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93화 (93/350)

93화

【 니가 와 】

“삑삑―!”

아기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보통 이런 소리는 평화를 상징하기에, 온 주변이 피로 뒤덮인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의 주제 거리는 당연 그 아기 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어미 새한테 납치당해 저 높은 곳까지 잡혀갔는데…….”

“그 어미 새는 독에 중독되어 있었고…….”

“그 독을 자네가 치료해 주었다는 말이지?”

“그 새의 새끼에게는 무공까지 가르쳐주고?”

한 명씩 돌아가며 되묻는 말에 당불퇴는 콧김을 훅― 내뿜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 끄아악!”

콰앙!

“맞습니다는 니가 처맞는다는 뜻이지? 앙?!”

“아아악! 대, 대형!! 왜 이러세요?!”

“넌 뭐 하는 새끼가 기껏 좋은 거 다 처먹이고 좋은 무공까지 알려줬더니 새한테 납치나 당하냐? 그것도, 독에 중독된 새한테!!”

“그, 그건……!!”

그가 말이나 되냐?

게다가…….

“그리고 뭐, 귀원일기공을 새한테 알려줘? 네놈은 비인부전이란 말도 몰라?”

“아, 아니 그게 그 말이 아니지 않…….”

“아니야?”

“…맞네요. 하하, 맞네요.”

맞다고 하지 않으면 처맞게 생겼는데 어찌 맞지 않다고 하리. 오늘도 무력 앞에 진실이 굴복당한 당불퇴는 현실을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해서. 얘가 귀원일기공을 익혔다?”

그 한심한 꼬라지를 보며 혀를 차던 당유혼은 삑삑거리며 자신들을 돌아보고 있는 아기 새를 응시했다.

“…삑삑이입니다.”

“뭐?”

“삑삑이요. 걔 이름. 그렇게 울더라구요.”

“삑!”

맞다는 듯 호응하는 모습에 당유혼을 얼씨구나 싶었다. 하도 새대가리라 놀려서 그런지, 진짜 새와 친구가 된 건가?

그때,

“키륵―”

하늘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며 거대한 동체가 바닥에 착지했다. 어미 벽력조였다.

“어… 이건?”

“불퇴, 널 납치했던…….”

“키르륵.”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어미 벽력조는 그들 앞에 얌전히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지은 과오를 사과하는 것만 같아 당유혼은 조금 전 생각을 수정했다.

‘새대가리라는 말은 취소. 저 녀석이 불퇴 녀석보다 훨씬 낫구만.’

“아, 얘가 절 이리로 데려다줬습니다.”

“어깨를 잡아서?”

“그렇죠.”

“…저 위에서?”

“넵.”

“…잘도 내려왔구나.”

하늘을 뚫을 기세로 자라나 있는 높은 봉우리를 보자니 당지명은 참 잘도 저기서 내려왔구나 싶었다.

그때,

“아 참! 대형! 큰일 났습니다!”

당불퇴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여기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 산답니다.”

“…뭐?”

“저 녀석이 잔뜩 경고해 줬는데, 엄청 흉악한 녀석이 이 근처에 산다고 하더랍니다!”

두 팔을 잔뜩 벌리며 최대한 몸을 부풀리는 모습이 그 흉악한 것의 위험도를 나타내려는 것 같다.

“이 새가 아주 강력한 새인데, 그런 녀석마저 그 괴물의 기습을 받고 한참을 끙끙 앓아야 했다지 뭡니까?”

대박 사건이라도 벌어진 듯 더더욱 몸을 쫘악 펴는 당불퇴.

그에,

“…불퇴야.”

“왜 그러냐, 율기야? 나 지금 진지해.”

아직도 턱을 최대한 당기고 가슴을 부풀리고 있는 당불퇴를 당율기가 불렀다.

“우리 여기 왜 왔냐?”

“응? 그야 붉은 바위 일족을 괴롭히는 괴물을… 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당불퇴가 얌전히 두 팔을 모았다.

“혹시… 그놈이 그놈인……?”

“응. 그놈이 그놈이다.”

“아…….”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헉!! 대, 대형!! 이거 가능한 거 맞습니까?”

당불퇴는 호들갑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 그냥 그 사람들 보고 도망치라 하죠? 놈이 보통 괴물이 아닙니다!”

“그래, 보통 괴물은 아니지.”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이기는 했다.

‘천하의 벽력조조차 중독시키는 걸 보면.’

고고히 서 있는 벽력조는 영물이라 불리는 새였다. 전설 속에 나올 법한 녀석으로 당유혼이 실제로 본 횟수도 몇 안 되었다.

‘절정 고수조차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면 목숨을 내걸어야 하지.’

