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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74화 (74/350)

74화

‘끄, 으으윽… 이, 이까짓 거……!!’

특히나 상태가 좋지 않았던 당불퇴는 핏물이 울컥 올라와 목을 막아왔다. 하지만 피를 뱉어낸다면 진은 붕괴될 것이고, 그러면 물론 다른 형제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게 뻔했다.

때문에 역류하는 핏물을 애써 삼키며 삼재진을 운용했고, 순식간에 풍랑 앞에 내몰린 촛불과 같은 의지를 활활 태워 올렸다.

‘생각보다… 더, 더 강해……!’

한편, 당율기의 상황도 결코 좋지 않았다.

그 역시 어느 정도를 예상했으나 몰아닥친 힘의 반동은 그 예상을 아득히 선회했고, 삼재진 운용의 축을 담당할뿐더러 당유혼의 내부에 몰아치는 힘을 올바르게 운기해야 하기에, 가장 부담이 컸다.

‘으… 으으으……!!!’

당장에라도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이대로 쓰러진다면, 저 딱딱한 돌바닥에 몸을 뉘어도 부드러운 침상에 누워 자는 것처럼 편할 것 같다는 달콤한 유혹이 뇌리를 간지럽혔다.

그렇기에,

꽈악―

당율기는 스스로의 혀를 깨물어 엉망으로 만들며 정신을 각성시켰다.

한 번이라도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그 끝은 짐작할 수 없기에, 당율기는 편한 포기보다는 고통스러운 도전을 택했다.

입 안에 비릿한 피의 맛이 감돌아도, 그것을 잠을 깨는 각성제 삼아 귀원일기공을 운용했다.

“원(圓)을 그려라.”

그의 머릿속에선 당유혼의 가르침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이 난류는 그 스스로는 차마 다룰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난류를 한 번이라도 거대한 대순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그들의 대형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론, 사실 그건 확실하지 않지.’

그저 망상이자 맹신, 광신에 가까운 기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대형이라면 그 이후부터는 알아서 떨쳐 일어나리라는 믿음이었다.

그 한 가닥 믿음이 당율기를 풍랑이 몰아치는 망망대해 속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으나, 가야 할 길은 선명했고 그 각오는 마침내 이변을 만들어 냈다.

‘우, 움직인다……!’

입을 열 수 있었다면 환호성을 내질렀을 만큼, 그 변화는 확실했다.

갈 곳 잃고 소용돌이치던 기가 점점 한 방향을 향해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평소 그들이 죽어라 그려대던 원(圓)이 의미하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구구구구구…….

거대한 회전은 방계 세 명의 의식을 모두 앗아갈 만큼 황홀했다. 모두가 이제 무아지경에 가깝게 그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흐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고, 거대한 힘은 곧 거대한 법칙이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구우우웅…….

장중한 흐름이 그들을 휩쓸었다.

* * *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열린 창가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햇빛이 눈가를 간지럽힌다.

“…뭐야, 이건?”

눈을 떠보니 황무지가 아니라 웬 침상 위네?

슬쩍 바람이 흘러 들어오는 곳을 보다가 이번엔 반대편으로 눈을 돌린다.

무더기로 쌓여있는 익숙한 녀석들. 인간 탑을 형성한 방계들을 보며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꿈인가?”

어째… 한 번 경험한 듯한 강렬한 기시감에 기억을 되새기고 있자니 방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문이 열리며 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소리의 주인은 당유혼과 시선이 마주치자 옅은 탄성을 내뱉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깨어나셨군요. 광형삼의가 곧 깨어날 거라 말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등장한 이는 광형 상단의 상단주 광세운이었다.

“끙. 이게 어찌 된 거예요? 이 녀석들은 뭐고?”

우선 상황 파악 좀 하자.

“다들 당유혼 대협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어디까지 기억나십니까?”

“추풍대주 그 새끼 배때기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까지요.”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사실 저도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광세운은 적당히 방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방계들을 가리켰다.

“저분들이 대협을 모시러 갔을 때, 대협께서는 무척이나 위중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차양 당주님을 비롯한 세 분이서 임시 조치로 무언가를 하였고…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 녀석들이요?”

“예. 광형삼의께서는 이미 그분들께서 가장 큰 고비를 넘겼기에, 기본적인 치료만 한 뒤 대협의 놀라운 자연 회복력으로 얼마 안 가 깨어나실 것이라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다른 방계들은 당유혼의 곁을 지키길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끙…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예요?”

“오늘로 칠 일이 되었군요.”

“허 참.”

어째 더 길어진 것 같은데…….

겨울도 아닌데 동면에 빠져드는 신묘한 몸 상태에 혀를 차고 있자니, 기절하듯 잠들어 있던 방계들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일어나시려나 보군요. 제가 시기를 잘못 찾아온 듯하니 가족분들과 시간을 보내시지요.”

온 지 얼마 됐다고 광세운은 다시금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광세운이 떠나가고, 얼마 안 가 방계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자다 깬 걸 증명하듯 질질 흘린 침을 쓰읍― 하고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던 당불퇴가 먼저 당유혼을 발견했다.

“어… 어?!”

뭐, 인마.

