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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64화 (64/350)

64화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까마귀는 시체를 파먹고 살아가는 날짐승. 그런 까마귀가 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까마귀 떼들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무리를 무수히도 불러왔던 이들, 추풍대가 바로 그러했다.

“저 새들은 질리지도 않나? 끝도 없이 따라오는군.”

“내버려 둬라. 우리만 따라오면 저들 입장에서는 잔치가 벌어지니 어쩔 수 있겠느냐.”

“크크크, 그건 또 그렇습니다요.”

추풍대주 갈무흔. 그는 부하들에게 농을 던지고는 천천히 자신이 만든 경관을 감상했다.

‘멋지군.’

속으로 나지막이 뱉은 감상과 달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실로 끔찍한 풍경이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 하나 같이 등 뒤에 큼지막한 상처를 남기고 쓰러져 있는 그 모습은, 아무도 저항하지 못한 채 도망치다 참변을 당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삐걱―

그리고 그런 사체들이 널린 마을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리고 건물 사이로 남성 몇몇이 빠져나왔다.

“에잉, 개털입니다요.”

“여기도 마찬가지야.”

“금붙이는 무슨, 패물 하나 찾아보기가 힘드니…….”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부하들을 보며 다른 추풍대 마적 하나가 낄낄거렸다.

“그럼 이런 무지렁이 촌 동네에 뭐가 있겠냐?”

이러한 참극을 만들고서도 그들에게는 죄책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추풍대는 애초에 이런 인간들이었다.

유목민족처럼 말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헤치고 그들의 제물을 탐하는 승냥이들.

그리고 그 승냥이들의 우두머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꽤 돈이 되는 소식을 가져왔으니까.”

“오호, 정말입니까?”

“그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도를 휙휙 휘두른 갈무흔은 그 끝으로 저 머나먼 방향을 가리키며 한 상단의 이름을 말했다.

“광형 상단.”

“다음 사냥감의 이름입니까?”

“그 지역에서 삼백 년 동안 지역 유지 노릇을 해왔다는 상단이다. 역대 상단주라는 놈들이 외부로 확장시킬 생각 없이 자기네 동네에서 왕 노릇 하고 살아왔기에 곳간이 아주 두둑하다는군.”

그 말에 승냥이들의 눈이 희게 번뜩였다.

“크흐흐, 멍청이들이군요.”

“먹잇감의 운명을 타고난 놈들이구만.”

추풍대. 북방의 거친 바람을 스스로의 상징으로 걸은 그들에게 있어 한 지역에 정착해 안주하는 이들은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초식 동물로 보였다.

결국 자신들과 같은 육식 동물들에게 먹히는 게 타고난 운명인, 그런 먹잇감!

군침을 질질 흘리는 부하들을 보며 갈무흔 역시 탐욕 어린 시선을 던졌다.

‘쌓아놓은 게 많으니 귀한 약재들을 구하기 좋겠지.’

세력 다툼에 밀려 도망치느라 제대로 된 치료도 하지 못한 상처가 욱신거렸다.

‘감숙이라… 그래,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단순히 먹히기만 하는 게 초식 동물의 삶이라면, 먹고 또 먹히는 게 육식 동물의 삶이다.

비록 지금은 힘이 없어 패퇴했지만, 다시금 힘을 길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피를 토하며 맹세한 권토중래를 떠올리는 그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 * *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미 그들에게 당한 마을의 수가 여섯 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허…….”

광형 상단의 소상단주실.

이제 나름대로 개인 집무실까지 얻은 광세운은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적 떼가 이리 갑작스레 창궐하다니…….”

추풍대. 무림에선 야차전의 여덟 번째 전장으로 불리지만, 이곳 북방에서는 상당히 악명 높은 마적 떼로 유명했다.

“관아에 협조 요청은 해보셨습니까?”

“일단 하기는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좋지는 않습니다.”

소식을 직접 가져온 광운대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추풍대 자체가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잡기 힘든 놈들인데, 별다른 근거지 없이 말을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관아에서도 병력을 차출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후… 어렵군요.”

일반적인 마적 떼가 아니라 무공을 익힌 마적 떼다.

관아에서 포졸 몇십 명 데리고 간다고 상대하기도 쉽지 않은데, 다른 무림 문파처럼 관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놈들이라 그들을 토벌하려는 관리는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하필 그들의 행적이 저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하니…….”

어쩌면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 광세운은 쌓인 문서들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혹시, 그들은 이 소식을 알고 있습니까?”

“당가의 손님분들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난감한 일이긴 하네요.”

마적 떼의 습격 사실을 듣고 가장 좋은 경우는 그들에게 도움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추풍대가 어디 단순한 마적 떼도 아니고, 당가의 입장에선 곧바로 도망쳐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단주님. 혹시… 상행을 대가로 거래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상행을 개시할 테니 이번에 전투가 벌어지면 도와달라고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서로가 상호 도움이 되는 거래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는 광운대주이지만,

“대주님.”

탁―

읽던 서책을 덮은 광세운은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거래가 아닌 협박일 듯싶군요.”

“다, 단주님?”

