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걱정 마슈. 나 죽어도, 대형 모습을 보고 죽을 거니까.”
자신과 함께 대형에게 가장 많이 얻어터졌을 놈이 그런 말을 하는데, 당지명이 어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헛소리하지 마. 그럴 힘 있으면 입 닥치고 달려.”
당율기가 걱정을 담아 애써 으르렁거리자 당불퇴 역시 낄낄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셋이 당유혼을 찾아 달리길 한창일 때,
“어, 어? 저… 저거……!!”
문득 그들의 눈에 저 높이 치솟는 검은 기둥이 보였다.
“형님!! 저기, 저거!!!”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막 그 진원지에 도달할 때는 검은 기둥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형?!”
“대형!!!”
천천히,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당유혼이었다.
* * *
어둡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기분 거지 같네.”
눈 떴을 때 처음 보는 풍경이 상상치도 못한 공간이라니. 이런 경험을 두 번이나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여긴 또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며 마지막 순간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분명… 그 짐승 같은 놈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말이지.’
혼원신공을 극도로 발휘, 자신의 영역에서 아홉 개의 거대한 뱀을 만들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갈무흔은 연신 깨달음이라도 갱신해갔는지, 미친놈처럼 달려들었다. 투박한 박도가 아홉 마리 뱀을 기어코 베어내고 당유혼에게 닿은 것이다.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 당유혼은 움직였다.
죽음이 문 앞까지 찾아온다면, 문을 활짝 열고 달려 나가 방망이로 대가리를 두들겨 주는 것이 신조이기에, 기어코 당도한 갈무흔을 향해 직접 주먹질을 날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라면 좀 슬픈데.”
벅벅―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사 요지경이라지만, 진짜 알 수 없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을 또 할 줄이야.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한숨을 내쉬는 당유혼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앉아있지는 않았다.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하는 것, 이 답 없는 곳에서도 길을 찾기 위해 두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 순간,
쿠쿠쿠쿵―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온 주변에 가득하던 어둠이 물결처럼 요동쳤다.
저게 뭐야?
인상을 찌푸린 당유혼은 혹시 무기가 될 만한 게 있나 싶어 서둘러 몸을 훑었다.
“젠장. 그 새끼한테 다 뿌리고 왔구나.”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악재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한 게 하나 있다.
“내공은 또 왜 안 움직여? 기껏 처먹었던 독은?”
내공이 쥐뿔도 없는 상황.
그 막막함에 인상을 찌푸릴 때도, 요동치는 어둠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둠인 줄 알았던 것은 무언가의 거대한 비늘이었고, 그 거대한 비늘을 가진 녀석이 똬리 튼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너, 설마?”
- 크르르르…….
울려 퍼지는 사나운 굉음이 존재를 증명한다.
탐(貪).
거대한 뱀, 이제는 용이라 불러도 될 만한 녀석이 흉흉한 시선을 비추었다.
“…아니, 이거 누가 키웠냐?”
무시무시한 위압감.
서서히 입을 쩍― 벌리는 녀석을 보니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하하, 야. 왜 그래 인마. 장난치지 마. 우리 즐겁게 놀았잖아. 그치?”
아니지? 왜 그래? 우린 깐…….
- 아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악!!”
도망쳐!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어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몰라도 일단 달렸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타오를 듯한 시선은, 굳이 얼마쯤 쫓아 보고 있나 뒤돌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죽어라 달리는데,
“어억?!”
쿠쿠쿵―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무너졌고, 당유혼 역시 아래로 떨어졌다.
“으윽…….”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정신이 어질어질해서, 고통을 여길 겨를이 없는 건지 몰랐다.
“젠장! 그래, 들어와, 이 자식아!!”
답도 없는 거, 벌떡 일어나서 버럭― 소리친 당유혼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배은망덕한 뱀 새끼. 내가 오늘 저놈한테 잡아먹히든, 내가 오늘 저놈을 잡아 뱀탕을 끓여 먹든 사생결단을 낼 테다.
그렇게 다짐하는데,
흠칫―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에 그는 저도 모르게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아……?”
그것은… 거대했다.
“뭐… 너, 너……!!”
스스로의 몸을 둥글게 말은 모양새였다. 아직 어미 배 속에서 나오지 않은 태아를 보는 것도 같았고, 알에서 나오지 않은 채 가만히 잠들어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 우연히 마주친 듯한 그 존재는 서로를 당기는 것만 같아, 언제라도 저것이 깨어나 초점 없이 멍한 시선에 의지가 담길지 알 수가 없었다.
“너… 넌……!!!”
당유혼의 몸이 덜덜 떨릴 때,
- 크르르르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둠이 물결쳤다.
다시금 시야를 완전히 덮었고, 당유혼의 의식은 다시금 암전으로 곤두박질쳤다.
* * *
“대형!!!”
허겁지겁 도착한 당지명을 비롯한 세 명의 방계들. 그들이 본 풍경은, 온 주변이 다 박살이 나버린 황무지였다.
“저 녀석이… 추풍대주?”
그곳에서 갈무흔은 자신의 박도를 땅에 박아넣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죽어있었다.
온몸에 박힌 다수의 암기들이 그의 최후를 짐작게 했으며, 고개를 떨군 듯한 모습에 처음에는 살아있는 줄 알고 저도 모르게 전투태세를 취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숨을 쉬지 않았고, 그들은 허겁지겁 쓰러진 당유혼을 살폈다.
