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85화 (85/350)

85화

목소리의 주인은 적세희였다.

“적 소저.”

그를 알아본 당불퇴가 히죽 웃으며 들고 있던 그릇을 내밀었다.

“한 그릇 하실래요?”

“감사합니다.”

그것은 건네받은 적세희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굉장히, 맛있습니다.”

“흐흐, 그렇죠? 제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이것저것 부족한 건 많지만, 요리만큼은 자신 있거든요.”

“직접 만드신 것입니까?”

“뭐, 그렇죠?”

주걱 대신 거대한 나무 몽둥이로 가마솥을 탕탕 두들겼다.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이 정도는 제가 직접 할 수 있거든요.”

“과연… 대답하십니다. 일족의 대전사님과도 호각을 이루었다고 들었는데…….”

“킁, 호각은 무슨.”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기억이 조금 쓰라렸다.

“그래, 호각은 아니지.”

“반송장이 돼서 돌아왔더구만.”

“아, 좀!!”

뒤편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버럭 소리를 질러보지만, 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후후, 사이가 좋아 보이십니다.”

그 모습에 적세희가 웃으며 그리 말하자, 당불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좋기는요. 틈만 나면 물어뜯으려 드는 놈들인데요, 뭘.”

아주 원수 같은 놈들이죠.

잔뜩 으르렁거리는 당불퇴였지만, 그럼에도 적세희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부럽습니다. 그런 형제들이 있다는 것이.”

“흠흠, 적 소저는 뭐 남매나 자매 분들이 없으십니까?”

“저는… 두 살 터울의 오라버니가 있었습니다.”

“예? 있었다는 말은…….”

“이젠… 없습니다.”

씁쓸히 웃으며 목에 걸린 패물을 만지작거리는 그녀.

그 목걸이는 마치 무언가의 반쪽인 듯 외롭게 달려 있었고, 덩그러니 매달린 그것을 보는 적세희의 표정으로부터 당불퇴는 X됐음을 직감했다.

“아… 그, 그… 죄, 죄송합니다…….”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자 적세희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만 겪은 일도 아니니까요.”

“예? 적 소저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건…….”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할 때,

“이건 무슨 무료 급식소냐?”

“대형!”

당유혼이 삐딱한 목소리로 외치며 휘적휘적 걸어왔다.

그의 뒤편에는 적철성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고, 그 모습을 함께 훑어보다가 적철성이 씁쓸히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빚만 지게 되는구려.”

“빚은 무슨. 어려울 땐 돕고 사는 거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에 방계들이 어이없어할 때, 당유혼이 손짓으로 그들을 불렀다.

보통 이럴 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이 후다닥 달려가자, 당유혼은 방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 뒤 말했다.

“일이 생겼다.”

“일이라니요?”

“무슨 일인데요?”

또 무슨 노동을 시키려나 싶어 칠색 팔색을 할 때, 당유혼은 덤덤히 첨언했다.

“위험한 일이다.”

…위험한 일이라고?

그 말에는 오히려 방계들의 표정이 변했다.

“대형. 자세히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당지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느낀 게 있는지 진중했고, 당유혼 역시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들 일족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저기 저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붉은 바위산에 웬 괴물이 나타난 모양이고, 그놈이 하필 우리가 캐야 할 적철의 생산지까지 점거한 듯해.”

저 높이, 뻗은 붉은 봉우리가 인상적인 산을 가리켰다.

“그 괴물을 잡아야겠다.”

“괴물이라…….”

“놈이 인명을 해한 것입니까?”

“맞아.”

그 말에 방계들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보통 놈이 아닌 모양이야. 난 갈 건데, 니들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빠질 놈은 빠져라.”

빠질 놈은 빠지라고?

방계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이해하기 힘듭니다. 광형 상단과 추풍대 때에는 이러시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때에도 위험했을 텐데도 왜 지금은 빠지라는 건지.

