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91화 (91/350)

91화

“또 옵니다!”

“알고 있어!”

쩌엉―!

측면에서 날아드는 거대 거미의 습격.

그 거대한 동체를 얼마나 잘 숨기고 있던 것인지, 반경 십 장여에 이를 때까지는 감지도 안 된다.

당지명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혈주를 쳐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벌써 몇 번째냐!’

과연 천년혈주는 끈질기고 영악하며 인내심이 강한 사냥꾼이었다.

녀석의 영토로 들어갈수록 습격의 빈도는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정작 그동안 천년혈주 본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냥개를 부리는 사냥꾼과 같구나.’

사냥개를 부리는 사냥꾼의 방식이 이렇다. 사냥개를 풀어 사냥감을 이리저리 몰다가, 사냥감이 지쳤을 때 나타나 필살의 일격을 가한다.

그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바람 불어오는 반대편에 위치해 냄새를 숨기고, 물길을 지나며 족적을 감추기도 한다.

천년혈주가 그런 방식의 사냥을 하는 것을 알고 당지명의 인상은 갈수록 찌푸려져 갔다.

“대형. 이 녀석들 과연 얼마나 부하가 많을까요?”

“글쎄? 천년혈주라는 이름이 괜히 있을 리도 없고. 진짜 천년은 아닐지라도 어지간히 새끼를 많이 까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정도면 가히 군세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직까지는 유의미한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원래 독이 그렇듯, 안도할 수만은 없다.

‘독에 경상은 없지. 한 번 제대로 당하면 치명상 아니면 즉사니까…….’

직접 그걸 다루는 사천당가의 방계들이기에 잘 알았다.

“…끔찍하군.”

그리고 가만 듣고 있던 적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일행 중 안색이 가장 거무죽죽했는데, 그 비술이란 걸 몇 번이나 펼친 대가인 듯했다.

“아저씨는 힘들면 슬슬 뒤로 빠져도 돼요.”

“미안하오. 체력 분배를 잘못해서…….”

천년혈주의 작전이 가장 잘 먹힌 게 적웅이었다.

혈주들의 무리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인 만큼, 처음부터 필살기라 할 수 있는 강신술을 계속해서 펼친 덕분에 벌써 힘이 빠진 것이다.

“이거 먹구요.”

그래도 주제 파악은 잘하는 적웅이었기에 얌전히 뒤로 빠졌고, 당유혼은 주머니에서 단환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열화단(熱火丹)이란 거예요. 먹어봐요.”

갈색의 단환을 건네받은 적웅은 그걸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화끈한 열기가 체내에 불어닥치나 싶더니 순식간에 체력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이게… 무엇이오? 갑자기 원기가 회복되며 힘이 넘치는군!”

“근본은 독단이에요. 다만 서로 상극의 기운을 조합하여 만들어 독성을 상당 부분 줄였죠. 그래도 기본적으로 생명력이 약한 이가 먹으면 그 독을 이기지 못해 죽겠지만…….”

생명력이 강한 이가 먹으면 반푼이 영약만큼은 되는 효능을 지닌 단환이 되는 것이었다.

“과연… 지금껏 그대가 채취해 온 독으로 만든 게 이것이오?”

“아저씨네 일족이 준 약초도 몇 개 섞었구요.”

붉은 바위산 초입부터 홍두사의 독액을 짜내 가죽에 담고, 그 중간중간에도 독물을 사냥하면 그 독을 채취해서 무얼 하나 싶더니 그걸로 이걸 만든 것이다.

“장기전이 되면 결국 누가 체력 보존을 잘하냐 싸움이니까요. 말 나온 김에, 너희들도 하나씩 먹어둬라.”

그간 잡룡탕을 꾸준히 섭취한 방계들이었기에, 기초 체력과 내공량 만큼은 지금도 부족함이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기도 했다.

“열화단이라… 아까 말씀하신 홍두사의 독이 다른 쓰임이 된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요.”

독에 관심이 많은 당율기였기에, 그걸 받아먹으면서도 연신 감탄했다.

귀원일기공을 통해 그것을 흡수, 체내에서 순환하는 흐름을 분석한 당율기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당유혼이 불쑥 물었다.

“어때, 흉내 낼 수 있겠냐?”

“흉내라면 가능하겠지만… 당장에 이처럼 완벽하게 만들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마.”

진짜 제대로 된 독물을 잡아낸다면 무림에서 취급되는 영약도 여럿 만들어 낼 자신이 있는 당유혼이었다.

