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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68화 (68/350)

68화

‘날 여기서 사냥한다고?’

상상도 못 한 그 말에 갈무흔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큭… 크크크… 크하하하하……!!”

미친 듯 터져 나오는 광소!

“재밌군, 재밌어.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네놈 따위가 나를 사냥하겠다고?!”

갈무흔은 마적 떼에 습격받은 어느 유목민족 생존자 출신으로, 자신을 납치한 마적단에서 자라났다.

마적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고,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며 꾸역꾸역 기어올라 마적단을 차지했다.

그 이후도 결코 쉽지 않은 생존 투쟁의 연속!

숱한 이름난 고수들의 목을 베며 여기까지 왔고, 그 과정 중 수없이 많은 악명을 쌓았다.

그런 갈무흔이었기에, 고작해야 스물도 되지 않아 보이는 당유혼이 자신을 사냥한다는 말에 무언가가 뚝― 끊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분노가 끓어 올랐다.

“이 건방진 애송이가!!!”

미친 듯 웃던 그가 돌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 아가리를 찢어주마!!!”

부웅―!

거대한 박도가 살벌한 소리를 내며 휘둘러졌다.

기습적인 일격이지만, 당유혼은 뒤로 물러서며 두 팔을 휘둘렀다.

당유혼의 소매 품에서 대여섯 개의 비도가 쏘아져 날아왔고, 갈무흔은 코웃음을 치며 박도로 그것들을 쳐냈다.

“이 정도로는… 큭?!”

쩌엉―

처음 서너 개의 비도를 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섞인 한 개의 비도에는 가볍게 지나치기 힘든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함정……!’

상대방이 자신을 방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몇 개를 가볍게 던지고 이후 진짜를 던졌음을 깨달았을 때는 자세와 균형이 어긋나 있었고, 당유혼은 그 틈을 노렸다.

푸슉!

팔뚝을 스쳐 간 단검의 궤적이 핏물을 흩뿌렸다.

화끈한 통증!

“아깝네.”

스스스…….

스쳐 지나가며 팔뚝을 그어버린 당유혼이 천천히 고개를 돌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팔을 잘라 버리려 했는데.”

고작해야 세 치 정도의 깊이.

‘마지막에 몸을 돌려서 피해 낸 반응. 거의 짐승 같은 반응 속도구만.’

기습의 이득을 살리지 못함에 영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큭… 크크크…….”

팔뚝을 베인 갈무흔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뭐야? 실성했냐?”

“크… 크크… 재밌군, 재밌어… 아주 재밌어……!”

구구구…….

한쪽 팔에 피를 흘려대면서도 광소를 터트리는 갈무흔.

원래의 당유혼이라면 미친놈은 매가 약이라며 단번에 달려들어 주먹으로 턱을 돌려 버렸겠지만, 지금은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산간벽지에, 나를 재밌게 해줄 놈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자식…….’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살기와 광기, 혈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며 당유혼은 단전 아래에서도 난리를 쳐대는 녀석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 지금이냐…….’

용독문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엎친 데 덮인 격으로 마기(魔氣)를 처먹은 탐(貪)은 그때부터 더 날뛰고 있다.

‘이 자식은 아주 주인을 집어삼키려 드는구만.’

내외로 답이 없는 상황.

그 막막함이 느껴지니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하…….”

좀 늦을 것 같은데.

방계들이 잘 버텨주길 바라며 당유혼은 다시금 비도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 녀석들을 신경 쓰기에는 눈앞에 있는 놈도 결코 만만치 않았으니까.

* * *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숲속에서 함부로 말을 타는 것은 위험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상단주님! 더 빨리 달리셔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대로군요. 벌써 따라 잡힐 줄이야.”

황산 계곡에서 추풍대를 맞이하는 것부터 바닥에 구멍을 뚫고 계곡의 양쪽에서 바위를 굴리는 것까지 전부 당유혼의 계획대로였다.

그렇게 해서 적들을 유인해 내는 것이 현재까지의 과정인데, 당유혼은 이 작전들이 전부 맞아떨어져도 위험할 것이라 경고했었다.