의문을 제기하자 당유혼은 간단하다는 듯 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우에 따라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위험하다구요?”

“너희도 알다시피, 그때는 내가 정보통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미지의 괴물을 만나러 가는 중이지. 뿐만 아니라 상황도 다르다.”

추풍대는 쳐들어 오는 놈들이었고, 광형 상단은 그들이 빚을 지기도 한 상대였다.

호의를 가지고 온 이들을 저버리는 것을 이놈들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어차피 싸울 거, 그런 소리를 하지 않은 거지만,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굳이 위험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과 이들과 우리 사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건가.’

그 뜻을 이해한 당지명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성격 급한 당불퇴도, 옆에서 종종 조언을 하던 당율기도 침묵했다.

대형 당유혼을 제외한 방계들 중에서 당지명이 가장 맏이기도 하고, 차양당의 당주라는 그 직책과 자리를 존중하는 행위기도 했다.

자연스레 침묵이 깔리고, 그 속에서 한참 고민하던 당지명이 눈을 떴다.

“대형. 대형은 간다고 하셨지요?”

“난 가지.”

“어째서입니까?”

“무슨 괴물이든 난 무탈하게 돌아올 자신이 있거든.”

“…그렇습니까?”

“필요하기도 하고, 나는 내 한목숨 건사할 수 있지만 니들까지는 모르겠다.”

그리 말하는 당유혼의 대답에, 당지명은 생각보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저희도 갑니다.”

“흠, 왜지? 설마 협의니, 뭐니 하는 그런 거냐? 저들에게 무료 급식을 나눠주다 보니 값싼 동정이라도 들었냐? 그런 거라면 갖다 버려라. 싸구려 동정 따위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당유혼의 말은 신랄했고 실로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당지명은 빙긋 웃었다.

“저를 뭐로 보십니까? 제가 우리 가주님처럼 곧고 푸른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건 아니지?”

당가에는 기본적으로 혼(魂)으로 이어지는 듯한 뜨듯하고 알량한 무언가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같다고 하기에는 방계들 하나하나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당지명도 마찬가지였다.

“예. 저는 우리 가주님처럼 대쪽 같은 절개를 지닌 분이 아닙니다. 좀, 구질구질하게 살아왔기도 하고… 대형한테 처맞으면서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기도 했죠.”

그렇기에, 그런 저이기에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대형을 혼자 보내기는 영 불안하거든요.”

그것은 상상도 못 한 대답.

“…뭐?”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어이가 없어 하는 당유혼의 모습에 당지명은 히죽 웃었다.

“대형이 무탈하게 돌아오기는 뭘 무탈하게 돌아옵니까. 지난번에 용독문에 갔을 때도 실신해서 돌아오고, 추풍대주랑 일대일 뜨겠다고 깝죽거리시다가 또 뒈질 뻔하지 않았습니까?”

뭐, 뭐?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질 때,

“음음… 그건 맞지.”

“솔직히 나 다음으로 어디 가서 두들겨 맞고 돌아오는 건 우리 대형이지?”

가만 듣고 있던 방계 두 명이서 지원 사격을 개시했다.

“와… 이 뱀 같은 놈들이?”

기어오르는 게 수준급이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저희도 갑니다. 대형 혼자는 못 보내겠거든요.”

처맞는 게 두렵지도 않은지… 씨익 웃는 당지명의 모습에 나머지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

결국 전원 참전으로 결정.

“뭐, 들었죠? 그렇게 됐네요.”

한숨을 한 번 푹 내쉰 당유혼이 함께 온 적철성을 돌아보며 그리 말하는데,

“자, 잠시만요!!”

가만 듣고 있던 적세희가 끼어들며 소리쳤다.

“장로님. 설마 이분들을 산으로 보내려 하십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세희야.”

적세희의 다급한 외침에 적철성은 딱딱히 굳은 안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도 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하지만… 나는 일족의 장로로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슨……!!”

