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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80화 (80/350)

80화

운남.

이름부터 뭔가 개발이 덜 된 것만 같은 곳인 이곳은, 실제로도 중원을 기준으로 상당히 낙후된 지방이었다.

상업을 위한 도로가 그렇게 많지 않기에, 얼마 가지 않아 비포장된 황무지를 맞이해야만 했고…….

콰드득―

“아악!! 또 바퀴가 망가졌어!!!”

“이 자식아! 살살 몰라고 했지!”

찰싹찰싹―

‘자기가 느리게 몬다고 채찍질했으면서!!’

당불퇴는 수레바퀴를 벌써 세 번째나 망가트렸다고 당유혼의 채찍질을 얻어맞아야 했다.

‘흑… 지가 좀 해보든가…….’

이런 비포장도로에서 묵직한 수레를 끌며 바퀴를 망가트리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알고 있을까?

그나마 철기방의 야장들이 만든 특제 철 바퀴였기에 이나마 인 거지, 일반 나무 바퀴였다면 진작 열 번도 넘게 망가졌을 것이다.

그런 말들을 차마 쏟아낼 수 없어 입이 댓 발로 튀어나온 당불퇴지만, 괜히 한 마디라도 삐죽거렸다가는 채찍질만 더 날아올 걸 잘 알기에 얌전히 예비 바퀴를 꺼냈다.

‘…그나마 예비 바퀴로 바꾸면 무게가 줄어드는 게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수레에는 예비 바퀴들이 한가득이었다.

처음에는 이걸 왜 다 들고 가야 되나 싶었지만, 기를 쓰고 들고 가야 한다는 당유혼의 말에 따라 결국 여기까지 가져온 바퀴들은 다행히도 그 쓰임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깐만 내리십쇼, 바퀴 좀 갈아 끼우게.”

“빨리 갈아 끼워.”

이제는 익숙해진 교체 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덕분에 휴식을 만끽하게 된 다른 두 명도 허리를 펴며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았다.

“후……. 그런데 운남, 운남 하더니… 정말 소문대로 덥네요.”

그들이 살던 사천 역시 기후가 습하고 더운 편이지만, 이곳 운남은 더 했다.

턱밑까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당지명이 그리 말하자, 당유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만은 이것보다 더해. 그리고, 운남이라고 꼭 다 더운 것은 아냐. 워낙에 고원이 많은지라 추운 곳도 있어.”

“그렇습니까?”

항상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어린 대형은 외견에 비해 아는 게 참 많았다. 솔직히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리지 않을까 싶음에도 행동 하나하나에서 살아온 지혜 같은 게 느껴졌다.

‘저 예비용 수레바퀴를 들고 가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긴 것도, 결국은 대형의 말이 옳았고 말이야.’

정말로, 평소 언행만 좀 예쁘게 하면 알아서 존경을 받을 만한 양반인데…….

“뭐냐? 그 아니꼬운 눈빛은? 너 이 새끼, 좀 전에 속으로 내 욕했지.”

…저러는 태도가 그걸 다 망쳐 먹는다는 걸 본인은 알기나 할까?

“하하, 설마 그럴 리가요……. 그, 그보다는 이제 슬슬 식사나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말 돌리는 게 영 수상한데…….”

매의 그것과 같은 눈빛이 쏘아졌으나, 다행히 그 의심의 눈초리는 금세 거둬졌고, 밥 먹자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을까?”

마침 수레바퀴를 교체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동안 밥 먹는 것도 나쁜 선택지 같지는 않았다.

“그, 그럼 물 길어오겠습니다!!”

“…그럼 전 먹을 걸 좀 구해 오겠습니다.”

도망칠 기회를 포착한 당지명은 쏜살같이 식수를 구하러 도망쳤고, 여기 남아 있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학습한 당율기도 재빨리 도망쳤다.

그럼 자연스레 바퀴 교체를 위해 혼자 남은 당불퇴는?

찰싹찰싹!

“빨리 해! 인마!”

“아오!! 하고 있다구요!!”

연신 채찍질 세례를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 됐습니다, 드시지요.”

이제는 익숙해진 야전 요리.

챙겨온 조리 도구에 물을 풀고 채집해 온 약초와 사냥해 온 고기를 손질해 끓인 국이 완성되었다.

그간의 산행을 통해 단련된 요리 솜씨는 까다로운 당유혼의 입맛을 만족시킬 경지에 이르렀다.

“크으~ 시원하구만?”

