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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82화 (82/350)

82화

추풍대주 갈무흔?

그 이름은 조진양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비록 최근에 그가 이제 막 부활하는 사천 어느 가문의 후손들에게 당해 고인이 되었다는 최신 소식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들이 전 무림에 악명을 떨치는 마적단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우, 웃기지 마!! 무슨 마적단이 말도 안 끌고 다녀!!!”

“말? 우리가 말이 없긴 왜 없어?”

“그게 무슨…….”

무어라 소리치려던 조진양은 문득 눈앞의 자칭 추풍대주 갈무흔이 손가락을 뻗어 자신들을 가리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게 정확히는 자신들이 아닌, 자신들의 말이라는 것도.

“거기 있네. 가져와.”

“…이, 이 흉악무도한 놈들이… 서, 설마…….”

“캬, 요샌 인신매매범 새끼들이 마적 떼한테 흉악하다고 하네? 참 신박한 세상이야.”

삼십 년 만에 깨어나니 세상이 요지경이다.

낄낄 웃어대는 자칭 갈무흔 앞에 조진양은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끼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 말만… 드리면 되는 것입니까?”

머저리도 아니고… 저들이 조금 전 그 괴물 같은 사인조라는 것이야 단번에 알아챌 만했다.

어째서 이리 미친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자니 그것뿐!

하지만,

“뭔 개 같은 소리야? 그 말은 원래 우리 것이고. 마적 떼가 영업하러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게 말이 돼?”

“그, 그럼… 사, 사분지 일… 아, 아니!! 삼분지 일을……!”

“아, 거참!”

콰앙!!!

허겁지겁 협상을 이어가려던 조진양 옆 수레가 박살이 났다.

뒤쪽에 있던 이가 섬전처럼 쇄도해 와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고, 그 주먹질 한 번에 수레 하나가 개박살이 나서 허물어졌다.

“히, 히끅!!”

딸꾹질을 하는 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당불퇴가 으르렁거렸다.

“어이, 아재요. 우리가 장사 한두 번 합니까? 싯팔, 어느 마적 떼가 물건을 떼놓고 가져가요, 예??”

내 추풍권법 맛 좀 볼래요?

붕붕 휘두르는 두 주먹에서 매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그럼……?”

“그럼은 뭘 그럼이야.”

목숨만 살려주는 것도 감지덕지지.

* * *

전직 인신매매범, 이제는 부랑자로 새 취업을 하게 된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이 황량한 고원에 최소한의 식수와 식량만 등짐으로 짊어지고 쫓겨나게 된 그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 추풍대 일행은 떠나는 그들을 보며 그것을 최소한의 속죄라고 결정했다.

‘인도(人道)에 어긋난 것일 뿐… 국법(國法)에 어긋난 것은 아니니까.’

물론 당불퇴는 사지 중 하나는 부숴놓아야 된다 항의했지만, 당유혼은 적당히 턱주가리를 돌려 버리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고, 자신의 정의만으로 다른 무언가들이 옳고 그르다 결론 짓는 것은 독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탓이었다.

덕분에 쒸익쒸익 성난 숨결을 내뱉는 당불퇴였으나, 일단 잡힌 사람들부터 구하자는 당지명의 말에는 찬성한지라 허겁지겁 마차 감옥에 갇힌 이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음… 괜찮으세요,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살던 곳에서 끌려와 납치된 이들에게 괜찮냐는 말만큼 무의미한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거기다 상대는 이민족이며 자신은 인신매매범과 같은 중원인.

결코 곱지 않을 시선을 예상한 당불퇴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묻자, 예상된 피로와 경계심으로 가득한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이거 답이 없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당유혼이 대신 답을 알려주었다.

“끌려오느라 지쳤을 거다. 일단 휴식을 취하게 하고 밥부터 먹여.”

“…그럴까요? 그럼…….”

주변을 휙휙 둘러보니 마침 저편에 산이 보였다. 이 메마른 황무지 위에 있는 것보다는 저기 산 초입의 나무 그늘에라도 있는 게 낫다 여겨 그쪽으로 이끌었다.

다행히 그들도 저항하지 않고 따라왔기에 일단 이민족들을 그늘 아래 앉히고, 손에 묶인 수갑들을 풀어주었다.

이후 어색한 분위기 속, 당불퇴는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냈다.

“거… 혹시 다들 한어는 할 줄 아시나?”

이민족을 생전 본 적이 있어야지…….

혹시나 말을 할 줄 아나 싶어 묻자 경계 어린 눈빛만 돌아왔지,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에 곤란해 뒷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데,

“…제가 은인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개중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어느 여인.

양 볼에 기이한 문신이 새겨져 있고, 피로와 허기, 경계로 범벅되어 있으면서도 맑은 눈이 인상적인 이민족 여인이었다.

“아, 옙. 말씀하십쇼.”

왠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것 같은 목소리에 당불퇴가 반색을 하자니, 그녀는 우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선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붉은 바위 일족의 적세희라고 합니다.”

붉… 뭐요?

그게 뭔가 싶어 눈을 껌벅인 당불퇴지만, 그래도 그게 나름대로의 자기소개라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감사는 뭘 또. 그냥 할 일한 것뿐인데요.”

“아닙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희 일족 사람들은 지금 오랜 시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해 무척 지친 상태입니다. 혹여 이들에게 쉴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야 뭐, 당연하죠.”

그게 뭐 별거라고.

고개를 끄덕인 당불퇴는 이내 당유혼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형. 그럼 식사 준비부터 할깝쇼?”

“그래야지. 저 노예 매매범 새끼들이 먹을 것들은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 물만 떠오면 되겠다.”

“식수는 이미 있는데요?”

“이 사람들 돌아갈 때 어떻게 하라고?”

