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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78화 (78/350)

78화

【 운남행 】

“…뭐?”

툭― 하고 던진 조약돌이 고고한 수면에 파랑을 일으키듯, 당궁상이 결코 조용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딱딱하다 못해 차갑게 얼어 살벌하기까지 한 목소리.

“두려운 게 아니냐고?”

어떤 미친놈이 감히 그렇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싶지만,

“내가 틀린 말 했나?”

그 미친놈이 바로 여기 있었다.

“이 시건방진 놈이!!”

콰직―

단번에 당유혼의 멱살을 움켜쥔 당궁상이 타오르는 듯한 안광을 폭사했다.

“오냐오냐해 주니 아주 뵈는 게 없구나!!”

“글쎄. 오냐오냐해 주기 전부터 난 원래 뵈는 게 별로 없었는데?”

우리가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잖아? 늙어빠진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건.”

“…뭐?”

“들어서 알고 있거든.”

멱살을 쥐고 있는 손을 떼어내며, 당유혼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착해빠진 가주님께서 당신 몫으로 배정해 둔 영약들까지 방계들에게 나눠주고 있다지?”

“그걸… 어떻게?”

당궁상의 표정이 흔들렸다.

표정이 흔들리는 건 평정이 흔들렸다는 뜻이고, 평정이 흔들렸다는 것은 그 고집으로 단단히 뭉친 아집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두렵지? 당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 실제로도 그렇겠지. 평생토록 당가가 쇠락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도 버거웠는데, 이제 막 커나가는 어린아이들이 당신보다 더 잘해 내는 것이.”

그런데 말이야…….

“그럴 거라면 차라리 질투라도 하지 그랬어. 내가 보이는 공적이 대단해 보인다고, 저 어린 것들에게 희망이 보인다고, 그냥 밤새도록 업무를 보다 과로로 뒈져 버리겠다 그러지 말고… 내가 투자만 잘 받았다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총관이란 그 잘난 자리로 다른 영약까지 더 꼬불쳐서 처먹지 그러셨어.”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자식아.

마지막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조금 더 나가버리면, 당유혼 스스로도 평정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침묵이 감돌았다.

당궁상은 더 이상 변명도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이 녀석의 뒤틀린 아집이자, 수십 년 당가에 바쳐온 충심이니까.

‘그렇기에, 내가 이룬 것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고.’

당궁상은 당유혼을 못 믿을 놈이니, 건방진 놈이니 욕할지언정, 자신이 이룬 것이 당유혼보다 낫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 한 조각, 변치 않을 붉은 마음은 그가 앞으로도 살아갈 방법이 아닌 죽어갈 방법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받아.”

당유혼은 그가 거절했던 책자들을 다시금 내밀었다.

“당신이 어떻게 죽어버리든 내 알 바는 아닌데, 그랬다간 우리 어린 가주님이 그 여린 마음에 어떤 상처를 입을지 모르거든.”

네 녀석이 이뻐서 주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내밀어 오는 책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궁상이 문득 입술을 달싹였다.

“당유혼.”

“뭐.”

“당유혼.”

“왜.”

“당유혼.”

“아니…….”

이 자식이? 실제 나이로 따지면 나보다 어린놈이 어디서 반말을 찍찍…….

“난… 네가, 미치도록 증오스럽다.”

역정을 내려던 순간, 당유혼은 순간적으로 움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유혼. 그 이름 석 자를 믿을 수 없고,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네 녀석을 용서할 수가 없다.”

왜냐면,

‘너…….’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 속에, 마치 삼십 년 전 녀석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은… 모를 것이다. 네가 가진 그 이름을 가졌던 삼십 년 전의 어느 놈팡이를.”

당궁상의 시선은 삼십 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놈은 너와 같았지. 연고지도, 과거도, 그 정체도 알 수 없게 불현듯 나타나… 언제나 자신을 믿으라며 떵떵 소리치고 다니며 사람들을 이끌었으니까.”

그러다가…….

“모든 사람들의 믿음을… 져버려 놓은 주제에.”

으득―

“…나는 말이다. 사실 아직도 네놈을 믿지 않는다. 네가 이름이 똑같다 해서, 삼십 년 만에 뒈져 버린 줄 알았던 그놈이 다시금 어려져서 나타났다는… 그런 망상에 빠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아.”

