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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69화 (69/350)

69화

방계들은 지난 시간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곧 들이닥친 흉포한 마적 떼에 맞서, 이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가장 자신 있는 걸 연마했다.

그렇게 대기의 흐름에 독류를 섞이게 하던 진법은 그 농도를 짙게 하여 독무를 형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독류진과 수준은 같지만, 서른세 명이 동시에 펼쳐내 농도를 짙게 하는 수법이었지.’

그 진형의 중앙에선 진법의 총 조율을 맡고 있는 당율기가 있었다.

그는 미세한 대기의 흐름과 그 감각의 변화에 집중하며 독무가 숲 안을 채우며 번져 나가게 만들었다.

“뭐, 뭐야?”

“독?!”

“젠장, 코와 입을 막아!!”

기세등등하게 나섰던 추풍대의 마적 떼들도 녹색과 자색의 독무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칼이야 잘 맞으면 상처가 남고 끝이지만, 독은 잘못 먹으면 팔다리 중 하나가 반병신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크크… 같잖은 짓을 하는구나.”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선 담우는 비죽 웃음을 흘렀다.

그는 구태여 눈과 코를 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내공으로 모공을 닫고 호흡을 조절하며 피를 타고 흐르는 독기를 억누를 수 있는 수준의 고수였다.

그렇기에, 그는 흘러들어 오는 독을 막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무슨 잡기술을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네 녀석들이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면 그렇게 극심한 독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전에 목을 베면 그만일 터.”

박도의 날을 타고 푸르스름한 도기가 생겨났다.

“어디, 목이 날아가고도 그 괴상한 짓거리를 계속할 수 있나 볼까!!”

그리 외친 담우은 그대로 박도를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저 미친놈…….’

처음 보는 독무를 상대로도 달려들 수 있는 배짱.

적이지만 그것만큼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배짱만큼이라면, 우리도 만만치 않은 놈이 있거든!’

“끼요오옷!!!!”

외마디 외침과 함께 차양당의 무리 속에서도 누군가 하나 불쑥 솟구쳤다.

그의 이름은 당불퇴.

양팔에 철로 덧댄 보호대 두 쪽을 차고, 서슬 퍼렇게 날아드는 도기를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는 미친놈이었다.

“웬 놈이냐!”

추풍도법(麤風刀法), 풍격난마(風擊亂麻).

담우의 박도가 거칠게 휘둘러졌다.

그로부터 도기가 복잡하게 내뻗어졌으니, 그것을 다 쳐내는 것은 도저히 비현실적이라, 그곳의 그 누구도 당불퇴가 그것을 피해 낼 거라 여겼다.

그리고 그건 담우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뚫는다!’

오로지 하나, 당불퇴만은 전혀 다른 각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난마처럼 얽혀 날아드는 도기의 빈틈을 노렸다.

“보였다. 빈틈의 실!”

푸확!!

도기가 거칠게 당불퇴의 전신을 난자했다. 옷과 살갗이 베이며 핏물이 튀었지만, 그중 중상은 없었으니 곧장 거리를 좁힌 당불퇴가 주먹을 휘둘렀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진천권(振天拳).

차양십이수의 열두 가지 수법 중 딱 한 가지 있는 주먹질.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단순무식한 일격이지만, 그만큼 강력한 주먹이 내뻗어졌다.

그리고,

뻐억―

“이런 미친놈이?”

그보다 한발 앞서 내뻗은 담우의 발길질에 복부를 얻어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악!!”

쿠당탕―

일 합을 교환한 결과는 당불퇴의 패배!

나가떨어진 그를 보며 방계들은 일제히 이마를 두들겼다.

“역시 패배의 상징……!”

“또 처맞고 오냐, 불퇴야!”

“아니, 내 걱정은 안 해?!”

그렇게, 방계들은 당불퇴를 보며 탄식을 금치 못했지만, 조금 전 일 합을 나누었던 담우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데… 그 순간에 뛰어드는 배짱이라…….’

저런 놈이 위험하다.

오랜 전장의 경험으로 인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담우의 마음에 살심이 깃들었고, 그는 곧장 박도를 쥐고 달려들었다.

“죽어라!!”

“헉?!”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오자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켠 당불퇴지만, 그의 입과 달리 두 눈은 줄기줄기 투쟁심으로 무장한 채 마주 달려들었다.

부웅―

머리 위로 날아드는 도격을 피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상대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살벌한 바람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울려 퍼지지만, 두 눈은 끝까지 상대의 도를 놓치지 않았다.

“벌레 같은 놈! 어디까지 피하는지 볼까!”

하지만 그 순간 담우가 휘두르는 박도의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가 싶더니 가속이 시작되자 옷 끝이 베이기 시작했고, 절절 살가죽이 갈라지는 상흔이 생겨났다.

부웅― 부웅!

“큭……!”

거칠기 짝이 없는 도격에 칼끝에 걸리더라도 살점이 찢겨나가 튀고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당불퇴의 두 눈은 더더욱 형형히 빛났으니,

‘…지금!’

단 한 순간.

사람이라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빈틈을 쫓아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맹수처럼 이빨을 꽂아 넣는다.

쩌엉!

후려친 손등이 박도의 도면을 때리고, 그 사이에 욱여넣듯 차양십이수의 뇌명타(雷鳴打)를 갈겼다.

그에,

“흥!”

담우 역시 콧김을 내뿜으며 마주 주먹을 내지르니, 꽈앙! 소리와 함께 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큭……!!”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난 게 고작인 담우와 달리 당불퇴는 여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고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이… 괴물 같은 새끼.’

현저한 격차가 느껴지는 한 수 교환. 거기다, 맞부딪친 순간 내공이 진탕되는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금 담우가 박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때,

“뭐 해, 이 자식아!”

