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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66화 (66/350)

66화

【 웃기지 마 】

자, 생각해 보자.

사천당가 차양당과 광형 상단 광운대 연합 대(對) 추풍대의 살귀(殺鬼) 무리.

이 둘이 일전을 벌인다고 가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선 전력적인 측면.

차양당의 인원이 서른셋이고 광형 상단의 광운대는 일백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이 합쳐도 백 오십이 안 되는데, 추풍대는 그 인원이 이백이 넘는다고 한다.

무공 수준을 제쳐두더라도 연합의 열패.

그렇다면 다음은 무공적인 측면.

아무리 개조를 거쳤다지만 이제 막 기본 공을 떼고 있는 것이 차양당이고, 중소문파 수준의 무공을 연마한 것이 광운대.

그렇다면 추풍대는?

‘실전에서 갈고 닦은 살검(殺劍)을 익혔지.’

부딪치면 양 떼를 도륙하는 늑대처럼 추풍대가 날뛸 게 뻔하다.

그렇다면 경험적인 측면은?

이건 아예 비교할 수가 없다.

이제 막 첫 실전을 치른 차양당과 고작해야 산적 떼와 몇 번 부딪친 게 고작인 것이 연합이라면, 지금까지 북방의 마적 떼로서 무수한 실전을 거치고, 온갖 험로를 걸어온 것이 추풍대다.

‘즉, 전략, 무공, 경험 모든 게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절망적인 현실.

그럼에도 당유혼은 한 가지만은 우위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놈들을 알지만, 놈들은 우리를 모르지.’

정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전쟁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빛을 발하는 거대한 변수.

그걸 극대화해야만 당가와 광형 상단의 연합이 승리를 거머쥘 확률이 높아진다.

때문에 당유혼은 어느 포목점을 향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자면 그렇게 특출난 곳 하나 없는 평범한 포목점일 테지만, 그 정체는 무림 삼대 정보 집단 흑점의 비밀 지부였다.

‘힘이 부족하면, 머리라도 써야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추풍대라는 놈들이 뭐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분명 약점이라 할 만한 것은 있을 테고, 그걸 알아내면 유의미한 전략이라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포목점 안으로 들어선 당유혼은 입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 자식.”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내공을 쏘아내는 기예였고, 그게 곧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어디서 오라 가라야?’

멀리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당유혼은 곧잘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곧 구석진 공간에 도착했고, 뒤쪽으로 천막 같은 게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주변이 어둠으로 휩싸였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중앙에 촛불이 켜지더니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온도가 느껴지는 무심한 인상의 사내, 흑상이 등장한 것이다.

“다시 뵙습니다, 고객님.”

“고객은 개뿔. 보안 절차는 어디다 팔아먹는 거냐?”

암구호는 개나 줬어?

“이미 구면인 고객님께 귀찮은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지요.”

“흥, 내가 꼬리를 달고 왔으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당유혼의 물음에도 흑상은 덤덤하게 흘려넘기며 되물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사천의 패자, 용독문을 하룻밤 만에 멸문시킨 고객님께서 말입니다.”

‘다 알고 있다, 이거지?’

어째서 자신이 여기 왔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미 상대가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당유혼은 자세를 바로 하며 앉았다.

“좋아.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

“말씀하시지요.”

“추풍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얼마지?”

“추풍대라…….”

똑… 똑똑… 똑…….

그 질문에 흑상은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 소리가 마치 주판을 굴리는 것과 같다 느낄 때, 흑상이 당유혼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그 주머니에 드신 것은 은자입니까?”

“그렇다면?”

“다 주시지요.”

주머니의 크기는 성인 남자의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컸다. 못해도 작은 마을이 몇 달을 먹고살 만한 액수일 텐데도 그걸 요구하는 모습에 당유혼은 가볍게 주머니를 풀어 탁자 위로 올렸다.

“좋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승낙.

그에 흑상은 주머니를 받아 가더니, 이내 품 안에서 서책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원하시는 정보입니다. 열람이 끝나시면 중앙의 촛불에 태워주십시오.”

“두껍네.”

이미 다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두께.

