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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71화 (71/350)

71화

갑작스레 담우가 쓰러지는 순간, 삼 조장과 사 조장은 우뚝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 차례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싶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일 조장 담우가 거꾸러진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하는 그들과 달리, 그들을 상대하던 당지명과 당불퇴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챘다.

‘율기야!’

‘됐구나!’

서둘러 고개를 돌리는 그들의 시야에 마찬가지로 피를 토하고 있는 당율기가 보였다.

그가 주도하는 환현붕괴의 진은 단 한 차례이지만 상리를 벗어나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삼재진이 작용하는 권역에 존재하는 감각 중 하나를 누군가에게 전이시킬 수 있고, 그와 동시에 독류진을 발동시켰을 때 운용되는 방계 서른세 명이 가진 독기를 한순간에 꽂아 넣을 수도 있다.

그건 오로지 당율기만이 할 수 있었다.

그는 삼재진이 발동된 이후, 그 권역 안에 맴도는 고통이란 감각을 일순간 단 한 명에게 때려 박았고, 동시에 독류의 흐름을 일 점에 집중시켰다!

그 대가로 술자인 당율기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고통이 작용해 폭포수처럼 피를 게워냈지만, 당율기는 고통 속에서도 형형히 빛나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오른쪽 놈은 왼 다리. 왼쪽 놈은 오른팔이 약점입니다!!”

처음 일어난 현상은 방계들만 알고 추풍대 삼 조장 탁누진과 사 조장 마한일은 알지 못했지만, 두 번째로 당율기가 외친 말은 모두가 알아챘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건, 그들이 현재 부상을 입은 부위였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그들이 아직 제팔전의 위를 차지하고 있을 당시, 권력 투쟁에 밀려나며 입은 상처들.

가급적 드러나지 않게 숨기고 있었으나, 이미 삼재진의 범위 내에서 모든 감각 정보를 습득하고 있던 당율기는 그들의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오른쪽 놈을 맡으마!”

“그럼 난 왼쪽!”

그들이 약점이 있을 것이란 건 이미 당유혼에게 전해 들은바. 당지명은 야수처럼 삼 조장 탁누진에게 달려들었다.

“이익……! 저리 꺼져라!!”

당지명의 돌진은 사냥감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눈치챈 맹수와 같았다. 허겁지겁 박도를 횡으로 휘둘러 떨쳐내며 뒤로 거리를 벌리는데,

“흡!”

다음 순간 당지명의 몸이 아래쪽으로 쑥― 하고 꺼지듯 낮아졌다.

그 상태로 온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가 날아들자 탁누진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덕분에 완전히 무너져 버린 몸의 균형.

주먹은 물론, 칼도 닿지 않을 만큼 쑥 벌어진 거리였으나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당가의 주력 무기는 검이나 권, 도가 아니었으니.

당가암기술(唐家暗技術), 당지명 고유비술(固有祕術), 삼연천골저(三連穿骨箸).

파파팟!!

당지명의 손이 휘둘러지며 그 소매 폭에서 젓가락 세 개가 차례로 날아갔다.

“크아아악……!!”

하나둘은 피했지만, 마지막 세 번째 젓가락이 그의 왼 다리에 박혀 들었다.

그의 고통 어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난전이 펼쳐졌다.

“크아아아아!!”

숫제 괴성에 가까운 포효와 함께 당불퇴가 사 조장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몸을 피할 것 같으냐?!’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 버린 사 조장 마한일이지만, 그는 허둥지둥 뒤로 물러서려던 삼 조장과는 생각이 달랐다.

약점이 있어서 적이 그것을 노린다? 그렇다면, 그 적을 썰어버리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닌가.

“통째로 썰어주마!!”

그런 생각으로 박도를 종으로 휘두른 마한일이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으니,

‘흥! 해보자 이거지?!’

당불퇴. 그는 상대방이 죽자고 달려들면 진짜 같이 죽자고 달려들 수 있는 미친놈이란 것이었다.

쑤욱―

‘뭐, 뭐야?!’

보통의 경우라면 여기서 물러나거나 했을 테지만, 당불퇴는 오히려 양손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무려, 박도가 휘둘러지는 궤적 한가운데로.

카가가각―!!!

울려 퍼지는 쇳소리에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이, 이게……!’

단칼에 적을 일도양단해야 할 그의 박도가 채 휘둘러지지도 못한 채 멈춰졌다.

맨손으로 칼날을 붙잡는다는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은 결코 아니었다.

‘쇠사슬?!’

그건 아까 칼질을 당하며 너덜너덜해졌던 쇠사슬 갑주의 파편이었고, 당지명이 쇠사슬을 각반에 둘둘 덧댄 두 손목을 앞으로 손을 쭈욱 뻗어 박도가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막아낸 것이다.

“이익, 이까짓 거……!!”

