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79화 (79/350)

79화

* * *

철기방.

당가의 장인들이 철기(鐵器)를 다루는 곳으로, 예전에는 난민촌에 가까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당가에 자금이 넘쳐나게 된 후로 당유혼은 이곳부터 싹 다 뜯어고쳤다.

암기를 주류로 사용하는 당가의 특성상 그 중요도야 설명할 필요도 없고, 당위혼, 당궁상, 당유혼의 당가 핵심 권력층 세 명이 공통적으로 동의하여 대대적으로 재탄생하게 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 당유혼이 방문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방주님. 찾으셨다면서요?”

“아이고, 도련님. 이 늙은이가 직접 찾아뵀어야 하는데… 이리 곤란케 해서 죄송합니다.”

철기방주 당야철이 당유혼의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뭘 그런 걸로 미안해하세요? 우리 방주님 바쁜 거야 다 아는데.”

다른 이들한테는 막 대해도, 이들 야장에게만큼은 당유혼도 몇 수 접어줬다.

‘이들이 있기에 당가가 있을 수 있지.’

자신의 두 손을 붙잡고 황송해하는 수준으로 허리를 숙이는 당야철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에요? 부탁드린 게 워낙 많아서 뭐가 문제인지 짐작도 안 되는데.”

이것저것 암기를 만들어 달라거나, 차양당 녀석들한테 채울 족쇄를 만든다거나, 그 외에도 당가를 지킬 기관 장치들을 만드는 등… 온갖 업무에 시달릴 그의 부름에 당유혼은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음… 실로 아뢰옵기 송구하나… 도련님께서 부탁하셨던 암기들을 만드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왜요? 손이 부족해요? 쇠 두드리거나 물 길어오거나, 짐 나르는 거라면 쓸 만한 노예…가 아니라 짐꾼들이 있는데?”

그 짐꾼들이 누구인 줄 잘 아는 당야철은 허허 웃음만 흘렸다.

“…그 아이들이 밤낮없이 고생하는 걸 아는데 어찌 제가 도움을 요청하겠습니까.”

“에이, 그 녀석들이 뭐 방주님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나요? 돈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방계들이 벌어오는 재산이나 축내며 지들 수련이나 하고 있는데.”

매일 새벽마다 약초를 캐오는 게 어디 누구인가 싶었지만 당야철은 그냥 웃기만 하기로 했다.

괜히 여기서 그들을 변호해 주다가는 잔뜩 화가 난 눈앞의 이 자상하고도 무서운 도련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화풀이할지 불 보듯 훤했으니까.

“…다행히도, 일손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흠, 그럼요?”

“도련님께서 찾아와 주신 암기 도해를 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문제라면?”

“거기 적힌 재료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용독문을 털어서 가져온 건 무공서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쓰지도 않는 주제에 가져가서 보관만 하고 있던 옛 당가의 암기 제작 비법서들도 다시 찾아왔다.

그걸 철기방 야장들에게 인수해 주었지만, 그 내용을 해석하다 필수적인 핵심 재료들을 구할 수 없다는 현실에 봉착한 것이다.

“왜요? 돈이 부족해요?”

“예산은 넘쳐납니다. 다만, 정말 그 재료들을 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설마, 사천삼주 이 새끼들이 또 치졸한 짓을? 기다려 봐요. 제가 당장 그놈들 대가리를 깨러…….”

“아이고, 도련님!!”

당장에라도 사천삼주를 향해 쳐들어갈 것 같은 몸짓에 깜짝 놀란 당야철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이 도련님이라면 진짜 달려갈 것 같았으니까!!

“그게 아닙니다!! 이 재료가 운남에서 생산하는데, 그걸 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운남이요?”

“그렇습니다. 운남의 적철이라는 금속이 필요한데… 시장에 그 재료가 아예 없다고 합니다.”

“허…….”

이건 좀 문제인데…….

당유혼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운남이라면… 감숙과는 정 반대편이라 광형 상단을 통해서도 구하기 힘들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저 또한 이미 알아봤는데, 광형 상단에서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적철은 당유혼도 아는 금속이었다.

붉은빛을 띠는 게 특징인 금속으로, 오로지 운남의 오지에서만 생산되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진짜 못 구하는 게 맞다.

게다가, 그것이 일반적인 병장기에 필요한 게 아니라 암기를 다루는 이들에게만 필요하다 보니 원래부터 시장에서 유통되는 양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제가 직접 구하러 가야겠네요.”

“예? 아니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니에요. 적철의 중요성은 저도 잘 알아요.”

적철의 쓰임이 어디에 필요한지는 잘 알고 있다. 많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서도, 그게 꼭 필요하다는 게 중요하니까.

“기다려 보세요.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으니까.”

그리 말한 당유혼은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 *

“운남, 운남이라…….”

그의 방문을 받은 당위혼은 사전 설명을 전해 듣고는 고민하듯 미간을 좁혔다.

“멀다고 하기도, 가깝다고 하기도 애매한 곳이군요.”

“그렇지.”

사천의 북쪽에 붙어있는 게 감숙이라면, 사천의 남쪽에 붙어있는 게 운남이었다.

어디 몇 개 지역을 지나가야 되는 안휘, 복건, 하북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밑에 있는 운남이니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곳의 환경이었다.

“운남은 대부분이 고원과 구름, 산지 등으로 이루어진 곳. 교통편이 불편해서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다른 지역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요.”

“그것도 맞지.”

