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분진폭발(粉塵爆發).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 중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적당한 농도 범위에 있을 때 불꽃이나 섬광 따위로 폭발하는 거다. 평생 광산 같은 데 가본 적 없는 니들은 모르겠지만… 그게 광산의 재앙이라 불리는 일이다.”
그 재앙을 일으킨 장본인이 낄낄 웃고 있었다.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럼 대체 넌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 묻고 싶었으나 그들은 저 바닥 안 보이는 깊은 구멍을 메우고 치솟는 불기둥에 정신이 아득해져 차마 그 물음을 던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당유혼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 슬슬 나가자. 폭발이 여기까지 덮칠지 모르니까.”
“지, 진짜입니까?”
“그럼 이 와중에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아니, 그런 미친 짓을……!!”
그 말에 일행은 두말 않고 바로 도망쳐 나왔다.
기세 좋게 쳐들어 갔던 동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 안에서 온갖 비명과 굉음이 울려 퍼졌고, 그에 소름이 끼치기도 전에 더 큰 난리가 일어났다.
쿠쿠쿠쿠쿵!!!
“도, 동굴이……!!”
“무너진다?!”
대규모 화약이라도 매설하고 일제히 터트린 것처럼 그들이 들어갔던 그 거대한 동굴이 무너졌다.
겨우 화섭자에 불붙여 터트린 걸로 이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당유혼은 킬킬 웃으며 그 자연의 재앙을 눈에 담았다.
“천년혈주놈. 어지간히도 열심히 굴을 파낸 모양인데? 분진이 아주 그득했나 봐.”
“그… 분진폭발이란 게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겁니까? 광산이 저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고?”
“쉽지는 않지. 그렇다고 너무 희귀하지도 않고. 하지만, 저렇게 전부가 무너질 일도 원래라면 없어.”
만약 사람이 만든 광도였다면 안에 나무 기둥을 만들거나 적당히 내구도를 생각한 구멍을 만들기에 분진폭발이 일어난다 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천년혈주가 그런 것 생각해서 굴을 팠을까?
‘좀 무너져도 너끈하게 버틸 몸뚱이를 지니고 있다면, 그냥 내키는 대로 구멍을 팠겠지. 자기 군세를 담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그 지독한 안전불감증이 이 사달을 만들었으니 과연 누구를 탓할까?
맹렬히 무너지는 동굴을 보며 당지명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헤치웠… 악!!”
“안 돼, 이 새끼야!”
어디서 금단의 주문을?!
“왜, 왜 그러십니까?”
“그건 금단의 주술이다! 죽은 놈도 살려내는 주술이라고!”
“그게 무슨 개ㅅ… 흡?!”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치려던 당지명이었지만, 그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무너진 동굴 잔해가 맹렬히 떨리는 게, 결코 무언가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위로 솟구치는… 그러니까……!!’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그 크기를 대체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 오백년혈주도 거대했지만, 그보다 훨씬 거대한… 과장 조금 보태서 움직이는 동산만 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년혈주(千年血蛛).
부하들을 부리기만 하던 놈이 분노에 차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그런 주문이 진짜 있었다고?”
당지명이 스스로 행한 금단의 주술에 덜덜 떨 때 당유혼은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쯧, 쉽게 뒈져 주지는 않는군. 자, 준비해라.”
애초에 ‘니가 와’ 전략을 개시할 때부터 적이 이것에 죽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천년 간 피를 머금고 살아간 마물이라면, 이 정도에 깔끔히 명을 달리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 스스로가 삼킨 핏물만큼이나 구역질 나게 부활한 천년혈주가 전신에서 뚝뚝 체액을 떨어트리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새끼, 목청도 좋네.”
이게 진짜다.
이제 진짜다.
그간 있었던 전초전은 정말 애들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당유혼이 서서히 그 기세를 돋우었다.
- 크르르르…….
동시에, 여태 단 한 번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았던 탐(貪)이 똬리를 틀고 몸을 일으켰다.