나이 사십, 오십 먹은 중늙은이나 낼 법한 소리로 음식평을 토해내는 어린 대형의 모습에 나머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지, 안 그랬다면 밥그릇, 국그릇 다 날아왔을 테니까.

어쨌거나, 본격적인 식사는 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저마다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다 문득 당지명이 물었다.

“형님, 그런데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요?”

“움? 엄맘나?”

…그 입에 든 것 좀 다 비우고 말씀해 주세요.

양 볼을 잔뜩 부풀리며 고기를 채운 채 말하는 당유혼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이어 답했다.

“이제 거의 경계 선상에는 도착했을 거야.”

“경계 선상이요?”

대략적인 상황은 그래도 어느 정도 전해 들었다.

적철이란 걸 구하기 위해 운남으로 향해야 했고, 운남 중에서도 특히 오지로 향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그래. 내가 지난번에 운남에서도 오지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었지?”

“그랬지요. 그러고 보니, 왜 그래야 합니까?”

“그 적철을 캐는 이들이 흔히 이민족이라 불리는 이들이거든.”

우물우물, 꿀꺽.

입 안에 든 것을 비운 당유혼이 젓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적철이란 게, 일반 채광산에서 캘 수 있는 게 아니야. 운남의 오지에 있는 걸 이민족들이 캐와서 운남의 문명화 된 도시와 물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풀리는 거거든.”

“그럼 운남의 도시에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안 되니까 그렇지.”

적철을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그 말은 운남의 도시에 가도 그걸 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민족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뒤늦게 그 말을 이해한 당지명이 물어보지만, 당유혼 역시 마땅히 짐작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 나도 그게 의문이기는 해.”

당유혼이 알기로도 적철은 그들 이민족들에게 적지 않은 수입을 안겨다 주는 효자 교역품이었다. 그렇기에 지난 역사에선 웬만한 사건이 발생해도 그 거래가 잘 끊어지지 않았었는데…….

‘무슨 일들이 있는 거지?’

바뀐 세상에 아직 적응이 덜 된 노강호는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꼽아갔다.

하지만, 그건 곧 중단되어야 했으니,

“…형님.”

“어, 나도 알아.”

이제 막 식사를 끝나가는 그때,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저편에서 흙먼지를 뭉게뭉게 만들어 내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고, 그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반대쪽에서도 당유혼 일행을 발견한 듯, 선두의 사람이 손을 드는 게 보였다.

그렇게 우두커니 보고 있으니 그쪽에서 몇몇이 다가왔다.

“너희들은… 누구냐?”

툭 튀어나온 뱃살과 얼굴에 덕지덕지 살점이 붙어 심술 궂게 생긴 붙은 중년인이 대표인 듯 다가와 당유혼 일행을 훑어보았다.

그에,

‘아, X됐다.’

당지명을 포함한 방계들은 순간 머리가 아연해지는 걸 느꼈다.

그에 서둘러 당지명이 나서서 수습하려 했지만,

“너희이이이? 누구우우우???”

잔뜩 뒤틀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당지명은 일어서려던 자세 그대로 우뚝 멈추곤 고개를 푹 숙였다.

‘늦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니, ‘나 좀 불편한데?’를 온몸으로 표현하듯, 모가지를 삐딱하게 꺾은 채 짝다리를 짚은 당유혼이 보였다.

“어이, 돼지. 너 나 알아?”

“뭐, 뭐… 돼지?”

“그럼 새끼야, 니가 돼지지 인간이야? 어디 초면에 반말을 찍찍 뱉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그 말에 중년인, 조진양은 어처구니가 없어 턱이 쩍 하고 벌어졌다.

‘누, 누가 할 소리를……!!’

웬 애새끼들이 모여 있나 해서 봤더니,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 보이는 놈이 저런 소리를 찍찍 지껄이네?

“이 시건방진 놈이!!”

“대인께 감히 무슨 망언이냐!!”

상상도 못 한 말을 들어 딱딱히 굳은 조진양을 대신해, 그를 수행하는 양쪽의 검수들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놈들은 또 뭐야? 돼지 삼 형제냐?”

평소에는 그 풍채와 험상궂은 인상으로 마주치는 이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그들이지만, 문제는 그들 역시 검수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몸집이 비대하다는 것.

그들이 모시는 조진양만큼이나 비대한 몸집에 당유혼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조진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 하느냐!! 이놈을 당장에 무릎 꿇리지 않고!!”

“예! 대인!”

문답 무용으로 펼쳐지는 다툼에 당지명은 이게 평범한 지성인들의 만남인가 싶었다.