개체마다 강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녀석을 중독시킨 천년혈주는 보통 마물이 아닐 것이다.

하긴, 일천 년 다른 존재의 피를 머금고 살아온 마물이 어디 보통 마물일 리가 있나?

“그러니까 더 빨리 족쳐야지. 일천 년 피를 머금어도 끔찍한데, 일천백 년, 일천이백 년 더 먹으면 얼마나 끔찍하겠냐?”

“아… 옙…….”

결코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당유혼의 모습에 당불퇴는 깔끔히 설득을 포기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대형에게 설득을 시도했을 때 성공했던 적이 있긴 했을까 싶다.

그때,

“키륵.”

가만히 있던 어미 벽력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응?”

그에 당불퇴의 귓가가 쫑긋거렸다.

“키륵키륵.”

“진짜?”

“삑삑!”

“아니, 못 믿는 건 아닌데…….”

“키르륵!”

“어… 그려?”

당불퇴와 두 마리의 새가 알 수 없는 교감이 진행되고,

“대형.”

당불퇴가 불쑥 말했다.

“얘가 그 괴물의 위치를 안다는데요?”

“…뭐?”

경험 많은 노강호 당유혼조차 경험하지 못했던 신박한 말을 뱉었다.

* * *

“…이거, 진짜 맞냐?”

“아무렴, 쟤가 얼마나 영특한데요?”

당유혼 일행은 걷고 있었다. 이전까지도 걷고 있었지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확실한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저 주변에 난 흔적을 역추적하며 천년혈주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을까 하며 짐작해서 걸어갔다면 이제는 확실하게 천년혈주의 본거지를 알고 걸어가고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게 가능하게 해준 안내자, 벽력조를 가리키며 당불퇴는 단언했다.

“쟤가 지금 저기서 보고 알려주고 있거든요.”

당불퇴의 말에 당지명은 영 못 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새와 말이 통한다니…….

솔직히, 당지명은 그냥 이 동생 새끼가 안 그래도 이상한데 어쩌다 머리를 잘못 맞아 빙 돌아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백년혈주의 독이 골수까지 침범했거나.’

지금이라도 당장 눕힌 다음 해독제를 먹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자니, 의외의 원군이 당불퇴를 지지해 주었다.

“아마, 소형제의 말이 맞을 것이오.”

“예?”

그건 바로 적웅이었다.

“벽력조는 영물이라 불리는 신묘한 새. 그 현명함이 어지간한 현인 못지않다는 말이 있으니 벽력조를 따라가면 분명 길이 있긴 할 것이오.”

“…허.”

적웅까지 그리 말하니 당지명 역시 당장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영 불신의 마음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 말이 맞는 것 같네.”

선두에서 걷던 당유혼이 불쑥 목소리를 냈다.

“예?”

무슨 일이냐 물으려 하는 순간,

“……!!”

살벌한 기세가 칼날처럼 그들의 기감을 찔러댔다.

“긴장해라. 이제는 뭐… 오백년혈주쯤 되는 놈들이 나올 것 같으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아까보다 더더욱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거미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덩치는 더더욱 거대해져, 이제는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저 실은 뭐로 만들어졌길래 저런 놈들을 위에 태우고도 끊기지 않는지가 의문인데?”

이건 반칙이잖아?

몰려오는 검붉은 물결이 세상을 덮을 분위기였다.

“대형.”

하지만, 그에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이는 없었다.

괴물이 있다며 난리 치던 당불퇴가 가장 선두로 나서며 씨익 웃었다.

“이놈들이 오백년혈주면, 다음은 그 천년혈주인가 뭔가 하는 놈이 나오겠지요?”

“글쎄다. 칠백년혈주나 팔백년혈주가 나올 수도 있지. 어쩌면 구백년혈주도 나올지도?”

그게 뭡니까. 구미호도 아니고.

피식 웃은 당불퇴는 서서히 귀원일기공을 끌어 올렸고, 나머지 두 방계도 익숙한 진형을 잡아갔다.

삼재진이 펼쳐지자, 오히려 더 강대한 상대를 맞이하고도 자신감이 차올랐다.

“…신묘한 비술이군.”

당불퇴가 이제 막 합류함으로써, 그걸 보는 것은 처음인 적웅 역시 무언가를 느끼고 감탄했다.

“좋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니, 나 역시 힘을 내보겠소.”

적웅은 특유의 강신술을 발휘해 불꽃으로 타올랐고, 당가의 삼 형제들 역시 삼재진을 발휘하며 오백년혈주들과 부딪쳤다.

“키르르르륵!!”

“키르르륵!!”

