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 천년혈주 】
우거진 나무 속,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이이잇!!”
높고 매서운 울음소리가 바로 천년혈주를 따르는 거미들이 내는 신호음이었다.
놈들은 과연 지성을 가지고 서로 서로가 협력하여 전투를 치렀는데, 원래 그들은 수적 우위로 사냥감을 포위하고 적절한 역할 분배로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가 그들의 독니를 찔러 넣는 식으로 사냥을 마무리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들의 영토에서 자신들이 사냥당하는 입장에 취했다.
푸화아악!!
거대 거미 하나의 입에서 뿜어지는 실타래가 허공에 뿌려졌다.
그것은 어지간한 장사의 근력으로도 잘 떼어지지 않을 만큼 끈적끈적하면서도, 안에 포함된 마취 성분으로 한 번 당한 사냥감을 그대로 무력화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하나, 그런 잘난 효능이 있으면 뭐 할까? 그것도 다 맞아야 소용이 있는데.
“크허허어어엉!!!”
적웅은 마주치는 건 다 때려 부술 것만 같은 강렬한 수컷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또 날아오는 투사체들은 다 가뿐히 피해 내는 움직임을 보였다.
‘저 새끼 저거, 미친 척하는 거 다 연기 아냐?’
적웅은 거미들의 입장에서는 대충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정밀하면서도 신속한 기동을 보여주며 거대 거미 사이를 누볐고, 일타일살(一打一殺)의 권격으로 거미들의 머리를 부쉈다.
그리고, 투사체를 하나도 맞히지 못하는 거미들과는 달리, 방계들은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보여주었다.
“이 자식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던지면 다 맞는데?”
“조심하세요, 당주 형님. 우리 암기를 맞아도 어지간한 독에는 끄떡도 안 하는 듯합니다!”
“그건 나도 알아!”
당지명 역시 날아드는 거미들의 실타래 폭격을 다 피해 내고 자신의 암기 투척은 다 맞히면서도, 원체 몸집이 큰 녀석들이라 손바닥만 한 암기 세례는 꿋꿋이 버티는 거미들의 약점을 살피고 있었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생명력도 강인해 보인다. 게다가, 거미라는 전혀 다른 종 때문인지 급소도 알 수가 없어. 독물인지라 독에 대한 내성도 지니고 있는 것 같고.’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당지명은 어쩌면 저놈들이 자신들과는 천적의 상성 관계를 지닌 놈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의 빨간 점을 노려라.”
뒤편에 있던 당유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약점이니까.”
팟―
그리 말한 당유혼이 암기 하나를 날리자 눈 깜빡하는 사이에 거미 한 개체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암기가 박힌 거미는 그대로 거꾸러지며 바닥에 떨어져 굉음을 일으켰고, 그 모습을 본 당지명이 소리쳤다.
“아니,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알려주시지!!”
“저 아저씨처럼 일일이 머리를 터트리면 그럴 필요도 없지 않겠냐?”
‘그게 되겠냐고!!’
속으로 그리 소리치면서도 당지명은 품에서 젓가락을 왕창 꺼내 들었다.
‘머리 위의 점이 급소라 이거지.’
암기를 꺼내 든 당지명은 당장 그것을 투척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며 귀원일기공을 운용했다.
지난번 추풍대주와의 일전 이후 당가의 방계들은 이전보다 강해졌고, 그때 당유혼을 구했던 방계 셋은 특히나 강해졌다.
그 이후 그들은 각자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개중에서 당지명은 무언가 ‘흐름’을 느끼는 능력이 유독 강화되었음을 인지했다.
‘흐름을 잡는다.’
그것은 단순히 바람의 움직임과는 또 달랐다.
말로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귀원일기공을 운용하고 삼재진을 펼치면 느껴지는 흐름과 유사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나아가려는 길과 같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했다.
그 흐름은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닌, 오감의 영역을 넘어 육감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정신을 집중하면 그 길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당지명이 한 것은, 그 흐름의 줄기들 위로 투골저들을 태워 보낸 것이었다.
파파파파팟!!
십수 개의 투골저가 날아들어 십수 마리의 거미들에게 틀어박혔다. 놀랍게도, 그 하나하나가 거미들 머리 위의 붉은 반점에 박혔고, 급소에 일격이 가해진 거대 거미들은 그대로 실 위에서 거꾸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쿠쿠쿵!!