하지만 그건 독의 조종이라 불릴 경지에 이른 자신이니까 가능한 거지, 제아무리 당율기가 독에 제법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무리였다.

‘애초에 삼십 년 전에는 이 녀석보다 더한 재능을 지닌 녀석들이 숱하게 있음에도 그 경지에 이르기는 시간이 꽤 걸렸으니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한 당유혼은 덤덤히 걸음을 옮겼고, 순간 표정을 굳혔다.

“이건…….”

“왜 그러십니까, 형님?”

갑자기 당유혼의 표정이 굳어지자 당지명도 덩달아 놀라 어린 대형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다 무언가 거대한 고치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고치? 이거 설마… 놈의 알입니까?”

“글쎄. 그건 갈라봐야 알겠지.”

그리 말한 당유혼은 그대로 비수 하나를 꺼내 고치를 갈랐다.

고치가 쭈욱―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반쯤 녹아내린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윽…….”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짐승이 있었는데, 그 위에 알 같은 게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다 죽여야겠군요.”

약육강식이 기반이니, 이것이 그릇되었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생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율기가 손을 휘둘러 독기를 퍼붓자 별다른 저항력이 없는 알들은 그대로 파스슥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당유혼이 입술을 달싹였다.

“부화장이 있다는 건, 심처에 부쩍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부화장이란 녀석이 군세를 생산하는 병영과 같다.

“이미 병력이 심처에 꽉 차서 밖에다 이렇게 내걸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데요?”

고개를 드니 이런 고치가 전방에 수두룩하게 깔려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그럼 내버려 두고 가게?”

“…그건 아니죠.”

드득드득 달라붙은 알 크기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만 했다. 못해도 손아귀 크기의 거미들이 거기서 쏟아져 나올 텐데,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럼……. 이런!”

고개를 끄덕인 당지명이 고치 제거 작업을 시작하려 하는데, 전방에서 강렬한 기운들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저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몰려오는 혈주들의 피부색이 검붉다는 것은 이전의 것들과 비슷했는데, 그 크기가 더욱 크고 느껴지는 불길함이 더더욱 강렬했다.

“저 정도면 백년혈주쯤은 되겠네.”

말하자면 잡병 사이의 십부장, 백부장쯤 된다고나 할까? 문제라면 그것들이 단체로 몰려온다는 거지만…….

“준비해라.”

이제부터는 스스로 나설 생각인지 앞으로 나서는 당유혼이 양손 가득 암기를 쥐었다.

그의 두 눈이 스산하게 빛났고, 다음 순간 양손에 쥔 암기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파파팟!!!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세차게 쏟아지는 강철의 폭우!

콰콰콰쾅!!

하나하나가 백년혈주의 급소에 내리꽂혔고, 암기 하나하나가 무슨 망치로 때려 박기라도 한 듯한 굉음과 함께 백년혈주 무리를 휩쓸었다.

‘저, 저건……!!’

당지명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난번 얻었던 깨달음을 갈무리하고서도 몇 단계는 더 나아가야 닿을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을.

“키르륵?!”

“키륵!!”

기세 좋게 등장한 백년혈주 무리들도 당황한 건지 순간 움찔했는데,

키이이이잉―!!

그 순간, 저 멀리서부터 울려 퍼진 굉장한 고음이 장내를 휩쓸자 백년혈주들이 단체로 부르르 떨더니 일제히 재돌격을 감행했다.

“이 소리는… 설마, 천년혈주?”

“안까지 쳐들어 오니 놈도 뿔이 났다는 소리겠지. 뭐해? 쓸어버려.”

백년혈주의 무리가 달려오는데도 덤덤한 당유혼의 모습에 다른 이들도 곧장 정신을 차리고 투지를 가다듬었다.

저마다 강신술을 발동하거나, 암기를 내던지거나, 독을 흩뿌리며 맞서 싸웠다.

심처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몰려오는 괴물들의 수도 부쩍 많아졌고, 그 괴물들의 강함도 이전번보다 훨씬 강했다.

그걸 가장 짙게 체감하는 것은 당율기였다.

‘떨어져라!’

허공에 어지럽게 엉킨 실을 타고 쇄도해 오는 모습들에 녹색의 독무를 조종해 그들이 밟은 실을 끊어냈다.

쿠쿠쿠쿵!!

“키에에엑!”

“키이익!!”

