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96화 (96/350)

96화

“시체잖아?”

“유골이 정확하겠네요.”

“그게 그거지.”

덤덤히 말하는 방계들은 이제 시체 정도에 놀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넌 왜 이런 걸로 놀라?”

새삼스럽게.

“아, 아니… 그래도 좀 그렇잖습니까?”

누구보다 호쾌하지만 또 이럴 땐 여린 모습을 보여주는 당불퇴의 행동에 다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어쩌다 여기 있게 됐을까요?”

“글쎄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을 테니 이 유골의 주인도 그런 게 있겠지.”

다들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는데,

“응?”

당불퇴의 눈에 문득 유골의 목에 걸린 무언가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건.’

반쪽만 남은 목걸이.

그마저도 줄은 금방이라도 끊길 듯 낡은 상태였고, 그 끝에 걸린 장식품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아…….”

반만 남은 듯한 장식품은 누가 보면 반으로 깨진 게 아닐까 싶었으나, 당불퇴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적 소저의…….’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유골의 아래쪽에 덩그러니 굴러다니는 가죽 같은 게 보였다.

그걸 펼쳐보니, 피로 쓰인 혈서가 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아무래도… 나는…

…틀린 것…

…미안…

…행복하…]

안타깝게도, 그 혈서조차 대부분이 지워지거나 찢기고 다른 액체로 오염되어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당불퇴는 씁쓸한 표정으로 적웅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 소저의 오라버니인 듯하네요.”

“그걸 어찌… 아…….”

적웅 역시 뒤늦게 목걸이 반쪽을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했다.

“…그 아이들이 아끼던 목걸이구려. 일찍이 부모를 잃어 의지할 상대가 서로밖에 없었을 텐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가 짧게 묵념을 했다.

잠시 후 다시금 눈을 뜬 그가 당불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목걸이를 아는 걸 보니, 그 아이가 당신에게 직접 얘기해 주었나 보구려.”

“…그렇게 됐네요.”

“후우… 어쩔 수 없군.”

적웅은 씁쓸한 표정으로 유해를 수습했다.

그 역시 큰 가죽 주머니들을 많이 가져왔기에 바스러진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한 데 담은 것을 당불퇴에게 건네며 대신 그가 든 적철 꾸러미를 요구했다.

“그것들은 내가 들겠소. 소형제가 이것을 그 아이에게 전해 주시오.”

“예? 제가요?”

“그게 옳을 듯하구려.”

많은 것이 담긴 목소리에 당불퇴 역시 더 이상 반문하지 않고 서로의 짐을 교환했다.

이후 그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형이 높아진다 싶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걷고 있자니,

“…이런.”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막혔네요.”

“흠…….”

당율기의 말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당유혼은 길을 막고 있는 무너진 바위의 잔해 가까이 다가가 그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기를 통과시켜서 벽의 두께를 알아보는 행위가 이어졌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서야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

“상태가 어떻소?”

다들 물어오자 당유혼은 팔짱을 끼고 불퉁한 표정으로 답했다.

“긍정적인 소식과 부정적인 소식이 하나씩 있어.”

“…긍정적인 소식은 뭡니까?”

“두께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아. 우리가 꽤 많이 올라온 것 같긴 해.”

이 무더기만 다 치우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다만…….

“그럼… 부정적인 소식은요?”

“구조가 망했네. 이거 밑에서부터 덜어내면 지반이 다 무너져 내리는 구조야.”

“미친…….”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 양반이 기행을 저지르는 게 어디 한두 번도 아니니까.

“어… 어떻게 하죠?”

“어쩌긴 뭘 어째. 최대한 안 무너지는 쪽으로 해봐야지.”

“그걸 알 수 있습니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아.”

다른 사람이었으면 불가능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대답에 다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되는대로 해보죠.”

그렇게, 그들의 탈출 작업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되려 했는데,

구구구구…….

