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70화 (70/350)

70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독기가 갈무흔을 뒤덮은 채 압박하고 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 현장을 만들어 낸 당유혼은 느릿느릿 갈무흔의 숨통을 옥죄며 빈틈을 만들어 내려 했다.

그런데,

‘…큭.’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장 어림까지 번졌다.

고갤 돌려보니, 기다란 몸으로 똬리를 튼 탐이 심정 어림에서 입을 벌리고 사나운 이를 드러내는 게 보였다.

이 배은망덕한 새끼. 키워주고 길러줬더니 이제 주인을 집어삼키려 든다.

콰직―

모가지를 잡으니 손아귀를 물어뜯는 녀석을 억지로 떼어내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혼원신공의 화후가 깊어짐에 따라 녀석은 반정령(半精靈)의 존재가 되었고, 혼원신공으로 권역을 펼치면 이렇게 반쯤 실체를 가지고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하는 짓이 패악질이라, 그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당유혼이지만 다행히도 갈무흔은 시야가 차폐되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틈에 당유혼은 다시금 자세를 잡고 양손에 비도를 쥐고 걸음을 움직였다.

하나, 둘, 셋.

세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그의 신형이 검은 안개에 뒤섞였다.

천잠무흔(踐潛無痕).

옛날, 그가 당궁상에게 전수해 주었던 은신과 잠행에 특화된 걸음법. 그 걸음걸이로 기척을 숨긴 채 걷던 당유혼의 몸이 일순간 땅으로 꺼지는 듯하다 갈무흔의 배후에서 나타났다.

‘빈틈.’

내찌른 비도가 갈무흔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기냐!”

외마디 외침과 함께 몸을 튼 갈무흔이 당유혼이 있는 곳을 향해 정확히 박도를 휘둘렀다.

‘큭?’

캉!!

휘둘렀던 비도가 박도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이 자식… 눈을 감고 있어?’

놀랍게도 갈무흔의 두 눈은 감겨 있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 눈을 감은 채 육감을 느낀다는 것.

‘전검(戰劍). 오로지 끝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전장에서나 완성할 수 있다는 그것을 얻었다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마냥 헛웃음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놓치지 않는다!!”

당유혼의 기척을 잡아낸 갈무흔이 놓칠세라 뒤쫓아 왔다.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주제에, 그 기세는 더더욱 날카로워져서 박도가 종횡무진 휘둘러지며 전신의 급소를 노려왔다.

‘더 예리하고, 더 날카로워졌다.’

실시간으로 독에 중독되어 위중해지고 있지만, 그 생명의 위협이 오히려 전검(戰劍)을 익힌 그의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각과 청각은 고장 났어도, 육감이라는 이론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본능적인 감각이 그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박도는 피 냄새가 줄기줄기 흐르는 길을 따라 휘둘러졌고, 계속해서 피해 내던 당유혼의 곁으로 도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그게 반복될수록 내면에 있는 녀석의 으르렁거림이 더더욱 심해졌다.

- 크르르르…….

‘이 새끼, 가만히 좀 있어라!’

주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주제에, 패퇴를 반복할수록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꾸만 으르렁거린다.

‘죽겠네, 진짜!!’

덕분에 원래 생각했던 독에 중독시켜 차근차근 목을 따버린다는 장기전은 진작 물 건너갔기에, 결심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 끝을 봐야 한다는 거지?’

결국 결정을 내린 당유혼이 단전에서 더욱 많은 내공을 끌어냈다.

덕분에 탐의 몸부림이 더욱 심해져 붉은 피를 한 사발 울컥― 쏟아냈지만,

‘누가 먼저 뒈지는지 보자고.’

당유혼의 두 눈은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 * *

어지럽게 얽혀드는 난전.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밀리는 차양당의 방계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걸 보완할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함께 살아온 시간이었다.

“뒈져라!!”

