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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83화 (83/350)

83화

【 붉은 바위 일족 】

당가의 방계들은 혼절해 본 경험이 많았다.

훈련하다가 실신해서 혼절하거나,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혼절하거나, 당유혼에게 처맞아서 혼절하거나…….

여하튼 이런 등등의 경험으로 당가의 방계들은 혼절에 익숙했다.

그래서였다. 눈을 뜬 당불퇴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아, 나 기절했었네.’

뻐끔뻐끔.

당불퇴는 눈을 껌뻑거리며 멍한 의식 속을 헤집었다.

‘근데 왜 기절했었… 아!!’

강렬한 충격에 삭제된 기억을 찾아 헤매던 당불퇴, 그는 마침내 자신이 어쩌다 기절했는지를 떠올렸다.

“이 곰 같은 새끼!!”

벌떡 일어나 소리친 당불퇴.

그리고,

“…응?”

무수히 쏟아지는 시선의 세례가 그를 반겼다.

“어… 어……?”

익숙한 냄새가 풀풀 흘러나온다.

당유혼식 산악 잡탕류의 냄새가 바로 그것.

그들이 구출해 낸 이민족들이 그걸 먹다가 괴성을 내지르며 일어서는 당불퇴를 멀뚱멀뚱 바라보았고, 그에 당불퇴는 머쓱해져서 허허 웃었다.

어… 그러니까…….

“뭐하냐, 저 녀석?”

“몰라요. 드디어 미쳐 버렸나 보죠.”

멍하니 있자니 친숙한 비난이 들려왔다.

“당주 형님? 율기야!!”

고개를 돌리니 잡탕을 먹고 있는 두 명이 보였다.

“형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웬 곰 같은 새끼가 습격해 왔어요!!”

“그려, 그려. 어디 곰한테 처맞아서 기절했냐?”

“그런 것 같기도… 아니, 진짜라니까요?”

왜 못 믿는 거야?!

답답해 가슴을 쾅쾅 두들기자 당율기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패배의 상징. 이제는 곰한테도 지고 오냐?”

“아니……!!”

그 별명은 대체 누가 지은 거야?!

의지와 불굴의 사나이.

결코 물러서지 않는 남자.

당가의 푸른 야수.

좋은 것들 많잖아!!

“…됐습니다. 대형은 어딨어요?”

“곰이랑 얘기하러 가셨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진정 오늘이 투쟁의 날인가 싶어 진지하게 반란을 꿈꾸고 있을 때,

“뭐야, 일어났냐?”

당유혼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리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거구의 남성과 자기를 구해 준 이민족 여성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어, 당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여성의 등장에 반색하는데, 함께 온 거구의 남성이 불쑥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되었소.”

“엥?”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여. 웬 곰 같은 남자가 자기한테 인사를…….

“잠깐, 곰? 당신… 아니, 아닌데? 그러기엔 분위기가…….”

곰 같은 모습에 자신을 습격한 그 괴인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러기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그에 인상을 찌푸리자 고개 숙였던 남자가 다시금 바로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붉은 바위 일족의 울부짖는 곰. 그대들 중원식의 이름은 적웅이요. 그리고, 오해하여 그대를 상처입힌 죄인이니, 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속죄하리다.”

“…예?”

그게 뭔 소리여…….

건장하다 못해 장대한 기골의 남자, 적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이 양반은 저들이 납치당한 부족에서 파견한 추적자고, 널 인신매매범으로 착각하고 공격한 거란다.”

가만히 있던 당유혼이 부연 설명을 추가했다.

“예? 이 사람이요? 하지만…….”

그러기엔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요……?

이제 보니 복색이 좀 비슷해 보이기는 한데… 복색은 둘째 치고 분위기 자체가 너무 달랐다.

“그때는 분명 눈에서 핏빛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족의 비술이요. 나는 일족의 전사장이며 계승자로서 비술을 단련하였소. 당신이 본 것은 비술을 발동시켰을 때의 내 모습이요.”

“거참… 무슨 대단한 비술이길래 사람이 그리 바뀌는 건지…….”

세상에 별게 다 있구만?