‘저건?!’
흠칫―
전투를 준비하려던 적웅이 놀라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민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비술을 익힌 적웅만이 그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괴, 괴물? 아니… 그걸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천년혈주보다 더한……!!’
몸이 덜덜 떨렸다. 천년혈주를 상대할 때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가 탐을 보고 공포에 질린 것이다.
그때,
“뭐야, 아저씨. 무서워요?”
그 옆으로 다가오던 당불퇴가 그의 어깨를 턱― 하고 짚으며 씨익 웃었다.
“하긴, 아저씨도 저런 괴물 쉽게 보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당불퇴.
그에 적웅은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란 말이다! 진짜 괴물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당불퇴가 말해 왔다.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저런 괴물보다, 훨씬 괴물 같은 우리 대형이 있으니까.”
“…뭐?”
겨우겨우 내뱉은 것은 짧은 반문.
설마, 저 존재를 이들도 느끼고 있다고?
“이건 내 짐작인데, 우리 대형은 속에 저것보다 더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놈을 키우고 있을 겁니다.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거든.”
“저걸… 본적이 있다고?”
“응? 아니, 저 괴물은 말고. 그냥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역시 이들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우리 대형을 믿거든. 항상 우릴 쥐어패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양반이지만… 이럴 때 가장 앞서서 싸워주는 사람인지라… 저 괴물을 앞두고도 별로 두렵지가 않네?”
낄낄 웃는 당불퇴의 모습에 적웅은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느꼈다.
‘대체 이 믿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일족이 자신에게 보내는 믿음이 이러할까? 아니, 단언컨대 그 믿음이 아무리 강해도 이것보다는 못할 것이다.
‘벽력조와도 소통할 만큼 육감을 지닌 이가… 어찌 저런 괴물을 품은 자에게 이토록 강한 믿음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 현실이 너무나 놀라워 잘 믿기지 않았다.
“…소형제는, 그대의… 형님을 믿으시는가?”
“헤, 같은 말 반복하시는 걸 보면 많이 무섭긴 한가 보네.”
당불퇴는 씨익 웃으며 그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차례로 다른 방계들이 지나가며 말했다.
“당연히 믿지. 좀 폭력적이긴 하지만.”
“아니, 많이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대형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그 강렬한 믿음에, 적웅은 굳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걸 느꼈다.
이후, 그를 두렵게 한 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자신 없는 놈은 뒤로 빠져! 보아하니 부하놈들은 다 뒈졌으니 저놈은 내가 상대한다! 삼재진을 펼치고 휩쓸리지 않게 버티기나 해!”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홀로 적을 상대하러 가는 그 외침에 방계들은 웃음을 지었다.
‘참, 괴팍한 대형이야.’
평소에는 실전 같은 훈련이니, 뭐니 하며 떠들면서도, 정작 실전이 닥치면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그들을 내빼려고 발악을 한다.
그러는 주제에 자기 자신은 가장 위험한 험로로 뛰어드는 걸 보면, 그 길을 따라 달리기도 버겁다. 어쩌면, 그간의 수련은 사실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기 위해 견뎌냈던 게 아닐까?
“그렇게는 못 합니다, 대형.”
“우리가 언제 대형 말 곱게 듣는 거 봤습니까?”
“맨날 그러다가 우리한테 구조 당해 놓고 허세 부리지 마십시오.”
맹렬한 살기를 뿜어내는 천년혈주를 상대로도 그렇게 농지거리를 던져내는 방계들은 그 순간 폭발하는 기세에 맞추어 삼재진을 펼쳤다.
“온다!”
콰아아앙!!
들이닥친 것은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와 같았다. 그게 고작해야 녀석의 여덟 다리 중 하나라는 것이 끔찍한 사실이었다.
“어딜 보냐! 여기다!”
그리고 그 괴물의 본체는 현재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니, 당불퇴와 마찬가지로 허공의 거미줄을 밟고 뛰어다니는 당유혼을 쫓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녀석의 입이 쩍 벌어지고 그 속에서 독액이 퍼부어졌다.