“아하.”

식량은 몰라도 식수는 수원을 구하지 못하면 무척이나 귀해진다. 풀뿌리라도 뜯어 먹으면 될 식량과 달리, 식수는 이렇게 운 좋게 수원이 흐르는 산 근처가 아니면 발견하기 힘드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장 의욕 넘치는 당불퇴는 물을 담을 쇠그릇을 들고 냅다 달렸다.

산속 생존 훈련을 워낙에 많이 했기에, 수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곧 물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저기구만?’

발걸음을 옮기니 곧 졸졸 흐르는 냇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쇠그릇에 물을 담으며 어푸어푸 세수도 했다. 흙먼지가 씻기며 청량감이 느껴졌다.

“후, 세상 참 말세야.”

사람을 사고파는 세상이라니.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관노야 죄를 짓고 형벌을 받는 이들이라 여겼거늘…….’

저렇게 힘없이 잡혀 온 이들은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모든 걸 잃고 가장 낮은 바닥에서 뒹굴어야만 하는 그 끔찍함을 잘 아는 당불퇴였기에 더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 어서 빨리 돌아가 그들에게 밥이라도 먹여야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있는데,

섬칫―

“……?!”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위기감.

이미 짐승의 영역에 이르렀다 평가받는 육감을 지닌 당불퇴였기에, 재빨리 몸을 굴려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첨벙거리는 물소리를 지워 버렸다.

물속을 구르는 차가운 감각 속에서도 당불퇴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고, 이내 자신이 있던 자리에 누군가 떨어져 내린 것을 발견했다.

‘습격? 왜?’

몸의 균형이 낮아 처음에는 발만 보였지만, 이후 고개를 들자 짐승의 가죽을 두른 우람한 체격의 남성이 핏빛에 가까운 혈광을 두 눈에서 뿜어내는 게 보였다.

‘저게 뭐야?’

설마 전설에 전해지는 마공이라도 익힌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습격자가 포효를 내질렀다.

“크허허헝―!!”

인간의 포효라기보다는 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그런 굉음을 내지른 습격자가 당불퇴를 향해 주먹을 내뻗으며 내달려 왔다.

“큭……?!”

맨몸으로 벌이는 체술 만큼은 자신 있는 당불퇴였지만, 그 주먹에 담긴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양팔을 겹쳐 막아냈는데도 균형을 잡지 못해 뒤로 쭉― 물가까지 밀려났다.

첨벙첨벙!

물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습격자는 다시금 쫓아오며 발차기를 갈겼다.

부웅―

‘저, 저건 못 막겠는데?’

저것을 막으려다가는 들어 올린 팔이 꺾이고, 머리통이 터져 버릴 게 뻔했다. 때문에 재빨리 몸을 숙여 회피했고, 그의 머리 위로 살벌한 발차기가 지나갔다.

퍼엉―

공기가 터져나가며, 가죽 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무슨 신력이 이리 어마어마하면 이런 굉음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것인지…….

당불퇴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있다가는 진짜 맞아 죽을 것 같다는 미래를 직감하고 두 손을 바삐 움직였다.

차양십이수(遮陽十二手), 삼절격(三絶擊).

섬전처럼 뻗어진 손이 습격자의 머리와 어깨, 옆구리를 가격했다.

상대의 신력은 무시무시했으나 움직임이 단조로워 그 틈을 찾기가 쉬웠기에 가능한 연격이었다.

하나,

“크허어어엉!!”

“아니, 어떻게 된 몸인데?!”

상대는 그걸 다 처맞고도 끄떡도 없는지 사납게 주먹을 휘둘러 왔다. 겨우겨우 피해 내는 데 성공했지만,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 분명 강해진 것 같았는데?’

추풍대주와의 일전에서 쓰러졌던 대형 당유혼을 삼재진으로 치료하고 난 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자신의 내공이 부쩍 늘어난 것을 체감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내공이 실린 차양십이수를 얻어맞고도 상대는 멀쩡했다.

아니, 단순히 멀쩡한 수준이면 다행이지,

“크허허허허허헝!!”

열이 뻗쳤는지, 오히려 더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이런……!!”

찰랑이는 물소리를 내며 다시금 수를 교환하는 둘.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당불퇴는 무식한 힘을 자랑하는 괴한을 상대로 기량 면에서의 우위로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 이 괴물 새끼……!’

아무리 상대방 공격을 다 피하고 자신의 공격은 다 때린다고 해도… 그걸 맞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적을 상대로는 무의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큭… 체력이…….’

인신매매범들을 쥐어팬다고. 또, 말을 타고 떠나보냈던 그들을 따라잡는다고. 이후 납치당한 이들을 돌본다고… 이미 체력을 잔뜩 소진했던 당불퇴였기에…….

한 대만 스쳐도 치명상이니, 남은 체력도 빠르게 바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몸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던 당불퇴는 상대방의 일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크헉……!!”

딱 한 대 맞았는데, 방어를 했음에도 그대로 날아가 나무둥치에 처박혔다.

‘이,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닌데……?’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직접 맞아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은 충격에 당불퇴는 허겁지겁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육체는 이미 정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기에 몸을 가누기가 버거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괴인은 점점 가까워져 왔으니…….

‘젠장, 일어나야 하는데…….’

설마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가 싶은 순간,

“…멈추세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저기서 밥 짓고 있을 자신의 형제들인가 싶었지만…….

‘이 사람은…….’

흐릿흐릿한 시야 속에서 점점 윤곽이 분명해지는 상대방의 정체는 아까 이민족들을 지도하던 여자였다.

“어이, 아가씨… 도망쳐야 해…….”

저 새끼 저거 보통이 아닌데…….

당불퇴는 그리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며 시야가 완연히 암전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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