그럼에도,

“하나, 네가 그 이름을 사용하는 한… 나는 네 녀석을 믿을 수 없다. 그 이름을 지닌 녀석은… 결국 자신이 모든 걸 지키겠다고 말한 주제에, 모든 것을 파멸로 밀어 넣은 녀석이니까.”

탁―

당궁상이 내밀어진 책자들을 거칠게 뺏어 들었다.

“네가 준 귀한 것과 네가 준 값진 것들을 전부 받아먹고 익히겠다. 그리고, 끝없이 네 녀석을 의심할 거다. 그것이, 삼십 년간 당가의 몰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한심한 나에 대한 벌이요, 그런 내가 져야 할 업(業)이니까.”

그리 말한 당궁상은 거칠게 몸을 돌려 떠나갔다.

차마 잡지 못해 뒷모습만을 우두커니 바라보아야만 했던 당유혼은, 당궁상이 떠나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믿음이라…….”

어이가 없구만.

“그런 건, 나도 없는 건데 말이야.”

복잡한 마음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잘것없는 감정에 얽매여 있기엔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 * *

해야 할 건 진짜 산더미다. 그중에서, 일단 당장 꺼야 할 불은 역시 하나뿐.

그래서 아무도 없는 인적 드문 야산으로 올라왔다.

“시작하자고.”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듯한 말을 뱉으며 가부좌를 틀며 앉았다.

의식을 내면으로 떨어트리자 곧바로 주변 세계가 어둠에 물들었다.

이미 한 번 와본 공간에 두 번째로 방문하니 이제는 조금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안 그러냐, 건방진 녀석아.’

고개를 들어 어둠으로 보이는 녀석의 비늘을 바라보며 묻자 잠시 후 주변 어둠이 뒤흔들리며 공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 크르르르…….

그 틈 속으로 사나운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검푸른 안광이 빛을 발했다.

“고놈, 성질머리하고는.”

누구 덕분에 태어난 지 모를 녀석이, 세상에 나게 해준 은혜도 모르고 저렇게 이빨을 세우다니.

“네 녀석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한 것은 내 책임이니까 뭔 짓을 해도 뭐라 말은 못 하겠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냐?”

힘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수단으로는 절대 모으지 못하는 그런 강력한 힘.

“얌전히 가져와.”

손을 까딱이며 입부자에게 월세를 요구하니,

- 크르르르르르르르!!!

아주 뜨거운 반응으로 답을 돌려줬다.

“그래, 사실 좋게 나올 거라고는 기대 안 했ㅇ… ㅁ, 말하는데 이 자식이!”

콰아아앙!!

무언가 검푸른 덩어리가 날아와 내가 있던 장소를 강타했다.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주변 분위기가 급변하는 게 느껴졌다.

흑색과 청색, 백색의 삼색이 대비되는 불꽃을 피워올리는 녀석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했다.

“시끄럽기는…….”

주먹을 꽉 움켜쥐자 그곳으로 힘이 깃들었다.

이것은 혼원신공을 통해 쌓은 내공도 아니고, 그동안 온갖 독초들을 먹어 체내에 축적한 독기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란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의념이 바로 그 정체였으니, 저 건방진 녀석의 궁둥짝을 걷어차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올랐다.

“오늘 좀 쳐맞… 크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

녀석의 아가리가 벌어지고, 푸른 기둥이 퍼부어졌다.

그것에 휩쓸린 당유혼은 바닥인지 심연인지 모를 곳을 몇 바퀴나 구르고 나서야 한구석에 처박혔다.

“끄으으…….”

뒤지게 아프네, 진짜.

“…좋아, 좋다고.”

이를 갈며 일어서자 여전히 섬찟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지가 힘이 되는 공간 속에서 눈을 감고 집중하니 양손 가득 온갖 암기들이 생겨났다.

당유혼은 삼십 년 전에 익숙하게 사용하던 것들을 양손에 쥐고 버럭 소리쳤다.

“한번 뒈져 보자고!!”

파파팟!!

당유혼의 두 손으로부터 수십, 수백… 아니, 일천을 넘어서는 빛줄기가 폭사했다.

그것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당가의 비기. 삼십 년 전에 당유혼이 부활시킨 뒤로도 사용하는 이 몇 없었다는 전설적인 비술이 펼쳐졌다.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만천화우(萬天花雨).