그 내용물을 펼쳐보니,

[성명 갈무흔

나이 마흔둘

별호 추풍대주(麤風隊主), 잔학낭도(殘虐狼刀).

사용 무공 추풍도법(麤風刀法) 팔성(八成) 성취 추정.

…(중략)…

전 야차전 제팔전 추풍대의 주인이었으나, 서열전에서 패배하며 추출됨.

서열전의 여파로 좌완(左腕)에 부상을 입음.

그 여파로 추풍도법의 십이 초식 중 후반 육 초식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추정 중.

…(중략)…

이끌고 있는 부하로는…….]

‘…역시.’

흑상. 비싸서 그렇지, 돈값 하나는 확실히 하는 놈들이다.

무림 집단은 대개 자신들의 무공에 대해 폐쇄적이고, 어지간한 곳은 자신들의 연무장 역시 보안 장소로 취급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감추는 곳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익힌 무공에 대한 정보는 기본에 그걸 어느 수준까지 성취하였느냐와 개개인이 입은 부상 수준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고?

‘과연, 흑점이다, 이거지.’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놀라워 감탄이 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탁― 하고, 책을 접은 당유혼은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흑상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이냐?”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머저리로 보이냐?”

확실히 대단한 놈들이다. 돈만 주면 그날 황제가 입은 속곳 색깔까지 알려준다는 돈 귀신 놈들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금액과 정보의 가치 평가가 확실하다.

“돈만 주면 뭐든 알려준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에 대한 가치 판단이 확실하다는 뜻이지. 한데, 내가 지불한 은자가 우리 당가 거지새끼들 일 년 예산이기는 했어도… 이 정도 값어치를 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거든.”

뭘 꾸미는 거냐는 듯한 의심의 눈초리가 쏘아지자 흑상은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불신이 강하시군요.”

“그럼, 내가 사파 새끼들을 믿겠냐?”

뿌리 깊은 사파 불신!

“그렇군요.”

그럼에도 흑상은 한결같은 어조로 되물었다.

“그럼, 초과하는 정보료 대신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미쳤냐? 내가 니들 부탁을 들어주게?”

“그렇군요. 그럼 이걸 읽어주시겠습니까.”

이 자식이?!

너는 짖어라, 나는 내 할 일 하겠다. 거의 그런 모습으로 꿋꿋이 서책 하나를 내밀어 오는 모습에 당유혼의 인상이 왈칵 찌푸려졌다.

‘이건 또 뭐야?’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표지의 책자.

“이건 또 무슨 뜻이지?”

“읽어보시면 압니다.”

주인을 꼭 닮은 책자에 대해 흑상은 일언반구, 추가적인 말이 없었다.

그저 볼 테면 보고, 말라면 마는 듯한 모습에,

‘…쯧.’

속으로 혀를 차며 서책을 펼쳐 들었다.

그 안에 든 것은,

“너… 이거 뭐냐?”

“무엇이 말입니까?”

“이건… 추풍대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잖아.”

사납게 내려놓는 서책.

그 안에 적혀 있는 것은,

“청성파 장로 선현진인, 사천의 유지와 유착 관계. 아미파 장로 보현신니, 사천 고위 관료의 딸을 제자로 받아들여 특별한 혜택 제공. 점창파 일 대 제자, 사설 도박장에 관여…….”

사천삼주의 치부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딴 걸 내게 주는 이유가 뭐지?”

단전에서 내공이 일었다.

서릿발과 같은 기세가 쏟아졌지만, 흑상은 여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냐고?”

이 자식 봐라.

“아니,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여기 적혀 있는 하나하나가 사천삼주에게는 큼지막한 흠집이 될 만한 거리였다.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 무기로 쓰자면, 어떤 보검에도 비견할 만한 것은 확실하다.

‘그래, 분명 그렇긴 한데…….’

“그런데 그게 의도도 알 수 없는 네게 놀아나도 유쾌할 이유는 되지 않잖아?”

그래서, 이걸 내게 넘긴 이유가 뭐냐고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당유혼의 모습에도 흑상은 아무렇지 않게 서책을 받아 들었다.