‘그때는 우리들이 방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인 줄 알았건만…….’

저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무시무시한 고함 소리가 적들이 목 밑까지 쫓아왔음을 알려주었다.

“정면 대결로는 절대 답이 없다.”

다시 한번 당유혼의 경고를 되새긴 광세운이 말을 몰며 소리쳤다.

“작전대로 간다!”

이럇―

말 울음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더더욱 거세져 숲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아직은 한참 뒤에서 그 소리가 전해져 오는 것을 들은 추풍대의 일 조장 담우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들! 어디까지 도망치려는 거냐!!”

짜증스럽게 말안장을 차며 질주했다.

숲속을 달리는 속도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지만, 추풍대의 만면에는 폭급함만이 가득했지, 나무뿌리에 걸리거나 나뭇가지에 부딪혀 낙마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없었다.

그때, 곁에서 함께 달리던 구마유가 소리쳤다.

“어이, 담우! 이거 저놈들이 유인하는 것 같은데?”

“흥! 그걸 누가 모르나?”

유인? 저놈들이 그딴 걸 하고 있다는 건 열 살배기 애도 알겠다.

“그래서 유인 따위가 두려워 거의 다 잡은 놈들을 놓치자고? 두려우면 뒤로 빠져라!”

“두려워? 이 자식이 죽고 싶냐!”

“그럼 당장 따라붙든가!”

늑대가 양을 사냥할 때 역습받길 두려워할까?

아까는 습격으로 인해 전방 일 열이 몰살당했으나, 그건 그들 머릿속에서 지워진 사건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죽은 놈은 약해빠진 놈이고 약해 빠진 놈은 죽는 게 약육강식의 섭리였으니까.

그렇게 달리는데…….

“응?”

처음으로 그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나눠진 것 같은데?”

두 갈래 길.

갈라진 길 양쪽으로 말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하… 대놓고 유인한다라……. 진정 우릴 사냥이라도 해보겠다는 거냐?”

잔혹한 미소가 일 조장 담우의 입에 걸렸다.

“발자국이 왼쪽이 더 많군. 내가 왼쪽으로 가지, 넌 오른쪽으로 가라.”

“뭐? 네가 사냥감을 독차지하겠다는 거냐?”

“멍청하긴. 오히려 발자국이 대놓고 적은 오른쪽에 숨겨진 적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일리가 있는 말.

결국 잠깐 고민하던 구마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신 난 내 부하들과 오 조까지만 데려가지.”

‘자존심 부리기는.’

추풍대는 오 조까지 존재한다.

그중 일 조와 이 조가 발언권이 특히 강한데, 자신이 일 조와 삼 조, 사 조를 데려가고 구마유가 이 조와 오 조를 데려간다는 건 일종의 허세와 다름없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 주제를 가지고 한나절을 싸웠겠지만, 지금은 사냥 욕구에 따른 혈기가 다른 것들쯤은 무색하게 만들었다.

“멍청하게 당하지나 말라고!”

외마디를 내지른 뒤 담우는 곧장 왼쪽 길을 향해 질주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느껴지는 게, 이대로 조금만 더 달리면 목표물을 따라잡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는데,

슈슉!

“……!!”

그의 기감에 무언가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곧바로 말머리를 틀며 박도를 휘두르니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날아든 쇠침이 튕겨 나갔다.

카앙―

‘습격?!’

그 사실을 눈치채고 소리치려는 순간, 그들의 전후좌우 사방에서 갖가지 암기가 날아들었다.

“이놈들이?!”

“쳐내라!!”

카카카캉!!

평생을 말 위에서 보낸 추풍대인 만큼, 달리던 자세 그대로 급제동을 이행하며 날아드는 암기를 쳐내는 기예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게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몇몇은 암기에 적중당해 말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으아악!”

“커억!”

‘이놈들이……!’

어디냐.

그의 예리한 감각이 온 주변을 훑었고, 머지않아 좌측 대각선 위 나무 기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곧장 말에 묶어뒀던 손도끼를 꺼내 들고는 그대로 집어 던졌다.