갑자기 위쪽에서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뭐, 뭐야?! 설마 무너지는……?”

여기서 붕괴가 일어나면 싹 다 깔리는 것이야 당연지사.

깜짝 놀란 당불퇴가 곧바로 도망치려고 몸을 돌릴 때,

“아니. 아니야.”

그대로 뒷목을 잡아챈 당유혼이 위를 가리켰다.

“누가 위에서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다.”

“예? 누가요?”

“그건 모르지. 그런데 이건 긍정적인 소식이야.”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긍정적이란 이야기에 가만 기다리자 과연 바깥쪽에서 무언가 콰직콰직하며 돌무더기를 치워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 자체가 저 위쪽이 가까워진다는 증거.

게다가, 점점 빛줄기가 들어오자 모두의 기대는 잔뜩 부풀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그 사람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해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할 때, 마침내 빛줄기가 커지며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으니,

“삑?”

익숙한 새의 부리.

그러니까,

“삑삑아?!”

아기 벽력조, 삑삑이가 있었다.

* * *

“탈출이다!!”

“이걸 사네?!”

모두가 기적적인 생환에 감탄을 터트릴 때 당불퇴 역시 자기가 겪고도 믿기지 않은 현실에 감탄을 터트리며 벽력조 모자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그들을 구해 준 것은 당연 삑삑이가 아닌 삑삑이의 어미였다.

거미 굴속에서 빠져나오니 온 주변에 파헤쳐진 바위의 잔해가 가득했고, 그 바위의 잔해들 위로는 발톱 자국이 나 있었다.

어미 벽력조가 바위들을 발톱으로 짚어 하나씩 치워내 준 것이었고, 덕분에 그들은 탈출할 수 있었다.

“키르륵.”

신기해하는 그들에게 어미 벽력조는 부리로 가볍게 당불퇴의 가슴 언저리를 쪼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응? 이건?”

“그게 뭔데?”

“어… 적 소저가 떠나기 전에 준건데… 나도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어.”

당율기가 묻자 당불퇴는 출발 전 적세희가 선물로 준 주머니를 꺼내놓았다.

“일족의 가호가 걸려 있는 물건이군.”

적웅이 그걸 보며 아는 체를 하자 다들 신기해하며 물었다.

“가호? 그게 뭡니까?”

“…음, 글쎄. 나와는 다른 계통이라 자세히는 모르네. 다만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기운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갑자기 시선이 쏠리자 적웅은 무안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알아보기만 할 뿐, 정확히 뭔지는 모른 것이다.

그러나, 당유혼은 그 정체를 알고 입가를 씰룩였다.

‘저걸 저놈한테 준 거야?’

경험 많은 노강호 당유혼은 무림을 종횡할 때 여러 주술사들과도 부딪쳐봤다.

마교 놈들 중에서도 사특한 주술을 부리는 놈들이 있었고, 자칭 좌도방문의 도사란 것들도 사리사욕을 위해 주술을 사용했으며, 사파 새끼들 중에는 기상천외한 사술을 부리는 놈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당유혼 또한 주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그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스스로의 주술 근원을 쪼개어 나누어 주는 주술. 주술사의 생명과 운을 나누어 주는 것이기에 어지간하면 나누어 주지 않는 법이거늘…….’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이 나이 처먹고 어린놈들 연애사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

그렇게, 경험 많은 늙은이가 고개를 돌리자 다들 정체를 알 수 없어 하면서도 신기하다 탄성을 내질렀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하나둘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요?”

“그래야지.”

드디어, 돌아갈 시간이다.

* * *

붉은 바위산으로 돌아왔다.

가는 게 어려웠지, 돌아오는 건 꽤 쉬웠다.

