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77화 (77/350)

77화

“저… 형님. 죄송한데, 뭐가 함정이란 것입니까?”

멀뚱멀뚱.

일단 이 자리가 굉장히 중요한 건 알겠는데, 거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나 다름없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에 진지하게 뒤통수를 갈겨줄까 하던 당유혼이지만…….

‘그래도 이럴 때 경험치를 조금씩이라도 먹여둬야 나중에 써먹지.’

속으로 몇 번이나 ‘참을 인’자를 새기며 입을 열었다.

“사천삼주가 수를 쓴 거다. 정확히 무엇이다 아직은 확정 지을 순 없겠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명성’이겠지.”

“명성… 말입니까?”

“그래. 이전이라면 이놈의 망한 가문에 그딴 건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

당가는 이제 막 상장한 신생 세력이다.

그것도 어쭙잖게 개업을 시작한 포목점이나 푸줏간이 아니라, 용독문의 유해라는 막대한 자산을 자본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집단.

그런 당가가 목표로 하는 거대 세력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명성이다.

“당가는 앞으로 더 거대해질 거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그, 글쎄요?”

“엄청나게 귀찮아진다.”

“…넵?”

이거, 표정이 왜 이래?

어처구니없어하는 당지명과 달리 당유혼은 진지했다.

“그거 엄청나게 귀찮아. 네가 동네 마실만 나가도 온갖 시선이 뒤따른다. 어디 옆집에 놀러 가도 그곳과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타 지역 문파에 찾아가면 지역 분쟁이 벌어지게 되겠지.”

뿐만인가?

“밥 먹는 것도 신경 써야 해. 뭐가 맛없다고 하면, 숙수의 모가지가 댕강 날아가고, 하필 그게 어느 문파에서 선물한 거라면 그 문파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하다못해 뒷간 가는 것까지 신경 쓰게 될 거다.”

“아니…….”

그래도 뒷간까지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그리되면 따라오는 귀찮음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 귀찮게 만들면서도 꼭 필요한 게 명성이다.”

그만한 시선이 따라온다는 것 자체가, 작은 몸짓만으로도 세상에 큰 파랑을 만들 수 있는 명성이 있다는 증거니까.

“사천삼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번 사천지회에서 우리 사천당가의 명성에 흠집을 낼 거다.”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다 알아? 다만…….

“그래도 그게 무엇이든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해결책은 간단해. 아니, 애초에 그것뿐이지.”

“그게… 무엇입니까?”

“강해지는 거다.”

힘.

오로지 힘.

“계략이란 것은 힘이 부족한 이들이 그 힘을 대신하기 위해 짜내는 거지. 애초부터 그런 힘이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래, 마치 삼십 년 전의 사천당가처럼.

“가주.”

그렇게 당지명을 침묵시킨 당유혼이 고개를 돌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어린 가주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번에 방계 녀석들을 쉬게 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또 죽어라 굴리게 될 거야.”

“…진짜 죽어 나가지만 않게 해주시지요.”

“걱정 마.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거거든.”

사람을 어디까지 굴려야 죽지 않는 선에서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지, 그것은 삼십 년은 물론 그 몇십 년도 전부터 당가의 가솔들을 굴려 왔던 당유혼의 전매특허였다.

“사천지회가 언제 열리지?”

“두 달 뒤입니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잠잠하겠군.”

톡톡―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까딱이는 당유혼의 머릿속에 주판알이 드르륵 굴러갔다.

그리고, 그 계산이 끝났을 때,

“좋아. 한번 죽어보자고.”

당유혼은 활짝 미소를 지었고,

‘제, 제발…….’

축제의 현장에서 혼자 끌려온 유일한 방계, 당지명은 울상을 지었다.

* * *

삼 일간의 축제가 지났다.

하지만 그게 도축 전 돼지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임을 당지명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였다. 발 앞에 덩그러니 놓인, 철갑(鐵甲)을 보고도 유일하게 방계들 중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우리 당공(唐工)들이 니놈들이 술만 처마실 동안에도 열심히 노력해 주셨다는 증거지.”

“…지난 삼 일 사이에 이게 만들어졌다구요?”

“그럴 리가 있냐? 감숙으로 떠나기 전에 미리 주문해 놨었는데, 이제 다 만들어졌다더라고.”

당가에 있는 장인들.

당유혼이 오기 전에도, 그나마 농기구니 하는 것들을 만들어 팔며 당가를 유지해 온 장인들에게 당유혼이 부탁한 것들이 완성되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뭔… 우아악?!”

콰직―

방계 한 명이 그걸 들려다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묵직함에 떨어트려 버렸다.

떨어진 철갑은 그대로 바닥의 석판을 박살 내며 틀어박혔고, 싸늘한 침묵이 연무장에 감돌았다.

“하나당 백 근이다. 전부 차라.”

“자, 잠깐만요!”

“우리가 이미 차던 것들은요?”

이미 저마다 발목 손목에 빈틈없이 차 있는 쇠 팔찌들을 들이밀며 항의해 보지만,

“아, 그래. 그게 좀 가볍지? 걱정 마, 우리 당공들에게 그것들보다 더 튼튼하고 무거운 걸 만들어 달라고 발주해 놨으니까.”

본전도 못 찾고 절망에 빠져들었다.

“이… 마, 말도 안 되는……!”

“야, 이 악귀야! 그냥 우릴 죽여라!!!”

“크크, 걱정 마. 특별히 우리 가주님께 딱 죽기 전까지만 굴리겠다고 약속했거든.”

당유혼은 방계들의 야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예를 발휘하며 흉소를 흘렸다.