부―

뒷목을 잡아당기는 손길과 함께 뒤쪽으로 나가떨어진 당불퇴 대신, 당지명이 대신 앞으로 뛰쳐나갔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호양차력(護陽借力).

콰앙!!

당지명의 손이 도면을 때려 궤적을 빗나가게 하고, 반대편 손이 담우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두어 걸음 물러난 담우는 욱신거리는 가슴팍을 흘깃 내려보고는 클클 웃었다.

“크크, 선수 교체냐?”

“선수 교체는 무슨. 우리가 일대일 대결이라도 하려고 온 줄 아냐?”

“흐… 기껏 맞춰 주었더니 은혜를 모르는구나.”

뭐, 좋아.

번쩍 한쪽 손을 치켜든 담우가 외쳤다.

“뭐 하냐, 이리들아. 다 쓸어버려라!”

“우와아아아아!!”

“죽여버려어어!!”

맹렬히 달려드는 추풍대의 마적 무리들.

그에,

“들었냐? 지들이 이리들이라신다.”

“유치한 놈들. 나이 처먹고 뭐 하는 짓이야?”

“지들이 금수 새끼들이란 거겠지.”

조롱으로 가득 찬 방계들도 저마다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다 죽여버려!”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되었다.

* * *

후우웅…….

협곡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두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편 당유혼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상대를 바라봤다.

‘상성은 애매한가.’

더럽고 비겁한 사파 새끼들답게 독을 다루는 놈들이면 유리할 텐데, 하필 저놈은 무식하게 칼질만 하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장소부터 내게 유리하게 바꿔야겠지.’

욱씬―

강렬한 통증과 함께 단전에 똬리 틀고 있던 탐(貪)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건?’

그 순간, 상대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 간극을 재고 있던 갈무흔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사술(邪術)인가?’

무언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눈앞의 저 어린놈을 감싸고 있는 그것은 똬리 튼 뱀과 같았지만, 단순히 뱀이라 하기에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흥, 뭐든 상관없지.’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은 아직 덜 자란 놈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세에 빈틈이 없었다. 내공이 심후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전투에 노련하다고 표현한다면 정확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빈틈을 만들어야지!’

오밀조밀한 무언가의 사이를 강제로 헤집고 들어가듯,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때,

기잉―

‘어……?’

갑작스레 그의 단련된 기감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니 내디디는 걸음, 걸음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보폭, 보폭이 알던 것과는 짧거나 길었고, 호흡이 묘하게 무거운 것만 같은… 기이한 감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절정에 도달할 때,

‘이게… 무슨…….’

갈무흔은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뱀이라 생각했던 무언가가 몇 배로 거대해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쩌억―

이윽고 그 뱀의 아가리가 열렸을 때,

-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들려와 그의 심령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큭… 어, 어디서 더러운 사술 따위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혈이 꼬이고 내부가 진탕되는 듯한 감각! 그 위험천만한 감각도 속에서 갈무흔은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왈칵―!

피가 터져 나오고 비릿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으나, 그 여파로 갈무흔은 자신을 얽어매던 주박을 풀어헤칠 수 있었다.

“이따위로 나를 현혹시킬 수 있을 것 같으냐!!!”

야성이 폭발하며 그의 박도가 칼춤을 추었다.

추풍도법(麤風刀法), 낭야추풍도(狼野麤風刀).

휘몰아치는 독기를 종횡무진 박도로 갈라내며 쇄도해 온다. 그 모습에, 당유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사파 놈 주제에, 극기로 이걸 뚫고 온다 이거지?’

그의 내부로부터 운용되는 혼원신공(混元神功)은 이미 주변 영역을 자신의 권역으로 집어삼켰다.

방계들에게 가르친 귀원일기공 개(改)는 사실 혼원신공을 열화시켜 그들이 익힐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춘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이 펼치는 삼재진 역시 기실 혼원신공을 익히면 얻게 되는 권능의 일부였다.

즉, 혼원신공을 익힌 당유혼은 홀로 삼재진을 펼쳐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당유혼이 만들어 낸 진법은 미완성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혼원신공 역시 그가 아는 무공적 지식을 총망라하여 만들어 낸 것이지만, 가장 중추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의 모방에 불과했으니까.

‘역시, 녀석처럼은 안 된다는 거지?’

의지로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고,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든다.

적이었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던 한 시대의 절대자.

그가 만들어 냈던 권역(權域)을 다시금 부활시키니, 당유혼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독기가 검은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물어뜯어라.”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식(食).

하늘에서 뭉친 독기는 거대한 흑룡(黑龍)의 형상이 되었고, 그것은 곧장 아가리를 벌려 갈무흔을 향해 몰아쳤다.

“놈!!”

박도가 용의 머리를 난자했다.

펑― 소리와 함께 그것이 터져나갔지만,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검은 안개로 변해 갈무흔을 뒤덮었다.

‘큭?’

그것의 본질이 독이라는 것을 깨달은 갈무흔이 재빨리 호흡을 멈추고 모공을 닫았지만, 독기는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갈무흔을 향해 퍼부어지며 그를 중독시켰다.

‘이놈!! 어디냐!!’

뭉클뭉클 피어오른 독무는 어느새 그의 시야를 차폐시켰다. 온 주변이 검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의 기감이면 이 정도 안개쯤은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중독 증상 때문에 모든 감각이 망가진 듯했다.

그때,

-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흉포하고 사나우며 폭급한 짐승의 울음소리.

‘……!!’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거…….’

갈무흔. 수많은 사선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을 뚫고 이 자리까지 당도한 마적의 우두머리. 그가 지금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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