거미 굴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던 건지, 오히려 붉은 바위산의 험난한 독물을 피해갈 수도 있었기에 그 과정은 훨씬 단축되었고, 그들을 반기는 일족에게 기쁜 소식과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천년혈주를 물리친 것은 분명 기쁜 소식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한 유해로 보아 그동안의 실종자들은 사실상 사망자가 되었다는 얘기는 부족이 슬픔에 젖어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유해를 직접적으로 전달받은 적세희가 그랬다.

“아아… 아…….”

당불퇴에게 반쪽 목걸이를 전해 받은 적세희는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렸고,

“음… 저… 미안하게 됐수…….”

이걸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괜히 죄스러움을 느끼는 당불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리 말하자,

“흑… 흐윽…….”

“어어, 어?”

적세희는 달려들듯 당불퇴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이걸 밀어낼 수도 없어서 가만히 있자,

“와, 여자를 울리네?”

“저, 저, 개새끼. 알고는 있었지만 아주 금수가 따로 없어?”

방계들은 지금이 적기라 열심히 비난을 퍼부었다.

‘아니, 내가 뭘?!’

당불퇴는 억울해 팔짝 뛸 심정이었지만 차마 뭐라 말하진 못했다.

그렇게 그들을 중심으로 슬픔이 찾아온 일족은 천년혈주를 토벌한 기쁨을 나누기보다는 우선 슬픔을 식히고 망자들을 위로할 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당주 형님?”

“그냥. 좀 마음이 먹먹하네.”

일족 전체가 제를 지내는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보는 당지명은 참 뭐라 말하기 힘든 감상에 젖어 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외부인이니까요.”

“그건 맞지.”

외부인인 자신들이 어찌 저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게 맞는 것이다. 그래, 그게 맞는 것인데…….

“…근데, 저 새끼는 왜 저기서 공감하고 있냐?”

여기 없는 그들의 형제, 당불퇴는 저기서 적세희와 함께 마을 중심의 거대한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네요.”

살포시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오는 적세희를 곁에 둔 채, 어쩔 줄 몰라 딱딱히 얼어있는 당불퇴.

그러다가 손이 닿자,

부르르……!!

“얼씨구? 잘한다?”

“와… 왜? 어째서? 하필?”

적세희는… 아름답다. 수련만 하느라 이성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들이기에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만약 사천에 있었다면 사천제일미(四川第一美)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그런 사람이 쟤랑 저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

당지명은 도저히 자신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어 분통을 터트렸고,

“쯧쯧. 쪼잔한 새끼. 너는 동생의 연애 사업에 질투하냐?”

어느새 한 손에 꼬치구이를 들고 나타난 당유혼에게 머리를 걷어차였다.

“악!! 대, 대형……!”

억울함이 담긴 눈빛으로 항변하려니 당유혼이 한쪽 손에 든 꼬치가 예리한 끝부분을 자랑했기에 얌전히 찌그러졌다.

“훈훈하구만, 아주.”

“…그건 여기가 운남 열대 지방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열 대 맞을래?”

“…아뇨.”

끝까지 질투를 뿜어내는 당주라는 놈의 행태에 혀를 차면서도 당유혼은 가만 앉았다.

‘그래, 저게 맞지.’

사람 사는 게 어찌 혼자만 막연히 살아가며 정(情)도 애(愛)도 없이 살아갈까? 오욕칠정이 인간의 기본 구성이요, 인생사는 다 요지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니들도 좀 집구석에 처박혀 수련만 하지 말고 연애도 하고 해라. 내가 니들 나이 때는 한창이었어, 인마.”

‘뭐라는 거야?’

‘우리보다 어리면서!!’

자칭 나 때를 얘기하는 그들의 대형에게 둘은 혈압이 치솟는 걸 느꼈다.

애초에, 연애할 시간도 없이 처박혀 수련만 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물론, 마음만 그리 먹었지 그게 입으로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붉은 바위 일족의 노랫소리만이 들려왔다.

당유혼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그게 맞는 거지.’

떠날 사람은 떠나가고, 남은 사람은 살아간다.

인생은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오늘의 시간도 이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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