팔등에는 각반이 착용되어 있었는데, 가죽을 덧대고 그 위에 철판을 붙여 칼날로 막아낼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끼기긱―

“흥, 고작해야 그걸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검기가 시퍼렇게 서려 있는 검은 조금씩 조금씩 철판을 가르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 시린 감각이 서슬 퍼렇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당지명은 빙긋 웃었다.

“버틸 생각 없어.”

“뭐?”

“우리가, 이길 거니까.”

“으랴차!!”

그 순간 시기적절하게 날아든 옆차기가 진혁수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크허억……!!”

쿠당탕!!

“이, 이 개자식아……!!!”

이게 대체 몇 번째일까. 모든 게 화가 났다.

아직도 이 상황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났고, 같은 수법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도 화가 났고, 그 끝에 결국 한 방 을 얻어맞아 버린 자신의 한심함도 화가 났다.

거칠게 몸을 일으킨 진혁수가 낙엽 조각이 붙어 엉망이 된 몰골로 소리쳤다.

“진짜 죽여 버리겠…….”

한데, 그 순간,

휘청―

진혁수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마치 물속에 흩뿌린 먹물과 같이, 그 경계가 흔들리고 뒤섞이는 감각 속에 저도 모르게 앞으로 반걸음을 휘청거렸다.

‘이, 이건…….’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진작에 끝냈어야 할 전투를 이리 지지부진하게 이끌어온 것도, 자신보다 몇 수는 아래인 상대와 몇 번이나 수를 교환한 것도, 그리고 아까부터 몇 번이나 몸을 날려오는 짐승과 같은 저 녀석의 공격을 마침내 허용해 버린 것도…….

“설마…….”

부릅뜬 눈에 불신을 담고 쳐다보는 그때,

“이제야 슬슬 효과가 오시는군요.”

자신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둘 사이에 가려져 있던, 분명 함께 덤빈다던 셋 중 마지막 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너, 너는…….”

“제 이름은 당율기.”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가 녹색 빛이 도는 손을 까딱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영광인 줄 아십시오. 본가의 독류진(毒流陳)을 처음 견식한 것이 당신이란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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