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 * *
“…그러니까, 불퇴가 납치당했다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지?
한참 풀뿌리를 캐다가 들은 이야기에 당유혼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대형!! 이, 이따만 한 새에 부, 불퇴가……!!”
무슨 독초라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당불퇴처럼 말을 더듬는 당율기의 모습에 당유혼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율기야… 너마저 그러면 안 돼.’
그럼 나 진짜 슬퍼질 거야.
얼마 없는 지적 재원이 어버버 거리는 모습에 당유혼이 인상을 찌푸리자, 당지명이 당율기의 뺨을 짝짝 갈기며 소리쳤다.
“진정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말해야지!”
“그, 그러니까…….”
한 다섯 대 얻어맞고 정신 차린 당율기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오늘따라 상태가 영 이상했던 당불퇴가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것에 슬슬 짜증이 나 하나둘 무시하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새에 납치당할 때까지의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당유혼은 생각했다.
‘이놈들, 사이좋게 대마 이파리라도 빨았나?’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함께 듣던 적웅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 정도의 크기를 지닌 새라면 벽력조일 텐데……. 이상하구려. 벽력조는 사람을 물어가지 않는데?”
“응? 벽력조라고?”
그 이름은 당유혼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벽력조가 여기도 있어요?”
“그렇소. 저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 둥지를 짓고 살아가오.”
“허 참. 그게 왜 여기에…….”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들에 남은 두 방계들은 의문만 증폭되었다.
“형님. 뭘 아시는 게 있으시면 저희도 알려주십시오.”
“벽력조가 무엇입니까? 그 새 새끼가 왜 대체 불퇴를…….”
“…글쎄.”
어째서 당불퇴가 벽력조에게 납치되었는지는 당유혼 역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다.”
“…한 가지라면?”
“녀석을 구하려면, 우린 그 괴물이란 놈이랑도 필히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거.”
* * *
“우와아아아아악!!!”
당불퇴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세차게 날아오는 창공의 맞바람에 안면을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노라면 어젯밤의 일로 나가 있던 정신도 급속도로 돌아올 수준이었다.
“놔, 놔라!! 이놈아!!!”
공포에 질린 당불퇴가 소리쳤다.
자신의 어깨를 움켜쥔 새의 다리를 뒤흔들며 버럭버럭 소리를 내질렀는데, 그 몸짓에 새가 크게 뒤흔들리자 순간적으로 고도가 급강하했다.
“우아아악?!”
성큼 가까워진 대지. 그럼에도 높이는 여전히 아득해 당불퇴는 저도 모르게 요구 사항을 바꿨다.
“아, 아니야!! 놓지 마! 절대 놓으면 안 돼!”
새의 발을 움켜쥔 당불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거, 떨어지면 무조건 뒈진다.
확정적인 죽음을 목전에 두자니 그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와중 펄럭이는 새의 날갯짓에 힘이 점점 빠지더니 고도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지면.
그 죽음의 순간에 당불퇴는 돌연 마음이 초연해지는 것을 느꼈고, 명경지수의 마음속, 딱 한 가지 외치고 싶은 속내를 끄집어내 힘껏 소리쳤다.
“당유혼 개자식아!! 잘 먹고 잘살아라!! 니 똥 굵ㄷ… 꾸에에에엑!!”
퍼드드드득!!
강렬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자신을 잡아 온 거대한 새와 뒤엉켜 땅바닥을 구르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었는데, 그 충격은 예상과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일단 충격을 느끼고 있다는 게 살아있다는 증거였기에 당불퇴는 허겁지겁 일어나 사방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이, 이 자식!! 더, 덤벼!! 다시 당해 줄 것 같냐?!”
아직 저 높은 고도에서의 공포가 가시지 않아 혀가 꼬이고 몸이 덜덜 떨렸지만, 그래도 그의 감각은 예리하게 살아났다.
그런데,
“…응? 뭐야.”
축 늘어진 채 부들부들 떠는 새는 다시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 녀석…….”
어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류에 관한 지식은 없어도 전신을 부들부들 떠는 게… 영 이상했다.
“키, 키륵…….”