그렇게 방계들의 비명과 원성으로 혼원신공을 연성한 당유혼은 곧장 다음 작업을 위해 비서고에 틀어박혔다.

“자, 그럼 다음은 이건가.”

기초 체력 훈련은 말 그대로 기초일 뿐. 꾸준히 그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기에 점진적으로 단계를 향상시키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기초일 뿐이었다.

‘이제 슬슬 녀석들도 본격적인 무공을 익힐 때가 됐다.’

방계들에게 공통적으로 개량한 귀원일기공을 익히게 하고 차양십이수를 연마하게 했지만, 그건 녀석들을 똑바로 서 있게 만든 것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걷고 뛰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할 일이지만, 그러기에 그 역할을 할 당가의 무공은 너무나 낡았다.

‘내가 손을 댄 것이 한 오십 년 전이던가?’

다시 태어나기 전에도 당가의 무공을 싹 다 고치려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되었다.

그때의 당가의 무인들은 다들 어느 정도 성장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었기에, 굳이 무공 자체를 새롭게 고치기보다는 개개인이 가진 문제점을 가끔씩 손봐주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방계들은 정말 이제 막 토양을 갈군 것이고, 이제는 씨앗을 뿌릴 차례다. 어떤 종류의 종자를 뿌릴지는 개개인의 자유겠지만, 그 종자가 가장 최상품이어야 뭐가 되든 되지 않을까?

“시작해 볼까.”

당가의 비서고에 쌓인 책자들 중 하나를 눈으로 훑었다.

파르륵― 하고 지나가는 책자를 보고 있자면 읽는 건지, 마는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그 모든 내용은 당유혼의 머릿속에 입력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 권의 서책을 읽으면 당유혼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건 낡았고, 이건 괜찮아. 이건 남겼고, 이건 바꾼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공 하나가 완전히 분해되고 재정립되었다.

하나의 완성품들이 하나하나의 부품으로 나뉘었고,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을 남긴 채 낡은 것들은 새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또 때로는, 핵심이 되는 것 역시 바뀌어나가기도 했다.

‘이건 왜 또 쓸데없는 데 목숨을 걸어?’

그것은 실로 파격적인 행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해당 무공에 대한 창시자보다 확실한 이해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행위였고, 예순네 가지에 해당하는 무공과 거기서 갈라져 나온 이백하고도 아흔 가지의 무공이 전부 재정립되어 새롭게 탄생했다.

“아이고, 허리야…….”

이 나이 먹고 이게 뭐 하는 생고생인지.

그렇게 재정립한 무공서 중 일부를 챙겨 든 당유혼은 곧장 밖으로 나섰다.

“끄어어어…….”

“으으으… 살려줘……. 아니… 차라리 죽여줘…….”

“당유혼, 이 개자식…….”

연무장으로 향하니 방계들이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강시로 제작하려다 실패한 반시(半屍)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저게 뭐야? 무서워.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당유혼은 곧장 발걸음을 돌려 다음 장소로 향했다.

“형님? 이건 무엇입니까?”

집무실에서 오늘 자 업무를 보던 당위혼은 잔뜩 쌓인 문서 옆으로 쾅― 하고 놓인 보따리를 보자 당황해 눈만 깜빡였다.

“비서고에 있는 무공 중 낡았다 싶은 것들은 싹 다 바꿨다. 개중에서 네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가져왔다.”

이건 수공이고 이건 지공, 이건 장법, 이건 내공심법…….

주섬주섬 꺼내는 서책들의 높이가 이미 쌓여있던 문서만큼 쌓이자 당위혼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자, 잠깐. 형님. 이건 대체…….”

“응? 아, 검법이 확실히 당가랑 거리가 떨어져 보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특수하게 제작한 검을 다루는 녀석도 있었어.”

마침 검법서 하나를 꺼내던 당유혼이 자세하게 그 내용을 설명해 주려 하자 당위혼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 뜻이 아닙니다만… 그동안 안 보이시던 이유가 설마 이걸 작성하고 계셨습니까?”

“그랬지?”

“허…….”

당최 이 형님은 얼마나 잘난 사람인 건지.

도저히 무어라 할 말이 없어 결국 들고 있던 붓필을 떨구는 어린 가주에게 당유혼은 가지고 온 무공서를 전부 건네준 뒤 떠나갔다.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갈 길이 아직 구만구천 리다.

그리고, 사실 진짜는 이제부터다.

방계들이야, 못 알아먹으면 알아먹을 때까지 쥐어패면 되고, 우리 가주 동생이야 하나를 가르쳐주면 알아서 열을 익히는 신동이니 사실 지금까지는 어려울 게 없다.

그러니 문제라면 이제 방문할 이에게 있으니…….

“뭐냐, 또.”

가주 당위혼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고 있던 총관 당궁상은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을 받아 가뜩이나 깐깐하던 인상을 더욱 깐깐하게 만들었다.

‘인상 좀 펴세요, 나도 니 얼굴 보면 주먹이 날아드니까.’

당유혼은 속으론 그렇게 되뇌었지만,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무공서 세 개를 내밀었다.

“이거 익혀요. 총관님.”

“…이건 뭐냐?”

“내공심법. 보법. 검법.”

차례로 그 이름을 나열해 주자 당궁상은 그 서책의 제목들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됐다. 치워라.”

일없다고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

‘이런다 이거지?’

뻔히 예상했던 반응.

‘그래, 어차피 쉽게 익힐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이 나이만 처먹은 꼴통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이젠 직위가 직위인데다 나이도 처먹어서 예전처럼 쥐어팰 수도 없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당유혼은 고갤 돌려 다시금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는 당궁상에게 승부수를 던졌다.

“두려운 건 아니시고?”

아주 가볍게, 도발을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