말이 독액이지, 갑자기 산중에 퍼부어진 파도와도 같은 그것이 뒤편에 무너진 동굴 잔해를 뒤덮었다.
그러자,
푸시시시식!!
연기와 함께 바위 무더기가 녹아내렸다.
“뭔……?”
방계들은 그 끔찍한 장면에 오싹했지만, 독의 파도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놈은 독의 파도를 대포처럼 뿜어냈고, 심지어 숙련된 궁수처럼 속사로 퍼부어기까지 했다.
제아무리 독의 조종이라 불리던 당유혼이지만, 바위째로 녹여버리는 저걸 맨몸으로 받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귀 아프다! 넌 목도 안 아프냐?!”
하지만 당유혼은 거미줄을 밟아가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천년혈주의 머리 위에 올라타기까지 했다.
“키에에에에엑!!”
자신의 머리 위에 무언가가 올라타자 천년혈주는 더더욱 분노에 찬 난동을 부렸다.
“왜, 인생이… 아니, 주생이 쉽지는 않지? 네 생각대로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말이야.”
놈은 분명 영악한 사냥꾼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희생양 삼아 계속해서 보내 일행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전력을 분석하기도 했다. 자신이 파낸 거미 굴로 일행을 유인하기까지 했으니 분명 보통의 금수라면 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마물이라도 말이야. 짐승이 영악해 봐야 인간만 하겠냐?”
당유혼의 손이 검푸른색으로 빛나며 천년혈주의 붉은 반점을 강타했다.
쩌어엉!!!
그곳은 천년혈주의 급소!
덩치에 따라 급소도 큰 만큼 강렬한 충격이 천년혈주를 뒤흔들었다.
“커허어어엉!!”
천년혈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당유혼을 떨어트리려고 난동을 벌였지만,
“지금!”
길게 끌 생각이 없는 당유혼이 버럭 소리치자 방계들은 기다렸다는 듯 삼재진을 통해 휘몰아치는 기운을 극대화시켰다.
“갑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자신들 앞에 드리워져 있는 다리 하나!
당지명의 암기 폭격이,
당불퇴의 주먹세례가,
당율기의 독기 집중이,
그 다리 하나에 온전히 퍼부어지자 천년혈주는 균형 축 하나가 흐트러져 버렸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커허허허헝!!”
방계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난 적웅이 비술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내 다른 다리 하나에 달려들었다.
결단코, 곰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뽐낸 그가 갈긴 주먹이 천년혈주의 다리 하나를 기이한 각도로 꺾어 버렸다!
그 덕에 천년혈주가 몸의 균형을 잃어 휘청일 때,
‘단번에 끝낸다!!’
당유혼은 지난번 기연을 통해 급상승한 내공을 모두 끌어내며 일 점 집중의 공격을 가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쇄(碎).
그의 전신을 휘감고 일어선 검푸른 기운이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화했고, 그것이 천년혈주의 급소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살벌한 굉음이 일었고, 천년혈주의 거대한 동체가 크게 경련하다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온 주변이 다 뒤흔들릴 만한 맹렬한 진동.
순간적으로 힘을 다 쏟아낸 당유혼은 그 위로 푹 주저앉아버렸고, 다른 모두들 역시 힘이 쭉 빠진 채로 그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 최후의 일전이라기에는 너무나 짧은 순간 결정지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였다.
“헤, 해치웠나……?”
당지명이 저도 모르게 그리 읊조린 것은.
“야!!!”
“입 막아!!”
그에 방계들이 깜짝 놀라 그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쿠쿠쿠쿵―
그것은 한 걸음, 아니, 아주 매주 크게 늦은 바가 있었으니,
쿠쿠쿠쿠쿠쿠쿵―
맹렬한 굉음과 함께,
“어어억?!”
“이, 이건?!”
“당주 형님! 이 개새끼야!!!”
그들이 주저앉은 지각 일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