열린 부리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깃털은 몇 군데 듬성듬성 빠져서 그 위로 반점이 찍혀 있는 게 보였다.
‘병 걸렸나? 아니, 이건 중독 증세랑 비슷한데?’
새가 독에 중독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독을 다루는 사천당가의 후손. 중독 증세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경련하는 새의 발을 보며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이 정도 증상을 보이는 독은 대부분 극독이라 분류될만한 것들.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이만한 새가 어째서 독에 중독되었는지 모르겠다만, 왜 하필 사냥감으로 자신을 택했을까?
대개 금수라는 것은 감이 뛰어나 상위 포식자를 알아보고는 했고, 자신보다 만만한 개체만을 노리게 마련이었다.
‘암만 그 숲에 먹을 게 많이 없었다 해도, 나보다 약한 놈들은 숱하게 널려 있었단 말이지.’
곰곰이 고민하던 그때,
스윽―
그가 도달한 곳의 옆에 있는 동굴에서 무언가 작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까지 거대한 새에만 관심을 집중하던 당불퇴는 그림자의 존재를 미처 감지하지 못 했고, 그 틈에 다가온 그림자는 제 몸에 달린 뾰족한 것을 내뻗어 당불퇴의 뒤를 찔렀다.
쿡―
“꾸엑?!”
“삐약!”
비명과 울음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악! 이게 뭐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기에는 자신을 납치해 온 새와 똑같이 생긴 아기 새가 있었다.
“삐약!”
“뭐, 뭐여? 넌…….”
당황해하고 있자니 아기 새가 커다란 새의 곁으로 다가갔다.
“삐익… 삑…….”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에 반쯤 기절해 있던 커다란 새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날개로 아기 새를 쓰다듬었다.
아기 새와 어미 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을 때…….
“키륵…….”
“…아.”
문득 마주친 어미 새의 눈빛에서 당불퇴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저 눈빛은…….’
천애 고아인 당불퇴였기에 어미의 사랑 같은 것을 논할 자신은 없다.
하나, 저 눈빛과 비슷한 것은 알았다.
‘세상을 뜨신… 전대 차양 당주님의 눈빛이다.’
당불퇴는 차양 당주의 마지막 순간, 방계들을 돌아보며 걱정을 지우지 못하던 그 눈빛과 미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당불퇴는 알 수 있었다.
“너… 도움이 필요한 거구나.”
아무래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자신을 데려온 듯했다.
결국 금수에 불과할 터인 이 커다란 새가 어찌 자신을 선택한 지는 모르겠지만, 당불퇴는 이 순간 자신이 당가의 후손임을 다행으로 여겼다.
“야, 비켜봐.”
지저귀는 아기 새를 밀어내고 엄마 새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머릿속으로 당율기가 쑤셔 넣어준 독에 관한 지식이 주르륵 떠올랐다.
“너도 명색이 당가니까 익혀둬.”
“독이란 게, 천차만별인 듯하지만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것들이 존재해.”
“계열이 비슷한 독들은 분명 있어. 단지 그 강도가 얼마나 세냐는 차이가 있을 뿐.”
수련하기 바빠 죽겠는데 꿋꿋하게 따라와 조잘거린 그 지식들은 지금 이 순간 당불퇴의 손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것 중 이런 증상을 가진 독을 어느 정도 치료하는 것들이 몇 개 있긴 해.’
다행히도, 원래 상비하고 있던 독과 이번에 붉은 바위산에 와서 캐낸 것들 중 유효한 성분을 가진 게 몇 있다.
그것들을 꺼내 이리저리 짜내 부리에 똑똑 짜내자,
“삣삣삣!”
“악! 악! 악! 얀마, 너네 엄마 치료 중이잖아!!”
아기 새가 후다닥 달려와 손을 부리로 쪼아댔다.
“아오, 흘렸잖아!!”
두 발과 부리로 난리를 피우는 아기 새를 붙잡은 채 겨우겨우 어미 새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독과 독을 상쇄하는 방식으로 어미 새의 중독 증상을 완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가만히 좀 있어. 이제는 좀 위험할 수 있으니까.”