거친 맹수처럼 달려드는 도격에 방계 하나가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당지명이나 당불퇴 정도가 그나마 일대일로 상대할 만했지, 나머지 방계들은 추풍대의 마적 하나가 몰아붙이면 순식간에 위험에 처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슈슈슉―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날아든 암기가 밀어붙이던 마적의 목전을 스쳐 가 그를 뒤로 물러서게 했다.

‘젠장할, 또냐??’

아까부터 끝낼 만하면 날아드는 비도니, 비침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끝낼 기회를 잡기가 영 어렵다.

사납게 암기가 날아든 방향을 돌아보니,

‘하…….’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저런 상태로, 이쪽을 신경 써줄 여유가 있어?’

가장 먼저 나섰던, 이 잡놈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자신의 동료들인 추풍대 세 명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사방팔방으로 암기를 뿌려내고 있다.

‘당지명이라 했던가?’

무공 실력 자체는 그리 대단하다고 볼 수 없는데, 이들의 중앙에 서서 누군가 위급할 때마다 달려가 도와주거나 손이 닿지 않으면 멀리서 암기를 던져대는 솜씨 하나는 일품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겠지.’

날아온 암기에 뒤로 물러섰던 마적 하나가 이 틈에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봤다.

지금껏 팔짱을 낀 채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두 명. 추풍대의 삼 조장과 사 조장이 슬슬 움직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움직인다는 건, 슬슬 숨통을 끊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니까.’

사냥꾼이 먹잇감을 사냥할 때 사냥개로 몰아넣고 최후의 숨통을 끊듯, 추풍대의 사냥 방식도 비슷했다.

일개 추풍대원들이 적들을 몰아붙이다 빈틈이 보이면 조장급이나 대주가 칼을 꽂아 넣는다.

숲 안을 채운 독무가 신경 쓰이지만, 이제 곧 전투를 끝내고 해독제를 먹으면 그뿐인 일.

그렇게 추풍대 마적들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 떠오를 때, 이 상황을 읽고 있는 방계 하나는 그 너머를 궁리하고 있었다.

‘저 둘이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그의 이름은 당율기.

차양 당주 당지명이 독무진의 중심에서 주변에 수세에 몰린 방계가 있으면 지원을 하며 단단히 축을 유지하고 있다면, 독무진 자체를 운영하고 조율하고 있는 것은 당율기였다.

‘쉽지 않아.’

당율기 역시 저 둘처럼 전선에서 약간 뒤쪽에 빠져 있었지만, 오감은 최대한 발휘한 채 눈으로 볼 수 없는 독무진의 흐름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방계들은 훨씬 향상된 감각 공유를 유지하며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마적들의 도격도 어찌어찌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율기가 하고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이 아니었다.

‘한 번뿐이다.’

극도로 감각을 살려 독무진을 조율하고 있는 당율기.

그의 기억 속 당유혼의 가르침이 되살아났다.

“삼재진을 발동시키면 내부 구성원들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내부에 들어온 이들이라면 적이라도 같은 감각을 공유시킬 수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스스로의 심상을 상대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은 삼재진.

“독류진은 진 내부에 독의 흐름을 조종할 수 있다. 다수의 귀원일기공을 익힌 진법 시현자들이 자신의 내부에 쌓여있던 독기를 외부로 방출했을 때, 그걸 너 혼자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리고 독류진.

“자, 그러면 이걸 둘로 합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그리고, 만약 이걸 합친다면?

‘…기회는 한 번이다.’

당지명처럼 암기술과 체술이 뛰어나지도 않고, 당불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깡도 없으나, 당율기에게는 그만의 재능이 있었다.

당율기의 오감은 삼재진에 흐르는 감각의 공유를 최대치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의 코에서는 핏물이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뇌가 과부하에 걸려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 전장에 소용돌이치는 감각이 모두 혼재되어 들어온다면 믿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당율기는 지금 그런 경험을 하고 있었다.

‘영역이라고 했었지.’