“당가에게 있어 상행을 트는 것은 갇힌 상황에서 활로를 여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 상인으로서 조건을 따져보며 대담을 나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약점으로 삼아 이번 일에 목숨을 걸어달라고 하는 것은 상도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랬다가는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서 불호령을 떨어트리실 것 같기도 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말을 하며 농담처럼 얕게 웃어 보이는 광세운이었지만, 광운대주는 후자는 그저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던진 말일 뿐, 전자가 진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양면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뿌듯함.

‘훌륭하게 자랑하셨구나.’

어릴 때부터 봐온 광세운은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이리 훌륭한 모습을 보이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 번째로 드는 것은 불안함이었다.

‘그런 분이기에, 이번 일은 더더욱 힘드실 텐데…….’

앞으로 닥칠 겁난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말 못 할 걱정만을 품어가는 그때…….

“…그게 정말이더냐?”

광운대주가 내심 도움을 바랐던 당가의 방계들 역시 결코 좋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들은 소식입니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추풍대에 대한 소문은 저잣거리에도 알음알음 퍼졌으니,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겠다고 나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온 방계 하나의 말에 당지명의 이마에 깊은 홈이 파였다.

“허… 추풍대라.”

구패, 그리고 야차전이란 이름은 현 무림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는 이름이다. 거기다, 야차전처럼 악명 높은 이들이라면 웬만하면 모를 수가 없다.

“그 흉악무도한 것들이 감숙 땅에 발을 들이밀었다니…….”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혹여, 그들을 찾아가 토벌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누군가 불쑥 물은 말에 당지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리다. 우리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일뿐더러, 그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는다고 한다더구나. 우리로서는 잡을 수도 없는 놈들이다.”

사파에서도 특히나 그 죄질이 심한 이들이 패악질을 부리며 양민을 괴롭힌다는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전부 징치할 수는 없다.

당지명이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말했지만,

“형님.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님을 알지 않습니까.”

가만 듣고 있던 당율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칼날이 이곳, 광형 상단으로 향했을 때의 대처를 묻는 것입니다.”

“그건…….”

현실을 얘기하는 척했지만, 당율기는 애써 현실에서 눈 돌리려던 당지명에게 강제로 현실을 마주 시켜주었다.

“…후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실 알고 있다. 광형 상단이 얼마나 노리기 좋은 곳인지를. 그렇기에,

“…잘, 모르겠구나.”

당지명은 어떤 말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막는 게 맞다.’

만약 당지명이 여기 혼자 있었다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들을 막겠다고 나섰으리라.

하나,

‘막는 게… 맞을까?’

이곳에 있는 당지명은 이곳에 있는 방계들을 대표하는 차양당의 당주다. 하지만, 당유혼이 오기 전까지는 이들의 대형이었던 사람이다.

‘나 한 명만의 알량한 협의지심으로… 이 녀석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게 맞는 걸까……?’

당지명은 차마 그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

이 무거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당지명 주제에 말이야.”

“…대형.”

그들의 어리디어린 대형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당지명은 양면적인 감정이 머리를 드는 것을 느꼈다.

첫 번째가 의지할 수 있는 이를 본 것에 대한 안도감이라면, 두 번째는 스스로가 안도감을 느낀 것에 대한 자기혐오였다.

‘큭…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냐?’

스스로 내려야 할 선택을 포기한 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이는 자신보다도 더 어린 당유혼에게 선택을 떠맡기려 했다는 사실이 극심한 자기혐오를 불러왔다.

그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왜 궁상을 떨고 있어? 네가 맨날 소리만 질러대는 우리 총관이야?”

한결같을 정도로 예의는 밥 말아 먹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전에 울려 퍼졌다.

“대형…….”

결국 힘없이 그를 부르는 당지명의 앞으로 당유혼이 저벅저벅 다가와 섰다.

“말해. 듣고 있으니까.”

“저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수많은 말들이 응어리져서, 결국 어떤 말도 하기 어려워 한참을 침묵하던 당지명은 끝끝내 탄식과 다름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저는… 이렇게도 비겁합니다.”

“비겁하다?”

“추풍대라는 마적 무리가 이곳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형 상단에게 신세 진바, 그들과 함께 맞서 싸워야 하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뜬 당지명은 힘겹게 마지막 말을 뱉었다.

“…너무나 두렵습니다.”

두렵다라.

그 물음에 당유혼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당지명을 응시하며 물었다.

“뭐가 두렵지?”

“…예?”

“마적 떼가 두려운 거냐, 아니면 저 녀석들이 다치게 되는 게 두려운 거냐?”

“저는…….”

잔인한 질문이다.

파헤치는 듯한 고통스러운 질문, 하지만 당지명은 끝끝내 답할 수밖에 없다.

“…저 녀석들이, 이제 빛을 보게 될 저 녀석들이… 제 꿈도 펼치지 못한 채, 이런 외진 곳에서 부질없이 죽어갈 것이… 너무도 두렵습니다…….”

가난하게 살아왔던 당가다.

빈곤하고, 처절하고, 하잘것없이 살아왔던 당가였고, 이제야 겨우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다고?

“저는… 저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당유혼은 스스로의 비겁함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해 뒷말을 꾹 삼키는 당지명을 바라보다 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삼십 년의 긴 시간. 자신이 이 시대에 부활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당유혼이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원망한 하늘이지만…….’

어쩌면 지금은 조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이 후손에게, 당유혼은 비죽 입꼬리를 틀고 물었다.

“왜, 사람이 조금 비겁하면 안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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