대충 설명을 들으니 그래도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히려 의아해하는 것은 적웅 쪽이었다.

“…더 할 말은 없으시오?”

“엥? 뭔 말이요?”

“내가 그대를 습격하였고, 그대는 큰 부상을 입고 기절하지 않았소.”

“아아.”

난 또 무슨 말이라고.

“그거야 뭐,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닌데 뭘 더 할 말이 있겠수?”

가족이 납치당할 뻔했는데, 아니지, 실제로도 납치당했는데 눈 돌아가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당연한 듯 되묻는 말에 적웅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꾹 감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그는 이내 다시금 당불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릇이 크시군. 알겠소. 훗날 내 도움이 필요할 때 말하시오. 이 빚은 꼭 잊지 않을 터이니.”

“아, 예 뭐……. 그러슈. 정 미안하면 나중에 대련이나 한 번 해주시든가.”

참 곰 같은 양반이로다.

멀뚱멀뚱 고개를 끄덕인 당불퇴의 모습에 대충 상황이 정리된 듯싶자 이번엔 당유혼이 입을 열었다.

“둘 사이의 문제는 대충 해결된 듯하고. 그럼 얘기한 대로 하지요.”

“무슨 얘기요?”

기절한 터라, 무슨 말이 오간 지 모르는 당불퇴가 물었다.

“이들 부족으로 가기로 했다.”

“아, 저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다주려구요? 저야 찬성이긴 한데… 그럼 좀 늦어지지 않습니까?”

당불퇴도 마음 같아서는 저들을 부족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온 게 개인적인 외유가 아니라 가문의 일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자 살짝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하나…….

“상관없어. 마침 목적지가 겹치거든.”

“목적지가 겹치다니요?”

“적철을 캐서 운남에 파는 이민족들. 그게 이 사람들의 부족이다.”

“아……!”

세상에 이런 일이?

“와, 운 좋네요!”

착한 일 하면 복 받는다는 건지. 이 답답한 황무지에서 길 찾는 것도 답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이게 이렇게 맞아떨어지나?

당불퇴는 그런 생각에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글쎄.”

당유혼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는 가봐야 알겠지.”

* * *

그들의 대형 당유혼이 어째서 그런 의뭉스러운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자신들을 붉은 바위 일족이라 소개한 이민족들과의 동행은 시작되었다.

인신매매범들이 쓰던 수레와 마차까지 전부 강탈했기에, 기력이 좋지 않은 이민족들을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죄송합니다.”

“예? 뭘요?”

“저희들 때문에 이런 고생을…….”

두두두두두!!

황무지를 달리는 말들의 말발굽 소리가 웅장했다. 하지만, 가장 웅장한 것은 그 선두에 있는 세 마리의 말… 아니, 세 명의 방계들이었으니.

이제는 납치될 뻔했던 이민족들까지 수레에 태우고 달리는 방계들의 모습에 이민족들은 아연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특히, 적세희는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을 태우고 달리는 당불퇴에게 연신 괜찮냐고 물어왔다.

“에이, 뭘요. 별로 안 무거워요. 깃털 같으신데요, 뭘.”

“……!!”

덤덤히 뱉은 말에 적세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앞으로 쭉쭉 달려 나가느라 시선도 그쪽을 향한 당불퇴는 그걸 보지 못했다.

“저, 정말… 괜찮으신가요?”

“거짓말할 이유라도 있겠어요?”

당불퇴는 한 점 거짓 없이 진심이었다.

예전에 감숙에 다녀올 때에는 최대한 이득을 보겠다고 강철 수레가 덜컹거릴 정도로까지 짐을 쌓았었다.

그때의 악독한 대형 당유혼이 쌓아준 노동량에 비하자면, 이민족들의 편의를 위해 한 명씩만 태운 지금은 진짜 깃털 같은 수준이었다.

“아, 그런데 말이에요.”

덕분에 딴생각할 여유까지 생긴 당불퇴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그 일족의 비술이란 게 뭐예요?”

“비술… 말씀이십니까?”

“예, 예. 저기 곰 같은 아저씨가 사용한 거요.”