적철의 생산지에 대한 정보야 구할 수 있겠다지만, 그곳에 직접 가는 것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당가는 두 달 뒤면 사천지회에 참가하여 사천삼주의 음모에 대비까지 해야 하는 상황.

“꼭… 가셔야 하시는 것입니까? 어차피 그걸 구해 온 후라면… 사천지회에서는 적철의 효용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 역시 맞아.”

이어지는 말들은 틀림이 없다.

다만…….

“하지만, 가주야.”

“네. 형님.”

“우리 경쟁 상대가… 고작 사천삼주 저 녀석들은 아니잖아?”

“…허.”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

그 사천성주조차 단칼에 쳐낼 수는 없어 호시탐탐 약점이 드러나길 기회만을 노리는데, 고작 길 가다 걸리적거리는 걸림돌 정도로만 보는 저 배포에 당위혼은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까지 보시는 것입니까?”

“뭐, 좀 빨리 도착하면 진작 혜택을 볼 수도 있는 거고.”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

그 대답으로 인해 이 어린 형님이 가진 사천삼주에 대한 견해를 알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어린 가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군요. 좋습니다. 하면 인선(鐵器)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마음 같으면 다 데려가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오고 싶긴 한데, 그러기에는 너무 자주 여길 비워두기도 좀 그렇긴 해. 녀석들이 수련도 해야 하고.”

그럼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세 놈만 데려가야겠어. 짐 잘 끄는 놈 둘이랑 그나마 머리 돌아가는 놈 하나로.”

그리하여…….

“…운남이요?”

“아니, 왜요?”

“하…….”

차례로 차출된 세 명.

당지명, 당불퇴, 당율기.

그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다.

“왜긴 왜야, 필요하니까 가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저희가 왜… 꾸엑!”

이제는 머리도 제법 굵었겠다,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절대 납득할 수 없다며 저항을 뻗치던 당불퇴는 그대로 날아 차기에 맞고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왜? 왜애애애?! 이 자식이 오냐오냐하니까 이젠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

이 자식아, 니 짬에 이유가 필요해?

당유혼이 버럭버럭 외치는 모습에 반발하려던 나머지 둘은 얌전히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니들도 이유가 필요해?”

“…허허, 어서 가시지요.”

“짐 다 싸놨습니다, 대형.”

즉각 태세를 전환한 형제들의 모습에 당불퇴는 뜨거운 형제애를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단숨에 반발을 제압한 당유혼은 속전속결로 여정을 꾸렸다.

물론, 여정이라 해봐야 그리 대단할 건 없었다.

이전에 철기방에 직접 주문 제작한 튼튼한 수레 세 대와 그 안에 존재하는 먹을 것과 마실 것, 갈아입을 것 그리고…….

‘편안한 침상 단 하나…….’

물기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방계들의 눈에, 지 혼자 수레 위 편안한 침상에 올라탄 채 채찍을 든 당유혼이 비추어졌다.

“오, 방주님. 이거 완전 좋은데요?”

“허허, 도련님께서 주문하신 건데 어찌 못나게 만들겠습니까.”

당유혼은 철기방주와의 대화 도중 의자 손 걸이를 탕탕 두들기며 히히 웃었다.

“좋네요. 특히 이 수레가 튼튼한 게 특히 좋아요.”

“주문하신 대로 만들었습니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게, 절대 안 부서지도록 만들다 보니 하중이 너무 많이 나갈 것 같은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말들이 끌다가 빨리 지칠 수도 있습니다.”

“에이~ 그건 괜찮아요. 우리 말들은 쉽게 안 지치거든요. 그렇지?”

…예, 그러시겠죠.

지쳤다가는 저 채찍이 찰싹찰싹 날아들 게 분명한데, 어떻게 지칠까 싶다.

“형님.”

그리고, 그들의 떠남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이들 중 당위혼이 앞으로 나서며 그를 불렀다.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리 다시 떠나보내게 하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됐어. 너도 할 게 많은데.”

괜한 말이 아니라 당위혼 역시 주어진 업무와 노동량이 보통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철야까지 업무를 봐야 할 정도임에도 무공 수련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준 거 잘 익히고.”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당유혼이 무공서를 싹 다 개편하면서도 당위혼을 위해 특별히 새롭게 창안한 게 있었다.

‘그걸 대성한다면… 사천삼주의 장로 놈들과 비견해도 꿀리지 않을 테니까.’

새롭게 주어진 삶이기에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당유혼은 그걸 게을리할 생각이 없었다.

“니들도 마찬가지야. 내가 돌아왔을 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흠,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이건 좀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는걸?”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는 그 말에, 방계들은 엄포를 듣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런 미친!! 뭐 그딴 걸 고민해?!’

‘죽어라 수련해야 된다, 절대, 절대 기대에 못 미치면 안 돼!!’

‘오늘부터 무조건 하루에 두 시진만 잔다, 아, 아니 한 시진……!!’

두려움을 새겨준 당유혼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 그건 나중들 일이고. 슬슬 출발들 하자고.”

헤어짐은 짧을수록 좋으니까 말이지.

“달려라, 이놈들아!”

찰싹찰싹―

“아, 좀 때리지 말라고!!!”

“안 해도 갑니다, 가요!”

자신이 탄 수레뿐 아니라 다른 둘에게까지 채찍을 휘둘러주는 공평함에 방계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당가의 가솔들은 저마다 복잡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쫓았다.

‘형님, 부디 무탈히 돌아오십시오.’

깊게 읍을 하는 당위혼과 저마다 온갖 저주와 폭언을 속으로 외치는 방계들까지.

그렇게, 본격적인 운남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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