‘대화는 애초부터 글러 먹은 듯하니,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막아야겠구나.’

여기서 당유혼에게 맡겼다가는 저 정체 모를 양반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듯하여 직접 나서려는 당지명이었으나,

“크악!!!”

그렇게 결심하고 눈을 떴을 때, 이미 왼쪽 검수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는 당불퇴의 모습이 보였다.

“야, 야!! 이놈 불퇴야!!!”

“예?”

연타로 복부에 뒤돌려차기까지 쑤셔놓은 당불퇴가 왜 불렀냐며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뭐, 뭐 하느냐!!”

“뭐하긴요. 지금 먼저 쳐야 하는 상황 아니었습니까?”

“옳지, 잘 아는구만!”

활활 타오르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당유혼은 옳다구나 하고 박수를 쳤다.

‘야, 이… 대형 새끼야!!’

그걸… 말려야지,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있냐?!

당지명은 속으로 통탄을 금치 못했지만 이미 그간 당유혼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당불퇴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의 동료가 순식간에 당하자 깜짝 놀라 달려드는 오른쪽 검수를 향해 요격을 개시했다.

“이놈!! 진정 칼을 뽑게 만드는구나!!”

검병을 쥐어가며 버럭 소리치는 검수.

그에,

“어, 넣어둬. 뭘 그리 귀한 걸 뽑아 들려 그러니?”

당지명은 검수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달려들더니, 검병 위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뭐, 뭣?”

어느새 다가온 당지명의 모습을 쫓지도 못하는 검수의 눈에 이내 별들이 떠올랐다.

퍼퍼퍼퍽!!

“이 새끼!! 이 개새끼!! 그간 좋았지?”

“컥, 커억!! 컥!!”

“야, 좋냐? 좋았어? 약한 사람 괴롭히니까 좋아?!”

과연 그것이 이 검수가 이전 날 했을 행동들을 짐작해 주먹질을 가하는 것인지, 혹은 이전 날 자기가 당했을 행동들을 반추하는 것인지.

“자, 잠깐… 왜, 왜 이러는 거, 것인지… 대, 대화로 좀……!”

순식간에 안면에 대여섯대가 꽂히고 나니, 아… 이건 내 상대가 아니구나, 라는 걸 직감한 검수가 서둘러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내밀며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화? 대화는 싯팔, 진작에 좀 하지 그랬냐? 넌 평소에 너보다 약한 놈한테 대화로 해결했어?”

우연의 일치일까. 검수는 슬쩍 되돌려 본 자신의 기억 속에 그랬던 적이 얼마 없음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것이 아픈 기억을 자극해 버린 당불퇴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다시금 폭행을 재개했다.

“그치! 넌 좀 맞아야 돼, 이 새끼야!!”

“아,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끄아아악!!”

다시금 진행되는 일방적인 폭행의 현장.

그 무자비한 폭행에 조진양은 딱딱히 얼어붙어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뭐야?’

예상치도 못한 풍경에 그가 당황할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무리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금 십수 명의 검수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놈!! 무슨 짓이냐!!”

“오, 뭐야. 네 친구들이니?”

한창 검수의 멱살을 잡은 채 주먹질을 가하던 당불퇴가 반색을 했다.

십수 명의 검수가 달려듦에도 오히려 쥐어팰 놈들이 늘었다고 좋아라하는 당불퇴는 곧장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 이런…….”

말려야 해!!

당지명은 허겁지겁 손을 뻗어 불퇴를 막으려 했지만, 뻗어진 제 손 위로 무언가 슈슈슉 날아가는 게 보였다.

‘저건, 또 뭐야?’

허망하니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있는 것은…….

“…율기야?”

“예? 왜 그러세요, 형님?”

싱긋―

상쾌한 웃음을 지은 채, 어느새 양손에 젓가락을 잔뜩 들고 있는 당율기가 있었다.

“설마, 형님이 재미 보시게 양보해 달라는 건 아니죠?”

내심 표현은 안 했지만, 그동안 당불퇴만큼이나 화가 잔뜩 쌓였던 당율기.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 생겼다는 듯 해맑게 좋아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당지명은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하하… 이 망할 가문은 끝났어…….’

낯선 이들과 수틀린다고 주먹질을 갈기려는 대형과 그걸 좋다고 가서 분풀이를 하는 동생들.

한때 그들의 대형이었던 이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당지명은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전대 당주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오늘따라, 전대 차양 당주가 너무나 보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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