부웅―

살벌한 기세로 회전하며 날아가는 손도끼는 그대로 사람 몸통만 한 나무 기둥에 부딪혔고, 폭음과 함께 그것을 박살 냈다.

검은 그림자가 후두둑― 떨어지는 게 보여 담우는 박도를 꼬나쥐고 그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잡았다, 이 쥐새끼!!”

습격자 하나의 목을 따려는 그 순간,

“어딜.”

측면에서 누군가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흡!”

재빨리 검면을 내밀어 막아내고, 그 충격을 흘리기 위해 세 걸음 물러나서 비죽 웃음을 지었다.

“…크크, 제법이군.”

손아귀에 남는 충격이 제법 묵직하다.

클클, 웃음을 흘리는 담우의 모습에 발차기를 가해 방계 하나의 목숨을 구한 당지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막아?’

급하게 달려들기는 했지만, 거의 사각에서 날아든 일격이었다.

‘처음 기습을 막아낸 것도… 거의 짐승의 그것에 가까운 감각이다.’

적잖이 위기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자니, 담우가 먼저 박도의 끝을 겨누며 물었다.

“크크, 네가 이놈들의 우두머리냐?”

“그러는 너는 이 짐승 무리의 우두머리고?”

“짐승? 흐, 괜찮은 어감이긴 한데…….”

좀 더 쌈박하게 표현하자면…….

“야수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러달라고.”

“…별의별 이상한 놈들이 다 꼬이는구만.”

산적 습격에 이제는 정신 나간 마적 떼의 습격이라니.

“하… 그래도 한때는 나도 낭만이라는 게 있었는데 말이지.”

“낭만? 무슨 헛소리냐?”

“왜 있잖아. 삼 척 장검을 꼬나쥐고 무림을 주유하며 협행을 실천하는 협객의 이야기. 자신과 같은 협객들과 검을 섞으며 풍류를 즐기는 그런 이야기들 속 주인공.”

그런 게 되고 싶었던 적도 있는데……

“개뿔. 부딪치는 놈들마다 너희 같은 미친놈들이라니.”

첫 번째는 용독문의 도둑놈들.

두 번째는 사천삼주의 위선자들.

이제는 북방의 마적 떼들이라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꼬여버린 인생을 한탄하며 반추해 보자면 역시…….

“싯팔. 대형을 만나고 나서부터였어.”

그전까지는 그래도 가난하고 궁벽해도 형제들과 오순도순 잘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형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전장인데 적이랑 사이좋게 아가리나 털고 있으십니까?”

“빨리 안 싸우고 뭐 해요!”

…이젠 저 새끼들이 날 형으로 여기는지도 잘 모르겠다.

“크크크, 우두머리로서 명망이 아주 훌륭한가 보군.”

“시끄러워, 인마.”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방계들이 당지명의 뒤로 섰다.

그에 맞춰 추풍대의 마적들도 담우의 뒤로 도열했다.

“숨어서 덤벼들 줄 알았는데, 모습을 드러내다니.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거냐?”

“나도 내 목숨 소중한 거 잘 알아.”

다만,

“니들 따위한테 발목 잡혀 허송세월 보내고 있을 수는 없거든.”

해야 할 게 많다.

이 짐승 같은 것들도 빨리 썰어버려야 하고, 다음으로 다른 쪽에서 유인해서 방어 대형을 펼치고 있을 광운대에 지원도 가야 한다.

그리고 그걸 다 끝낸 후에는?

‘이놈들의 우두머리와 싸우고 있을… 대형을 도우러 가야지.’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아까부터 허세로 웃고 있지만, 눈앞에서 낄낄거리는 마적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추풍대주라는 자는, 이자보다 못해도 몇 배로 강하다고 했었지.’

당유혼.

그들의 대형이 과연 추풍대주라는 놈을 이길 수 있을까?

항상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고, 상상을 현실로 실현시켜 주던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목이 턱턱 막힐 정도로 불안감이 차올랐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

당지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신호로,

“독무진(毒霧陳)을 개진(開陳)한다.”

막대한 독무가 숲속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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