“숨… 숨을 쉬고 있어!!”
“살아계신 거지?! 죽는 거 아니지?!”
“재수 없는 말 하지 마, 이 자식아!”
“미, 미안…….”
평소에는 제일 소극적이던 당율기가 괄괄하게 외치자 당불퇴는 움찔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당율기는 곧장 당유혼의 맥박을 쥐더니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율기야. 대형의 상태는 어떠시냐?”
이 중 무공 외에 지식이 가장 뛰어난 게 당율기인 만큼 당지명 역시 그의 동생에게 의견을 구했다.
“…좋지 않습니다. 맥박이 잘 잡히지 않는데, 체내에서 너무 강력한 기운이 들끓고 있습니다.”
지금 당유혼의 체내에는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게 얼마나 강력한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내공을 안으로 투여해 접촉하려 했던 당율기 역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 그럼 당장 의원으로 옮길까? 내, 내가 업을게!!”
“…아니. 그럴 여유가 없어.”
여기서 의원까지 못 해도 두 시진은 걸릴 것이다.
운이 좋은지 나쁜 것인지, 당유혼은 도저히 그때까지 버틸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자신들은 그 직전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해.”
“우, 우리가……?!”
“우, 우리가……?!”
그 말에 다른 둘이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들에게 품에서 암기로도 쓰이고 침술로도 쓰일 만한 거대한 대침을 한 움큼 꺼낸 당율기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침착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은 지금 너무나 강력한 내력의 반발로 정신을 잃으신 상태입니다. 다른 부차적인 부상도 많지만, 지금 형님을 위협하는 가장 큰 혼란은 그것이에요.”
“그, 그게 가능한 것이냐? 추풍대주가 죽기 전 발경의 수법으로 자신의 내력을 형님께 전부 때려 넣기라도 한 것이더냐?”
“글쎄요. 어째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고 모든 것을 다 알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당율기는 당유혼을 바로 눕히고 그 위에 대침을 하나씩 박아넣었다.
“다만, 삼재진을 응용한다면 대형을 치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삼재진?! 저, 정말?”
“그래. 이제 확신할 수 있어. 대형은 정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심지어, 우리가 익힌 개조된 귀원일기공 역시 그 뿌리가 대형에게서 나온 것 같아. 즉, 삼재진을 응용하면 대형이 익힌 심법을 모방할 수도 있을 거야.”
간단히 말하면 외부에서 운기조식을 대신 행해 준다고 할까?
평소 당율기는 당유혼에게 무공 외의 신체적인 조화나 약과 독의 조화에 대해서도 종종 묻고는 했다.
그때마다 당유혼은 어떠한 지식의 목마름 없이 답을 척척 알려주었고, 당율기는 그에게 받은 지식을 매일 밤 누구보다 늦게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노력했기에, 그의 손은 망설임이 없이 움직였다.
“다만, 그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잡룡탕(雜龍湯)을 먹으며 내력만큼은 이제 다른 대문파의 제자 못지않게 늘어난 그들이지만, 그것으로도 대형에게 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잘못하면, 우리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치료하지 못한다면 당유혼의 목숨은 고사하고 셋 모두 줄줄이 죽음에 이를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마지막 대침을 놓기 직전, 당율기는 고개를 들어 두 명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자유 의지였다. 스스로도 성공을 확신하기가 불가능한 절체절명의 순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이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자식아, 헛소리 늘어놓지 말고 빨리해.”
당불퇴는 오히려 그럴 시간도 아깝다는 듯 소리쳤고,
“…이번만은 불퇴의 말이 옳다. 그런 흰소리는 나중에 술 마시면서나 하거라.”
당지명 역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죽음을 앞둔 결정이라.
당율기는 자신의 손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아는 둘이기에 오히려 저렇게까지 대답해 준 것이겠지.
‘대형.’
그 사실에 당율기는 쓰러진 당유혼을 바라보며 속으로 지나간 시간을 훑었다.
언제나 자신들의 앞에서 괄괄한 목소리로 주먹을 휘둘러 댈 것만 같은 그들의 어린 대형.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자신들에게 초인이며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누구도 그가 갑작스레 사라지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만큼,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다.
이번에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그에게 받았던 수많은 것들을 돌려줄 때가 왔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의 손은 무겁지만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두 형제의 목숨을 걸었다는 책임감이 손을 무겁게 했지만 그 의지가 확실시되자 그 끝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침이 당유혼의 백회혈(百會穴)에 박히는 순간,
“지금입니다. 모두, 귀원일기공을 운용해 주십시오.”
당율기의 지시에 따라 세 방향으로 나눠 앉은 삼인조가 일제히 귀원일기공을 운용, 삼재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강대한 힘이 몰아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
“……!!!”
당율기에게 엄중한 경고를 들어 대비하고 있던 다른 둘은, 몰아친 강대한 힘의 충격에 저도 모르게 정신을 놔버릴 뻔했다.
그 힘은 삼재진이 구성하는 영역에 들이닥쳐 휘몰아치다 그들의 내부를 강타하니, 가뜩이나 사선을 넘어선 전투를 벌였던 방계들로서는 속이 진탕되는 충격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