날카로운 흉성이 울려 퍼지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니, 그것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도살(屠殺)에 가까웠다. 일방적으로 부수고 찢고 베며, 압도적인 무력 진압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한데?’

이제는 한쪽 축을 잡고 몰려드는 혈주들을 때려잡고 있는 당유혼의 내면에는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손쉽다 싶을 정도로 쉬운 습격과 반격.

적의 수는 늘어났는데 오히려 방어는 더 쉽다.

마치 이건…….

“어? 대형! 놈들이 물러납니다!!”

“뭐?”

거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혈주들을 도살하고 있던 당유혼이 고개를 들어 저 검은 물결의 일렁임을 응시했다.

과연, 그것들은 밀물처럼 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형! 추격할까요?”

온몸을 피와 체액으로 물들인 채 혈주들을 상대하고 있던 당불퇴가 소리쳤다.

이제 보니 혈주들이 얼마나 꼴사납게 도망치는지 당장에라도 쫓아가 추가타를 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건… 숫제 유인이잖아?’

약점을 보이고 그걸 노리고 쫓아오는 상대를 노려 역습한다. 한낱 거미 따위가 어찌 그런 전략을 보일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새끼들 병신 아냐? 그렇게 영악한 꼴을 다 보여주고, 이따위 유인책을 써?”

당유혼은 그들에게 대한 그득한 믿음으로 혀를 찼다.

“이놈들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다고 믿나, 소형제?”

“아저씨는 아닌 것 같아요?”

“아니. 나도 소형제의 말에 적극 동의하는 바일세. 다만…….”

적웅은 마찬가지로 피로 물든 주먹을 내리며 말했다.

“그렇다 해서, 당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이지.”

“…그건 맞죠.”

유인이란 것은 뻔한데, 그렇다고 거기에 당해 주지 않을 방법도 마땅히 없었다. 당장 그들의 목적은 저들을 처치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가자면, 잔뜩 화가 난 놈들이 저들 일족을 덮칠지도 모르니…….’

“쯧, 가야죠.”

뻔히 유인책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도망치는 혈주들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뒤를 쫓던 그들은 곧 거대한 동굴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으니, 산악에 뚫린 거대한 혈(穴)이 그 입구였다.

“냄새가 지독합니다.”

“텁텁한 게… 일반인은 숨쉬기도 버거운 수준인 듯합니다.”

어느새 흔적을 감춘 혈주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거대한 동굴만이 일행을 반겨주고 있었다.

마침 하늘을 나는 벽력조도 그곳이 맞다는 듯 허공을 선회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입구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후,

“이건…….”

“구멍?”

구멍 안에서 또 다른 구멍을 발견하게 된 그들은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구멍이 수평으로 뚫린 구멍이었다면, 방금 뚫린 구멍은 수직으로 뚫린 구멍.

그 아래가 보이지 않는 컴컴한 구멍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문득 초입에서 당유혼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거미의 은신처는 거미들이 통째로 들어가도 남는 곳이다. 그리고, 천년혈주의 은신처는 더하겠지.”

저 깊은 굴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설마, 대형.”

그 속에서 모두가 공통으로 떠올리는 생각을 당지명은 입에 담았다.

“저희 저기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모두지만 어차피 돌아올 답은 뻔했다.

하지만…….

“아니? 미쳤냐?”

당유혼. 그는 언제나 모두가 그렇다 할 때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는 파격과 혁신의 사나이였으니.

“여기까지 유인당해 줬으면 됐지. 뭘 더 당해 줘야 해?”

“예……? 그럼 천년혈주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뒤로 물러서 봐.”

당황하는 이들을 뒤로 보내고 당유혼은 밑에 뚫린 구멍 앞에까지 다가갔다. 퀴퀴하고 텁텁한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게, 마치 광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 깊은 구멍을 바라보며 당유혼은 물건 하나를 꺼냈으니,

“사람은 머리를 써야지.”

경험 많은 노강호 당유혼은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니들, 분진폭발이라고 아냐?”

화륵―

야영지도 아닌데, 화섭자(火攝子)를 꺼내 불을 붙인 당유혼이 무언가 진액이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 중 하나에 그것을 떨어트렸다.

그 진액은 이곳까지 오며 채취한 독액 중 하나로, 불이 아주 잘 붙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기 직전 당유혼은 구멍 속으로 가죽 주머니를 투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래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맹렬한 폭음이, 직후 일어나는 무언가의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뒤섞였다.

어느 쪽이든 소름 끼치는 그 굉음을 배경으로, 저 아래 기둥에서 치솟는 불기둥을 바라보며 당유혼은 씨익 미소 지었다.

그것은 그의 노련미가 뿜어내는 이 순간 최고의 전법.

“니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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