덕분에 백년혈주들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정신을 채 차리지 못하던 이전 것들과 달리 그들은 금방 자세를 가다듬고는 다시금 달려들었다.

“키아아아악!!”

“큭……?!”

위험한 독액이 허공에 분사되었다.

이놈들은 독액 분사 기능도 추가되었는지, 자색의 독액이 허공에 퍼부어졌다.

푸시시시식!!

당율기가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자 독액은 빗맞은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의 밑동 반절이 녹여버렸다.

‘이건 독에 대한 내성이고 뭐고 없잖아?’

위협하듯 사납게 부딪쳐 오는 독니도 문제고, 중간중간 뿜어져 나오는 독액도 문제고, 저 거대한 몸체도 문제다.

처참한 상성을 느끼는 당율기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극상성이야.’

여기 온 방계 삼인방 중 가장 근력도 떨어지는 편인 당율기는 귀원일기공을 바짝 끌어 올리며 허리춤에 묶어 두었던 두 자루 은장도를 꺼내 그들과 맞서 싸웠다.

유사시에 투척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그것은 혹시 몰라 가져왔는데, 예리한 독니를 번뜩이는 백년혈주와 맞싸움을 벌이기 곤혹스러운 지금 톡톡히 효과를 발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버티는 정도야……!’

서걱!

달려드는 백년혈주 하나의 다리를 썰어내면서도, 이미 저만치 활약을 하고 있는 당지명이나 그동안 휴식을 취한 덕에 또다시 강신술을 발휘하는 적웅에 비하자면 그냥 버티고 있을 뿐인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마저도 버거워 백년혈주가 몰려오자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큭?!”

턱―

어느새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하나를 뒤에 둔 채 포위가 된 형국.

이미 수십 마리도 넘게 몰려온 백년혈주 무리에, 다른 일행과도 멀리 떨어진 것인지, 혼자 남은 당율기는 짙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 해보자. 이거지?”

은장도 위로 녹색 기운이 넘실넘실 흘렀다.

백년혈주가 가진 독니에 버금가는 독검(毒劍)이 흉흉한 기운이 존재감을 발휘했다.

“다 들어와!!”

가뜩이나 형제의 생사마저 불분명해 잔뜩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와, 지금 없는 그 형제처럼 소리치며 두 자루 은장도를 휘둘렀다.

저돌적인 맹격이 백년혈주들을 휩쓸었고, 그 기세가 사납고 폭급하게 터져 나와 백년혈주들을 움찔하게 만들었지만,

키이이익!!

다시금 울려 퍼진 고음이 백년혈주들의 머뭇거림을 없애주었다.

결국 금세 수세에 빠지게 된 당율기는 손이 꼬이는 걸 느꼈고, 자신이 죽어 나가든 말든 그 거대한 몸뚱이를 밀어 넣는 백년혈주에 다시금 쭉쭉 뒤로 밀렸다.

‘익……!’

독검을 형성하느라 잔뜩 끌어 올린 내공 덕에 끊임없는 보유량을 자랑하던 단전도 슬슬 바닥을 보여갔다.

자연스레 팔다리 끝으로 향하는 힘이 빠지며 눈앞도 조금씩 가물가물해졌다.

‘비켜, 나는… 그 녀석을 구해야 해!!’

모자라고, 무식하며, 멍청하기까지 하지만…….

“내 소중한 형제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진심 어린 외침을 토해내며 꺼져가는 은장도의 녹색 불꽃을 더더욱 피워올린다.

키이이잉!!

그런 외침에도 저 먼 곳에 있을 천년혈주의 지령을 받은 백년혈주는 더더욱 사납게 날뛰며 달려들었다.

그에 결국 저도 모르게 흘린 핏물이 앞섬을 붉게 물들일 때,

“키아아아악!!”

어느샌가 가까워진 백년혈주 하나가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독니를 날카롭게 들이민다.

‘아……!’

저도 모르게 그런 탄성만이 흘러나온 그 순간, 별안간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무언가 뚝― 떨어져 백년혈주의 몸통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킥?!”

‘뭣……?’

단말마와 함께 절명한 백년혈주도, 그 앞에서 구사일생한 당율기도 얼떨떨해할 때, 백년혈주의 시체 위에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리운 햇빛의 역광에 그림자만이 비추는 그 난입자는 입꼬리를 잔뜩 비틀어 올리더니 말했다.

“당가의 푸른 야수. 당불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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