아연한 안색이 된 그녀가 입을 쩍 벌렸지만, 정작 다른 당가들의 표정은 여유만만이었다.

“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신파극이라도 하나 나올 것 같은데.”

“거,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슈.”

“저희가 좀 싸우거든요.”

방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뱉어내자 적세희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소리쳤다.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곳은 일족의 전사들께서도 쉬이 돌아오지 못한 곳. 그곳에 사는 괴물은 강하고 영악하며, 치밀한 사냥꾼이에요. 그러니까……!”

“아아, 됐네요. 됐어.”

이어지는 말을 자른 것은 당불퇴였다. 그러고는 거칠게 자란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요리기는 한데, 두 번째로 잘하는 것은 수렵이거든요? 소저는 그냥 걱정 붙들어 매고 있어요.”

소저인지 아가씨인지.

당불퇴가 그리 말하며 미소 짓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세희는 눈을 꼭 감더니,

“…됐습니다. 전 분명 말렸습니다!”

그리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 사라졌다.

“…엥?”

뭐야? 왜 갑자기 달려가는 거야? 거기다, 마지막에 맺혔던 이슬은…….

“울렸네, 울렸어.”

“어휴… 쓰레기 자식.”

“여자를 울리냐, 넌?”

어느새 당유혼까지 결합해서 비난이 빗발쳤다.

“아니……!!”

내, 내가 뭘?!

억울해하는 당불퇴였지만, 수습할 여유는 없었다.

“대충 결정된 듯하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렵니다.”

당유혼이 혀를 한 번 차곤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당불퇴만 불퉁해지고 나머지는 낄낄거리며 적철성을 바라보았다.

그에 적철성은 착잡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챙겨 드릴 테니 내일 대전사와 함께 출발하시오.”

“흠? 그가 없으면 마을은 누가 지키게요?”

“아니요. 별을 바라보니 마침 내일이 기일이오. 게다가, 이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면 어차피 희망이 없다는 것이 이 늙은이가 내일 판단이오.”

“아하.”

주술사였나?

당유혼은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양반 정도라면 도움이 되겠네요.”

그럼 뭐…….

“니들은 무료 급식소 운영이나 계속하든가 해라.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겠으니.”

이제 해산.

손을 휘휘 젓는 당유혼의 말에 나머지들은 하던 것이나 마저 하기로 했다.

* * *

무료 급식 분양소라고나 할까. 방계들이 임시로 차린 거대한 가마솥 사업은 성황리에 끝을 마쳤다.

하늘에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진행된 사업이 끝을 맞이하고, 방계들은 나머지를 정리한 뒤 저마다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괴물, 괴물이라…….”

그리고 당불퇴는 홀로 마을 어귀 들판에 나왔다.

그들의 대형이 직접 위험할지 모른다는 괴물을 상대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고, 배도 두둑이 채운바, 수련을 하기로 했다.

‘재밌겠네. 대충… 그 울부짖는 곰이라는 양반을 상대로 상상하면 되려나?’

적웅이 있다 생각하고 허공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갈기는 가상 대련.

간단히 소화시킬 겸 시작된 수련은 점차 격렬해지기 시작해 종국에는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더, 더 빠르게! 그 양반의 공격은 단 한 대도 허용해서는 안 되고, 내 공격은 더 강해져만 해!!’

패배에 익숙한 당불퇴였기에,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도 잘 알았다. 때문에 한 번 패배한 상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호승심과 투지가 더더욱 불타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수련하다가,

“…크학! 휴, 휴식!!”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야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축축해졌고, 힘이 완전히 빠져서 대자로 누워 버렸다.

아름다운 별들이 보석처럼 박힌 밤하늘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몸뚱이를 식힐 때 당유혼은 문득 그와 함께 찾아온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잉? 당신은…….”

“…공자님.”

그, 아니, 그녀의 정체는 적세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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