‘역시.’
그 모습을 본 당율기는 속으로 적잖이 감탄했다.
평소에는 당불퇴랑 다를 바가 없다니, 뭐니, 하며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당지명이었지만, 그가 누구보다 착실히 강해져 온 것은 방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발전이 점점 두각을 드러내자, 차양 당주로서의 위엄이 갖춰졌고, 그에 당율기 역시 자신이 깨달은 바를 펼쳐내기로 했다.
‘대형은 말했지. 약점이 있지만, 머리를 때려 부수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그 말은 즉, 나 역시 저와 같은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뜻일 터.’
우우웅―
당율기 역시 귀원일기공을 운용했다.
그의 예리한 기감이 살아나며 허공에 복잡하게 그어져 있는 거미줄의 존재들이 포착되었다.
‘이거군.’
당율기의 전신으로부터 뭉실뭉실 녹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그동안 당율기가 잡룡탕이란 명목으로 꾸역꾸역 먹으며 체내에 쌓아놓은 독이었고, 그게 풀어헤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가늘지만 질기고 튼튼하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한 그의 두 눈에서 녹광(綠光)이 뿜어져 나왔다.
‘충분히 끊을 수 있다.’
콰직―
내뻗은 손을 움켜쥐자, 내뿜었던 독류가 특정 부분에 몰아쳤다.
그러자,
투두두둑―
보이지 않던 투명한 실들이 끊어졌고,
“키르륵?!”
“키힛!!”
그 위를 밟고 질주하던 거대 거미들이 단체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다른 둘과 달리 한 번에 일격사시키지는 못 했지만, 가장 많은 수의 거대 거미들을 추락시켰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갑자기 잘 걷던 길이 붕괴되어 깊은 구멍 속으로 빠진 것과 같다.
거대 거미들은 서로 부딪치며 당황했고,
“거기… 있…구나……!!!”
마침 그걸 발견한 적웅은 끓는 듯한 목소리로 좋다구나 하고 달려들었다.
“커허어어어엉!!!”
무수히 쌓인 거대 거미의 세례로 뛰어드는 저돌적인 맹진.
거미들이 당황해 벌떡 몸을 뒤집어 일어나려 하며 독니를 번뜩였지만,
콰직콰직콰직콰직!!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손이 이 잡듯이 거미들의 머리를 터트렸다!
“이 자식들. 몸집만 크지, 별것 아니구만?”
당지명 역시 달려들어 나머지들을 전부 쳐내기 시작했고, 벼 이삭 수확하듯 거대 거미들을 처리했다.
그렇게, 모든 거미들을 처리한 뒤 당지명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돈했다.
“후우…….”
별다른 부상 없이 처리하기는 했지만,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었다.
궁지에 몰리자 발악하는 녀석들의 독니는 과연 날카롭고, 동체가 워낙 거대해서 버둥거리는 여덟 개의 다리가 장정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거미줄의 존재를 몰랐으면 까다로울 뻔했어.’
땅바닥에서도 번쩍번쩍 뛰어오르는 몸놀림이 꽤 까다로웠기에, 상대적으로 손쉽게 처리했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대형. 이놈들은 대체 뭡니까?”
“뭐긴 뭐야, 놈의 새끼지. 뭐… 천년혈주는 아니고 삼십년혈주나 오십년혈주쯤 되지 않겠냐?”
…그건 또 뭐야?
그것참 쉽게 쉽게 붙이는 이름이다… 싶으면서도 당지명은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뭐가 말이냐?”
“이 정도면, 불퇴 그 녀석이 천년혈주라는 괴물 놈을 만나도 쉽게 당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평소 놀림거리가 되고는 하는 당불퇴지만, 녀석이 가진 강인함을 경시하는 녀석은 없다.
항상 전투의 최전선에 몸을 던져놓고도 살아 돌아오는 녀석인 만큼, 이렇게 덩치만 큰 녀석들이라면 마주쳐도 무사히 몸을 빼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나…….
“글쎄. 이 녀석들만 보고 너무 방심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다.”
“…예?”