“흐음, 이 정도면 그래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타까운 소리 하고 있네. 무슨 생각인지 말하라고.”

“무슨 생각이라…….”

그것을 중앙의 촛불에 갖다 대어 불을 붙이며 덤덤하게 답했다.

“당연히, 나쁜 생각 중입니다.”

“…뭐?”

“저는 전쟁 상인입니다. 흉계를 꾸미고, 혼란을 종용하며, 그 사이에서 정보의 선점으로 이득을 취하지요.”

‘이 자식…….’

아주 위험한 놈이로구만?

지금까지 여러 흑상을 보아온 당유혼이지만, 지금 이 순간 하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공 수준의 고하와 상관없이, 이놈은 자신이 본 정보 상인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큼 위험한 놈이라고.

‘이제 알겠군. 애초부터 이 녀석은 추풍대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어. 이 정보를 내게 알리려는 게 목적이었구나.’

사천삼주의 치부와 관련된 것.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됐다면 자신은 분명 그 정보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 당장 미래의 변수 몇 가지를 눈앞의 흑상이 선점하게 되는 것이고.

“가능하면 동맹을 맺고 싶기도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업을 한다… 정도가 되겠군요.”

“…내가 할 것 같냐?”

“하오문과는 이미 손을 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거기까지 안다, 이거지?

울컥―

‘아니, 하윤호 이 새끼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정보 집단이란 놈이 지들 정보가 풀풀 새어 나가는 것도 관리 안 하고!

머나먼 곳에 있는 하윤호를 열심히 씹어대고 있을 때,

“하지만, 역시 안 되겠지요?”

서책들을 완전히 태워 버린 흑상이 그 재를 쓸어내며 고개를 까딱였다.

“말이라고 하냐?”

“그렇군요.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는 없는 것으로 알고, 거래를 종료할까 합니다.”

끝까지 표정 변화 없는 얼굴.

당유혼은 천천히 그 얼굴을 살폈다.

분명 저 얼굴 역시 가짜 가죽을 덧댄 인피면구일 테지만,

“너… 이름이 뭐냐?”

그 모습을 잊지 않겠다는 듯 물었다.

“한낱 상인에게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개라 불러주십시오.”

물론,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당유혼은 그의 기세를 완전히 기억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널 기억하지.”

“영광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헤어진다.

그렇지만 왠지, 또 보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추풍대와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가의 방계들은 당유혼이 보여준 것을 흉내라도 내기 위하여 하루 종일 진법 수련을 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날들을 보냈다.

물론, 진법 수련만 한 것은 아니었다.

“힘이 부족하면 도구라도 써야지.”

당유혼은 당가로 온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암기 사용을 수련시켰다.

“차양십이수를 익혔으니, 별달리 새롭게 익힐 건 또 없을 거다.”

차양십이수는 주먹을 다루는 권법(拳法)도 아니고, 장을 때려 넣는 장법(掌法)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손을 쓰는 법을 수련하는 수공(手功)이었다.

당유혼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니들이 놀고먹지만 않았으면 너희들이 익힌 암기술도 자체적으로 개량할 수 있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방관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이 새끼야! 누가 암기를 그따위로 쥐고 있으래!!”

어? 어? 손 놓네? 힘 빠지네?

“이야, 잘 던진다! 그렇게 하면 마적 떼 머리에 박히기는 할까? 이리 줘봐, 내가 한 번 니 머리에다가 확인해 줄게!”

틀린 방계가 가까이 있으면 두들겨 패주고, 멀리 있으면 친히 젓가락을 던져주는 등, 바쁘디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

까악―

검은 새 한 마리가 광형 상단으로 날아들었다.

턱―

“…이건.”

전서구(傳書鳩).

그것이 흑점에서 사용하는 정보 전달용 새인 흑조(黑鳥)라는 것을 알아챈 당유혼은 새의 발에 매달린 쪽지를 확인하고는 하― 하고 숨을 내쉬었다.

“친절하기도 하군.”

[추풍대. 사흘 후 황산 계곡 도달 예정.]

이젠 진짜 시작이다.

준비는 할 만큼 했고, 그걸 펼쳐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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