박도가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잡혔다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공격이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건 아니었다.

끼긱… 끽…….

내려찍는 칼날은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안쪽으로,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쇠사슬을 짓이기고 각반을 짓누르며 살갗을 파헤쳤다.

“손목째로 베어주마!!!”

손목에 조금씩 박히며 머리 위로 밀고 들어오는 박도에 의해 핏물이 눈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대로 손목을 잘라내 버릴 기세로 박도의 날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동시에, 맹수의 그것과 같은 이빨을 잔뜩 세운 마한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만, 조금 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 빌어먹을 놈을 두 동강 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뭐야, 이놈.’

웃고… 있어?

뚝뚝 떨어지는 피가 어느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음에도, 분명 상대방은 웃고 있었다.

오싹―

뭐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마한일이 물러나려는 그 순간,

푸웃―!!

당불퇴의 입술이 어긋나고 그 사이에서 시뻘건 핏물이 뿜어졌다.

“크악!!!”

당가의 피는 그 자체로 극독.

뚝뚝 떨어지는 피를 입 안에 머금어놨다가 안면부에 뿌려 버리니, 마한일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조장님!!”

“이 개자식들이!!”

그렇게 되자 추풍대의 다른 마적 떼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삽시간에 그들의 우두머리 셋이 위험에 처하게 되니, 수적 우세고 뭐고 간에 아찔해지는 것이다.

“조장님들을 구해야 한다!!”

“저놈들을 당장 떼어내!!”

흩어져 있던 마적들이 그들의 조원을 향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두고 볼 방계들도 아니었다.

“젖혀!”

“막기만 해! 어차피 다 중독됐어!”

오히려 마적 떼들보다 더욱 빨리 상황을 파악한 방계들이 당지명과 당불퇴, 그리고 세 조장의 격전지를 빙 둘러싸듯 원을 만들었다.

“이익?!”

당황한 그들이 이리저리 박도를 휘두르며 길을 뚫으려 했으나, 방계들 역시 이제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드루와!!”

“다 재껴 버려!!”

누군가에게는 승기가, 누군가에게는 패색이 도는 전장의 향방이 점점 결정되고 있었다.

* * *

챙― 채앵― 챙!!

쇳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거칠게 휘둘러지는 박도에 부딪쳐 나간 비도니, 쇠침이니 하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만들어 내는 당유혼 역시 속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니, 흑상, 이 새끼… 사기 친 거 아냐?!’

왼팔이 약점이라며? 아까부터 거기만 주야장천 노리고 있는데 잘만 막고 있잖아!

“크크… 왼팔만 집요하게 노리는군. 어디서 정보가 샜나?”

갈무흔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눈을 꾹 감은 채 으르렁거렸다.

죽음이 성큼성큼 목전 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는 오히려 즐거운 듯 낄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격 경로가 뻔해서야… 오히려 막기 쉽지 않나.”

“닥쳐. 꼬리 말고 도망쳐서 여기까지 온 놈이 무슨 헛소리야?”

“흐… 이상해서 말이지.”

그가 장난스레 박도의 끝을 흔들었다.

“싸우는 모습을 보자면 한두 번 실전을 거친 놈이 아냐. 정파의 구닥다리들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우리 사파 쪽에 가까울 정도로 실전적인 놈이지. 그런 놈이 이렇게 뻔한 공격만 반복한다고?”

그건 이상하잖아.

히죽―

각진 박도의 끝이 번쩍 빛을 발했다.

“답은 하나지. 네 녀석도 제 상태는 아니구나.”

부상을 입은 부위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노린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도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 실전으로 단련된 날카로운 감각이 귀신같이 그것을 짚어냈다.

‘…하, 이래서 전검(戰劍)을 완성시킨 놈들이란…….’

늑대 같은 놈들 아니랄까 봐, 피 냄새 맡는 능력 하나는 예술이다.

“그래서,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로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냐?”

“적어도… 이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 다음 경지를 넘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군.”

수양이 아닌 오로지 실전으로 갈고 닦는 전검.

갈무흔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 순간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지만, 동시에 이 순간을 넘어선다면 다음 경지가 보일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돌아간다. 그리고, 그 자식한테 복수도 할 수 있다…….’

얻은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감숙 광형 상단을 약탈해 그곳에 있는 진귀한 약초들로 몸을 회복시켜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욕망을 두 눈에 담은 갈무흔이 천천히 검극을 겨누었다.

“어차피 피차 마지막. 슬슬 시작해 보자고.”

스르르…….

그의 박도가 천천히 움직였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박도지만, 그것이 그리는 곡선은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반개한 두 눈에서는 순수한 욕망의 빛이 번뜩이고 있었으니, 그걸 본 당유혼은 나지막이 욕을 뱉었다.

‘아니, 지가 무슨 무협지 주인공이야? 전투 중에 깨달음을 얻어?’