그들의 대형이 표현한 삼재진의 영향력이 닿는 범위. 그리고 그것이 성장하면…….

‘권역(權域)이 된다고.’

물론, 아직 그 경지까지는 한참이나 무리.

하지만 분명 당율기는 지금 자신의 영역에서 이적(異跡)에 가까운 일을 벌이고 있었다.

‘놓치면 안 돼.’

모든 감각이 아직까지 더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둘을 쫓았다.

당율기는 그들이 삼 조장과 사 조장이란 것까지는 몰랐으나, 그들이 존재만큼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덕분이었다. 먹이를 노리던 그들이 마침내 움직이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자, 형설.”

“좋아.”

삼 조장 탁누진과 사 조장 마한일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일순간에 뛰어들었다.

목표는 지금도 홀로 일 조장 담우와 맞서고 있는 당불퇴.

세 명의 조장급 인원이 순식간에 당불퇴를 에워싸고,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노출된 당불퇴가 일순간 움찔할 때 동시에 도격을 내뻗었다.

“뭐, 뭐여?!”

세 개의 칼날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쳐 온다.

빠져나갈 틈 없이 쏟아지는 공세!

거의 동시에 그 사실을 인지한 당지명이 서둘러 암기를 내던져 한 개의 칼날은 쳐내는 데 성공했지만, 두 칼날이 남아있었다.

“큭……!!”

하나는 겨우겨우 피했지만,

카가가각!!!

다른 하나의 도격이 어깻죽지부터 옆구리까지를 베었다.

“커헉……!!”

그의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이게 뭐야?”

“철판?”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불퇴가 입은 부상은 크지 않았다.

박도에 베인 몸통 부분에는 가죽에 쇠사슬을 둘둘 감아놓은 방어구가 있었다.

“넌 앞에서 함부로 깝치다가 뒤질 수 있으니 이거라도 입고 있어라.”

당유혼이 어디선가 가져와 툭 하고 던져준 사슬 갑옷.

박도가 거친 쇳소리를 내며 끊어먹은 것은 그 사슬이었고, 다행히 얕은 자상밖에 입지 않은 당불퇴지만 박도에 실린 힘은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걸 눈치챈 단우가 다시금 달려들 때,

‘바로, 지금……!’

당율기 역시 그 한순간을 노리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환현붕괴(幻現崩壞)의 진. 개방(開放).

스르르…….

그건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당불퇴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달려들던 담우는 자신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느려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야… 이거?’

손끝의 감각이, 발끝의 감각이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둔해지고 행동거지는 굼벵이 기어가는 것처럼 느려졌다.

자신만 느려진 게 아니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 주변을 돌아보니 세상 모든 게 느려져 있다. 그의 평생 이와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나 반추한다면…….

‘주마등?’

죽기 직전에 세상 모든 순간이 느려지는 듯한 경험.

숱한 사선을 넘어온 담우인 만큼 주마등을 경험한 경험이 한둘도 아니고, 그때 느꼈던 공통적인 감각이 바로 지금 느껴지는 것이다.

‘그 감각이 어째서 지금…….’

알 수 없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채울 때, 담우는 저도 모르게 한쪽을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강제로 향한 시선의 끝에는 당율기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저놈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전신을 엄습한다.

그 순간, 본능은 원래 노리려던 놈이 아니라 저 의심스러운 녀석을 쳐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저 의심스러운 녀석을 향해 달려가야 싶을 때, 담우의 눈에 당율기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뭐?’

그것은 한 가지 선언.

“죽어.”

그 선언과 함께 당율기를 둘러싼 독무가 꿈틀거리더니,

‘뱀, 아니… 이무기?!’

거대한 대망(大蟒)이 당율기의 전신을 휘감으며 나타나 그대로 담우를 향해 쇄도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커어어억……!!!”

그것이 담우를 사정없이 물어뜯는 순간, 담우는 칠 공에서 피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