온 하늘을 물들이는 꽃비가 어둠의 공간을 물들였다.

콰콰콰콰콰콰쾅!!

꽃비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살벌한 폭음이 전 공간을 휩쓸었고, 탐의 흉성이 공간 가득 울려 퍼졌다.

- 크르르르르르르르!!!

“어때, 이건 좀 아프… 쯧, 턱도 없구만.”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물결 속에서 다시금 얼굴을 들이민 녀석의 눈빛이 더더욱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쩌억―

흑, 청, 백, 삼색의 구체가 빛무리를 뿜어내며 다시금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모이는 게 보였고, 당유혼은 황급히 두 손을 모아 원(圓)을 그렸다.

마음은 다급했지만, 그럴수록 두 손의 움직임은 침착해져서 빛줄기가 퍼부어지는 것과 동시에 원이 완성되었다.

위(僞) 태극도(太極圖).

당가의 방계들이 익히고 있는 차양십이수가 극한에 도달하고 그로부터 몇 단계의 진화를 거듭해서야 펼쳐질 수 있는 풍경이 그려졌다.

태극 문양이 허공에 그어져 퍼부어지는 빛줄기를 흩트렸다. 하지만 그 거력을 전부 해소하지 못해 당유혼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크학!! 이 자식이, 진짜!!”

적당히 안 한다, 이거지?!

다시금 예리하게 선 의지에 따라 당유혼의 주변으로 암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것들은 당유혼의 손에 들려있지 않았고, 저 알아서 허공에 둥둥 뜬 채 그 끝을 상대에게 겨누고 있었다.

“좋아, 나도 이판사판이다!”

그 암기들이 일제히 쏟아져 어두운 공간에 꽃비를 물들이는 것과 동시에 당유혼 역시 밟은 자리를 박차고 솟구쳤다.

끊임없이 그려진 원의 연속이 탐이 뿜어내는 삼색의 빛줄기를 파헤치며 나아갔고, 두 손이 새하얗게 백열되며 녀석을 노렸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공간이 뒤흔들렸다.

어둠에 가득했던 시야가 백색으로 물드는 게 느껴짐과 동시에 당유혼은 자신이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젠장.’

졌구나. 빌어먹을 괴물 자식. 내가 이걸 지네?

‘전성기였다면 이런 되다 만 뱀 녀석쯤은…….’

온갖 투덜거림이 흘러나왔지만, 당유혼은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금 전에 모든 걸 쏟아부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멍하니 고정된 시야에 따라 저 위쪽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 크르르르…….

승자의 여유를 즐기는 것인지, 그곳에서 나타난 탐 녀석이 자신을 응시하는 게 보였다.

‘이 자식, 눈을 확 뽑아버릴라. 이번에 이겼다고 재는 거야 뭐야?’

슉슉― 슉슉!

괜스레 주먹을 뻗어보려 했지만, 주먹은 개뿔… 손가락 하나 뻗을 힘도 없다.

그때, 녀석으로부터 무언가 검은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건 작디작은 비늘이었지만, 나풀나풀 떨어져 내리며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그게 닿는 순간,

“……!!!”

당유혼의 몸이 크게 들썩이며 온 세상이 흑색, 청색, 백색의 삼색으로 물들여졌다.

“…커억!!”

검게 죽은 피를 토하며 깨어나니 처음 향했던 야산이었다. 어느새 검은 공간에서 빠져나온 당유혼은 전신에 그득한 힘을 느끼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크흐… 절반의 성공인가?”

그 공간에 뛰어들었을 때와 차원이 다른 힘이 온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쯧,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무 데서 할 짓은 아니군.”

어느새 독기에 범벅이 되어 황폐해진 주변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 짧은 내면을 관조하는 시간 동안, 새어 나온 힘의 여파가 온 주변을 휩쓴 것이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

넘쳐나는 힘.

다시 붙는다면, 그때의 추풍대주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아.”

그 힘을 느끼며 당유혼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열차게 뛰어다녔는데, 아직도 할 게 많았다.

몸이 열이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실시간으로 체감되는 지금.

‘진지하게 좌도방문의 술법사들이 익힌다는 분신술의 실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일 것도 같은데?’

당유혼은 그런 뻔한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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