저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전투 중 깨달음 얻기!

수많은 재능충 중에서도 특히나 재능 넘치는 놈들만의 특권이 바로 저것인데, 그걸 웬 사파 잡놈 따위가 얻고 있다.

‘이 세상이 만약 한 편의 소설이라면 작가놈은 욕이란 욕은 다 처먹어야 해.’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당유혼은 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고, 예민해진 감각은 목을 물어뜯을 듯 귓가에서 속삭여 오는 탐에게 집중되었다.

- 크르르…….

‘건방진 녀석. 기어코 날 집어삼키고 싶다는 거냐?’

혼원신공이 만들어 낸 권역 속에서 반정령이 된 녀석은 끊임없이 으르렁거린다.

이곳이 현실 세계를 반쯤 벗어나, 정신과 의념이 강한 영향을 끼치는 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렇기에,

‘요건 몰랐을 거다, 이놈.’

- 케에엑?!

당유혼 역시 의지를 발휘해 녀석의 목을 잡아챘다.

‘가만히 있어.’

목이 쥐어진 탐은 거칠게 반항했지만, 아직은 그 손길을 당해 내지는 못했다.

이윽고, 당유혼의 의지에 따라 고개를 든 탐이 아홉 갈래로 나뉘어 졌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그 모습을 본 갈무흔은 어처구니가 없어 순간 우뚝 멈춰 섰다.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군.”

검은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대를 중심으로 아홉 개의 뱀이 머리를 쳐들고 있다.

‘무인인 줄 알았더니, 진짜 술법사였나?’

술법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문파로 대표적인 모산파(茅山派)라거나, 북방 소수민족의 전통적인 주술사들.

그들과도 갈무흔은 몇 번 충돌한 적이 있었고, 그 결과에서 배운 것은 하나였다.

“술법이고 무엇이고, 술자를 찢어 죽이면 술법도 찢어지게 마련이지.”

갈무흔의 전신을 휘감고 활활 타오르는 내공이 이제는 푸른 불꽃처럼 보였다.

이 권역에 들어오며, 그의 내공과 의념(意念) 역시 반쯤 형상화를 가지며 마치 푸른 늑대처럼 화했다.

그 늑대가 크게 아우성을 질렀고, 이내 최후의 돌격을 시작했다. 아홉 마리의 검은 뱀이 늑대에게 퍼부어진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 아우우우―!!

긴 울음소리와 함께 갈무흔의 박도가 종횡무진 휘둘러졌다.

카카카카캉!!!

그의 박도가 검은 뱀을 쳐낼 때마다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검은 뱀을 만들어 낸 원리는 탐의 기운과 독, 당유혼이 가진 가장 강력한 아홉 개의 실 달린 암기를 뒤섞어 만든 것이었다.

비물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을 적절히 배합한 아홉 뱀이 사정없이 갈무흔을 물어뜯으려 이빨을 들이밀었고,

“크아아아아아!!!”

갈무흔은 그것들에 사정없이 난자당하면서도, 앞을 가로막거나 아주 위중한 공격만 쳐내며 필사의 돌진을 계속해 감행했다.

박도의 움직임은 전신이 붉게 물들수록 더더욱 유려해졌고, 끝끝내 너울너울 움직이는 한 폭의 춤사위에 가까워졌다.

너무나 매혹적인 검무(劍舞).

보고 있노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끌림이 느껴졌으나, 당유혼은 거기서 심각한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

‘이… 시팔, 무아지경(無我之境)이야 뭐야?!’

상황은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눈이 훼까닥 돌아버린 게, 진짜 이성이라고는 싹 다 날아가서 오로지 눈앞의 적을 벤다! 라는 목적의식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머리가 빙― 돌아버린 상황이지만, 그 목적이 되어버린 당유혼으로서는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저거… 나도 저랬던 것 같은데……?’

천마를 향해 달려들 때의 자신의 모습과 같은 갈무흔.

동시에, 자신을 상대할 때 천마의 모습과 같던 당유혼.

삼십 년 전의 입장이 서로 뒤바뀐 듯한 상황에서 당유혼은 이를 악물었다.

‘너도, 이만큼이나 쫄렸었냐?’

결국 사지가 찢겨 바닥에 드러누워야만 했던 천마.

하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표정 변화 하나 없던 녀석을 생각하며 이를 아득― 깨물었다.

‘웃기지 마.’

녀석처럼 너저분하게 쓰러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 돌아가야 할 길은 아득히도 멀다.

“웃기지 마, 이 새끼야!!!”

이제는 멈춰 서지 않고, 당유혼 역시 천천히 움직여 원(圓)을 그렸다.

그에, 아홉 마리 뱀이 포효했고, 그를 향해 한 마리 푸른 늑대가 뛰어들었다.

그 끝에서,

털썩―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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