“여긴 녀석의 영역으로 따지자면 외곽이나 다름없을 거야. 당장 아까 잡혀 있던 대호가 수거도 되지 않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잖아?”
“그러고 보니…….”
장식품도 아니고, 녀석이 거기 걸려 있다면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녀석이 머물고 있을 심처로 들어가려면 아직 더 가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괴물들을 만나게 되겠지.”
낮지만 힘 있는 경고.
그제야 새삼스레 저 어린 대형이 자신들에게 이곳에 올 때 남겼던 경고가 떠올랐다.
‘…대형이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지.’
사그라들었던 긴장감이 다시금 일며 지금 없는 형제의 이름을 되새겼다.
‘무사만 하거라. 불퇴야…….’
살아만 있으면, 반드시 구하러 갈 테니까.
* * *
그렇게 당지명이 자리에 없는 동생의 이름을 조용히 되새기고 있을 때,
“에취!!!”
당불퇴는 거하게 재채기를 했다.
“삐잇?”
“앙? 감기 걸렸냐고? …흠,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고원이라는 환경에 제법 적응한 당불퇴는 멍하니 옆에 있는 아기 새와 앉아 저 드넓은 창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삐삣!”
“뭐 하는 거냐고? 몰라. 나도 내가 뭘 하는지 몰라.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당불퇴는 허허롭게 웃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깨달음을 얻고 득도한 고승처럼 허허로운 웃음을 짓는 당불퇴의 모습에 아기 새는 뾰로통한 반응을 보이며 부리로 그를 찔렀다.
“삣!”
“으악!! 이놈 자식아!!”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잡으려 하니 아기 새는 벌써 저만치 후다닥 뛰어가고 있다.
“저 자식 저거, 닭 아냐?!”
무슨 새가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땅바닥을 달려가고 있지? 그것도 엄청 빠르게?!
“이 자식아!! 거기 서라!!”
열 받은 당불퇴는 화가 나서 그 뒤를 뛰어 달려갔고,
“키르륵…….”
어느새 어미 새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키륵……?”
당불퇴의 모습을 발견한 어미 새가 옅은 울음소리를 냈는데, 옅은 웃음을 짓는 것만 같았다.
“큼… 흐음…….”
병자 앞에서 함부로 소리를 내지를 수 없기에, 당불퇴가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다 툭, 하고 물었다.
“흠흠, 몸은 좀 어때?”
“키르르…….”
말이 통하는 사람도 아닐진대, 그리 묻자 힘없는 울음소리가 돌아왔다. 왠지 병 걸려 몸져누운 사람이 자신은 괜찮다고 힘없이 손을 젓는 것만 같았다.
‘나 진짜… 뭐 하는 거지?’
진지하게 자신이 미쳐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할 게 없어 새랑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그게 또 어렴풋이 되는 것 같다 생각한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또 아픈 어미 새가 점점 나아가는 모습을 보자니 뿌듯함도 들었다.
생이별을 한 방계들의 모습이 살포시 떠올라 걱정이 들면서도, 또 저 새를 두고 갈 수도 없다는 생각에 괜히 무안해졌다.
‘뭐… 애초에 여기서 내려갈 방법이 딱히 있는 것은 또 아니지만.’
당불퇴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몸조리 잘하라며 밖으로 나와야 했고, 아까 전에 하다 만 봉우리 탐색을 재개했다.
“생각보다… 여기가 꽤 넓단 말이지.”
봉우리는 저 거대한 새가 둥지로 쓸 만큼 높고 상당한 면적과 공간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다양한 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먹을거리 걱정도 없고.”
개중 몇 개를 따와 바닥에 두고 우물우물 먹고 있자,
“삐익!”
어느새 따라 나온 아기 새가 지저귀며 부리를 벌렸다.
“뭐야, 너도 달라고?”
“삑삑!”
“그래, 너도 먹어라.”
지렁이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새가 나무 열매도 먹는다는 사실을 떠올린 당불퇴는 적당히 잘라 녀석의 입 가까이에 가져다주었다.
옴뇸뇸뇸!
“오구오구, 잘 먹는다.”
언제 싸웠는지, 퍽 잘 어울리는 듯한 모습의 당불퇴.
높은 고원에서의 그는 아직 잘 살아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