실어증이라도 걸린 듯 어어… 만 반복하는 그의 외침에 다른 방계들도 왜 시끄럽게 구냐며 짜증을 내다 곧 깨어난 당유혼을 발견했다.

그리고,

“형님!!!”

“대형!!!”

단체로 몸을 던지며 침대 위로 입수.

“어, 어, 시팔?! 야, 안 꺼져?!”

처음 하나까지는 그래도 그런갑다 했지만, 그렇게 방계들 서른세 명이 단체로 뛰어들자,

우지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 * *

대충 혼란스러운 소동이 있었지만, 당유혼은 결국 방계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율기의 주도로 삼재진을 통해 자신을 치유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미쳤나?”

이론상으론 분명 가능한 일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만약 자신이 당율기였다면 그게 최선이라는 것 역시 알겠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뒈지고 싶어 작정했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래?!”

성공률을 따진다면 일 할은커녕 오 푼은 되나 싶은 미친 짓거리가 따로 없다.

그에 소리치자,

“글쎄요. 저는 대형이 시킨 일을 한 기억뿐이 없습니다.”

당지명은 빙긋 웃으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뭐?”

“저희는 그저 지키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기에 저희는 그저 지킨 것일 뿐입니다.”

매번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당신을.

“하… 이 자식이.”

좋은 것만 먹여놨더니, 이제는 좀 컸다고 슬금슬금 기어오른다.

당유혼은 또다시 오만상을 찌푸리며 침대에 몸을 뉘고 저쪽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양반, 부끄러워서 저런다니, 뭐니 하는 소리가 수군수군 들려왔지만, 애써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멍청한 것들.’

확실히, 몸 상태는 빌어먹게도 좋다.

그건 혼원신공의 신이한 능력 덕분이지만, 그게 발휘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저 녀석들의 목숨 건 도박수가 있었기 때문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구천 리인데 이런 애송이들의 도움이나 받고 있다니.’

꿈속에서 보았던 거대한 어둠, 아니, 어둠으로 보였던 거대한 동체. 그것이 틀었던 똬리를 풀었을 때, 저 너머에서 마주쳤던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꿈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그 감각과 경험에 당유혼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대형 또 멍 때린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몰라. 한두 번 저러는 거 아니잖아.”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자꾸만 귀를 간질인다.

“쯧쯧,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

쥐어패기도 귀찮아서 그리 혀를 차자,

“…그거 그냥 똑같은 새대가리라는 뜻 아닌… 끄에엑!”

“이 새끼. 기어코 매를 버는구나.”

결국 잡히는 대로 던져 중얼거리던 당불퇴를 격침.

그 모습에 방계들은 새삼스레 다시금 일상이 돌아왔구나 싶어 낄낄 웃어댔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당유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을 때,

“그런데 대형.”

함께 웃던 당지명이 표정을 갈무리하고 물어왔다.

“사실 오늘이 삼일제의 마지막입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삼일제? 그건 또 뭐냐?”

“광형 상단에서 추풍대와 전투를 치르며 피해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로하는 제사가 오늘로 삼 일째에 이르렀고, 마지막 날은 그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은 다시금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축제를 연다.

“제라…….”

떠난 이들은 보내고, 남은 이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참석, 해야겠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당유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참석을 허락해 주었다.

그 결과…….

“와!! 고기다!!”

“캬! 술맛 죽이네!!”

광형 상단에서 주최한 축제는 마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행사가 되었다.

아무래도, 추풍대에 맞서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맞서 싸웠기에, 그들을 기리는 행사는 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당유혼이 쓰러져 있는 동안은 침울했지만, 마지막 하루는 애써서라도 밝게 살아가기 위해 소리치는 이들로 인해 방계들 역시 쉬이 섞여 축제를 즐겼다.

그리고, 그들과 한 걸음 떨어져 있던 당유혼은 홀로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잘들 노는구만.”

발 앞에 닭 다리가 수북이 쌓인 대접을 가져다 놓고, 한쪽에는 음료가 가득한 병을 놔둔 채 먹고 마시는 모습은 남의 집 지붕 위를 자기 집 안방처럼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또 묘하게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우적거리는 소리만이 동떨어진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여기 계셨군요.”

누군가 그 거리를 좁히듯 불쑥 다가왔다.

“축제가 한창인데, 함께 어울리시지 왜 여기 계십니까.”

“저도 즐기고 있는데요, 뭘.”

앞에 놓인 무수한 발골된 닭 다리뼈가 보이지 않느냐는 듯 가리키자 다가온 이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당유혼도 낄낄 웃으며 몸을 풀었다.

“뭐, 사실은 이쯤 되면 올 것 같기도 했거든요.”

“제가 말입니까?”

“상단주님이 오시든가, 혹은 다른 누군가 오시든가. 어차피, 이유는 동일할 테니까.”

“아…….”

우적우적―

아무렇지 않게 닭 다리를 발골하는 모습이 참 무심하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저 머릿속에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광세운은 문득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이 사람은 나와의 대화 몇 마디만으로 우리 상단의 상황을 꿰뚫어 보았지.’

그때로부터 흘러온 시간을 떠올리며 광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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