달리는 마차의 선두에는 세 명의 방계들이 끄는 수레가 있지만, 그보다 더 앞에는 그들을 이끄는 적웅이 있었다.

당불퇴는 선두에서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곰 같은 남자와의 일전을 떠올리며 의문을 표했다.

“진짜 곰이 되더라구요? 눈에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던데, 제가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저런 무공은 처음 봤네요.”

비밀이라면 말 안 해줘도 되긴 한데, 솔직히 떠오르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었다.

“곤란하면 말 안 해주셔도 되구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익힌 비술과 계승자께서 익힌 비술은 다른 것이기에 잘은 모릅니다.”

“에이, 그거야 당연한 말이구요.”

자신도 그들의 대형 당유혼이 당최 뭔 무공을 익혔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데… 아는 만큼이라도 부탁한다고 말하자 적세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계승자께서 익히신 비술 중 은인과 일전을 벌일 때 사용한 것은 혈웅(血熊)을 강신시키는 강신술일 것입니다.”

“강신술요?”

“그렇습니다. 상위 존재를 강신시키는 것으로, 신령스러운 존재인 혈웅을 강신시키면 근력과 체력, 지구력 및 모든 육체 능력이 열 배도 넘게 상승한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무공도 있나? 당불퇴는 의아했지만, 곧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생각해 보면, 당유혼이 알려준 귀원일기공과 삼재진, 그리고 그 끝에 율기 녀석이 보인 그 수법까지 전부 자신이 알던 일반적인 무공의 상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니까.

“…꽤 익숙하게 받아들이시는군요. 다른 중원인 분들은 저희의 비술을 사특하다 여겨 사술이라 비난하는 분들을 종종 뵈었는데…….”

고개를 주억거리는 당불퇴의 모습에 오히려 적세희가 신기하다는 듯 반응했다.

“아아, 더 신기한 걸 봐서요.”

“더 신기한 것?”

“있어요. 그런 게.”

별로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어떤 유해한 생물이 있거든요.

대충 그런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두두두두두― 거리는 맹렬한 굉음과 달리 그들의 질주는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힘든 걸 반복한다고 해서 그 힘든 게 힘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인내하는 능력은 늘어난다고… 이제 당가의 방계들은 이런 황무지에서 수레를 끌고 달리면서도 평온히 대화를 할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당유혼이 평하길 실로 훌륭한 누렁이로다, 라고 할 만한 그들의 질주는 그렇게 계속되었고, 선두에 있는 적웅의 안내로 일주일은 예상했던 이동 시간을 사흘로 줄일 수 있었다.

“저기입니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문명의 흔적.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 보이는 그것은 분명 중원의 문화 양식과는 다른 천막으로 이루어진 가옥이었다.

“비술로 미리 연락을 해놨으니 경계는 덜할 것입니다.”

그들 일족은 놀랍게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서로 통할 수 있는 술법이 있었고, 과연 마을 어귀에 이르니 일단의 이민족 무리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있는 이는 초로에 이른 노인이었는데, 그가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해 왔다.

“은인들을 뵙소. 붉은 바위 일족의 장로, 느리게 움직이는 바위. 중원식으로는 적철성이오.”

“사천당가의 당유혼이에요.”

당유혼 역시 대표로 마주 나가 인사했고, 그 이름에 적철성은 아미를 꿈틀거렸다.

“사천당가……. 그 이름을 다시 듣는 날이 오는구려.”

그는 먼 과거를 훑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과거, 세상을 구하는 대가로 잊혀졌던 영웅의 후손들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이오. 부디, 이곳에 있는 동안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겠소.”

적철성은 그리 말했고, 나머지 방계들은 그 소개에 멀뚱멀뚱 눈을 껌벅거렸다.

오로지 하나, 당유혼만이 그 말에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대 고마워요. 우선은, 짐부터 좀 풀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계승자여.”

“예. 일족의 율법에 따라, 제가 직접 이들을 안내하겠습니다.”

적웅이 몸소 나섰고, 그의 안내에 따라 우선적으로 방계들이 쉴 곳을 배분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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