마음 같으면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고 싶었지만, 어미 앞에서 아기 새의 뒷목을 두들길 수는 없었기에 어미 새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둔 채 정신을 집중했다.
‘될까? 될 것 같기도 한데…….’
시작은 귀원일기공이었으나, 그다음은 삼재진으로 향했다.
삼재진은 원래 홀로 펼치는 게 아니라 세 명의 인원이 필요한 진법이으나, 지난번 추풍대와의 일전 이후 당유혼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깨달음 비슷한 게 있었다.
그건 뭐랄까, 귀원일기공을 잘만 펼치면 삼재진 흉내 정도는 혼자 해볼 만하단 것이었다.
‘그렇게 넓은 범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몸 안… 혹은 내 손이 닿는 범위 정도까지라면…….’
그것은 철저히 감각에 의존한 방식이기에, 무에 관해 연구하는 무학자들이 보자면 통탄을 금치 못할 행위였다.
그러나 스스로 당가의 푸른 야수라 자부하는 당불퇴는 자신의 야수성을 믿었고, 실제로도 그것은 놀라우리만큼 아슬아슬하면서도 높은 정교함을 보였다.
‘이거구만?’
귀원일기공의 진기를 어미 새의 내부에 흘려 넣자, 형언하기 힘든 어미 새의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나, 강인한 생명력을 짓누르고 파괴하려 드는 음침하고 흉악한 기운이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이 새는 강하지만, 독에 저항하는 능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럼…….’
당불퇴는 음침하고 흉악한 기운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독 기운은 무언가가 자신을 끌어당기자 불쾌해진 듯 사납게 달려들었다.
‘제법인데? 이 새 녀석이랑 싸우느라 제법 지쳤을 텐데 이 정도라…….’
꽤 맹렬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귀원일기공의 영역에서 싸우는 이상, 독 기운은 당불퇴에게 필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거대한 흐름은 한낱 기운 하나가 끼어들어 망치기에는 너무나 장엄한 것이었고, 억? 하는 순간 휩쓸려서는 대순환 속에서 휘휘 돌며 하나하나 분해되었다.
‘오호, 이거… 포식하겠구만?’
제 성질을 잃어버린 독기는 잘게 분해되어 당불퇴의 내공으로 흡수되었고, 그 과정이 진행될수록 어미 새의 눈에도 다시금 생기가 깃들었다.
난리 치던 아기 새도 그 변화를 느꼈는지 삑삑거리는 소리를 멈추더니 허겁지겁 제 어미에게 달려갔다.
“삐이……?”
“키르륵…….”
힘겹게 눈을 뜬 어미 새가 날갯죽지를 들어 아기 새를 쓰다듬었다.
새가 웃음 지을 수 있을까 싶지만서도 당불퇴는 그게 분명 어미 새가 애써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라 확신했다.
“급한 불은 껐다, 이 녀석아.”
“삐익! 삑!”
“가만히 있어 봐, 니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안정이니까.”
독기를 빨아낸 뒤에는 아기 새를 머리 위에 얹히고 어미 새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젠 더 이상 위급하지는 않을 테지만, 많이 소진되었을 체력 회복은 필수적이었다.
“여기가 네 집이지?”
아기 새가 나온 동굴로 따라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쭉쭉 안으로 들어가니 그들의 둥지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직접 만든 듯 볏짚이 푹신하게 깔린 곳에다 어미 새를 내려놓고, 머리 위에 있던 아기 새도 그 옆에 두었다.
“좀 자게 내버려 둬라. 한숨 푹 자고 나면 많이 나아져 있을 테니까.”
“삐이……?”
이 상황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멀뚱히 보는 아기 새. 그 모습을 보다 피식 웃으며 당불퇴는 자리를 벗어났다.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좀 알아야겠다 싶어 동굴을 나왔고, 아까 추락지점까지 계속 걸어오니 저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긴 어딘데 이렇게 바람이…….”
성큼성큼 걸어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도착한 당불퇴.
“…이, 이게 뭐야?”
그는 쩍 입을 벌렸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면…….
“왜, 왜 이리 높아?!”
모든 게 까만 점으로 보이는 아득히도 높은 봉우리, 그곳이 새 모자의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